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청문회, 핵심 가해자는 나오지 않았다
-“학창 시절 운동보다 힘든 건 감독, 코치,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
-“우린 감독, 코치의 폭력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배웠다”
-“해결책? 세상에 밥줄이 끊기는 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엠스플뉴스=여의도]
“고(故) 최숙현 선수에게 폭언·폭행을 한 걸 본 적이 있다. 나 또한 담배를 피우다 걸려 야구 방망이로 100대를 맞은 경험이 있다.”
7월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청문회에 참석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김도환 선수의 증언이다.
경주시청 김규봉 감독, 안주현 팀 닥터, 주장 장윤정 등의 폭언·폭행은 일상이었다. 피해를 주장한 김도환 선수 역시 2016년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육상 훈련 중 고 최숙현 선수가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뒤통수를 가격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폭언·폭행은 운동선수의 필수 경험이다?
7월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청문회엔 핵심 가해자로 꼽히는 경주시청 김규봉 감독, 안주현 팀 닥터, 주장 장윤정은 출석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경찰 수사 중이고, 안주현 팀 닥터는 우울증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윤정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박 정 의원실 관계자는 “7월 21일 청문회 증인들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며 “동행명령을 거부할 경우 국회 증언감정법 제13조에 의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여·야가 협의해 고발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고 최숙현 선수는 6월 26일 23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최숙현 선수는 복숭아 1개를 먹었다는 이유로 감독에게 구타를 당했다. 2016년 8월엔 점심에 탄산음료를 마셨다는 이유로 빵 20만 원어치를 강제로 먹어야 했다. 팀 내 가혹행위와 폭언·폭행 등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고 최숙현 선수는 용기를 내 소속팀 경주시청, 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 산하 클린스포츠센터, 국가인권위원회, 경찰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이 소식을 접한 프로농구 선수 A 씨는 “고 최숙현 선수와 인연은 없지만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남 일 같지 않다”며 “체육계 폭언·폭행은 뿌리 깊은 역사가 있다. 한국에서 폭언·폭행 경험이 없는 운동선수를 찾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힘들었던 건 운동이 아니었다. 매일 감독, 코치,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학창 시절엔 운동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경기 중에 실수라도 하는 날엔 정신이 나갔다. 경기 후 감독, 코치, 선배들에게 폭언·폭행에 시달릴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A 씨가 떠올린 학창 시절이다.
1970~80년대 한국 축구 대표팀에서 활약한 B 씨 역시 똑같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B 씨의 경험은 체육계 폭언·폭행의 역사가 깊다는 걸 증명한다.
“‘선배는 하나님과 동격이다’ ‘선배의 말은 곧 법이다’란 걸 매일 복창했다. 후배란 이유로 선배들의 빨래를 책임졌고, 밤중에 라면을 끓여서 가져다주는 등 잔심부름을 했다. 선배들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는 이유로 동기들을 집합 시켜 얼차려를 준 적도 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악습이 남아있다는 건 아주 가슴 아픈 일이다.”
"세상에 나를 위한 '폭력'은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7월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청문회에서 이런 말을 전했다.
“여러 선수를 만났다. 김규봉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어마무시한 말을 했다. ‘때린 것은 인정하나 내 밥줄을 건드리는 것은 인정 못한다’ ‘내 등에 칼 꽂는 제자는 가만 안 둔다’ ‘내가 너희들을 만들었고 너희들은 나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등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내가 너희들을 만들었고 너희들은 나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란 문구다.
체육계엔 폭언·폭행이 한계를 뛰어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선수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외부에서 강한 압력이 들어가면 더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C 씨는 “폭언·폭행은 큰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배웠다. 감독이 폭력을 행사하는 건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손찌검당한 걸 안 부모님은 딱 한 마디 했다. ‘이겨내라’였다. 많은 선수가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해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 그리고 그렇게 배워온 선수들이 지도자가 됐다. 폭언·폭행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확실히 처벌한다는 확신만이 뿌리 깊은 체육계의 잘못된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체육계에 폭언·폭행 피해자를 보호할 기구가 없는 건 아니다. 대한체육회엔 클린스포츠센터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엔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있다. 고 최숙현 선수는 철인3종협회와 경주시청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8월 5일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가 문을 연다. 체육지도자에 대한 자격 취소·정지 요건, 선수 보호를 강화하는 기구다.
법무법인 (유한) 현 박지훈 변호사는 “체육계 선수를 보호할 기구나 법이 부족한 건 아니”라며 “고 최숙현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체육계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형법 260조 제1항엔 ‘사람의 신체에 대해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제264조엔 ‘상습으로 제260조의 죄를 범한 때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고 명시돼 있다. 체육계 폭언·폭행이 끊이질 않는다는 건 결국 법이 두렵지 않다는 뜻” 박 변호사의 얘기다.
그렇다면 법률을 강화하는 것만이 지금도 폭언·폭행에 시달리고 있는 선수들을 보호할 방법일까. 박 변호사는 “답은 나와 있다”며 “세상에 밥줄이 끊기는 것만큼 두려운 건 없다”고 말했다.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7월 6일 고 최숙현 선수에게 폭언·폭행을 일삼은 김규봉 감독, 장윤정에게 영구제명 징계를 내렸다.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김 모씨에겐 자격정지 10년이 주어졌다. 아직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폭행 사실이 명확하다고 판단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박 변호사가 체육계 의지를 강조했던 건 이 때문이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