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12일 두산전 지면 역대 최다연패 타이 18연패

-1985년 18연패 삼미, 연패 끊은 직후 청보에 매각

-1999년 17연패 쌍방울, 연패 탈출 경기가 마지막 경기 됐다

-2002년 롯데의 16연패, 연패 탈출 이후 새로운 암흑기 시작

무거운 분위기 속에 경기를 치르고 있는 한화.
무거운 분위기 속에 경기를 치르고 있는 한화.

[엠스플뉴스]

나는 법을 잊은 독수리, 한화 이글스가 또 졌다. 6월 11일 사직 롯데전 패배로 내리 17연패를 당하며, KBO리그 역대 최다연패 공동 2위까지 올라섰다. 이기는 법을 잊은 대신 지는 방법은 창의적이다. 11일 경기에선 4회까지 세 차례 만루 찬스에서 한 점도 못 냈다. 수비방해로 아웃을 헌납했고, 17연패를 확정 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병살타였다.

이제 한화는 1패만 더 당하면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와 역대 최다연패 타이기록을 세운다. 거기서 1패만 더 당하면 아예 KBO리그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프로야구에서 ‘밑바닥 팀’의 대명사가 삼미에서 한화로 바뀌게 생겼다. 현대 메이저리그 최다연패인 23연패(1961년 필라델피아)와 고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연패인 26연패(1889년 루이빌)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 ESPN과 트위치로 지켜보는 미국야구 팬들 앞에서 세계 야구사를 새로 쓸 판이다.

흔히 연패는 ‘늪’에 비유된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오히려 더 깊게 빠지는 게 연패의 무서운 점이다. 최원호 한화 감독 대행은 연패가 길어지고 전체적 팀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이기고 있어도 이길 것 같지 않고, 지면 계속 질 것만 같은 분위기가 된다고 했다. 연패엔 백약이 무효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만이 방법이다.

이기는 법을 잊은 팀이 어떻게 하면 다시 이길 수 있을까. 과거 한화 이전에 연패 역사를 만들었던 구단들도 결국엔 연패에서 벗어나 승리를 거뒀다. 다시는 승리를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언젠가는 이겼다. 1985년 삼미, 1999년 쌍방울, 2002년 롯데 등 KBO리그 연패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팀들이 연패를 끊은 경기를 돌아보자.

‘18연패’ 삼미 연패 끊던 날…같은 시간 서울에선 매각 협상 타결

삼미의 1985년 18연패는 기존 프로야구 최다연패 기록이다.
삼미의 1985년 18연패는 기존 프로야구 최다연패 기록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한국야구 역사에 전설로 남은 팀이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닌 부정적 의미에서의 전설이다. 삼미는 KBO리그 단일 시즌 최저 승률(1982년 0.188), 단일 시즌 최다 연패 등 온갖 굴욕적 기록을 남기고 창단 3년 반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삼미 경기를 중계한 방송 캐스터와 해설자들은 ‘저건 동네야구다’ ‘삼미 없으면 웃을 일이 없다’ ‘개 발에 땀났다’ ‘삼미가 이겼으니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등 온갖 조롱의 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제대로 된 프로야구단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삼미다.

특히 1985년에는 개막 2차전부터 4월 28일 경기까지 무려 18연패 수렁에 빠졌다. 당시 김진영 감독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일부러 져주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깊이 탄식했다. 마운드에 소금을 뿌리고, 무속인을 데려오는 등 별짓을 다 해봐도 연패는 끝날 줄을 몰랐다.

긴 연패의 사슬은 4월 30일 인천 홈에서 열린 MBC 청룡 전에서 마침내 끝났다. 이날 경기는 김진영 감독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휴가를 떠나면서 신용균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진행했다. 이날의 슈퍼스타는 입단 2년 차 우완투수 최계훈. 최계훈은 청룡 타선을 산발 7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프로 데뷔 첫 완봉승과 함께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연패에서 벗어나려면 누구 하나는 미친 선수가 나와줘야 한다. 그 역할을 최계훈이 해냈다.

이길 확률을 높이려면 선취점을 내야 유리하다. 한화가 17연패 기간 선취점을 낸 경기는 4차례(최소)에 불과했다. 당시 삼미는 2회말 5번타자 정구선이 솔로포로 선취점을 올렸다. 최계훈은 MBC의 공격을 실점 없이 잘 막고 한점 리드를 지켰다. 8회말엔 1사 만루 찬스에서 양승관이 싹쓸이 3루타를 날려 4대 0으로 리드를 벌렸다. 9회초에도 올라온 최계훈이 경기를 마무리하며 삼미가 이겼다. 도원구장에 모인 팬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이날 경기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삼미는 서울 모처에서 풍한그룹 계열사 청보식품과 구단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창단 때부터 구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매년 매각설이 불거졌던 삼미는 결국 70억 원에 구단을 넘기기로 했다. 결국 삼미는 6월을 끝으로 사라지고, 그해 7월부터 ‘청보 핀토스’라는 이름의 구단이 새로 출범했다. 연패의 끝은, 구단 매각이었다.

‘17연패 탈출’ 그날이 쌍방울의 마지막이었다

쌍방울은 연패 탈출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쌍방울은 연패 탈출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연패 역사에 또 한 획을 그은 팀은 쌍방울 레이더스다. IMF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쌍방울은 1997년 박경완 현금 트레이드를 시작으로 1998년 조규제, 김기태, 김현욱을 차례로 넘기며 장기매매로 연명했다. 선수단 지원도 형편없었다. 선수단은 5천 원짜리 밥을 먹고 경기에 나섰고, 에어컨이 고장 난 장급 모텔에서 잠을 잤다. 광주, 대전 경기는 당일치기로 소화했다.

