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줌 코리아 오성규 대표, ‘중계부터 세계 대회 주관까지’ 한국 당구계를 이끄는 선두 주자

-“당구를 처음 접한 순간? 이토록 재밌는 놀이가 있었나 싶었다”

-“평범한 회사원 생활은 물론 분식집·당구장 운영 등 안 해본 일 없다”

-“당구계 발전을 위해선 생방송이 늘어나야 한다”

-“서바이벌 마스터즈, 당구계 ‘EPL·NBA’로 성장할 가능성 충분하다”

코줌 코리아 오성규 대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코줌 코리아 오성규 대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당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당구 산업에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당구전문 인터넷 방송으로 유명한 코줌 코리아 오성규 대표의 얘기다.

오 대표는 사회 경험이 풍부하다. 분식집을 운영한 적이 있고 무역회사와 보험회사에선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 2002년엔 당구학원을 차렸다. 당구학원을 접은 2005년부턴 당구 강사, 칼럼니스트, 해설위원(2007년) 등으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오 대표가 당구 중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06년이다. 당구 중계와 레슨 영상을 만들고 있던 코줌 프랑스에 이메일을 보냈다. 이 메일 한 통으로 코줌 프랑스와 인연을 맺게 된 오 대표는 본격적인 당구 중계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엔 세계당구연맹(UMB) 주관 전 경기 생중계에 앞장섰다.

오 대표는 ‘서바이벌 3쿠션 마스터즈’의 탄생에도 힘썼다. 2018년 9월 첫 대회를 시작한 서바이벌 마스터즈는 코줌 코리아가 주관하는 대회다. 6회 대회 이전까진 월드컵 성적을 합산해 세계톱랭커 24명만 참가했다. 2019년 9월 서울 대회부턴 128명으로 참가 인원을 대폭 확대했다.

오 대표는 서바이벌 마스터즈를 축구의 EPL(영국), 농구의 NBA(미국), 야구의 MLB(야구)에 버금가는 대회로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다. 엠스플뉴스가 오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눈에 반한 당구, 청년 오성규 삶을 바꾸다

코줌 코리아 오성규 대표는 프로당구 선수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코줌 코리아 오성규 대표는 프로당구 선수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코줌 코리아는 인터넷 방송, 당구 큐, 테이블 등 당구용품 판매 전문 업체로 당구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코줌 코리아는 세계당구연맹과 미디어, 마케팅 계약을 맺고 당구가 대중의 생활 속 깊이 자리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웃음).

대표께선 프로 당구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음 편히 당구선수로 활동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웃음). 당구 칠 때 가장 행복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큐대를 잡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당구장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을 때였죠. 보수적인 아버지께서 당구란 스포츠가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는데 헤어 나올 수 없더라고요. 첫눈에 반한 거죠.

첫눈에 반했다?

이렇게 재밌는 놀이가 있나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학창 시절 축구, 농구는 일상이었죠. 대학교 입학 후엔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강의가 없을 땐 자연스럽게 당구장으로 향했죠.

당구를 처음 접하고부터 당구와 관련된 꿈을 키운 겁니까.

당구계에서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막연히 운동으로 무언가 해보고 싶었어요.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 예로 동생은 서울대 입학할 성적을 받았지만 경찰대를 갔어요. 전액 장학금을 받아도 하숙할 돈이 없었죠.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1년 동안 일을 못 했는데 빚이 눈 깜짝할 새 늘어나더라고요.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대학 3학년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체육계에서 일을 시작한 겁니까.

처음엔 운동과 관련 없는 일을 했어요. 유통업에 종사하다가 300만 원을 빌려 1년간 분식집을 운영했습니다. 이후엔 서울 여의도 무역회사에 들어갔고요. 꿈보단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대학을 야간으로 바꿨어요. 돈이 있어야 학교를 졸업하고 생계유지가 가능했던 까닭이죠. 그렇게 쉴 틈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살면 빚을 갚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 결심했죠.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한 번 해보자’고.

잘할 수 있는 걸 한다?

20살 때부터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한 당구였습니다. 특히나 당구는 미개발 분야였어요. 여기서 조금만 노력하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죠. 과감하게 모든 걸 접고 당구 학원을 차렸습니다. 그때가 2002년이었어요.

