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유민상·KT WIZ 유원상, 26일 형제 맞대결 성사
-유격수 뜬공으로 잡은 형 유원상의 승리. 아버지 유승안 전 감독 “재밌었다.”
-25년 전 첫 형제 맞대결의 주인공은 KT 정명원 코치 “마음 복잡했다.”
-“동생과 오랫동안 같이 뛰었으면 좋았을 것, 유원상·유민상의 맞대결은 더 볼 수 있길”

KT 정명원 코치의 현대 유니콘스 소속 현역 시절 투구 장면(사진=현대 유니콘스)
KT 정명원 코치의 현대 유니콘스 소속 현역 시절 투구 장면(사진=현대 유니콘스)

[엠스플뉴스]

5월 26일 수원구장에선 KBO리그 사상 25년 만에 나온 특별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KT WIZ 투수 유원상과 KIA 타이거즈 내야수 유민상의 형제 투타 맞대결이었다. 이날 유민상은 1루수 6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유원상은 지난해 겨울 KT 이적 뒤 5월 22일 1군 엔트리에 처음 등록돼 이날 마운드에 올랐다.

형제 맞대결은 KIA가 2대 0으로 앞선 7회 초에 성사됐다. 유원상은 무사 1, 3루 위기에서 등판해 첫 타자 최형우에게 1타점 우전 적시타를 맞았다. 이후 유원상은 나지완을 좌익수 뜬공으로 잡고 드디어 동생 유민상과 마주 섰다. 볼카운트 3B-1S 상황까지 몰렸던 유원상은 5구째 공에 유민상을 유격수 뜬공으로 잡았다. 이어 나주환까지 1루수 파울 뜬공으로 잡은 유원상은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매듭지었다.

첫 형제 대결에서 아쉬운 범타에 그친 유민상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쓴웃음과 함께 진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유원상은 이닝을 마무리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벤치로 들어갔다. 이날 경기는 결국 KIA의 4대 1 승리로 끝났다.

경기 뒤 유원상은 형제간의 대결이라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1군에서 첫 대결이라 그런지 힘이 들어가 볼이 많이 나왔는데 결과가 좋아 다행이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동생을 자주 만나고 싶고, 그때는 더 좋은 내용으로 승부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두 아들 맞대결 지켜본 유승안 감독 "재밌는 승부였다."

유승안 전 경찰야구단 감독은 아들의 맞대결을 재밌게 지켜봤다고 전했다(사진=엠스플뉴스)
유승안 전 경찰야구단 감독은 두 아들의 맞대결을 재밌게 지켜봤다고 전했다(사진=엠스플뉴스)

유원상과 유민상의 아버지인 유승안 전 경찰야구단 감독도 이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마치 나막신 장수와 짚신 장수 아들은 둔 전래동화 속 어머니의 심경으로 맞대결을 바라봤을 터다.

유 전 감독은 엠스플뉴스와의 통화에서 “2군 무대에서 (유)민상이가 경찰야구단에 있었을 때 (유)원상이가 2군에 내려와 맞붙는 걸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처음 보는 건데 형제 맞대결이 KBO리그 사상 두 번째밖에 안 됐다는 게 참 신기했다. 6회에 원상이가 잠시 몸을 푸는 걸 보고 7회 정도에 서로 붙을 수 있겠단 감이 오더라. 어떤 결과를 바라기보단 잘 치고 잘 던지길 원했다. 서로 맞대결하는 장면이 참 재밌었다”라며 말했다.

맞대결 결과는 동생을 유격수 뜬공으로 잡은 형 유원상의 승리였다. 동생 유민상은 팀이 이겼기에 마음을 달랬다.

유 전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승부를 봐야 했는데 볼넷이 나오는 것보단 그렇게 승부가 난 장면이 낫다. 민상이가 아쉬움을 클 거다. 오래전부터 프로 무대에서 형한테 약간 밀린다는 느낌이 있었을 텐데 한번 이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지 않겠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뭐 따로 얘기할 게 있나(웃음). 경기가 끝나고 그냥 온라인 메신저로만 수고했다고 연락했다. 형이 잘 던지고 동생 소속 팀은 이겼으니까 좋은 결과였다라고 껄껄 웃었다.

