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상, 2020년 와이번스 원 클럽 맨으로 현역 생활 마무리

-인수 앞둔 ‘SK 와이번스’ 구단 마지막 선발 투수로 역사에 남아

-“현역 시절 이만수 감독님 믿음으로 자신감 얻어, 2014년 타구 강습 골절 부상이 가장 안타까웠다.”

-“2018년 KS 우승은 아직도 벅찬 감동, 은퇴 경기로 후회 없이 현역 마무리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글러브, 사업을 통해 선수가 원하는 글러브 제작 연결 시작”

-“글러브 직접 생산까지 맡는 국산 브랜드로 성장 목표, 한국 슈퍼스타가 ‘YOONI’ 글러브 끼는 날 소망”

-“SK 와이번스 역사 사라지는 건 씁쓸한 감정, 그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선수단 향해 변함없는 응원 부탁”

윤희상은 현역 은퇴 뒤 더 바쁜 제2의 야구 인생을 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윤희상은 현역 은퇴 뒤 더 바쁜 제2의 야구 인생을 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구월동]

‘SK 와이번스 원 클럽 맨’ 윤희상은 2020년 현역 은퇴 뒤에도 여전히 온종일 글러브를 손에 들고 있다. 여전히 현역 생활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원대한 꿈이 있는 까닭이다. 바로 자신이 만든 ‘YOONI’ 글러브를 한국 슈퍼스타가 쓰는 날이 오길 바라는 꿈이다.

보통 야구 선수들은 현역 은퇴 뒤 가족들과 함께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거나 지도자 혹은 야구 현장과 관련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윤희상이 시작한 제2의 야구 인생은 독특했다. 윤희상은 글러브를 판매하고 관리해주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어린 시절부터 글러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은퇴 뒤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할까에 대한 답을 ‘글러브’에서 찾았다.

윤희상은 글러브 판매업뿐만 아니라 유소년 야구 지도까지 병행하면서 일주일 내내 야구를 향한 열정을 펼치고 있다. ‘야구 선수 윤희상’이 아닌 ‘사업가 윤희상’과 ‘유소년 지도자 윤희상’으로서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그의 얘길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 사라지는 SK 와이번스 역사의 산증인 된 윤희상 "서운한 마음 들더라." -


입단 초기 윤희상의 투구 장면. 윤희상은 당시 조범현 감독을 만나 프로 선수로서 마인드를 배웠다고 전했다(사진=SK)
입단 초기 윤희상의 투구 장면. 윤희상은 당시 조범현 감독을 만나 프로 선수로서 마인드를 배웠다고 전했다(사진=SK)

글러브 얘기보다 이 얘기를 더 먼저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SK 와이번스가 신세계그룹의 인수로 한국 야구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원 클럽 맨’으로서 아쉬운 감정이 크겠습니다.

(짧은 한숨을 내쉬며) 구단 매각 소식을 듣고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SK 와이번스’가 사라질 리 없고 영원할 것으로 믿었어요. 그런데 계속 뉴스가 나오고 현실이 되니까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옛 동료들도 다들 충격을 받고 멍한 상태인 듯싶죠. 10~20년 뒤 어린 팬들은 ‘SK 와이번스’라는 팀을 잘 모르지 않을까요. 아직도 현실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침 SK 와이번스 마지막 공식 경기로 남은 역사가 윤희상의 은퇴 경기였습니다. 공교롭게도 SK 와이번스 구단 역사 마지막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셈이고요.(SK 와이번스 구단의 마지막 공식 경기는 2020년 10월 30일 문학 LG 트윈스전이 됐다. 윤희상은 그날 은퇴 경기를 치르기 위해 선발 마운드에 올라 한 타자만 상대(홍창기 상대 볼넷 기록)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제가 ‘인천 SK’ 와이번스 구단의 마지막 선발 투수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마침 은퇴 경기에다 창단 기념 유니폼까지 입고 뛰어 더 기억에 남아요.


2004년 입단해 2020년까지 와이번스 한 유니폼만 입고 뛰었습니다. 구단 역사의 산증인과 같은데요. 입단 초창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까.