모든 걸 걸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어떤 일에 도전하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다만 주변 사람이 잘못된 영향을 받는 게 걱정이죠. 개인의 실패는 향후 성공에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2002년 전국에 당구학원이 하나 있었어요. 그 학원이 있는 서울로 가서 이야기했습니다. ‘대전에 분점 형태로 학원을 차리게 해달라’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당구학원은 흔히들 생각하는 당구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형태는 똑같은데 오는 사람들이 다르죠(웃음). 수강생이 아닌 사람들도 올 수 있지만 월 정액제를 내야 했어요. 처음엔 학원이 예상보다 아주 잘 됐습니다. 사업 시작 6개월 만에 월 회원이 80명으로 늘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였습니까.

회원과 매출이 늘면 강사를 더 써야 합니다. 운영비가 늘어나는 거죠. 예를 들어 한 달 수입이 천만 원이면 지출은 천백만 원인 상황이었어요. 고심 끝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 도전한 사업입니다.

당구장을 접은 건 아니었어요. 제 권리를 포기하고 당구장을 인근 건물로 옮겼습니다. 사장이 아닌 근로자로 일을 시작했죠. 당구 학원으로 큰 성공을 이루진 못 했지만 일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당구계 종사하는 사람들도 알게 되면서 여러 기회를 얻게 됐죠.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당구 칼럼을 5년간 썼어요. 대전 지역 당구동호회 활성화에도 이바지했죠. 이분들은 대전뿐 아니라 서울, 인천, 부산 등 전국적인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대표께서 ‘당구 경기를 영상으로 송출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언제였습니까.

학원을 차린 지 얼마 안 된 2003년이었습니다. 당시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해 우승했어요. 그때 많이 들었던 말이 이겁니다. ‘당구가 발전하려면 미디어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이거다’ 싶었습니다. 당구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니 미디어로 노출이 되면 성장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다는 확신이 섰죠. 단, 아마추어가 아니라 세계 최고 선수들의 경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과로로 한 쪽 청력을 잃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코줌 코리아 오성규 대표는 당구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코줌 코리아 오성규 대표는 당구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본격적으로 당구 방송 사업에 뛰어든 건 언제입니까.

2006년 코줌 프랑스에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맨땅에 헤딩한 것이나 다름없었죠(웃음). 당시 프랑스 코줌은 당구 비디오테이프 영상으로 시작해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었어요. 그쪽에서 저의 열정을 좋게 봐준 덕분에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코줌 코리아의 성장 과정에 대해 조금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처음엔 코줌 프랑스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보고 배웠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당구 중계가 활성화되면 이 산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죠. 2008년엔 코줌 프랑스가 세계당구연맹과의 온라인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어요. 전 그 중계권을 한국에 들여와 판매를 시도했습니다. 코줌 코리아가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한 건 2012년이에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코줌 코리아가 법인이 된 해입니다(웃음). 2006년부터 2011년까진 개인회사로 운영을 해왔어요. 힘든 점이 많았죠. 회사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험회사에 다녔어요. 월급을 받으면 모조리 코줌 코리아에 투자했죠. 카메라와 같은 촬영 장비 사는 데 돈을 썼어요. 그러던 중 제게 당구를 배운 두 분의 교수께서 투자를 해주셨습니다. 법인화에 큰 힘이 됐죠.

보험회사에 다니며 회사를 운영해 나아가는 열정에 투자를 결정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 이 일을 하면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어요. 대한당구연맹에서 주관하는 대회를 온라인으로 중계할 때였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 주 두 대회를 중계했어요. 대전에서 전국대회를 마치면 경기도 연천에서 지역 대회를 중계하는 일정이었죠. 하루에 3시간도 못 잔 것 같아요. 마지막 3일은 한숨도 못 잤죠. 몸에 무리가 온 겁니다.

아.

오랜 시간 잠을 못 자니까 몸에 이상이 오더라고요. 이렇게 청력은 잃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당구 중계를 활성화해 당구계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에요.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던 중 생긴 일이니 어쩔 수 없죠(웃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당구 중계가 익숙해진 걸 보면 아주 뿌듯해요.

코줌 코리아는 현재 UMB에서 주관하는 모든 대회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난해엔 UMB 주관 전 경기를 생중계했습니다.

