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의 ‘멋진 오빠’ 손아섭, 2020시즌 반등 성공

-지난해 3할 타율 실패에 자존심 상처…2020시즌 ‘손아섭다움’ 회복 별렀다

-리그 볼넷 1위, 출루율 1위, 볼넷% 1위…출루 머신으로 진화

-많은 볼넷은 손아섭다움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

올 시즌 출루 머신으로 올라선 손아섭(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출루 머신으로 올라선 손아섭(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부산]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안타 머신’이다. 1988년생으로 이제 32살인데 벌써 통산 1,733안타를 때렸다. 역대 리그 타자 중에 32세 이전까지 손아섭보다 많은 안타를 친 선수는 장성호(1,741안타) KBSN 해설위원뿐이다.

통산 기록만 봐도 ‘안타 머신’ 손아섭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첫 풀타임 시즌인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10시즌 연속 120개 이상 안타를 기록했다. 2017시즌엔 193안타로 거의 200개 가까운 안타를 날렸다. 또 2010년부터 2018년까지 9년 연속 3할대 타율 행진도 펼쳤다.

그러나 은퇴 시즌까지 이어질 것 같던 손아섭의 3할 행진은 지난 시즌에 멈췄다. 지난해 손아섭은 타율 0.295로 시즌을 마쳤다. 저반발 공인구 여파로 리그 강타자들이 고전한 시즌,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었지만 손아섭은 만족하지 못했다.

“장타 욕심에 내가 어떤 타자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손아섭다운 타격을 잃어버렸다.”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손아섭은 뼈아픈 자아비판과 함께 다짐했다. 올 시즌엔 다시 손아섭다운 야구로 돌아가겠다고.

‘154볼넷 페이스’ 손아섭, 안타 머신 넘어 출루 머신 됐다

언제나 허슬 플레이(사진=롯데)
언제나 허슬 플레이(사진=롯데)

캠프에서 공언한 대로, 올 시즌 손아섭은 ‘손아섭다운’ 모습을 다시 찾았다. 5월 23일 현재 손아섭의 기록은 놀랍다. 이제 15경기를 치른 시점이란 점을 감안해도 놀라움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는다.

장기인 ‘안타 머신’ 성능이 되살아나서? 물론 그것도 있다. 올 시즌 손아섭은 48타수 19안타에 타율 0.396을 기록 중이다. 22일 키움 전에선 3타수 3안타를 날렸다. 잘 맞은 타구는 야수 사이를 통과해 안타가 됐고, 빗맞은 타구는 수비수가 없는 곳에 떨어졌다.

하지만 2020버전 손아섭의 진짜 놀라운 점은 안타가 아닌 볼넷 기록에 있다. 손아섭은 15경기에서 16차례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이 부문 리그 1위로 11개를 얻은 볼넷 2위(김선빈, 박병호, 김상수)권과 격차가 꽤 크다. 박병호, 최형우, 최정 등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들을 제치고 가장 많은 볼넷을 얻어냈다. 22일 키움 전에서도 3안타를 치는 틈틈이 2개의 볼넷을 골라냈다.

출루율도 0.530으로 리그 단독 1위다. 현재 리그에서 출루율 5할대 선수는 손아섭과 또 다른 타격 기계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0.514) 둘 뿐이다. 출루율과 타율의 차이가 0.134에 달한다. 개인 통산 절대출루율(출루율-타율) 0.078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만약 이 페이스를 계속 이어갈 경우, 손아섭은 154볼넷으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KBO리그 역사상 한 시즌 최다볼넷 기록은 2001년 롯데 펠릭스 호세의 127볼넷. 그해 호세는 36홈런 102타점을 기록한 괴물 타자였다. 당시 호세는 출루율 0.503으로 역대 한 시즌 최고 출루율 기록, 타석당 볼넷 25.5%로 역시 한 시즌 최고 기록을 세웠다. 지금 손아섭의 출루 능력이 그 정도다.

그러면서도 삼진은 거의 당하지 않는다. 손아섭은 16번 볼넷으로 걸어나가면서 삼진은 5번밖에 당하지 않았다. 타석당 삼진 7.6%로 리그 최소 삼진% 6위. 손아섭보다 삼진을 적게 당한 선수는 박민우(2.9%), 허경민(4.8%), 장성우(5.6%), 서건창(7.0%), 이정후(7.3%)까지 5명뿐이다.

