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이후 줄곧 기업 홍보와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존재해온 한국 프로야구

-독자적 비즈니스 모델 구축은 요원한 현실…신세계그룹이 프로야구에 뛰어든 이유는?

-야구단 통한 단위 사업 활성화가 진짜 목적…분명한 목적과 비전 갖고 야구단 인수했다

-야구장 통한 다양한 가치 창출도 가능해…신세계, 프로야구단 존재의 새로운 이유 보여줄까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이마트 응원 카드를 들고 응원하는 야구팬들(사진=SK)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이마트 응원 카드를 들고 응원하는 야구팬들(사진=SK)

[엠스플뉴스]

“맨 처음 잘못 끼운 첫 단추가 40년째 프로야구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산업화에 대해 말하던 한 야구 원로는 KBO리그의 태생적 한계를 언급했다. 애초 정권 차원의 기획에 의해 탄생한 프로야구다. 기업 총수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윽박질러가며 팀을 만들어 막을 올렸다. 한 기업의 구단 운영이 어려워지면 다시 새로운 기업을 끌어들였다. 2000년 SK 그룹의 프로야구 참가도 당시 정권 핵심인사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야구단 운영 목적은 수익창출이 아닌 기업 홍보와 사회공헌에 맞춰졌다. 구단들은 굳이 돈을 벌어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룹 계열사들이 갹출해 운영비를 조달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매년 수백억 적자를 내면서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해외 프로스포츠처럼 독자적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서 막대한 수익을 내는 건 꿈같은 일로 여겼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제대로 바로잡기가 쉽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 들어 마케팅을 강조하고 수익 창출과 독자 생존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프로구단의 가장 기초적 수익원인 입장권 가격조차 현실화하기 어렵다. 그나마도 지난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관중석이 텅텅 비면서 배부른 투정이 되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 마케팅팀장을 지낸 김경민 4DREPLAY 사업본부 책임은 “우리 프로야구단은 이윤 추구가 목적인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정작 모기업 홍보 역할만 강요받는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제는 야구단을 운영하는 일 자체가 커다란 희생이 됐다”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너무나 명확하지만 어느 누구도 엉킨 실타래를 풀려 나서지 않는 게 프로야구의 현실”이라 지적했다.

“신세계의 야구단 인수, 분명한 목적과 비전 갖고 이뤄져…단위 사업 활성화가 진짜 목적”

인천 야구장에서 여가를 즐기는 관중들(사진=엠스플뉴스)
인천 야구장에서 여가를 즐기는 관중들(사진=엠스플뉴스)

이런 가운데 재계 순위 3위의 글로벌 대기업 SK가 야구단에서 손을 떼고, 유통업계 공룡 신세계그룹이 야구단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수가격은 주식 1000억 원과 야구연습장 등 토지 ·건물 352억8000만 원 등 총 1352억8000만 원에 달한다. 멀쩡한 기업이 경영상 판단으로 야구단을 매각하고, 새로운 기업이 ‘자발적’으로 거액을 들여 야구단을 인수한 건 KBO리그 역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다.

야구계에선 SK 같은 대기업이 프로야구에서 손을 털고 나갔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도 있다. SK가 나가면서 자칫 전체 프로야구판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SK 외에도 야구단을 보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다른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이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세계라는 ‘확실한 목적과 비전’이 있는 회사가 야구단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신세계가 다른 구단들처럼 야구단을 계열사 홍보용으로만 쓸 거라는 예상은 고루한 관점에서 나온 단견”이라며 “야구단은 기업 홍보와 사회공헌 외에도 활용하기에 따라서 유용한 도구이자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민 책임은 “신세계는 이미 야구단 운영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단위 사업군을 운영 중이다. 야구단 운영의 구체적 플랜을 갖고 들어왔을 것”이라며 “기존에 가지고 있는 단위 사업들을 활성화하고, 고객과의 접점이자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야구단을 인수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신세계는 SK 인수 소식을 전하면서 “온·오프라인 통합과 온라인 시장의 확장을 위해 야구단 인수를 추진했다”며 “야구팬과 신세계그룹의 고객을 접목하면 다양한 ‘고객 경험의 확장’이 가능하다. 프로야구는 온·오프라인 통합이 가장 잘 진행되고 있는 스포츠 분야로 두터운 야구팬층이 온라인 시장의 주도적 고객층과 일치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신세계는 “야구팬과 고객의 경계 없는 소통과 경험의 공유가 이뤄지면서 상호 간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야구장을 찾는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보는 야구’에서 ‘즐기는 야구’로 프로야구의 질적/양적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야구장 밖에서도 ‘신세계의 팬’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스타필드 내부에 입점한 스포츠 체험시설.
스타필드 내부에 입점한 스포츠 체험시설.

