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투수 권오준, KBO리그 최고령 투수 활약
-“차근차근 몸 상태 끌어올려, 욕심 버려야 할 때다.”
-“은퇴 생각 안 해, 여전히 다른 선수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
-“삼성 팬들에게 죄송해, 올 시즌 최대한 많이 마운드에 올라가겠다.”

현역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삼성의 20세기를 경험한 베테랑 투수 권오준(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현역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삼성의 20세기를 경험한 베테랑 투수 권오준(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20세기 끝자락인 1999년 푸른 유니폼을 입고 팀에 입단한 한 투수가 있다. 그 투수는 ‘원더키디’ 속 상상의 2020년에도 여전히 그 푸른 유니폼을 입고 있다. 불혹에도 여전히 마운드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싶은 그 투수는 바로 삼성 라이온즈 투수 권오준이다.

삼성의 ‘원 클럽 맨’인 권오준은 21세기 초반 팀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는 동시에 세 차례 팔꿈치 수술(토미존 서저리)까지 받으며 굴곡 있는 야구 인생을 살아왔다. 우여곡절 끝에서도 삼성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맡아준 권오준은 2017시즌 종료 뒤 2년 총액 6억 원에 생애 첫 FA(자유계약선수)를 맺었다. 이후 2년이 지나고 FA 계약이 끝난 권오준은 2020시즌에도 삼성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른다.

2020년에도 ‘은퇴’라는 단어는 권오준의 마음속에 없다. 1980년 3월 9일생인 권오준은 2020시즌 KBO리그 최고령 투수로서 공을 던지게 됐다. 1980년생 KBO리그 현역 투수는 권오준과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뿐이다. 여전히 권오준은 훈련 뒤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게 재밌고 행복하다. 마운드 위에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고개 숙이지도 않겠단 게 권오준의 마음가짐이다.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본 적 없는 권오준의 여전한 불혹 야구 열정을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총 나이 120세’ 삼성 베테랑 트리오 활약 기대

2010년 스프링캠프에서 촬영한 배영수(사진 왼쪽부터)·오승환·권오준의 사진.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사진=삼성)
2010년 스프링캠프에서 촬영한 배영수(사진 왼쪽부터)·오승환·권오준의 사진.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사진=삼성)

해가 바뀌기 전에 오키나와로 넘어와 개인 훈련을 소화했다고 들었다.

예년과 다르게 조금 더 일찍 넘어왔다. 특별한 마음가짐보단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한 곳에서 몸을 일찍부터 만들려고 했다.

투구 페이스를 빨리 올리려고 하는 건가.

그런 것보단 차근차근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일찍부터 움직인 거다. 스프링 캠프에서 불펜 피칭 5번 정도는 해야 실전 등판이 가능할 듯싶다. 2월 말에 실전 피칭을 계획하고 있다.

예전부터 캠프에서 까마득한 후배들보다도 더 열심히 훈련하는 거로 소문나 있다.

이제 그 정도로 무리하게 훈련하려고 하진 않는다(웃음). 예전에 오버페이스를 자주 하다가 부상이 올 수 있단 걸 깨달았다. 확실히 차분하게 시즌을 준비하려고 한다. 코치님도 몸을 천천히 만들라고 하시며 베테랑 투수들에겐 자유로운 훈련 시간을 내주셨다.

지난해 43경기(43이닝)에 등판해 3승 3홀드 평균자책 5.23 26탈삼진 12볼넷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1.42를 기록했다. 특별히 상향한 목표를 마음속에 새겨놓고 훈련을 하는 건가.

(고갤 내저으며) 그렇게 한다고 현실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 많은 경기에 등판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난해 어느 정도 목표로 잡은 것들 가운데 성취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걸 만회하려고 무리하다 보면 다치게 된다. 그저 순리대로 가야겠단 생각뿐이다. 욕심은 내려놔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자체가 나에겐 중요하다.

캠프에선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 역할을 맡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번까지 18번 정도 스프링캠프에 온 듯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최고 선참으로서 해줘야 할 부분도 있다. 후배 투수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건 불편할 수 있으니까 후배들이 나에게 편안히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오승환 선수의 복귀도 큰 힘이 될 듯싶다.

