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신동’ 신유빈, 고등학교 진학 포기하고 실업팀 입단

-“학교 생활 속에서 운동 집중 힘들어, 온종일 탁구에 매진하고 싶었다.”

-“아기 때부터 라켓 잡아, 어릴 때부터 탁구하는 자체가 행복했다.”

-“선수 출신 아빠와 친구처럼 대화, ‘힘들게 하지 마라’는 말에 더 오기 생겨”

-“올림픽 1년 연기? 더 성장할 시간 생겨 다행, 메달 꿈 이루고 싶다.”

17살의 나이에 실업팀에 입단한 신유빈은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며 큰 만족감을 내비쳤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17살의 나이에 실업팀에 입단한 신유빈은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며 큰 만족감을 내비쳤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인천]

꽃다운 나이 17살, 학교 교정에서 또래 친구들과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환히 미소 짓는 나이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아직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탁구 신동은 2020년 ‘17살 학생’이 아닌 ‘17살 직장인’을 택했다. 이유는 그저 탁구를 온종일 하고 싶어서다. 또래 친구들보다 먼저 사회인의 발걸음을 내디덨지만, 그 탁구 신동에게 후회는 전혀 없다. 오로지 탁구만 생각할 수 있기에 학생이 아니라 더 행복할 뿐이다.

그 탁구 신동은 바로 대한항공 여자탁구단 소속 신유빈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탁구 신동으로 두각을 보인 신유빈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도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4살’ 때 최연소 탁구 국가대표 발탁 기록까지 세운 신유빈은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달린 예선 대회에서도 선배들보다 더 뛰어난 활약으로 본선 진출까지 이끌었다.

신유빈은 고등학교 진학 대신 실업팀 입단을 스스로 결정했다. 펜대가 아닌 라켓을 잡는 순간이 더 행복 하단 믿음 아래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엠스플뉴스가 ‘17살 직장인’을 선택한 신유빈의 속마음과 도쿄 올림픽 메달을 향한 꿈을 직접 들어봤다.

어른의 길을 빨리 선택한 신유빈 "탁구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진학 대신 실업팀 입단을 택해 주위를 놀라게 한 탁구 신동 신유빈(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고등학교 진학 대신 실업팀 입단을 택해 주위를 놀라게 한 탁구 신동 신유빈(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17살 동갑내기 친구들과 달리 벌써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됐습니다.

지금 제가 학생이었다면 코로나19 사태로 체육관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해 탁구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있었을 겁니다. 실업팀에 입단하니까 온종일 체육관에 갇혀 탁구만 칠 수 있어요. 오히려 저는 학생이 아니라 행복해요(웃음).

다소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는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학교에서 오후 수업을 마치면 3~4시 정도에 끝납니다. 그리고 체육관으로 건너가 오후 늦게부터 탁구 연습을 했어요. 저와 경쟁하는 다른 실업팀 언니들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쭉 연습이 가능한데 저는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죠. 학교에서 앉아만 있다가 운동을 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이대로는 다른 선수를 못 따라간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꼈죠.

그래도 학업을 포기하는 결정이 쉽진 않았을 텐데요.

아빠한테 고등학교에 안 가고 싶다는 얘길 먼저 꺼냈습니다. 처음엔 ‘절대 안 된다’, ‘학교는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죠.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마다 실업팀에 가고 싶다고 졸랐어요. 학업은 잠시 미루는 거라고 계속 설득하니까 아빠도 결국 허락해주시더라고요.

친구들과 함께 학창 시절 추억을 쌓는 건 포기해야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런 걱정을 주변에서 많이 하시더라고요. 어차피 학생선수들은 주로 학생선수들끼리 많이 친한 편이라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요. 저 친구 많습니다(웃음). 지금 상황만 보면 훨씬 더 좋은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 후회는 전혀 안 해요.

"탁구 신동 꼬리표 부담? 오히려 관심과 응원이 좋았다."

신유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탁구 신동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다(사진=대한탁구협회)
신유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탁구 신동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다(사진=대한탁구협회)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탁구 신동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언제부터 탁구를 시작한 건가요.

제대로 시작한 건 5~6살 정도인 듯싶습니다. 아빠가 탁구장을 운영하셔서 돌이 지나고부터 탁구장에 나갔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신유빈 선수의 아버지 신수현 수원시탁구협회 전무이사는 삼성생명 소속으로 현역 생활을 했다) 아기 때부터 탁구채를 잡고 흔들었죠(웃음). 조금 크니까 탁구 치는 아저씨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훈수도 뒀다고 하고요. 그렇게 탁구에 재미를 느껴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어요.