‘생중계’는 당구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토브욘 브롬달(스웨덴),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마르코 자네티(이탈리아) 등 세계 최정상급 선수가 노력한 성과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거예요. 조재호, 허정한, 최성원, 김행직 등 한국 선수의 정상 도전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죠.

지난해 9월 마곡동 ‘더 넥센 유니버시티’에서 열린 ‘2019 서울 서바이벌 3쿠션 마스터즈’ 결승전은 당구 대회 사상 최고 시청률은 1.2%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주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선발 출전 경기(1.08%)보다 높은 시청률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생방송의 힘입니다. 결승전이 녹화방송이었다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건 어려웠을 거예요. 결과를 알고 보는 스포츠는 매력이 떨어집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승부야말로 최고의 콘텐츠죠. 당시 대회 현장엔 새벽 1시 넘어서까지 경기를 관전하는 팬으로 가득했어요. 당구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죠.

‘서바이벌 3쿠션 마스터즈, 당구계 EPL·NBA 될 수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서바이벌 마스터즈는 당구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얼마만큼 큰지 보여줬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서바이벌 마스터즈는 당구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얼마만큼 큰지 보여줬다(사진=엠스플뉴스)

대표께선 당구 중계에만 신경 쓰는 게 아닙니다. 2018년 9월 ‘서바이벌 마스터즈’ 대회가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17년 여름부터 기획을 시작한 대회입니다. 많은 선수, 관계자와 소통하면서 ‘서바이벌 마스터즈’를 시작하게 됐죠. 한국의 ‘죽빵’이란 걸 대회에 접목하면 큰 인기를 얻을 것으로 확신했어요. 4명의 선수가 한 당구대에서 경기하며 누가 더 많은 점수를 올리느냐가 핵심이죠. 누군가 1점을 내면 나머지 선수들로부터 1점씩을 빼앗아옵니다. 점수가 0이 된 선수는 탈락하고요.

서바이벌 마스터즈엔 유독 역전을 거듭하는 경기가 많습니다.

‘죽빵’의 매력이죠. 연속으로 10득점에 성공하면 총 30점을 얻게 됩니다. 30점 차로 뒤지고 있어도 언제든지 역전이 가능한 거죠. 처음 대회를 기획할 때부터 선수들이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선수들이 흥미를 느낄 대회라면 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죠. 이 대회는 한국 스포츠계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한국 스포츠계에 중요한 대회다?

세계 3쿠션 월드컵은 세계당구연맹이 주관하는 투어 형식의 대회에요. 서바이벌 마스터즈는 코줌 코리아가 주관합니다. 스포츠계에서 한국이 주관하는 세계 대회는 흔치 않아요. 이 대회가 중요한 건 이 때문이죠. EPL, NBA, MLB처럼 종목마다 주도하는 국가와 리그가 있습니다. 당구계에선 우리가 그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미 세계적인 대회로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기회만 잡은 겁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해요. 지금까진 제가 번 돈을 회사 운영에 보태면서 성장했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해선 큰 자본이 필요해요. 한국 회사가 세계 당구를 이끌고, 국가 위상까지 높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더 큰 성장을 위한 고민을 계속해봐야죠.

지난해 서바이벌 마스터즈는 당구가 현장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당구 역시 EPL, NBA, MLB처럼 관중으로 가득한 스포츠로 나아가는 겁니까.

10년 전만 해도 당구 선수들은 매우 예민했어요. 물컵을 살짝 들기만 해도 플레이에 영향이 있을 정도였죠. 선수들이 바뀌었습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놔도 자기 플레이를 보이는 데 문제가 없어요. 관중들과 소통하는 것도 익숙해졌죠. 서바이벌 마스터즈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겁니다.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한 당구대에서 10명 이상의 선수가 경기하는 걸 기획하고 있어요. 골프와 비슷한 형식의 대회를 치러보려고 합니다.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걸 해보려고 해요. 대중의 눈을 조금이라도 더 사로잡아야 당구계가 발전할 수 있으니까.

당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당구계에 뛰어들어 많은 걸 이뤘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당구계엔 한국 당구가 지금보다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도움을 주시는 분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노력을 취합해서 미디어로 내보이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 당구 산업을 지금보다 키워가려면 많은 분과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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