제가 입단했을 때는 구단이 인천 연고지로 옮긴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관중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군인들과 학생들을 초청해 관중석을 메웠는데 어느덧 문학야구장을 꽉 채워주시는 ‘인천 SK’ 팬들이 가득 생겼어요. 이제 ‘인천 SK’라는 단어와 역사가 자리 잡나 싶었는데 이렇게 되니 ‘도대체 왜?’라는 생각과 시원섭섭한 느낌이 드네요. 또 지도자 한 분이 먼저 떠오릅니다.

어떤 지도자입니까.

신인 때 저를 지도해주신 조범현 전 감독님입니다. 입단하자마자 감독님께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나요. 훈련할 때 옆에서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 공을 던질 때 더 집중하고 대범하게 투구해라’라고 말씀하셨죠. 어릴 때는 겁이 나고 무서웠는데 나중에 돌이키니까 신인인 저를 감독님이 옆에서 세세하게 신경 써주시고 챙겨주신 거였더라고요. 감독님 덕분에 프로의 마인드를 깨닫게 됐죠.

2004년에 입단했지만, 2012년 데뷔 첫 10승을 달성하기 전까진 그렇게 두각을 보이진 못 했습니다.

그냥 야구를 못 했으니까요(웃음). 어깨 수술도 받아서 재활 기간이 길었고, 군대 문제도 해결해야 했죠. 2007년과 2008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때 저는 복무 중이었습니다. 2009년은 재활로 허비하고 2010년에서야 1군에 조금씩 얼굴을 비췄죠. 그때 김성근 감독님의 훈련을 제대로 받았죠(웃음).

극한의 지옥 훈련이었겠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훈련이 이어지니까 ‘도대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야구를 좋아해서 하는 건데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심할 정도로 힘들었죠. 그런데 돌이키면 그때 그렇게 강한 훈련을 안 했다면 선수 생활을 금방 접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힘든 과정을 다 극복했기에 1군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거였죠. 그만큼 김성근 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많이 배웠습니다.


- 윤희상 "김성근 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배웠다면 이만수 감독님 밑에선 야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

윤희상(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이만수 전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의 믿음으로 야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며 감사함을 표했다(사진=이만수 감독 제공)
윤희상(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이만수 전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의 믿음으로 야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며 감사함을 표했다(사진=이만수 감독 제공)

윤희상의 야구가 제대로 꽃핀 건 정작 이만수 감독 아래 있었던 2012시즌(28G 163.1이닝 10승 9패 평균자책 3.36 100탈삼진)과 2013시즌(25G 151.1이닝 8승 6패 평균자책 3.87 120탈삼진)이었습니다.

김성근 감독 밑에서 야구를 많이 배웠다면 이만수 감독님 밑에선 야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감독님의 믿음 덕분에 큰 자신감을 얻었죠. 어느 정도였나 하면 감독님이 선발 등판 날인데 야구장에서 손을 잡고 기도해주시더라고요. 저는 기독교는 아니었지만(웃음). 그만큼 감독님이 선수들을 사랑하고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믿음과 기회를 주시니까 그만큼 감독님에게 무언가 해내서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시기였어요.

그렇게 알을 깨는 듯했던 윤희상은 야구는 2014년 잠시 멈췄습니다. 2014년 당시 두 차례 강습 타구 장면은 아직도 떠올리기 서늘한 장면입니다.(윤희상은 2014년 4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강습 타구에 급소를 맞아 병원 검진을 받았다. 이후 복귀한 윤희상은 5월 16일 한화 이글스전에선 강습 타구에 새끼손가락 골절을 당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2013시즌 투구 내용이 야구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나도 되네? 나도 할 수 있구나. 야구가 점점 재밌어지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2014년을 맞이했죠. 그런데 강습 타구에 새끼손가락 골절 진단을 받고 완전히 계획이 어그러졌습니다. 저도 야구 인생에서 그 순간이 가장 안타까워요. 차라리 급소를 한 번 더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손가락 쪽이 안 좋으니까 팔꿈치 쪽까지 안 좋은 영향을 끼치더라고요. 사실상 그 사건으로 2년의 세월을 버린 셈이었죠.

