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일 수원 삼성 지휘봉 잡은 이임생 감독, 7월 16일 지휘봉 내려놨다

-이임생 감독 측근의 공통된 주장 “외롭고 힘들다는 얘길 아주 많이 했다”

-“2020년 기업구단 수원은 시민구단 대구 FC나 강원 FC를 상대로 수비에 힘을 실어야 승점을 확보할 수 있는 팀 아닙니까”

-“이임생 감독은 구단과 소통이 안 되는 걸 가장 힘들어했다”

수원 삼성 이임생 감독이 7월 16일 지휘봉을 내려놨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프로축구연맹)
수원 삼성 이임생 감독이 7월 16일 지휘봉을 내려놨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프로축구연맹)

[엠스플뉴스]

며칠 전 (이)임생이와 식사를 함께 했어요. 임생이가 웃으면서 딱 한 마디 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올해 임생이가 웃는 걸 처음 봤습니다.

수원 삼성 이임생 전 감독과 각별한 사이인 축구인 A 씨의 얘기다. A 씨는 이 감독이 수원 지휘봉을 잡은 기간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이 감독과 친분이 깊은 축구계 종사자 B 씨도 같은 말을 했다. 이 감독이 외롭고 힘들다는 얘길 자주 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 감독이 수원 지휘봉을 내려놨다. 7월 16일 이 감독은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다. 구단은 바로 다음 날 이 감독과 이별을 발표했다.

축구계, 지난해 이임생 감독 성과 높이 평가

밝은 얼굴로 수원 삼성 감독 생활을 시작했던 이임생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밝은 얼굴로 수원 삼성 감독 생활을 시작했던 이임생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이임생 감독은 2018년 12월 3일 수원 삼성 지휘봉을 잡았다. 서정원 감독의 뒤를 잇는 구단의 5번째 지도자였다.

이 감독이 K리그에서 지휘봉을 잡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지도자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2003년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수원에서 트레이너를 맡았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진 수원 차범근 전 감독을 보좌하며 코치 경력을 쌓았다.

감독 생활을 시작한 건 2010년이다. 싱가포르 S리그 홈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고 두 차례 리그 준우승(2011·2013)과 컵 대회 우승(2013)을 이끌었다. 이후엔 중국 선전 FC 감독(2015, 2016), 옌볜 푸더 수석코치(2016), 톈진 터다 2군 감독, 감독대행, 감독(2016, 2017) 등을 경험했다.

2018년 12월 3일 이 감독은 첫 K리그 도전을 알렸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친정팀 수원이었다.

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수원은 코치 시절과 많은 게 달랐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수원은 K리그를 선도하는 리딩 클럽이었다.

1995년 12월 15일 창단한 수원은 리그 4회, FA컵 5회, 리그컵 6회(폐지),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회(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등 총 24차례 정상에 오른 구단이다. K리그(1·2) 22개 구단 가운데 수원보다 우승 트로피가 많은 팀은 없다. 성남 FC와 K리그1 최다 우승(7회)을 기록 중인 전북 현대는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수원보다 11개 적다.

수원 삼성 감독 변천사(표=엠스플뉴스)
수원 삼성 감독 변천사(표=엠스플뉴스)

그런데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수원이 수집한 우승 트로피는 3개뿐이다. FA컵(2010·2016·2019)에서만 정상에 섰다. 리그 우승은 이 감독이 코치로 있던 2008시즌이 마지막이다.

2014년 4월 1일 제일기획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구단 지분 100%를 인수하고 운영방식이 바뀌면서 생긴 결과다.

수원은 이운재, 송종국, 김남일, 이관우 등 스타 선수를 앞세운 팀에서 선수를 키워 쓰는 ‘저비용 고효율’ 정책을 내세운 구단으로 변했다.

반면 2009년 첫 리그 정상에 오른 뒤 막대한 투자를 앞세운 팀으로 변신한 전북은 2010년대 6차례 리그 우승을 맛봤다. 2016년엔 두 번째 ACL 정상에 올랐다. 축구계가 투자는 성적과 비례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감독이 성적을 내지 못한 건 아니다. 2019시즌 K리그1에선 8위에 머물렀지만 FA컵에서 팀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수원은 지난해 FA컵 우승으로 올 시즌 ACL 복귀에 성공했다.

지난해 팀 통산 다섯 번째 FA컵 정상에 오른 수원 삼성(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팀 통산 다섯 번째 FA컵 정상에 오른 수원 삼성(사진=엠스플뉴스)

축구인 A 씨는 이 감독의 수원 생활은 시작부터 불안했던 게 사실이라며 당시 수원은 주장 김은선이 음주운전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박종우, 조원희, 신화용 등은 방출을 결정했다고 짚었다.

이어 전력 이탈자가 생기면 보강이 있어야 한다. 수원은 달랐다. 감독이 만족할 영입은 없었다. 유소년 선수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지시만 내려왔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표팀 미드필더 엘비스 사리치가 중동으로 떠났다. 그 자리를 메운 선수는 몸값이 싼 호주 출신 테리 안토니스였다고 했다.

사리치는 2019시즌 전반기 12경기에서 뛰며 1골 7도움을 기록했다. 같은 해 후반기 사리치의 공백을 메운 안토니스는 11경기에서 3도움을 올렸다. 둘은 기록에서부터 차이가 컸다.

한 구단 감독은 지난해 수원 내국인 선수 가운데 현역 국가대표는 왼쪽 풀백 홍 철뿐이었다면서 자기 생각을 밝혔다.