25년을 기다린 뒤에야 나온 KBO리그 형제 맞대결

동생 유민상(왼쪽)과 형 유원상(오른쪽)의 형제 맞대결은 KBO리그에서 25년 만에 나온 두 번째 형제 맞대결이었다(사진=KIA, KT)
동생 유민상(왼쪽)과 형 유원상(오른쪽)의 형제 맞대결은 KBO리그에서 25년 만에 나온 두 번째 형제 맞대결이었다(사진=KIA, KT)

유민상과 유원상의 형제 대결이 화제를 더 모은 건 25년 만에 나온 KBO리그 두 번째 기록이라는 점도 있었다. 그렇다면 25년 전 첫 형제 맞대결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시간을 25년 전으로 돌려 KBO리그 첫 형제 맞대결의 순간으로 돌아가면 그 마운드 위엔 KT 정명원 잔류군 투수코치가 서 있었다.

정 코치는 1989년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전신)에 입단해 선발과 마무리 보직을 오가며 2000년까지 12년 동안 개인 통산 395경기(1,093.2이닝) 등판 75승 54패 142세이브 평균자책 2.56 634탈삼진 330볼넷의 기록을 남겼다.

1966년생 정 코치는 두 살 아래 동생인 내야수 정학원과 함께 프로 무대에서 뛰었다. 정학원은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해 1995년까지 68경기 출전 타율 0.219/ 32안타/ 20타점의 개인 통산 기록을 남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정 코치와 동생 정학원의 맞대결은 1995년 9월 5일 전주구장에서 열린 태평양과 쌍방울의 경기에서 나왔다. 당시 태평양 마무리 투수였던 정 코치는 9회 말 대타로 나온 동생 정학원과 맞붙어 유격수 땅볼로 잡았다. 공교롭게도 25년 뒤 KBO리그 사상 두 번째 형제 맞대결을 펼친 결과도 유격수 뜬공이었다.

정 코치는 엠스플뉴스와의 통화에서 25년 전 순간을 떠올리며 “형제 맞대결의 부담감이 있었기에 쉽지 않은 승부였다”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형제 맞대결을 해보니까 정말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그때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동생은 프로 무대에서 생존하려고 노력할 때였다. 사실 내가 안타 하나 정도는 맞아도 괜찮은 상황이었으니까 솔직히 동생이 잘 쳤으면 하는 속내도 있었다. 물론 프로 무대니까 봐주는 건 없었다. 마음은 복잡했지만, 프로 선수답게 상대했다. 경기가 끝난 뒤 동생한테 ‘잘 치지 그랬냐. 치라고 줘도 못 치냐’라고 농담으로 말했다. 아쉬운 속내에서 나온 얘기이었다. 정 코치의 말이다.

"동생과 더 오랫동안 함께 뛰었다면 하는 아쉬움 있다."

정명원 코치는 동생과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함께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사진=KT)
정명원 코치는 동생과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함께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사진=KT)

형제와 함께 야구선수 생활을 한다는 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서로를 의식하게 됐다. 아마추어 무대에선 유격수를 본 동생이 나보다 야구를 더 잘했다. 프로 무대에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예전에도 ‘형만 한 아우가 없다’라는 얘기를 들어 어릴 때 내가 동생보단 더 잘해야 한단 생각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동생보다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 정명원 코치의 말이다.

어릴 땐 동생을 이기겠단 승부욕이 먼저 앞섰지만, 25년 뒤 당시를 회상하면 동생과 더 오랫동안 같이 프로 무대에서 뛰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린 정 코치였다. 동생 정학원의 프로 경력은 형제 맞대결을 펼쳤던 1995년이 마지막이었다.

동생이 1991년과 1992년 1군에서 뛰었다가 군대를 다녀와 1995년에 복귀했다. 그렇게 맞대결을 펼치고 1년 뒤 동생은 야구를 관뒀다. 동생과 같이 프로 무대에서 뛴 기간이 그리 길진 않았다. 투수·야수 형제 선수가 드물다 보니까 더 많은 맞대결로 주목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돌이키니까 동생과 더 오랫동안 같이 못 뛴 게 참 아쉽다. 우리 형제와 다르게 유원상·유민상 형제는 한창 뛸 나이지 않나. 맞대결이 더 자주 나오길 빈다.

정 코치는 올 시즌 익산에서 잔류군 투수코치 역할을 맡았다. 정 코치는 최근 불펜진 부진에 빠진 KT 마운드의 반등을 마지막으로 기원했다.

“원상이를 2군에서도 봤지만, 가진 구위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1군에 올라갔을 때 좋은 기회를 잡았으면 한다. 최근 1군 불펜진이 약간 흔들리는 데 원상이가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아직 시즌 초반이니까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우리 팀 불펜 투수들이 안정감을 되찾으리라 믿는다. 나도 잔류군에서 투수진을 잘 관리하며 팀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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