윤희상은 2014년 새끼손가락 골절 당시 여파로 여전히 오른손을 완전히 구부리지 못 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윤희상은 2014년 새끼손가락 골절 당시 여파로 여전히 오른손을 완전한 주먹으로 만들지 못 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그나마 그 아픔의 세월을 보상해주는 결과물이었겠습니다.

(고갤 끄덕이며) 제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해가 2018년입니다. 어릴 때부터 구단에서 선발 투수로 저를 키웠는데 처음으로 불펜 보직을 전담해 맡은 해였고요. 선발 투수로서 팔 상태가 안 좋으니까 당시 손혁 투수코치님이 불펜 보직을 제의하셨죠. 불펜에서 정말 편안하게 공을 던졌습니다. 당시 트레이 힐만 감독님과 손혁 코치님이 정말 잘해주신 게 하나 있어요.

어떤 점입니까.

불펜 투수들의 등판 일정 관리입니다. 당시 1년 동안 불펜에 있었는데 불펜 투수들 모두 1년 내내 크게 힘든 일 없이 즐겁게 공을 던졌어요. 쉴 때는 확실히 쉬고 내가 나가야 할 때를 확실히 알고 준비했죠. 돌이키면 불펜 관리를 이렇게 이상적으로 할 수 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 덕분인지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따라왔습니다.

2018년 포스트시즌 영상은 지금 봐도 재밌습니다. (박)정권이 형이 저한테 많이 맞았죠(웃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갔던 2011년과 2012년 준우승을 경험하고 저에게 우승은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2018년에 우승을 딱 하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죠. 선수 생활을 해보니까 우승이라는 건 엄청난 일이고 동경 받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도시가 난리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인 거죠. 우승 반지는 금이야 옥이야 가보로 잘 보관하려고 합니다(웃음).


- "후회 없이 던져 재밌었던 은퇴 경기, 승리 위해 애쓴 (박)종훈에게 고마워." -

2020년 시즌 최종전 은퇴 경기에 등판한 선발 투수 윤희상은 안 좋은 어깨 상태에도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사진=SK)
2020년 시즌 최종전 은퇴 경기에 등판한 선발 투수 윤희상은 안 좋은 어깨 상태에도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사진=SK)


첫 번째 우승 반지를 얻은 뒤 2019년 윤희상의 등판 기록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깨 부상까지 찾아와 은퇴를 고민했다고 들었습니다.

2019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깨가 안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 은퇴를 예감했을 정도였죠. 당시 새로 부임하신 염경엽 감독님께 은퇴를 말씀드렸는데 ‘따뜻한 곳에서 몸을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하셨죠. 그래도 잘 안 풀려서 결국 한국에서 어깨 수술을 받았습니다. 돌이키면 너무 제 욕심만 부렸나 싶어요.


욕심이요?

야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구단이 허락해주신 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받은 어깨 수술 때와 달리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제가 2군에서 공을 던져도 어린 친구들이 그 기회를 못 얻는 거잖아요. 또 제가 어깨가 아파서 갑자기 내려오면 어린 친구들이 몸도 풀 새 없이 공을 던지고요. 민폐라는 생각이 컸는데 주위에서 도와주고 격려해준 덕분에 2020년 마지막으로 공을 던질 기회를 얻었죠.

결국, 2020시즌 후반기 막판 복귀 뒤 시즌 최종전에선 은퇴 경기까지 치렀습니다.

저는 은퇴 경기로 주목받으려는 마음이 없었는데 구단에서 잘 준비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등판 때도 어깨가 안 좋았는데 정말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던졌죠(웃음). 볼넷을 허용한 마지막 공만 기억이 나네요. 아쉬웠지만, 후회는 안 남았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경기에선 신나고 행복하게 공을 던지고 끝냈어요. (김)광현이도 축하하러 와줘서 정말 고마웠고요. 무엇보다 (박)종훈이가 정말 많이 애를 썼죠.

