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청문회…주요 관련자 총출동

-팀킴 사건 가해자 경북체육회 김응삼 부장, 고 최숙현 선수 사건에서 재등장

-“2개월 징계 뒤 다시 원래 자리 복귀, 팀킴 관리자 역할” 피해자에겐 절망

-“체육계 폭력 행위 뿌리 뽑겠다”던 이기흥 회장 약속, 1년 반 만에 깨져…사퇴 요구 ‘거부’

22일 청문회에 출석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22일 청문회에 출석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소속팀 지도자와 선배들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고 최숙현 선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좌절했을까. 지난 7월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는 최 선수가 생전에 느낀 절망감의 크기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보여준 자리였다.

이날 청문회에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최윤희 차관을 비롯해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주낙영 경주시장, 김진환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장, 김현수 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장, 박찬영 경주경찰서장, 박석원 대한철인3종협회장, 김하영 경북체육회장 등 사건 관련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사각지대가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도를 개선하겠다’…생전 최숙현 선수가 수없이 문을 두드리며 호소했을 때 행정편의주의로 일관하며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던 이들은 최 선수 사후에 열린 청문회에서도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청문회에 출석한 최 선수 아버지 최영희 씨는 “숙현이가 제일 힘들어한 게 주위에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경주시청, 경찰, 국가인권위, 대한체육회 중에 누구도 숙현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최 선수 어머니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듣다가 눈물을 쏟았다.

팀킴 괴롭힌 김부장, 정직 2개월 뒤 다시 팀킴 관리자로 복귀…최숙현 부친 회유 의혹도

김응삼 경북체육회 체육진흥부장. 20년째 체육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불사신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김응삼 경북체육회 체육진흥부장. 20년째 체육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불사신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가해자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설사 처벌받더라도 가벼운 징계에 그치고, 징계 이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피해자를 옥죄는 체육계의 현실도 고 최숙현 선수의 절망감을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경북도체육회 김응삼 체육진흥부장은 고 최 선수 부친 최영희 씨를 회유하려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최 씨는 언론을 통해 “경북체육회 관계자가 지난 4월 지인을 통해 여러 차례 만나자고 연락했다. 합의를 보자는 얘기였다”고 폭로한 바 있다. 여기서 언급한 관계자가 바로 김응삼 부장이다.

김 부장은 ‘최 선수 부친을 회유하라는 지시가 있었느냐’는 이상헌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오전 질의 때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오후에 같은 질문을 다시 받자 소년체전, 전국체전을 올해 경북에서 개최하는 것에 대해 최 선수 아버지 지인 되는 분과 통화하다가 거기서 얘기를 들어서 ‘알아봐 주면 좋겠다’ 얘기했다고 말을 바꿨다.

김 부장의 이름은 2018년 11월 체육계를 떠들썩하게 한 ‘팀킴(경북체육회 여자컬링팀) 사건’에서도 등장한다. 팀킴의 폭로 이후 진행된 문체부 감사에서 김 부장은 ‘컬링 대부’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 딸과 사위, 아들과 조카 등 일가족을 특혜 채용하고, 이들의 횡령과 인권 침해를 사실상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는 감사결과를 토대로 수사 의뢰, 사법조치 권고, 부정청탁에 대한 징계 등 8건의 처분을 요구했지만 김 부장은 중징계 중 가장 가벼운 정직 2개월만 받았다. 징계 기간이 끝난 뒤엔 원래 자리인 경북체육회 체육진흥부장으로 복귀해 다시 피해자 팀킴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용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오후 질의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김 부장을 증인석에 불러낸 전 의원은 “배임과 각종 비리로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자가 똑같이 그 자리로 돌아왔다”며 2018년 12월 문체부 감사 기간 벌어진 김 부장의 부정 청탁 시도를 폭로했다.

전 의원에 따르면 김 부장은 감사 진행 기간 자신과 가까운 대한체육회 이사를 통해 감사 팀장에게 양주 선물을 전달하려 시도했다. 담당 직원은 이를 부정청탁으로 판단해 보고했고, 청탁을 시도한 이사에겐 ‘주의’ 처분이, 김 부장에겐 2개월 정직 처분이 각각 내려졌다.