부모님께서 탁구 선수의 길을 쉽게 허락해줬습니까.

어린 시절 탁구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대회에도 나갔고요. 사실 아빠는 탁구를 안 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계속하고 싶다고 했죠. 아빠는 제 의견을 거의 다 반영하셔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탁구 신동’이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럽진 않았습니까.

어렸을 적부터 하도 ‘탁구 신동’이라는 소릴 들으니까 신동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나이부터 그런 얘길 들은 거잖아요.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영광스럽다는 생각만 했어요. 딱히 부담을 느끼진 않았죠. 그저 응원과 관심이 좋았어요.

어렸을 적부터 승부욕도 남달랐을 듯싶습니다.

솔직히 또래 친구들과 붙어 지면 너무 슬펐습니다. 경기에서 아직 지지 않았는데 몇 포인트만 뒤져도 눈물을 흘렸고요(웃음). 어릴 때 경기를 하다 우는 저를 보고 아빠가 괜찮은지 물었는데 제가 ‘울어도 내가 알아서 할 건 다 해’라고 말한 게 아직도 기억난다고 하시네요.

지금도 눈물을 흘립니까(웃음).

이제 어른이 됐습니다(웃음). ‘이게 부족하구나’라고 느끼고 더 연습해야겠단 마음이 생겨요. 어렸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오는 대로 공을 쳤는데 이제 전략을 짜며 치니까 더 재밌어요. 더 잘하는 선수들이랑 붙으니까 져도 재밌죠. 더 어려운 상대와 붙고 나면 저도 저기까지 올라가야겠단 마음을 먹어요.

첫 월급 기부한 신유빈의 마음씨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길"

탁구 채를 들고 있는 신유빈의 표정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인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탁구 채를 들고 있는 신유빈의 표정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인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학생선수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슬럼프는 없었습니까.

초등학교 때까진 신장이 작았는데 중학교 때 갑자기 확 컸습니다. 지금 168cm까지 자랐는데 탁구대 높이는 그대로인데 제 몸만 커졌잖아요. 날아오는 공의 높이도 다르게 느껴져 정말 힘들었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어 울기도 했고 아빠한테 고민을 계속 털어놨죠. 그래도 연습을 많이 한 만큼 생각보다 빨리 적응해 슬럼프를 넘겼어요.

얘길 듣다 보니 아버지가 정말 큰 버팀목이 되는 느낌입니다.

아빠는 탁구에 대한 진지한 얘기는 거의 안 해요. 거의 친구처럼 지낸다고 보면 돼요. 비밀이 없이 이렇다 저렇다 친구처럼 모든 걸 다 얘기하죠. 어렸을 때 힘들어서 운동을 못 하겠다고 하면 아빠가 바로 데리러 왔고요. 경기에서 지는 것에 대해 절대로 뭐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주로 아버지께서 조언해주시는 얘기가 무엇입니까.

‘네가 행복하게만 살면 된다’, ‘탁구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게 하지 마라’고 말씀해주세요. 오히려 아빠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저는 탁구를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첫 월급 기부도 아버지와 논의했다고 들었습니다.(신유빈은 대한항공 탁구단에서 받은 첫 월급을 경기도 수원 장안구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꿈을 키우는 집’에서 머무는 아이들을 위한 운동화 53켤레를 기부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첫 월급을 받으면 기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셔서 그렇게 하자고 얘길 했습니다. 첫 월급을 받고 바로 기부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됐단 생각에 마음이 정말 뿌듯했어요. 기부가 이렇게 좋은 거란 걸 느꼈기에 계속 관심을 주며 기부할 계획이에요.

신유빈 선수의 얘길 들어보면 학생선수로서 정말 반듯하게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한국 스포츠계엔 폭행과 폭언 등 안 좋은 소식이 많았잖아요.

저도 옛날엔 맞고 운동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 저는 그런 경험이 없어요. 지금까지 만난 지도자분들도 다 대화로 소통하셨고요. 지금도 그런 안 좋은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죠.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선수 모두가 행복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올림픽 1년 연기? 오히려 다행, 더 성장할 시간 생겼다."