윤희상 선수의 공을 이어받은 투수 박종훈이 6.2이닝 3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3대 2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종훈이가 그날 엄청 신경 쓰더라고요. 제 은퇴 경기에서 지면 안 된다며 제가 미안할 정도로 열심히 던졌어요. 또 제가 1회 초 내준 볼넷 다음 선제 실점이 나와 그대로 지면 제가 패전 투수가 되는 거였죠. 그걸 막아주려고 애써준 종훈이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은퇴 경기 뒤 미련 없이 글러브를 내려놨습니까.

크게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가끔 야구를 하고 싶을 때는 유소년 선수들이랑 야구를 하니까 괜찮아요. 또 현역 시절보다 더 글러브를 매만지게 됐으니까 더 야구와 붙어사는 거죠(웃음).


-윤희상의 새 출발 ‘YOONI COLLECTABLE’ "글러브 서포터 혹은 어드바이저 역할" -

인천 구월동에 위치한 윤희상의 글러브 가게. 'YOONI'라는 브랜드로 점차 성장하는 게 윤희상의 꿈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인천 구월동에 위치한 윤희상의 글러브 가게. 'YOONI'라는 브랜드로 점차 성장하는 게 윤희상의 꿈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글러브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신선했습니다. 보통 제2의 야구 인생은 지도자 길을 많이 걷잖아요. 원래 글러브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러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어릴 때 감독님이 구해주신 글러브를 사용했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1~2년에 글러브 하나를 사서 애지중지 관리하면서 썼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쓰던 글러브를 빠짐없이 모았고요. 프로 무대에서도 선수들에게 글러브 관리에 대해 조언해주고 길들여주고 하니까 (최)정이가 글러브 사업을 해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바로 행동으로 옮긴 추진력도 대단합니다.

제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입니다(웃음). 은퇴하기 전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아내도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하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제가 첫 번째로 좋아하는 ‘글러브’ 관련 일을 하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유소년 야구’ 관련 지도를 하기로 했죠. 그래서 지금 두 가지 일을 다 하고 있어서 행복합니다(웃음).

야구 선수 윤희상과 사업가 윤희상의 위치는 완전히 달랐겠습니다.

야구 선수를 할 때는 제 몸에만 집중하면 됐는데 지금은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더 집중해야 하니까 그게 어렵습니다. 24시간 내내 긴장하면서 살고 있어요(웃음). 야구 말고 다른 일을 해보니까 항상 원하는 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낍니다. 세상사엔 다 사정이 있더라고요. 지금 겪는 어려운 일들도 웃어서 넘길 날이 빨리 왔으면 하죠.

어떤 점이 가장 어렵습니까.

사람을 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죠. 고객 응대도 초짜라 죄송한 마음도 느끼고요. 이래저래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는 일들도 계속 생기죠. 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사 이름을 ‘YOONI COLLECTABLE’로 지었습니다. 본인 이름과 관련한 의미입니까.

현역 시절 동료들이 윤희상 이름에서 앞쪽 발음을 떼와 ‘유니’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렀거든요. 그래서 ‘YOONI’에다 가치 있는 글러브 수집이라는 의미의 ‘COLLECTABLE’을 붙여서 회사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사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현재는 제가 글러브를 직접 제작하는 건 아니고요. 선수와 상담해 선수 특성에 맞게 도안과 도면을 그린 다음 글러브 생산을 다른 업체에 맡겨 판매하고 있습니다. 글러브를 길들여주는 작업도 하고요. 학교 야구부 쪽에 야구용품 납품도 해줍니다. 선수와 글러브 제작자 사이에 껴서 서포터 혹은 어드바이저 역할을 하는 셈이죠.


- "글러브 주문 넘어 직접 생산까지 브랜드 성장 꿈꿔, 한국 슈퍼스타가 내 글러브 끼는 날이 오길"

윤희상은 선수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글러브 브랜드를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윤희상은 선수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글러브 브랜드를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직접 글러브를 만들어볼 생각도 했습니까.

재봉부터 시작해 제가 직접 해볼까 했는데 기술자분들께서 제작 기술을 다 체득하려면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각자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하는 게 낫다고 조언해주셨죠. 그래도 글러브를 어떻게 만드는지 계속 공부하면서 저만의 노하우를 계속 쌓으려고 합니다.

선수마다 사용하는 글러브 제작과 관련해 디테일을 잡아주는 역할이라고 받아들이면 될까요.

