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선수 위주로 구성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대회 4위로 마감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야구에 사상 최초 연패…야구계와 미디어 비판 거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대학야구 활성화’ 앞세워 아마추어 위주 선수 선발

-프로에서 주장하는 ‘대학야구 활성화’, 번지수 틀린 비판이다

제2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제2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엠스플뉴스]

타이중 참사. 한국야구의 망신. 한국야구의 부끄러운 민낯.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이다.

한국야구가 중국야구에 두 번 연속 졌다. 중화민국(타이완)을 잘못 적은 게 아니다. 상대는 ‘중국’이었다. 한국은 10월 20일 타이완 타이중 인터콘티넨털 구장에서 열린 제2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3위 결정전에서 6대 8로 역전패했다. 8회초까지 6대 2로 앞서다 8회말에만 대거 6점을 내주고 무너져 내렸다.

앞서 14일 열린 조별리그 1차전 때도 3대 4로 졌던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중국 상대 ‘연패’를 당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중국은 물론 ‘숙적’ 일본과 타이완 상대로도 완패를 당한 바 있다.

한국이 중국에 야구로 붙어 지는 건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미국이 한국에 졌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번 대회 전까지 한국의 중국 상대 패전은 2005년 열린 미야자키 아시아선수권 동메달 결정전 패배(3대 4)가 유일했다. 한 지방구단 스카우트는 “정말 당황스럽다”고 유감을 표했다.

특히 이번 대회가 2020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 출전권이 걸린 대회로 알려지면서, 대표팀을 향한 비난이 더 커지는 분위기다. 올림픽 개최국 일본을 제외한 상위 두 나라에 올림픽 예선 출전권이 주어지는데, 대회 4위에 그쳐 기회를 날렸단 비판이다. 이제 한국이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려면 다음 달 열리는 ‘프리미어 12’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오세아니아 국가 가운데 제일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다만 한 KBO 관계자는 “아시아야구선수권 때문에 올림픽 출전 보험을 날렸다는 지적은 과장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미어 12에서 한국을 제칠 수 있는 국가는 현실적으로 타이완 한 팀 정도다. 만약 그렇게 되면 타이완이 아시아선수권에서 얻은 최종 예선 출전권을 4위 한국이 가져간다. 또 타이완과 한국, 호주가 모두 떨어지는 경우의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세 팀의 맞대결에서 타이완 혹은 한국이 1위를 하면, 한국이 출전권을 가져간다.알려진 것과 달리, 이번 대회 결과가 한국의 올림픽 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대학야구 활성화’ 앞세운 대표팀 구성…의도와는 정반대 결과 초래했다

KBO는 프로 선수 발탁에 협조할 뜻을 밝혔지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생각은 달랐다(사진=엠스플뉴스)
KBO는 프로 선수 발탁에 협조할 뜻을 밝혔지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생각은 달랐다(사진=엠스플뉴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타이중 참사’를 자초했다고 비난받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도, KBSA를 비난하는 쪽에서도 똑같이 ‘대학야구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KBSA는 이번 대표팀을 프로 선수 없이 전원 아마야구 선수(대학 20명, 고교 4명)로 구성했다. 이전까지 프로 1.5군급 선수와 대학 선수를 반반씩 섞어 출전해온 관례를 깼다. 애초 KBO에선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대회인 만큼 성적을 내야 한다. 프로 선수 차출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KBSA의 생각은 달랐다.

KBSA 김용균 사무처장은 대학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사실상 이번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밖에 없다.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대학야구연맹의 재정난 때문에 출전을 못 한 적도 있었고, 기껏 나가는 국제대회도 소규모 친선대회 정도인 실정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만큼은 아마추어 선수들만으로 해보자는 의지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 자긍심을 심어주고, 침체된 대학야구가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던 애초 KBSA의 의도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대표팀 감독 선발 과정부터 잡음이 많았다. 대표팀 윤영환 감독(경성대)은 ‘2019년 국제대회 파견 대표팀 지도자 선발’ 공개채용에 대학 감독 중에 유일하게 지원해 무혈입성했다. KBSA는 대표팀 감독 공채 사실을 홈페이지 게시판에만 올려놓고 아무런 홍보를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 감독이 대표팀 감독 공채를 ‘몰라서’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표팀 감독 면접관으로 참석했던 한 야구인은 “감독 후보자가 윤 감독 하나뿐이고 코치 후보도 동아대 이재헌 감독 한 사람밖에 없었다. 면접을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고 했다.

대표팀 선수 선발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 8월 23일 열린 경기력향상위원회 회의는 김소식 위원장과 KBSA 이사 1명, 윤영환 감독, 프로 스카우트 2명만이 참석했다. 애초 프로 스카우트 4명이 참석 예정이었지만, 2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회의를 시작하며 김소식 위원장은 ‘김응용 회장의 뜻’이라며 ‘이번 대표팀은 순수하게 아마추어 위주로 선발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에 2명의 프로 스카우트가 미리 추려온 40명의 대학 선수 명단을 바탕으로, 윤영환 감독이 최종 선택하는 방식으로 선수 선발이 진행됐다.

객관적인 국내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대표팀 후보를 선정하고, 위원들 간 회의를 통해 선수를 결정하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야구 관계자는 “프로 스카우트가 추천한 선수를 윤 감독이 제외하기도 했고, 몇몇 선수는 윤 감독이 직접 추천해 대표팀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KBSA는 프로 선수를 배제하면서도, 예외적으로 “상무 소속 선수는 뽑을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이에 일부 위원이 상무야구단 소속 심창민(삼성) 등의 발탁을 제안했지만, 윤영환 감독이 ‘순수 아마추어 대표팀’을 고수했단 후문이다. 결과는 중국전 연패와 대회 4위란 ‘충격적’인 성적표였다.