이들 가운데 타석당 20% 이상의 볼넷을 골라 나간 선수는 아무도 없다. 사실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도 이런 볼넷/삼진 비율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1989년 MBC 노찬엽(볼넷/삼진 3.79)과 올 시즌 박민우(3.50)만이 지금의 손아섭(3.20)보다 높은 볼넷/삼진 비율을 기록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안타, 볼넷…손아섭의 신기한 세부 스탯

손아섭이 살아나면 롯데 타선도 살아난다(사진=롯데)
손아섭이 살아나면 롯데 타선도 살아난다(사진=롯데)

신기한 점은, ‘팬그래프’ 필자 벤 클레멘스가 지적한 것처럼 여전히 손아섭이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타격 성향을 유지하고 있단 점이다. 올 시즌 손아섭의 초구 스윙률은 37.9%에 달한다. 이는 통계사이트 스탯티즈가 이 스탯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체 투구 수에서 배트 나온 비율을 따지는 적극성% 지표도 40.3%로 전혀 낮지 않다. 컨택트%도 82.7%로 지난해와 소수점 한자리까지 똑같다. 타석에 바짝 붙어서, 웅크린 자세로, 좋은 공이 오면 주저 없이 배트를 휘두르는 특유의 타격 스타일은 그대로다.

하지만 2스트라이크 이후 공격 지표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손아섭은 올 시즌 2스트라이크 이후 84.9%의 비율로 공을 커트해냈다. 이는 스스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던 2014년(79.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2스트라이크 이후 선구%도 50.8%로 2016년(38.9%) 이후 최고 수치를 기록 중이다. 스탯티즈가 기록을 제공하는 2014년 이후 이 분야 최고수는 2014년 박병호(46.5%)와 2015년 에릭 테임즈(44.0%)다.

22일 키움 전은 출루 머신으로 진화한 손아섭의 진면목을 보여준 경기다. 이날 1회 첫 타석에서 손아섭은 키움 선발 제이크 브리검에 볼카운트 1-2로 몰렸다. 그러나 4구째 슬라이더를 차분하게 골라냈고, 5구째 체인지업을 받아쳐 좌전 안타로 출루했다. 이어진 브리검의 송구 실책에 홈인.

3회 두 번째 타석에선 초구 스트라이크 뒤 볼 세 개를 연달아 골라냈다. 3-1로 유리해진 카운트에서 5구째를 받아쳐, 이번엔 1-2루 간을 꿰뚫는 안타를 날렸다. 손아섭은 이대호의 좌측 담장에 맞는 2루타에 홈을 밟았다.

5회엔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브리검은 5구 연속 투심을 던져 손아섭의 배트를 끌어내려 했지만, 존에서 벗어나는 공에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6회 네 번째 타석은 무사 3루 득점 찬스라 적극성을 보였다. 3구째를 받아쳐 좌익수 앞 텍사스 안타, 3루 주자 민병헌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7회 다섯 번째 타석. 1-2로 몰린 볼카운트에서 손아섭은 신재영의 변화구 유인구 3개를 모두 골라냈다. 3타수 3안타 2볼넷. 이날 2스트라이크로 몰린 두 번의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볼넷을 골라 100% 출루에 성공한 손아섭이다.

손아섭의 볼넷 행진, 알고 보니 3할 타율 위한 노력의 결과

2020시즌 손아섭은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사진=롯데)
2020시즌 손아섭은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사진=롯데)

사실 손아섭의 놀라운 볼넷 퍼레이드는 많은 볼넷과 높은 출루율을 의도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 롯데 관계자는 “다시 3할 타자로 올라서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롯데 관계자는 지난해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한 뒤, 손아섭이 얼마나 올 시즌 명예회복을 별렀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과 연구를 했고, 구단 분석 파트 및 코칭스태프와도 꾸준히 대화를 나눴다. 그 결과 ‘높은 타율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볼넷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볼넷 없이 안타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볼넷을 골라내면 높은 타율을 기록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같은 1안타라도 4타수 1안타면 타율 0.250가 되지만 볼넷이 포함되면 3타수 1안타로 타율 0.333가 된다. 손아섭이 이 점을 인식하고 올 시즌 타석에서 접근방법에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더욱 많은 안타를 때리고 높은 타율을 기록하기 위한 노력이 결과적으로 많은 볼넷과 출루로 이어지고 있단 얘기다. 높은 출루율은 높은 득점 생산으로 이어진다. 올 시즌 현재 손아섭은 WPA(추가한 승리확률) 1.41로 전체 야수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기록 중이다.

재미난 건 이런 성적을 내면서도 손아섭이 “아직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22일 3안타 2볼넷을 기록한 뒤 그는 “사실 요즘 타격감이 좋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마치 내공의 1/10만 사용해서 상대를 제압했다고 말하는 무림 고수를 보는 듯하다.

손아섭은 “내가 잘 친 것보다는 재수가 좋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데도 안타가 나오는 것은 운이 따라주는 것도 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밸런스가 좋아지면 더 좋은 모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남은 경기 더 좋은 활약을 다짐했다. 올 시즌 다시 ‘손아섭다움’을 찾은 손아섭의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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