글러브 포켓의 깊이, 글러브를 꼈을 때 손가락 방향, 어떤 손가락을 많이 구부리는지, 어떤 손 모양으로 글러브를 잡는지 등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하나하나 다 잡아주는 일입니다. 포지션마다 글러브 구조가 다른 건 기본적인 거고, 저는 같은 포지션이라도 선수마다 글러브 스타일을 다르게 쓰는 걸 분석하는 거죠. 같은 유격수 자리라도 김재호 선수와 오지환 선수가 쓰는 글러브 스타일이 다를 거니까요. 더 넓게 본다면 그런 분석을 통해 유소년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유소년 선수들이요?

한국 유소년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자기 손과 스타일에 맞는 글러브를 맞춤 제작할 수 있다면 기술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글러브를 잘 만든다면 한국 유소년 야구 발전도 따라오지 않겠냐는 꿈같은 생각도 해봅니다(웃음).

직접 글러브 생산까지 맡는 그림까지 그리는 듯싶습니다.

제가 직접 글러브를 못 만들더라도 정말 좋은 기술자분과 협업해서 직접 생산까지 하는 글러브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못지않게 국내 기술자분들도 글러브를 잘 만들고 계시니까요.

한국 선수들이 ‘윤희상표’ 글러브를 끼고 활약하는 날이 오는 게 꿈이겠습니다.

글러브는 선수들에게 자기 분신과도 같습니다. 미국과 일본 글러브 브랜드마다 각자 떠오르는 슈퍼스타가 있잖아요. 그런데 아직 한국 선수들도 국외 글러브 브랜드를 사용해요. 제가 하는 일이 잘 풀린다면 ‘YOONI’ 글러브를 한국 슈퍼스타가 자랑스럽게 쓰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한국 슈퍼스타는 저런 한국 브랜드 글러브를 쓴다는 말이 나오게 앞으로 제가 열심히 노력해야겠습니다.


- "'인천 SK 와이번스'의 소중한 추억 잊지 않겠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2020년 SK 와이번스에서 원 클럽 맨으로 은퇴한 윤희상은 제2의 야구 인생으로 글러브 사업을 시작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2020년 SK 와이번스에서 원 클럽 맨으로 은퇴한 윤희상은 제2의 야구 인생으로 글러브 사업을 시작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글러브 사업뿐만 아니라 유소년 야구 지도까지 맡으면 쉴 시간이 없겠습니다.

송도 파이어볼 야구단에서 엄정욱 감독님, 홍명찬 코치님과 셋이서 유소년 야구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많이 배려해주셔서 오후 4시까지 글러브 사업 관련 일을 보다가 송도 야구장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주말에도 유소년 지도를 하러 나가니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은 거의 없네요(웃음).


유소년 지도에서 느끼는 보람도 크겠습니다.

단순히 아이들의 실력향상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힘든 훈련을 이 악물고 따라오면 뭔가 모를 벅찬 감동이 느껴집니다. 그런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어떻게든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은퇴 뒤에도 그런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일이지만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 정도로 재밌게 하고 있어요. 피곤해서 눈이 떨릴 정도지만요(웃음).

제2의 야구 인생을 정말 알차게 보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윤희상을 향해 응원하는 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까. ‘SK 와이번스’ 팬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기도 합니다.

구단 인수 관련 소식을 듣고 혼자 감성에 젖어 SNS 메시지로 올렸는데 SK 팬들이 많은 댓글을 달아주셨더라고요. SK 팬들도 저처럼 마음이 뒤숭숭하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모기업과 이름이 바뀔 뿐 제가 응원하는 프런트와 감독님, 코치님, 그리고 선수 동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결국, 제가 또 응원해야 하는 팀이고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팀에 더 힘을 실어주고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인천 SK 와이번스’와 저를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윤희상에게 ‘SK 와이번스’는 어떤 의미입니까.

제게 중요한 깨달음을 준 인생의 책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챕터이자 한 페이지는 모두 SK 와이번스로 가득 차 있고요. 구단 역사에 한 일원이었던 SK 와이번스 윤희상이라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 않고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인천 SK 와이번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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