공격에선 베테랑 염기훈(37)이 핵심이었다. 염기훈의 기량은 지금도 높은 수준인 게 사실이다. 문제는 염기훈을 넘어서긴커녕 대체할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이 감독의 지난해 성적을 높게 평가하는 건 이 때문이다. 현재의 수원은 K리그1 파이널 A 진입을 장담할 수 없는 선수단 구성 아닌가. 2020년 수원은 시민구단인 대구 FC, 강원 FC 등을 상대로 수비 축구를 해야 승점을 확보할 수 있는 팀이다.

이 감독과 선수들은 이와 같은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주장 염기훈은 지난해 FA컵 우승을 차지한 뒤 공개적으로 전력 보강을 요청했다. 당시 염기훈은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솔직히 기대와 걱정이 공존한다. 2020년 선수단 보강 없이 좋은 성적을 내는 건 매우 어렵다. 올 시즌(2019)도 정말 힘들었다. 적은 자원으로 리그와 FA컵을 병행했다. 리그와 FA컵, ACL까지 병행할 수 있게 구단이 힘을 더해줬으면 한다. 팀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선 구단 지원이 필수다.

이임생 감독 사임, 불통이 원인이다?

2007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친선대회에 참가한 수원 삼성. 맨 왼쪽 아래부터 안정환, 김진우, 이관우, 김대의, 남궁웅, 마토(크로아티아), 에두(브라질), 곽희주, 조원희, 양상민, 김대환(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07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친선대회에 참가한 수원 삼성. 맨 왼쪽 아래부터 안정환, 김진우, 이관우, 김대의, 남궁웅, 마토(크로아티아), 에두(브라질), 곽희주, 조원희, 양상민, 김대환(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20시즌을 앞두고 수원 삼성에 전력 보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수원은 캐나다 축구 대표팀 중앙 수비수 도닐 헨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트라이커 술래이만 크르피치를 영입했다. 지난해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임대)해 팀 잔류를 이끈 측면 자원 명준재도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출혈이 더 컸다는 게 축구계의 공통된 평가다. 수원은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한 수비수 구자룡(전북 현대)을 잡지 못했다. 구자룡은 2011년 수원에서 프로에 데뷔해 155경기(2골)에 출전한 핵심 자원이었다.

같은 해 수원에서 프로에 데뷔해 159경기를 뛴 미드필더 신세계도 FA 취득 후 강원 FC 이적을 알렸다. 지난해 폴란드 U-20 월드컵 준우승에 일조한 공격수 전세진, 수비수 고명석은 입대했다. 박형진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했다.

수원은 올 시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2년 만에 복귀한 ACL 본선 조별리그 2경기에서 모두 졌다. 2월 19일 홈에서 열린 비셀 고베(일본)전에선 후반 추가 시간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3월 3일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 원정(1-2)에서도 승점을 따내지 못했다. 5월 8일 K리그1 공식 개막전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도 0-1로 졌다.

수원은 올 시즌 K리그1 11경기에서 2승 4무 5패(승점 10점)를 기록했다. K리그1 12개 팀 가운데 8위다.

이 감독은 올여름까지 구단에 전력 보강을 요청했다. 이 감독은 K리그1 하위권에 위치한 팀 감독 가운데 전력 보강을 원하지 않는 지도자가 있을까 싶다. 여름 이적 시장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수원 삼성의 유일한 현역 국가대표였던 홍 철. 홍 철은 7월 1일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사진=엠스플뉴스)
수원 삼성의 유일한 현역 국가대표였던 홍 철. 홍 철은 7월 1일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사진=엠스플뉴스)

그런 이 감독에게 날아든 소식은 전력 보강이 아닌 핵심 선수 이탈이었다. 7월 1일 수원의 유일한 현역 국가대표 홍 철이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홍 철 이적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6월 16일. 성남 FC전(2-0)을 마치고 만난 이 감독은 당황스럽다. 타 리그 이적을 추진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K리그 내로 둥지를 옮길 거란 건 생각하지 못했다. 구단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들은 게 없다. 구단에 요청하겠다. 홍 철이 반드시 잔류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홍 철은 떠났다.

축구인 A 씨는 이 감독이 가장 힘들어했던 건 구단과 소통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여러 차례 구단 수뇌부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지만 어려웠다고 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거다. 구단은 이 감독이 아닌 C 코치와 소통했다. 이 감독이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상황을 견디다 못해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이다. 이 감독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원 관계자는 이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기 전부터 사실과 다른 소문이 많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위 관계자는 이어 구단이 이 감독의 사퇴를 압박하고 대체자 리스트를 작성해 일찍부터 접촉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두 사실이 아니다. 구단이 다른 감독과 미리 접촉할 이유가 없다. 소통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 구단은 정상적으로 팀을 운영했다고 강조했다.

수원 삼성은 과거의 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수원 삼성은 과거의 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이 감독이 물러났다. 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수원은 나아질 수 있을까.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달라지기 어렵다는 게 축구계의 공통된 예상이다.

이 감독은 수원 지휘봉을 잡을 당시 자기를 도울 코치 선임을 구단에 요청했다.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수단 구성도 마찬가지였다.

축구계 종사자 B 씨는 구단이 운영 방법을 바꾸지 않는 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선수나 지도자에게 수원은 여전히 꿈의 구단이다. 많은 선수와 감독이 이 감독이 힘들었던 걸 알지만 문제를 지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길이 막힐까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010년 5월 20일 차범근 전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 3명의 지도자가 그 자리를 메웠다. 윤성효(2010.06~2012.12), 서정원(2012.12~2018.12), 이임생(2018.12~2020.07) 감독이다. 이들은 FA컵 우승 트로피 하나씩만 들어 올렸다. K리그에서 가장 많은 우승 트로피를 보유한 구단이지만 다른 트로피는 없다.

지도자의 한계일까. 혹은 수원이 감독 교체만으론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없다는 걸 2010년 6월부터 증명해오고 있는 건 아닐까.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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