-KBO리그 최고령 홈런왕 래리 서튼, "날 필요로 하면 언제든 돌아갈 것".

-"태권도 하얀 띠란 생각으로 임했던 게 성공 비결"

-지도자 변신, "소통이 최우선, 훌륭한 선수보단 올바른 인격체 키워내는 게 내 목표"

-"자신감 넘치는 강정호 몸 상태 확실하다면 2019시즌 성공할 것"

현대 유니콘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외국인 타자 래리 서튼(사진=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외국인 타자 래리 서튼(사진=현대 유니콘스)

[엠스플뉴스]

래리 서튼. 2005시즌 KBO리그 홈런왕이다. 타이론 우즈(전 두산 베어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홈런 1위에 오른 외국인 타자다. 야구선수로는 '노장' 축에 드는 35세에 이룬 쾌거였다. 서튼의 최고령 홈런왕 기록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서튼은 큼직한 타구만큼이나 훌륭한 인성으로 주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동료들과의 관계, 철저한 자기 관리, 팬들을 향한 팬서비스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현대 시절 함께 했던 송지만 전 키움 히어로즈 코치는 “서튼은 품행부터 남달랐다”며 “굉장히 스마트하고, 프로다운 선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배울 게 많았던 선수”라고 평가했다.

짧은 시간, 굵은 활약 뒤에 잊혀간 타자 서튼. 그가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는 무엇이었을까. 오랜 시도 끝에 서튼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여전히 그리운 그 곳, '한국'

서튼의 아내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다. 현재 그는 아내 고향인 도미니카에 머물고 있다. '귀여운 두 딸'은 서튼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쏙 빼닮았다(사진=래리 서튼)
서튼의 아내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다. 현재 그는 아내 고향인 도미니카에 머물고 있다. '귀여운 두 딸'은 서튼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쏙 빼닮았다(사진=래리 서튼)

KIA 소속이던 2007년, 시즌 중에 한국 무대를 떠났다. 왜 그렇게 갑자기 떠났는지 궁금하다.

(쑥스럽게 웃으며)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그게 뭔가?

마침 아내의 출산이 임박했던 터라 정신이 없었다. 급하게 한국을 떠났다. 모두가 알다시피 KIA에선 성적이 좋지 않았다. 구단에서 조금 빨리 떠날 수 있게 배려해줬다.

갑작스런 이별에 아쉬워하는 이가 많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은 여전히 그리운 곳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특히 현대 시절엔 좋은 추억이 많다. 지금의 날 있게 해준 리그 아닌가. 요즘 딸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최종 후보가 한국, 스페인인데 한국이 유력하지 않을까 싶다.

그간의 삶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보다시피 굉장히 잘 지내고 있다. 살도 많이 쪘다(웃음). 미국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 캔자스시티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주변 친구들이 지도자 변신을 권유했다. 처음엔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이사간 뒤 상황이 달라졌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지도자가 됐다.

운명이란 말이 정답 같다. 다시 입은 유니폼, 다시 선 그라운드. 야구는 정말 운명인 것 같다(웃음). 처음엔 캔자스시티 로열스 도미니카 팀에서 4년을 보냈다. 선수들과 호흡하며 지도하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후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타격 코치로 7년, 올핸 다시 캔자스시티로 돌아가 마이너리그 타자들을 지도했다.

#서튼은 2018시즌까지 총 7년을 피츠버그 타격 코디네이터로 보냈다. 올 시즌엔 그 능력을 인정받아 캔자스시티 소속 마이너리그 타격 코치로 일했다. 캔자스시티 구단에선 핵심 타자 유망주들을 직접 지도하는 중책을 서튼에게 맡겼다.

"2005년 홈런왕 타이틀,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좌로부터) 타이론 우즈, 래리 서튼, 에릭 테임즈. 홈런으로 KBO리그 역사를 다시 쓴 외국인 타자 3인(사진=삼성/ 현대/ 엠스플뉴스)
(좌로부터) 타이론 우즈, 래리 서튼, 에릭 테임즈. 홈런으로 KBO리그 역사를 다시 쓴 외국인 타자 3인(사진=삼성/ 현대/ 엠스플뉴스)

#KIA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시카고 컵스 성민규 스페셜 어사이먼트 겸 아시아 태평양 총괄 스카우트는 서튼을 ‘큰 형님’이라고 불렀다. 선수 시절 남달랐던 리더십과 인품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했다.

“겁 없고 철없던 시절, 서튼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국적은 달랐지만, 절 친형제처럼 대했어요. 편안한 친구이자 든든한 멘토였습니다. 서튼이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나요. ‘네가 존중 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말이었죠. 서튼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아닐까요” 성 스카우트의 말이다.