팀 전력이 약한 데다 사기까지 떨어지니 이길 방법이 없었다. 김준환 감독대행 체제로 진행한 1999년 후반기, 쌍방울은 17연패라는 최악의 시련을 경험했다. 8월 25일 전주 LG전을 시작으로 10월 5일 전주 LG전까지 무승부 1경기가 포함된 17번의 패배가 무한루프로 반복됐다.

기나긴 연패가 끝난 건 10월 8일 LG전. 시즌 최종전이자 쌍방울의 역사에서 마지막 경기로 기록된 경기다. 이날 쌍방울은 LG에 7대 5로 역전승을 거뒀다. 6회까지 1대 4로 끌려갔지만 6회말 2점을 쫓아가 3대 4를 만든 뒤, 8회말 이동수의 동점 2루타와 강민규의 2타점 2루타로 대거 4득점 해 경기를 뒤집었다.

비장한 각오로 경기에 나선 쌍방울 선수단은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어 승리를 가져갔다. 6회부터 올라온 오상민이 승리투수가 됐고, 9회 올라온 박정현이 패전을 기록했다. 쌍방울 불펜 투수들은 추가점을 내주지 않고 LG 타선을 잘 막았다. 연패 기간 올라왔다 하면 대량실점하며 손수건을 던진 한화 불펜과는 달랐다.

사실 이 날 경기는 10월 6일 열린 더블헤더 2차전 경기의 서스펜디드 경기였다. 당시 1회초 LG 공격이 끝난 직후, 갑자기 전주야구장 1루와 3루 조명탑 불빛이 꺼지면서 구장이 컴컴한 암흑지대로 변했다. 원인은 조명탑 고장. 결국 6시 35분 ‘조명시설 고장에 따른 일시 정지 게임’이 선언되면서 경기가 8일로 미뤄졌다.

10월 6일 더블헤더 1차전 무승부, 10월 7일 현대전 패배에도 쌍방울의 연패 기록이 18연패가 아닌 17연패로 인정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8일 쌍방울의 승리는 6일 경기의 연장 선상으로 처리됐다. 만약 조명탑이 고장 나지 않고 경기가 그대로 진행됐다면 쌍방울은 역대 최다인 19연패로 구단 역사를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쌍방울 선수단은 경기 종료 직후 팬 여러분 죄송합니다. 내년에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고 팬들 앞에 고갤 숙였다. 그러나 쌍방울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날 경기를 끝으로 쌍방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0년부터는 SK 와이번스가 출범해 프로야구 제8구단으로 새 역사를 시작했다.

롯데의 16연패 탈출…암흑기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롯데 암흑기의 얼굴이 된 백인천 감독(사진=롯데)
롯데 암흑기의 얼굴이 된 백인천 감독(사진=롯데)

역사는 돌고 돈다. 11일 한화에게 역대 최다연패 2위 굴욕을 선사한 롯데도 과거 최다연패 기록을 세운 역사가 있다. 2002년 6월 2일 마산 한화전부터 26일 사직 LG전까지 내리 패하며 16연패를 당한 기억이다. 당시 롯데는 15연패 뒤 우용득 감독을 경질하고, 1997년 이후 프로 사령탑에서 멀어졌던 백인천 감독을 영입했다.

백 감독의 첫 경기에선 LG에 0대 7로 패배 연패 숫자를 16까지 늘렸다. 그러나 다음날 경기에서 마침내 연패를 끊었다. 2회초 최기문이 LG 서승화 상대로 3점 홈런을 터뜨려 백 감독 취임 후 첫 득점을 올렸고, 4회 LG가 한 점 쫓아오자 5회 조경환의 솔로포로 추가점을 냈다. 7회엔 신명철의 적시타로 쐐기를 박았다.

마운드 운영에선 연패 탈출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렸다. 선발 염종석에 이어 4회 2사 만루에선 주형광이 올라왔다. 주형광은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1년 2개월간 재활을 거친 뒤 이날이 첫 무대였다. 세 번째 투수 이정훈은 5회부터 9회까지 5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팀에 승리를 안겼다.

어렵게 연패의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연패 탈출은 끝이 아닌 새로운 암흑기의 시작이었다. 그해 롯데는 16연패 뒤에도 5연패만 3차례 경험했고 8연패와 9연패도 한 번씩 당했다. 그해 롯데는 35승 97패 승률 0.265로 최악의 성적을 남기고 시즌을 마쳤다. 2003년에도, 2004년에도 롯데는 변함없이 꼴찌였고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았다.

삼미·쌍방울·롯데의 연패 탈출 뒤엔 ‘전환점’이 있었다. 삼미는 구단 매각을 앞둔 상태였고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았다. 쌍방울은 구단 최종전이란 상징성에 서스펜디드 경기란 우연이 겹쳤다. 롯데는 감독 경질 뒤 새 감독이 정식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한화는 최원호 감독대행 부임 이후 3경기에서 모두 졌다.

연패 역사를 쓴 구단들은 하나같이 ‘정상구단’과 거리가 멀었다. 재벌구단들이 경쟁하는 프로야구에서 삼미는 모기업 규모로도, 팀 전력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쌍방울은 IMF라는 최악의 위기에 좌초했다. 롯데는 사직야구장에서 삼겹살을 굽고, 자전거를 타고 활보하던 시절이다.

그에 비해 한화는 멀쩡한 모기업이 있고, 불과 2년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선수진을 보유한 팀이다. 최다연패 기록으로 비정상 구단의 대열에 오를 순 없다. 18연패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프로야구단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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