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타이완 우승으로 폐막…한국은 3위

-대회 초반부터 ‘타이완 전력 막강’ 전망…호주, 스페인 등도 선전

-주말리그와 최저학력제 시행으로 한국 야구 경쟁력 저하는 불가피한 상황

-변화하는 세계야구판도 속에 패러다임 변화 절실하다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제29회 U-18 야구 월드컵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제29회 U-18 야구 월드컵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부산 기장에서 열린 제29회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U-18 야구 월드컵)가 9월 8일 타이완의 우승으로 모두 끝났다. 개최국 한국은 3, 4위전에서 호주에 진땀승을 거두고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대회를 지켜본 야구 관계자 사이에선 세계야구의 수준이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음을 이번 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만 해도 어느 하나 쉬운 경기가 없었다. 첫 경기 네덜란드와 고전 끝에 간신히 이겼고, 호주에는 완봉패를 당했다. 타이완과 슈퍼라운드 경기도 완패였다. 유럽을 대표하는 스페인의 선전과 중국의 경기력 향상도 눈에 띈 대목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세계 일주를 마친 뒤 돌아와 왕과 여왕에게 ‘지구는 둥글다’고 보고했다. 경제학자 토마스 프리드먼은 이를 인용해 ‘세계는 평평하다’고 썼다. 이를 재인용해 U-18 야구 월드컵을 보고 난 소감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야구는 평평하다, 아니 평평해지고 있다’고 말이다.


타이완 강세, 호주-스페인 선전…세계야구가 점점 평평해진다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타이완 청소년대표팀(사진=WBSC)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타이완 청소년대표팀(사진=WBSC)

이번 U-18 야구 월드컵 대회 초반부터 국외 스카우트와 야구 관계자 사이에선 ‘한국의 우승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타이완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 투수 천포위를 비롯해 2루수와 유격수 등 메이저리그에서 관심을 갖는 선수가 여럿이다. 공격력 면에서도 일본이나 한국보다 낫다고 본다고 했다.

실제 한국은 타이완과 맞대결에서 2대 7로 완패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경기 후 “말 그대로 완패 아니겠나. 힘 대 힘에서 밀려서 진 경기였다”라고 인정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타이완을 ‘한 수 아래’로 여겼다. 어쩌다 타이완에 패하면 운이 나빠서 졌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만 놓고 보면 타이완의 전력이 한 수 위였다. 야구 종주국 미국도 결승에서 타이완에 패배 우승을 내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사키 로키, 오쿠가와 야스노부 등 고교 에이스 듀오가 출동한 일본은 슈퍼라운드에서 호주에 패해 6위권 밖으로 탈락했다. 호주는 오프닝 라운드에서도 한국에 1대 0 승리를 거둔 팀이다.

스페인은 오프닝 라운드에서 일본에 2대 4로 지긴 했지만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튿날 경기에선 야구 강국 중 하나인 파나마에 12대 3으로 크게 이겼다. 타이완과 경기 결과도 4대 5, 한 점 차 패배였다.

만년 약체였던 중국은 2승 6패, 11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긴 날보다 진 날이 많은 건 여전했지만, 예전처럼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진 않았다. 득점과 실점의 차이가 눈에 띄게 줄었다. 콘솔레이션 라운드에선 스페인, 니카라과를 2경기 연속 팀 완봉승으로 제압하는 등 선전을 펼쳤다.

오랫동안 야구의 변방에 있던 국가들이 선수층과 경기력 면에서 부쩍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한 미국 구단 스카우트는 “유럽과 호주는 신체조건 면에서 강점이 있다. 아직 야구 저변이 넓지 않다뿐이지, 체계적인 훈련과 경험이 축적되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중국야구 역시 압도적인 인구수에서 나오는 선수 자원과 메이저리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조금씩 경쟁력을 갖춰가는 중이다. 지금 당장은 약체일지 몰라도, 앞으로 수년 뒤엔 만만찮은 전력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


‘금메달 못 딸 수도 있다’ 패러다임 변화 필요

일본 청소년대표팀이 경기 앞두고 훈련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일본 청소년대표팀이 경기 앞두고 훈련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문제는 한국야구다. 세계야구는 갈수록 평평해지는데, 한국야구는 예전만큼 경쟁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수도권 구단 스카우트는 한일전을 앞두고 고등학교 팀만 2천 개가 있는 나라를 70개 학교를 보유한 나라가 어떻게 이기느냐이전까지 이길 수 있었던 건, 공부나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야구만 했으니까 이긴 것이라 했다.

이제는 학생야구 선수들을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반발 속에 시작된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이제는 자연의 일부처럼 여겨질 정도로 정착됐고, 학생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최저학력제’도 도입을 앞두고 있다.

일부 현장 감독과 야구인은 옛날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주말리그 폐지와 강훈련을 주장한다. 시대착오다. 한 야구인은 주말리그와 최저학력제는 교육부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야구는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야구계가 반발한다고 정부 정책이 바뀌겠느냐이제는 야구인들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바뀐 정부 정책 안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 이사는 “2011년부터 일찌감치 정부의 최저학력제 도입 움직임에 대해 야구계에 경고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그때는 듣지도 않다가 이미 정책이 결정된 2017년이 돼서야 다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내더라. 야구계가 목소리를 낸다고 정부 교육 정책이 바뀌겠나. 야구만 특혜를 주면 다른 학생들이나 종목에선 뭐라고 하겠나. 현실을 너무들 모른다”고 일갈했다.

예전처럼 야구를 위해 공부를 비롯해 모든 걸 포기하고, 지옥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려 국제대회에서 메달만 따면 박수를 받던 시대는 지났다. 한 야구인은 “옛날엔 체육 특기자는 공부는 포기하고 야구만 잘하는 학생을 가리켰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학업을 하는 학생 중에서 야구에 소질이 있는 학생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달라졌다”고 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건 시대의 흐름이자 정부 정책으로 돌이킬 수 없다. 교육제도가 이런 방향으로 바뀌면, 엘리트 스포츠가 과거의 방식으로 옛 영화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국제대회 금메달을 최우선 가치로 삼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제대회에서 우승 못 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학원 스포츠와 국가대표팀 운영에서도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긴 시간 많은 훈련과 강압적인 선수 통제가 기량 발전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방 한 고교 감독은 “장시간 운동장에서 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건 노동”이라며 “수업을 다 받으면서 짧은 시간 동안 성과를 내려면, 지도자들도 효율적인 훈련 방식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발, 선수 선발부터 객관적인 있는 기준 아래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젊고 최신 야구 흐름을 잘 이해하는 지도자를 임명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납득할 수 있는 운영을 해야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면에서 이번 U-18 야구 대표팀은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다.

평생 한 번뿐인 신인 드래프트 행사 참가도 못 하게 한 채 훈련에 매진한 결과는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어린 선수들에게 국가와 대표팀을 위한 무조건 희생을 강요하는 건 구악이다. 자신들의 무능을 핑계로 덮을 게 아니라, 학생들이 진심으로 야구와 경기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어른들이 할 일이다. 그게 점점 더 평평해지는 세계야구 무대 위에서 한국야구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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