현대 시절 활약상은 정말 대단했다. 외국인 타자론 역대 두 번째 홈런왕에 이름을 올렸다.

홈런왕은 정말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기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당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적응만 잘하자’고 말이다. 그때의 나는 절실했다. 성공보단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그 시절 KBO리그를 향하는 외국인 선수들 마음이 모두 같지 않았을까.

대개 그랬을 것이다. 나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떤 기대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비결이 뭔가.

매사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다. 영어로 ‘오픈 마인드(open minded)’라고 해야 할까?(웃음). 한국 야구를 배우겠단 마음이 컸다. 감독, 코치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나보다 어린 선수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내가 미국에서 왔으니 당연히 잘할거야’란 생각은 자신을 힘들게 할 뿐이다. 쉽게 말하면 태권도를 예로 들 수 있다.

태권도?

태권도장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사범들이 무슨 띠를 매고 있나.

검은 띠 아닌가.

태권도 사범은 모두 검은 띠다. 도장 안에선 최고이기 때문이다. 대개 외국인 선수들은 자신이 ‘검은 띠’라고 착각한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KBO리그는 전혀 새로운 곳이다. 당시 난 스스로 ‘하얀 띠’라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리그. 나라에 왔으니 모든 걸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더 노력했고, 겸손해지려 했다.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아닐까 싶다.

선배 서튼의 조언 "겸손하라. 마치 태권도 하얀 띠를 맨 것처럼"

(좌로부터) 미키 캘러웨이, 래리 서튼. 두 선수는 2005시즌 현대 유니콘스를 이끈 핵심 멤버였다. 팀 내 핵심 멤버들이 빠진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팀을 이끌었다. 현재 두 선수 모두 지도자로 변신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현대)
(좌로부터) 미키 캘러웨이, 래리 서튼. 두 선수는 2005시즌 현대 유니콘스를 이끈 핵심 멤버였다. 팀 내 핵심 멤버들이 빠진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팀을 이끌었다. 현재 두 선수 모두 지도자로 변신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현대)

사실 2005시즌 초반엔 성적이 좋지 않았다.

(호탕하게 웃으며) 정확히 기억한다. 시즌 초, 3주 정도 부진했다.

어떤 점이 힘들었나.

스트라이크존이 미국보다 넓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투수들에 대한 적응력도 문제였다. 굉장히 까다로운 공을 던졌다. 타격감이 떨어지자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움츠러 들었다.

당시 야구계 일부에선 ‘서튼은 힘들 거다’라고 했다.

(단호하게) 노(No). 난 이겨낼 거란 확신이 있었다. 주변의 많은 격려와 응원 또한 큰 힘이 됐다. 당시 김재박 감독님이 “괜찮다. 힘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타격감이 좋지 않은 날에도 변함없이 라인업에 날 포함했다. 감독님의 확신과 믿음이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초반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투수들을 상대하는 법도 알게 됐다.


만 35세에 기록한 ‘KBO리그 최고령 홈런왕’. 아직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야구선수치곤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엄청난 파워를 선보였다.

사실 미국 시절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원래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가 아니었다.

음.

선수 생활을 하면서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몸 관리 하나만큼은 철저히 했다. 먹는 것부터 휴식,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체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좌로부터) 마이크 스위니, 래리 서튼. 스위니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대표하는 타자였다. 16시즌 동안 통산 1540안타와 215홈런, 909타점을 기록했다(사진=래리 서튼)
(좌로부터) 마이크 스위니, 래리 서튼. 스위니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대표하는 타자였다. 16시즌 동안 통산 1540안타와 215홈런, 909타점을 기록했다(사진=래리 서튼)

2005시즌 이후엔 좋은 활약을 이어가지 못했다. 일부에선 함께 오프시즌 훈련한 앨버트 푸홀스 때문이란 말도 나왔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도 안 되는 소리다(웃음). 겨울마다 마이클 스위니와 함께 훈련했다. 당시 푸홀스도 함께한 건 맞지만, 내 타격에 영향을 준 건 아니다. KIA에선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은퇴를 고려하게 됐다. KIA팬들에겐 죄송할 따름이다.


한국을 향할 때와 떠날 때, 희비가 교차했을 듯싶다.

기쁜 마음으로 왔고,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보통 팀에서 방출되면 나쁜 마음이 들기 쉽다. 하지만, 모두의 배려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한국을 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처음 한국에 올 땐 메이저리그(MLB)를 향한 미련보단 새로운 야구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연봉도 생각보다 많았고(웃음). 한국을 떠날 땐, 때마침 아이가 태어날 무렵이었다. 더 잘하지 못했단 아쉬움이 컸지만, 출산의 기쁨이 함께했기에 빠른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KBO리그 도전을 앞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듯하다.