신유빈은 1월 올림픽 단체전 세계예선에서 대표팀을 올림픽 본선 진출로 이끄는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사진=대한탁구협회)
신유빈(오른쪽)은 1월 올림픽 단체전 세계예선에서 대표팀을 올림픽 본선 진출로 이끄는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사진=대한탁구협회)

지난해 만 14세의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됐습니다. 만 14세 11개월 6일의 나이의 탁구 대표팀 선수는 남녀를 통틀어 한국 역대 최연소 기록이었습니다.(종전 최연소 탁구 대표팀 발탁 기록 보유자는 1969년 만 15세에 국가대표로 뽑힌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이다)

그전까지 계속 대표팀 선발전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아쉽게 떨어졌습니다. 막상 대표팀이 되니까 ‘어떻게 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표팀 언니 오빠들이 잘 챙겨주셔서 재밌게 잘 지냈어요. 국제대회에서 정말 강한 상대를 만난 것도 좋은 경험이었고요.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선 결국 중국 선수들을 꺾어야 합니다.

국제대회에서 만나니까 ‘중국 선수들이 진짜 잘 친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사소한 실수를 전혀 안 하는 데다 드라이브도 정말 강력하고 빨라요. 그래도 최근엔 이길 수 있겠단 자신감도 느껴요. 어떻게든 뛰어넘어야 할 상대입니다.

1월에 열렸던 도쿄 올림픽 단체전 세계예선에서 막내지만 정말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대한민국의 단체전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신유빈은 1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단체전 세계예선 패자부활 결승전에서 복식과 단식에 모두 출전해 대표팀의 3대 1 승리를 이끌었다. 신유빈의 활약으로 대표팀이 올림픽 단체전 마지막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정말 떨린다는 표현도 부족했을 정도였습니다. 심장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일까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머리가 핑핑 돌 정도였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경기에 나갔죠. 그만큼 간절한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나섰기에 이길 수 있었어요.

마지막 올림픽 진출권이 달린 경기를 책임지는 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중압감입니다.

지면 올림픽을 못 나간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그 자리에 뛰는 게 실감이 안 날 정도였습니다. 제 단식 차례에 오자마자 ‘어떻게든 내가 이기자’라는 마음을 먹었어요. 경기 도중엔 긴장하니까 공이 하나도 안 보였는데 감독님 지시를 믿고 뛰었어요. 올림픽 본선에 나가도 이것보다 더 긴장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제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정말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어요.

어렵게 본선에 진출했는데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된 점은 아쉽겠습니다.

(고갤 내저으며) 저는 오히려 1년 더 성장할 시간이 생겨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저는 실력이 부족하니까요.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 메달을 꼭 따고 싶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연습 일지에 2020년엔 올림픽 메달을 따겠다고 적어놨거든요(웃음)

어린 나이부터 목표 의식이 확실하군요(웃음).

저도 지금 돌이키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해요. 생각 없이 적었는데 ‘2020년 올림픽 메달’이라고 적었으니까요. 그때 썼던 목표가 진짜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까 싶어요. 우선 내년 올림픽 본선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좋은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이 좋은 선수, 착하단 얘길 먼저 듣고 싶다."

신유빈(왼쪽)이 탁구를 배우러 깜짝 방문한 대한항공 배구단 산틸리 감독(오른쪽)과 맞대결을 펼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신유빈(왼쪽)이 탁구를 배우러 깜짝 방문한 대한항공 배구단 산틸리 감독(오른쪽)과 맞대결을 펼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다른 화제를 꺼내면 탁구를 안 할 때 다른 취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돌그룹인 방탄소년단 영상 보기입니다. 이 세상 얼굴이 아니니까요(웃음). 2년 전 우연히 방탄소년단 멤버 ‘뷔’의 영상을 봤는데 정말 잘 생기고 춤 잘 추고 노래까지 잘 부르더라고요. 멤버 모두 다 멋지니까 제가 가야 할 길은 이거구나 싶었죠.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얼굴이 밝은 느낌입니다(웃음).

(환하게 미소지으며) 영상만 봐도 기분이 정말 좋아집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영상만 보고 있어요. 머릿속을 비우고 있어야 할 때 주로 그러죠.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게 꿈이에요. 실물로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웃음).

탁구와 취미 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3년의 세월이 탁구 선수로서 성장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이 시기에 탁구에만 집중하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요. 행복한 환경 속에서 라켓을 잡고 있는 거죠.

10년 뒤 신유빈은 얼마나 더 무서운 선수로 성장할지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탁구선수로 성장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선수로서 좋은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목표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인성이 정말 좋은 선수, 착하다는 얘길 먼저 듣고 싶어요. 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죠. 온종일 라켓을 돌려야 만족하지 않을까요(웃음). 10년 뒤엔 세계랭킹 1위에 도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렵겠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겠죠. 내년 2월에 열리는 부산 세계선수권대회가 중요하니까 그때 지금보다 더 발전한 신유빈을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요. 팬들도 많이 응원해주시면 좋은 활약으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웃음).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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