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체육회장의 반문 지도자가 왜 선수 부모인가?”

-“지도자와 선수는 같은 구성원이자 파트너, 무엇보다 ‘남’이다”

-“나 때는 맞으면서 운동했다는 말은 무용담이 아니다. 그건 ‘나 때’에서 끝날 일”

-“스포츠 4대 악 연루자 신상 공개 추진”

부산시 체육회 장인화 회장(사진=엠스플뉴스)
부산시 체육회 장인화 회장(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지도자는 선수를 자식처럼 생각해야 한다? 선배는 후배를 친동생처럼 여겨야 한다? 저는 그런 의식이 스포츠계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숨겨진 이유라고 봅니다. 지도자와 선수, 선배와 후배는 가족이 아니라 ‘남’입니다. 부산광역시 체육회 장인화 회장의 말이다.

대한민국 체육계는 그동안 지도자에겐 선수의 아버지가 되길 요구했고, 선수에겐 지도자를 부모처럼 모시길 강요했다. 선배선수에겐 후배선수를 친동생처럼 대하길 바랐고, 후배선수는 선배선수를 친형처럼 따르도록 했다.

하지만, ‘선수를 친자식처럼 대하라’는 조언만큼이나 스포츠 폭력을 조장하는 부채질도 없다. 선수를 폭행한 지도자들은 “자식처럼 생각해서 잘 되라는 마음으로 때렸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다. 후배를 폭행한 선수들도 “동생처럼 생각해서”란 궤변을 입에 달고 다닌다.

‘내 자식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삐뚤어진 가부장적 사고가 스포츠계에 여과 없이 스며들 때 어떤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는지 우린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을 통해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장 회장이 대한민국 체육계에 던진 ‘탈 가족주의’가 많은 이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장 회장은 7월 16일 부산시체육회 소속 실업팀 선수, 지도자를 상대로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와 선수, 선배와 후배는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주십시오. 지도자는 선수의 부모가 아니고, 선배는 후배의 형과 오빠, 언니와 누나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동등한 인격과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동료입니다. ‘내가 부모 같은 지도자니까, 내가 형 같은 선배니까’ 하는 생각으로 선수와 후배들을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엠스플뉴스가 장 회장으로부터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 때는 맞으면서 운동했다는 말은 무용담이 아니다. 그건 ‘나 때’에서 끝나야 한다”

7월 16일 부산시 체육회관에서 부산광역시 체육회 주최로 열린 '스포츠 폭력 근절을 위한 인권교육'(사진=엠스플뉴스)
7월 16일 부산시 체육회관에서 부산광역시 체육회 주최로 열린 '스포츠 폭력 근절을 위한 인권교육'(사진=엠스플뉴스)

7월 16일 부산시 체육회관에서 ‘스포츠 폭력 근절을 위한 인권교육’이 열렸습니다. 부산시 실업팀 선수, 지도자들이 참석해 교육을 받았는데요.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폭력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스포츠 폭력은 아마추어, 실업, 프로 할 거 없이 광범위하게 벌어져 왔어요. 저는 삐뚤어진 욕망이 폭력을 관습화했다고 봅니다.

삐뚤어진 욕망이 폭력을 관습화했다?

적지 않은 학부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리 아이를 때려서라도 대학에만 보내 달라”고. “때려도 좋으니까 성적만 좋게 내게 해달라”고. 우리 아이가 맞아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성적만 내면 된다는 일부 학부모의 삐뚤어진 욕망과 때려서라도 대학에 보내고 성적만 잘 나면 ‘내 임무는 끝’이라고 믿는 삐뚤어진 지도관이 지금의 ‘체육계 폭력’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분명한 건.

네.

구타와 폭언으로 만들어진 경기력은 성과가 아니란 겁니다. 그건 반칙이에요. 특히나 심각한 후유증을 대물림할 수 있는 악습 중의 악습입니다. 맞으면서 좋은 결과를 낸 선수들이 지도자가 됐을 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뭔지 아세요?

“나 때는 맞으면서 운동했다”는 말 아닐까요.

정확합니다. 그게 말로만 그치면 다행이에요. 하지만, 일부 경기인은 자신이 당했던 폭력 경험을 ‘지금의 나를 만든 원동력’쯤으로 오인하곤 합니다. ‘맞으면서 운동한 덕분에 내가 지금 이 위치까지 왔다’고 믿는 거죠. 그런 지도자는 선수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경기력을 내지 못하면 폭력을 행사합니다. 좋은 경험담은 후대에 전달해줘야 하지만, 폭력의 경험담은 ‘나 때’에서 그쳐야 합니다.

부산시 체육회장의 반문 “지도자가 왜 선수의 부모인가?”

'스포츠 폭력 근절을 위한 인권교육'에서 연설 중인 부산시 체육회 장인화 회장(사진=엠스플뉴스)
'스포츠 폭력 근절을 위한 인권교육'에서 연설 중인 부산시 체육회 장인화 회장(사진=엠스플뉴스)

16일 부산광역시 체육회에서 실업팀 선수단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회장님이 한 연설이 체육계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평가하는 체육인이 많더군요.