앞에서 했던 말이지만, 모두가 ‘하얀 벨트’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KBO리그에서 많은 걸 배우고, 성장하겠단 자세가 필요하다. 우월감을 앞세워선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열린 마음으로 먼저 다가서길 바란다.

서튼의 타격 키워드 '소통, 자신감, 신뢰'

“난 항상 25번째 선수였다.“ 서튼은 자신의 메이저리그(MLB) 시절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이너리그에선 팀을 대표하는 타자였지만, MLB에선 백업 역할을 전전했다. “메이저리그에선 꾸준히 타석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런 영향 때문인지 컨디션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늘 주전이었던 선수가 하루 아침에 백업으로 밀려나니 대처법을 몰랐던 거죠. 이젠 그 경험을 선수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난 항상 25번째 선수였다.“ 서튼은 자신의 메이저리그(MLB) 시절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이너리그에선 팀을 대표하는 타자였지만, MLB에선 백업 역할을 전전했다. “메이저리그에선 꾸준히 타석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런 영향 때문인지 컨디션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늘 주전이었던 선수가 하루 아침에 백업으로 밀려나니 대처법을 몰랐던 거죠. 이젠 그 경험을 선수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제는 '지도자'로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굉장히 역동적인 자리다.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땀 흘리는 보람이 크다. 특히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 무엇보다 훌륭한 어른으로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훌륭한 어른’이라고 했나?

내 야구 철학이다. 모든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갈 순 없다. 누군간 전혀 다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문제는 인격이 완성되지 못한 이는 살아남을 수 없단 점이다. 좋은 야구 선수 이전에 훌륭한 인격체가 돼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고.

말처럼 쉽진 않아 보인다.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공을 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야 한다. 매 순간의 소중함을 아는 선수는 야구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 그걸 가르치는 게 코치의 임무다. 이뿐만이 아니다. 타석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타격 플랜은 어떻게 작성하고 적용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단순한 타격 기술은 이후의 문제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들과 많은 대화가 필요할 듯싶다.

대화는 지도자와 선수를 잇는 매개체다. 아무리 이론을 많이 알아도 선수와 소통할 수 없다면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선수 또한 날 신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신뢰의 전제는 소통이다. 내가 그 선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지도 방식도 달라진다.

소통이 포인트인가.

미국 야구는 소통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잠재 능력이 발휘되고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것이다. 소통은 누군가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최근 KBO리그에서도 ‘소통하는 지도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지도자는 독재자가 아니다. 그저 좋은 친구이고 동력자다. 내 생각보단 선수 생각이 우선돼야 한다. 열 번의 연습보단 한 번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 실패에 부딪힐 때 함께 토론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KBO리그에서 보낸 시간도 도움이 됐을 듯하다.

내겐 굉장히 즐겁고, 익사이팅(exciting)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론 야구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됐다. KBO리그에서 뛰었단 건 내겐 큰 자랑이다. 요즘 KBO리그를 즐겨본다. 최근엔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프런트와 코치진이 미국에서 많은 걸 배워 가려 하더라. 분명 더 좋은 리그가 될 것이다.

서튼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 달려갈 것"

(좌로부터) 래리 서튼, 토니 페냐 전 캔자스시티 로열스 감독. 서튼은 이미 지도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MLB 한 관계자는 서튼을 두고 “언젠간 MLB 감독이 될 남자“라고 평했다. 이 평가대로라면, 멀지 않은 시간에 MLB 감독이 된 서튼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사진=래리 서튼)
(좌로부터) 래리 서튼, 토니 페냐 전 캔자스시티 로열스 감독. 서튼은 이미 지도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MLB 한 관계자는 서튼을 두고 “언젠간 MLB 감독이 될 남자“라고 평했다. 이 평가대로라면, 멀지 않은 시간에 MLB 감독이 된 서튼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사진=래리 서튼)

현대 시절 신인이었던 강정호를 피츠버그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캉(강정호)'은 많이 어렸다. 함께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캉이 피츠버그에 온단 소식을 듣고 영상을 찾아봤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타자다.

강정호에겐 올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

첫해부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부상이 아니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기록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길 나눈 것으로 안다.

직접 만나 이야길 나눠보니 야구 욕심도 많고, 배우려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캉의 가장 큰 무기는 자신감이다. 마치 내가 KBO리그에 갔을 때처럼 말이다(웃음). 경기 전, 상대 투수 연구에 여념이 없더라. 준비된 자에겐 기회가 찾아온다.

한국엔 언제 돌아올 건가.

준비는 12년 전에 마쳤다. KIA를 떠나면서 언젠간 KBO리그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생각했다. 가족들도 한국을 궁금해한다. 어떤 역할이든 맡겨만 준다면, 2005년을 다시 한번 재현하고 싶다.

전수은 칼럼니스트 jse78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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