(오)승환이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선수다. 후배 투수들뿐만 아니라 나도 보고 배울 만한 선수다. 시즌에 돌입하면 팬들이 기대하는 그런 승환이의 공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와 승환이, 그리고 (윤)성환이까지 셋이 합쳐 ‘120세’라는 얘길 들었다(웃음). 각자 선발·불펜·마무리 위치에 있으니까 팬들의 기대대로 활약하면 좋지 않겠나.

“은퇴? 타자들을 이기고 싶단 마음은 여전해.”

권오준은 이번 캠프 초반 불펜 피칭을 통해 여전히 죽지 않은 구위를 선보였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권오준은 이번 캠프 초반 불펜 피칭을 통해 여전히 죽지 않은 구위를 선보였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최고령 투수’라는 타이틀은 어떤 느낌인가.

솔직히 그런 타이틀은 쑥스럽다. 오랫동안 야구했지만, 그만큼 내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낸 적이 없으니까. 수술을 세 차례나 했는데 구단에서 배려해주고 기회를 많이 준 거다. 구단과 팬들을 위해 더 좋은 공을 보여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스럽기도 하다.

마음속으로 ‘은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 적은 없나.

나는 ‘은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잘릴 때까지 야구할 거다(웃음). 사실 은퇴라는 말은 쉽지만, 개인적으로 은퇴라는 단어를 제대로 사용할 선수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청난 스타플레이어가 아니기에 은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듯싶다. 그냥 ‘잘린다’라는 표현이 맞지 않겠나(웃음).

지난해 옛 동료인 두산 베어스 배영수 코치는 한국시리즈 우승 마무리 투수라는 멋진 피날레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권오준 선수가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도 있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야구를 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본 적은 전혀 없다. 마운드 위에서 X 팔리고 싶지 않단 마음뿐이다. 여전히 타자를 이기고 싶단 마음도 여전하다. ‘이제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내려놔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안 느끼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여전히 승부욕이 강하게 느껴진다.

나이와 관계없이 나 자신을 포함해 다른 선수들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아직 마운드 위에서 고갤 숙일 때가 아니다.

“아직 야구가 재밌고, 운동하는 게 행복하다.”

40세 권오준은 여전히 20세 권오준만큼 상대를 이기고 싶단 열정을 불태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40세 권오준은 여전히 20세 권오준만큼 상대를 이기고 싶단 열정을 불태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삼성이 기나긴 암흑기를 겪고 있단 평가가 많다. 왕조 시절을 포함해 가장 오랫동안 팀을 지켜본 베테랑 선수로서 어떤 아쉬움이 느껴지는가.

왕조 시절을 겪은 베테랑 투수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삼성만의 팀 색깔을 후배들에게 잘 전달하지 못한 미안함이다. 나름대로 노력해도 마음 같이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그만큼 세월도 많이 흘렀다. 하지만.

하지만?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는 건 그때와 다르지 않다. 성적의 차이가 보이지만, 노력이 바로 결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 아프다. 만약 후배 선수들이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고, 프로답지 못한 자세를 보이는 건 나도 참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캠프에 있는 선수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심적으로는 ‘예전에 잘했는데 최근에 왜 이렇게 못하지’라고 생각하기보단 당장 눈앞에 놓인 순간에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2020년에도 보여줄 권오준 선수의 특별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특별하게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 변하지 않는 하나는 마운드 위에 자주 올라가고 싶단 점이다. 아직은 다른 선수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 경쟁에서 이겨야 마운드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거고. 시즌 전 준비한 걸 제대로 쏟아내고 싶다.

불혹에도 여전히 야구가 재밌나.

(살짝 미소 지으며) 아직도 야구가 재밌다.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질 때가 정말 기분 좋다. 훈련하며 땀을 흘리는 것도 행복하다. 모든 순간에 감사하며 열심히 훈련하려고 한다.

20년 넘게 권오준 선수를 향해 응원한 삼성 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항상 죄송스럽운 마음이다. 시즌 전에 이렇게 저렇게 하겠단 말씀을 많이 드렸는데 안 좋은 결과만 계속 나왔다. 정말 죄송하단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마운드 위에서 좋은 공을 보여드리고 팀 승리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고갤 숙이는 날이 최근 더 많았다. 그래도 야구장을 찾아와주신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야구장에서 응원해주시는 만큼 선수들은 힘이 난다. 가을야구를 가겠단 긍정적인 목표도 필요하지만, 해마다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게 이제 거짓말처럼 식상해진 느낌도 있다. 그저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이기려고 한단 점만 팬들이 잘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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