전 의원은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버젓이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팀킴 선수들이 보복을 감수하고 김 부장의 파면을 요청했는데, 어떤 뒷배경이 있는지 다시 돌아와서 선수들을 위협하고 2차, 3차 피해를 주고 있다. 피해자 가해자 분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팀킴 김은정 선수는 2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건과 팀킴 사태가 다르지 않다”고 했다. 팀킴을 괴롭힌 가해자 김 부장은 온갖 의혹에도 여전히 체육회 실세이고 실권자다. 체육회 예산 절반 이상이 김 부장의 손에서 결정된다. 지역 종목단체 회장과 체육계 원로들이 김 부장을 비호한다. 경북체육회는 팀킴의 2차 기자회견 이후 뒤늦게 김 부장을 다른 부서로 배치했다.

전 의원은 청문회에서 “경북에서 같이 운동한 팀킴 선수들이 당하는 걸 봤는데 최숙현 선수가 어떻게 경북체육회에 이야기할 수 있었겠느냐. 사실을 말하면 보복당할 게 뻔한데 어떻게 얘기할 수 있었겠나”라며 고 최 선수가 느꼈을 깊은 절망감에 공감을 표했다. 고 최 선수 사건에서 김 부장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사퇴하세요” 의원 질타에 이기흥 회장 “그건 별개 문제” 사실상 거부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힌 이기흥 회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힌 이기흥 회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청문회에서 쏟아지는 의원들의 질타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청탁을 시도한 대한체육회 이사와 김응삼 체육진흥부장을 수사 의뢰하라’는 요구에 이 회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고 최숙현 선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 “통렬히 성찰하겠다”는 말도 했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다. 2년 전 국정감사 때도 이기흥 회장은 고개를 숙였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늘어놨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폭행 및 성폭행 사건에 대해 ‘체육계 폭력을 철저히 뿌리 뽑겠다”고 장담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쇄신하겠다”고 결의를 보였다.

하지만 이 회장은 아무것도 바꾸지도 뿌리 뽑지도 못했고, 그 사이 최숙현 선수가 세상을 등졌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그대로인데, 사태의 책임자인 이 회장의 권력은 오히려 더 커졌다. 국제스포츠계 ‘거물’로 성장했고, 국내 정치권에서도 무시 못 할 인물로 체급을 키웠다. 대한체육회 정관을 개정해 회장직 연임 가능성도 커졌다. 팀킴 사태에도 제 자릴 지키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은 경북체육회 김응삼 체육진흥부장과 다르지 않다.

체육계에선 이 회장이 체육계 폭력 문제의 해결 주체가 아닌 심판 대상이란 목소리가 높다. 지난 6일엔 40여 개 스포츠·시민사회단체는 고 최숙현 사망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며 “스포츠 혁신의 변화를 잠재우고 시대 역행적인 행보를 일삼은 이기흥 회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체육계가 한목소리로 이 회장을 지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013년 일이다. 일부 수구 선수가 여자 선수 탈의실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다 적발됐다. 대한수영연맹은 처음엔 영구제명 철퇴를 휘두르는 듯 하더니, 3개월 뒤 슬그머니 선수 자격을 되살렸다.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게 수영연맹이 내세운 이유다. 이기흥 회장이 수영연맹 회장일 때 벌어진 일이다.

2015년 빙상 실업팀 성추행 지도자의 영구제명 징계를 대한체육회가 ‘3년 자격정지’로 감경했을 때도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가해자에게 관대하고, 무거운 잘못을 저질러도 구제해준 이가 체육계 수장을 맡고 있으니 폭력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이 회장은 조재범 사건 때는 폭행 피해자 심석희 선수에게 “조재범 코치가 돌아오게 해주겠다”는 비상식적 발언을 해 큰 파문을 빚었다. 대한체육회에선 “심석희와 이기흥 회장이 만난 적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지만, 이후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이 회장의 문제 발언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 회장 체제의 대한체육회에서 폭력·성폭력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청문회에서 김예지 의원(미래통합당)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작년 1월과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이기흥 회장 체제에선 자정이 어렵다. 미국에선 체조선수 성폭행 사건이 터진 뒤 체조협회 이사 전원이 사퇴했다. 두 번의 기회면 충분하다. 이기흥 회장은 더는 체육계 수장 자격이 없고, 개혁을 말할 자격조차 없다며 이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그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사퇴를 거부했다. 이 회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제가 더 세심하게 관찰하도록 하겠다”며 앞으로도 계속 회장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자신의 재임 기간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선수가 죽음에 이르렀는데도 ‘앞으로’만 되풀이하는 이 회장이다.

이날 청문회를 지켜본 체육계 관계자는 체육계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이 회장이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장직 사퇴다. 그래야 차기 회장은 물론 체육계 전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않겠나라며책임자인 이 회장이 계속 자릴 지키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체육계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지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온갖 사건 사고에도 건재한 이 회장의 존재가 피해자들에게는 절망이라고 강조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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