제가 지도자분들한테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여러분은 선수들 위에 군림하는 ‘갑’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선수들을 가르치고, 성장을 돕는 전문 체육인입니다”라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지도자가 있는 거라고요. ’지도자가 있어 선수가 있다’고 착각하는 지도자가 계신다면 “이제 그 생각을 고치시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말이 나온 김에.

네.

체육계에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늘 나오는 말이 있어요. “지도자는 선수의 부모다. 부모 입장으로 선수를 자식처럼, 가족처럼 대해라. 그럼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선 체육 현장에서 지도자들은 부모 이상의 지위에 있습니다.

저는 지도자가 선수의 부모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선수를 자식처럼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강한 어조로) 지도자와 선수는 가족이 아니에요.

지도자와 선수는 가족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선 지금도 부모가 자식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당연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여전히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하는 게 뭐가 나빠”하고 생각하는 분이 꽤 많습니다. 지도자가 선수를 자식처럼 생각하니까 손찌검을 하고, 가족처럼 보니까 가부장적 태도를 고수하는 겁니다.

네.

지도자와 선수는 같은 인격을 가진 동등한 관계에요. 보통 실업팀의 경우 지도자와 선수 모두 계약서에 사인하고 활동합니다. 그 계약서에서 지도자라고 더 많은 인격을 부여하진 않아요. 지도자, 선수 모두 그 실업팀의 같은 구성원일 뿐이에요. 지도자와 선수는 계약 관계에 따라 맺어진 팀원들이지, 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란 뜻이에요.

지극히 연하지만, 대한민국 체육계에선 생경한 지적이군요.

지도자는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면 됩니다. 선수는 지도자의 지도를 받아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되고요. 지도자와 선수는 계약 관계로 맺어진 파트너이자 ‘남’이란 인식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서로가 서로를 더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어요.

정상적인 사회는 그런 식으로 서로의 관계를 정립합니다.

왜 체육계는 그렇게 안 됐을까요? 전 우리 체육계에 남아있는 유교주의적 사고가 혁신돼야 한다고 봅니다.

16일 연설에서 선·후배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운동부에 있는 선후배 선수들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예요. 하지만, 선후배 사이 역시 가족은 아닙니다. 같은 인격의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동료란 생각을 해야 해요. 후배를 ‘내가 함부로 해도 되는 동생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폭력을 행사하고, 무시하는 겁니다. 그런데 후배를 동료나 파트너, ‘남’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연설에서 그랬습니다. “후배의 경기력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시기, 질투하지 마시고

후배들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해달라”고요. 후배 선수들에게도 “선배를 가장 가까운 롤모델로 생각해달라”고 했어요. 또 전체 선수들에게도 당부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충분히 지도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고, 여러분들을 좀 더 나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정당한 지시엔 잘 따라 달라”고요. 재차 강조합니다만, 체육계도 일반 사회처럼 서로의 관계를 동등하게 정립해야 합니다.


“‘스포츠 4대 악’ 연루될 시 세계반도핑기구처럼 신상 공개 하겠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홈페이지에 게재된 도핑 위반자 명단. KADA는 도핑 위반의 이름, 종목, 위반규정, 금지약물 성분, 처리결과를 일반에 공개한다. 미성년자 선수의 경우는 이름만 가릴 뿐 다른 사항은 공개한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홈페이지에 게재된 도핑 위반자 명단. KADA는 도핑 위반의 이름, 종목, 위반규정, 금지약물 성분, 처리결과를 일반에 공개한다. 미성년자 선수의 경우는 이름만 가릴 뿐 다른 사항은 공개한다(사진=엠스플뉴스)

연설에서 “여러 두려움 때문에 신고하지 못할 땐 회장인 나에게 연락 달라”고 하셨습니다.

부산광역시 체육회 홈페이지엔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을 하게 하면 신원이 노출될 수 있어요. 그걸 막으려고 자유로운 글쓰기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체육계에선 공익 제보자와 신고자를 가리켜 ‘배신자’로 낙인찍는 문화가 남아 있어요. 그걸 두려워해 신고하지 못하는 선수가 많습니다. 제게 직통 전화를 달라고 말씀드린 건 신원 노출을 최대한 막겠다는 뜻도 있지만, 그 문제를 제가 직접 책임지고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서였어요. 제가 직접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그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삼진 아웃’이 아닌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성폭력, 횡령, 승부조작, 조직 사유화, 이른바 스포츠 4대 악에 대해선 원스트라이크 제도를 강력하게 시행할 겁니다. 폭력행위자와 그 비호자에게도 책임을 철저하게 물을 겁니다. 앞으로 부산광역시 체육회에 ‘온정주의’를 기대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세계반도핑기구가 시행하는 신상 공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징계 공개를 적극 참고해 신상 공개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WADA는 도핑 선수 적발 시 신상과 제재 내용, 처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홈페이지에 보면 신상 공개를 하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네.

스포츠 4대악 이 도핑보다 더 가벼운 일이라고 보십니까? 다들 아니라고 할 겁니다. 도핑이 신상 공개를 하는 사안이라면 스포츠 4대악은 더한 사안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때리고, 성폭력을 자행할 때 그 정도 불이익도 감안하지 않았다면…앞으론 감안하고, 두려워해야 할 겁니다.

이근승, 박동희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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