한 지방구단 스카우트는 아마추어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하겠단 KBSA의 뜻은 존중한다. 하지만 프로 선수를 완전히 배제하고, 상무 선수까지 제외한 판단은 동의하기 어렵다. 냉정하게 말해 이번 대표팀 전력이 지난달 부산 기장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 대표팀 전력보다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이 스카우트는 “현재 대학야구엔 쓸만한 포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가능성 있는 고교 포수는 프로에서 전부 지명을 하기 때문에, 수비력을 갖춘 대학 포수는 연세대 정진수가 유일했다. 오죽하면 중요한 경기엔 고교생인 유신고 강현우가 마스크를 썼겠나”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구단 스카우트도 “고교생을 대표팀에 발탁했다는 것 자체가 대학야구가 약하단 증거 아니겠느냐”며 “대학야구 선수만으로 충분하다면 고교생이 포함될 이유가 없다. 이번 대표팀에서 중요한 경기 땐 유신고 소형준과 강현우가 중용된 것으로 안다. 대표팀 감독 스스로 대학 선수들의 경쟁력이 없단 걸 인정한 셈”이라 했다.

이번 대회 결과에 대해 KBSA 관계자는 “솔직히 전혀 예상 못 했던 결과다. 알 수 없는 게 야구”란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지방구단 관계자는 “만약 정말로 대학 선수들만으로 해 볼 만 하다고 판단했다면, 지나치게 오만하거나 야구 보는 안목이 형편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대표팀을 통해 선수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대학야구를 활성화한다는 목표는 국제대회에서 일정 수준 경쟁력을 발휘할 때 가능한 얘기다. 이번처럼 참패를 당하면, 오히려 대학야구의 명예만 떨어질 뿐이다. 대학야구 활성화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아마야구를 배제할 명분만 만들어 줬다”는 지적이다.

“세상이 바뀌었다…프로야구가 원하는 ‘대학야구 활성화’는 불가능”

아마추어 선수 중심의 대표팀 구성은 김응용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엠스플뉴스)
아마추어 선수 중심의 대표팀 구성은 김응용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엠스플뉴스)

한편 이번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과를 비판하는 쪽에서도 ‘대학야구 활성화’를 외치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야구가 다시는 국제대회에서 이런 망신을 당해선 안 되고, 그러려면 아마야구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해결책은 침체된 아마야구를 지원하고 대학야구를 활성화하는 것이란 레퍼토리의 반복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KBSA 한 이사는 “대학야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 자체로는 좋은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대학야구를 ‘어떻게’ 활성화하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이사는 만약 프로 쪽에서 외치는 ‘대학야구 활성화’의 목적이 프로에 더 많은 우수 선수를 공급하고 국제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라면 번지수가 완전히 틀렸다. 앞으로의 교육제도에서는 프로가 원하는 형태의 ‘활성화’도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한 방향도 아니라고 본다는 생각을 밝혔다.

대학야구 선수로 구성된 대표팀이 중국에게도 질 정도로 약해진 건, 야구 잘하는 고교생 대부분이 대학 대신 프로를 택하기 때문이다. 프로 스카우트들도 “조금이라도 싹수가 보이는 선수는 먼저 프로에서 지명해 간다”고 인정했다. 프로야구가 대학야구의 씨를 말려놓고 대학야구 활성화를 외치는 아이러니다.

여기서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이 택하는 게 대학 진학이다. 최근엔 프로 재도전을 염두에 두고 4년제 대신 2년제 학교로 선수가 몰리는 실정이다. 정말 야구를 잘하고 잠재력 있는 선수는 애초부터 대학에 가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 주장하듯 주말리그를 없애고, 경기 수를 늘리고, 훈련량을 늘리면 ‘대학야구 활성화’가 이뤄질까. 대학선수들이 프로 3군, 독립리그와 함께 리그전을 펼치면 대학이 활성화될까. 프로에서 팀별로 1명을 의무지명한다고 활성화가 가능할까. 무엇보다 그게 진짜 대학야구를 활성화하는 길이 맞기는 할까.

KBSA 이사는 프로야구를 중심에 놓고 대학야구를 바라보면 문제의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학생야구 선수들을 둘러싼 환경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교야구와 대학야구 주말리그 제도가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최저학력제도 조만간 시행될 예정이다. 야구인들이 볼멘소리를 한다고 교육부와 정부 차원의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다. 특혜 철폐와 공정을 요구하는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프로에서 원하는 방식의 ‘대학야구 활성화’는 시대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실현 불가능한 생각이다.

KBSA 이사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건 시대의 흐름이자 정부 정책으로 돌이킬 수 없다. 이제는 대학야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프로 지명을 못 받은 선수들을 위한 패자부활전이 아니라, 야구에만 올인했던 선수들이 야구 외의 새로운 길을 찾는 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대회 성적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한 프로 스카우트는 “세계야구가 점점 평평해지는 추세다. 솔직히 올해 청소년야구와 아시아선수권에서 중국야구의 발전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앞으로는 중국처럼 한 수 아래로 생각한 나라들과 붙어도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엘리트 스포츠가 과거의 방식으로 영광을 누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앞의 스카우트는 “지금까지 한국야구의 국제경쟁력은 다른 걸 다 제쳐놓고 오직 야구만 해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국제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할 수도, 약팀에게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온다. 이게 이번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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