신세계그룹과 경쟁 관계에 있는 유통 대기업 관계자도 “신세계가 단순히 기존 야구단과 같은 목적으로 야구단을 창단한다고 보면 오판이다. 신세계는 자신들의 사업을 위해 야구단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SK를 인수한 것”이라며 “한 지상파 방송 인터뷰에서 전문가라는 사람이 ‘신세계의 야구단 인수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낙제점’이란 말을 했던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산업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인수 주체가 신세계가 아닌 신세계 이마트라는 점”이라며 “기존 구단들은 그룹 소속으로 되어있어서 마케팅이나 영업이나 각 계열사 간 관계 때문에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반면 신세계 이마트가 야구단을 운영한다면 그런 제약 없이 브랜드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롯데 출신인 김경민 책임도 “롯데 자이언츠가 롯데그룹 전체를 막연하게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롯데쇼핑 혹은 롯데백화점과 같은 단위 사업만을 위해 기능하는 특수목적의 조직이었다면 지금처럼 내,외부의 혼란에 휘둘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앞의 대기업 관계자는 “정용진 회장이 과거 ‘대형마트의 경쟁자는 레저, 야외활동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야구단 인수는 그런 인식이 잘 반영된 움직임으로 보인다. 야구단은 야구장이라는 좋은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고 야구단을 매개로 다양한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법규상 마트 등의 신규출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구장을 활용한 추가 매출 및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도 있다. 야구장 내부에 이마트 PB 매장들을 입점시키거나 상품을 판매하는 등의 방법뿐만 아니라 선수의 초상권이나 네이밍등을 활용한 스포츠 상품들을 선보일 수도 있다. 스포츠 기업 이미지를 통해 매장에 스포츠 놀이 공간을 런칭했을 때 얻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신세계그룹은 “프로야구 팬들의 야구 보는 즐거움을 위해 신세계그룹의 고객 경험과 노하우를 접목한 ‘라이프 스타일 센터’로 야구장을 진화시킬 예정”이라며 “야구장을 찾은 팬들이 야구뿐만 아니라 신세계그룹이 선보여 온 다양한 서비스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여 야구 보는 재미를 한층 더 배가할 것”이라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를 야구팬들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팬과 지역사회, 관계기관의 의견을 수렴하여 장기적으로 돔을 포함한 다목적 시설 건립을 추진하는 등 인프라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도 공개했다. 동종업계에서는 이 ‘다목적 시설’이 야구장과 스타필드를 결합한 새로운 복합 문화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SG 야구단이 열어갈 ‘멋진 신세계’ 실현하려면…야구단 프런트 역량 중요

인천문학구장은 신세계의 야구단 운영에 중요한 플랫폼으로 기능할 전망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인천문학구장은 신세계의 야구단 운영에 중요한 플랫폼으로 기능할 전망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처럼 신세계그룹은 프로야구단 인수를 통해 이전 야구단과는 다른 형태의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한국적 현실상 야구단 자체가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나 수익원이 되긴 쉽지 않지만, 대신 기존 사업과 야구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비전이 현실화하려면 야구단 프런트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방구단 마케팅 관계자는 “프런트 중에서도 경영 파트에서 신세계그룹의 비전을 충실하게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야구단 창단 초기 단계에서 생기는 여러 현실적 난관을 잘 풀어가야 한다. 실제 야구단을 운영하다 보면 애초 구상했던 것과 현실 사이에서 충돌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지적했다. 물론 신세계그룹이 기존 프런트의 100% 고용 승계를 약속하긴 했지만, 그룹 차원의 비전을 구현할 전문인력이 야구단에 파견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가는 것도 중요하다. 김경민 책임은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없으니 경기장 내 식음료와 상품 판매도 저조하다. 광고와 프로모션도 부진해 B2C와 B2B가 모두 붕괴한 게 지금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세계에서 구상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을 통한 비전을 당장 실행하기엔 악조건이다.

분명한 건 SK 매각과 신세계 인수가 프로야구의 위기와 새로운 기회를 함께 보여준다는 점이다. SK의 이탈에서 드러나듯 전통적인 프로야구단 운영 목적(홍보, 사회공헌)은 의미가 퇴색했을지 몰라도, 신세계처럼 새로운 목적과 그림을 갖고 야구단을 운영하려는 기업이 얼마든 나올 수 있다. IT 대기업인 카카오의 야구단 인수 소문이 꾸준히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김경민 책임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구축이 요원하다면, 프로야구단을 특수한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이는 한국 프로스포츠 업계의 특수성 속에서 프로야구단이 생명력과 가치를 더하는 길”이라고 주문했다. 프로야구단을 이용해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게 앞으로 야구단의 새로운 존재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