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고유민 모친 “배구계 학교폭력 논란? 터질 게 터졌구나 싶습니다”

-“고유민 학창 시절 기합·폭력 다반사···프로 입문 후 모 감독에겐 손찌검당한 적도 있다”

-“남에게 물리적인 힘을 가해야만 폭력 아니야···고유민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생 마감했다”

-“‘이번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는 박철우의 용기를 지지한다”

2009년 9월 한국 배구 대표팀 이상열 코치에게 피멍이 들도록 얼굴과 복부를 맞았던 박철우(사진 왼쪽). 고 고유민의 모친 권 모 씨(사진=엠스플뉴스, KBS 뉴스 화면 캡처)
2009년 9월 한국 배구 대표팀 이상열 코치에게 피멍이 들도록 얼굴과 복부를 맞았던 박철우(사진 왼쪽). 고 고유민의 모친 권 모 씨(사진=엠스플뉴스, KBS 뉴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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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뉴스]

“박철우 선수는 모든 걸 잃을 각오로 작심 발언을 쏟아 냈습니다. ‘이번엔 반드시 (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박철우 선수의 용기에 조금이나마 힘이 돼주고 싶어요.” 전 프로배구 선수 고(故) 고유민의 어머니 권 모 씨가 힘겹게 꺼낸 첫 말이다.

배구계에 학폭(학교폭력) 논란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2월 10일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여자 프로배구단 이재영, 이다영을 시작으로 OK금융그룹 읏맨 남자 프로배구단 송명근, 심경섭 등이 학폭 사실을 인정하며 고갤 숙였다.

한국전력 빅스톰 남자 프로배구단 박철우 역시 폭력 피해자다. 박철우는 2009년 9월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앞둔 한국 배구 대표팀에서 이상열 코치(현 KB손해보험 스타즈 감독)로부터 피멍이 들도록 얼굴과 복부를 맞았다. 최근 박철우는 "아직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며 "(이 코치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프로배구단 감독으로 복귀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권 씨는 2013년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여자 프로배구단에 입단한 고유민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고)유민이가 프로에 입문한 이후 모 감독에게 손찌검을 당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학교는 물론 프로에서까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다.” 권 씨의 얘기다.

“매번 강조하지만 유민이는 악성 댓글로 생을 마감한 게 아닙니다. 현대건설이 유민이를 의도적으로 훈련에서 배제하고 투명인간 취급했어요. 마지막엔 트레이드를 미끼로 계약을 해지한 뒤 임의탈퇴 공시를 했죠. 물리적인 힘을 가해야만 폭력이 아닙니다. 배구계엔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정신적인 폭력도 있어요. ‘이번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는 박철우 선수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돕니다.” 엠스플뉴스가 권 씨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고유민 학창 시절 기합·폭력 다반사···프로 입문 후 모 감독에게 손찌검당한 적도 있다”

전 여자 프로배구 선수 고 고유민(사진=엠스플뉴스)
전 여자 프로배구 선수 고 고유민(사진=엠스플뉴스)

배구계가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터질 게 터졌구나 싶습니다. 배구계뿐 아니라 체육계 전체가 벌벌 떨고 있을 거예요. 유민이도 중학교 때까지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숙소를 여러 번 도망쳐서 나왔어요. 학교에 이야기해봐야 바뀌는 게 없었죠. 배구가 단체운동이다 보니 체벌이나 단체 기합같은 걸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스포츠계에선 체벌을 '사랑의 매'로 아는 이가 꽤 많습니다.

맞아요. 일반 학생 가운데서도 학교폭력의 상처가 남아 있는 분이 많을 거예요. 당시엔 학교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특히나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선 그 또한 이겨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죠. 학부모인 저도 그렇게 주입받았어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절감합니다.

언제 처음 세상이 바뀐 걸 절감하셨습니까.

유민이가 떠나고 절감했고, 최근 한국전력 박철우 선수가 이상열 감독을 향해 작심 발언을 한 걸 보고 또 절감했어요. 박철우 선수 같은 피해자는 아픈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해요. 가해자는 어떻습니까.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살아가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산다?

대한배구협회(KVA)는 2009년 폭력 사건 이후 이상열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뒤 2011년 이 감독이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위원으로 복귀했어요. 2012년부턴 8년간 경기대학교 감독을 맡았습니다. 2020-2021시즌을 앞두고선 KB손해보험 지휘봉을 잡았죠. 기자님. 이게 말이 됩니까.

박철우가 작심 비판한 이유도 이 감독의 행보가 원체 순탄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박철우 선수의 마음속 깊은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았을 거예요. 박철우 선수는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배구계는 신경 쓰지 않아요. 자기들이 꼭 필요한 사람이란 판단이 들면 어떤 문제를 일으켰든 복귀시켜요. 배구계가 이번 학교폭력 논란이 잠잠해졌을 때 어떻게 일 처리하는지 보세요. 제2의 이상열이 또 나올 겁니다.

“남에게 물리적인 힘을 가해야만 폭력 아니야···고유민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생 마감했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여자 프로배구단 이재영, 이다영(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여자 프로배구단 이재영, 이다영(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배구계는 고유민이 생을 마감한 것과 관련해 지금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유민이가 프로에 입문하고, 모 감독에게 손찌검을 당한 적이 있어요. 유민이뿐이 아닐 겁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는 물론 프로에서까지 감독이 선수 얼굴에 손찌검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모 선수는 감독에게 뺨을 맞고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유민이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져요. 유민이 일기장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참고 견디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배구계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존재합니다.

‘태움 문화’라고 들어보셨죠? 영혼을 태울 정도로 갈군다는 뜻이에요.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유민이는 악성 댓글로 생을 마감한 게 아닙니다. 현대건설은 유민이를 팀 훈련에서 배제하고 투명인간 취급했어요. 정신적인 고통이 쌓이고 쌓인 게 생을 마감한 이유입니다. 박철우 선수의 작심 발언을 보면서 참 고마웠어요.

어째서 고마웠습니까.

박철우 선수는 남자 배구 스타지만 배구계에선 약자예요. 이번 작심 발언으로 향후 배구계에 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걸 다 잃을 각오로 이야기 한 거예요. 박철우 선수는 “어릴 땐 운동선수가 맞는 게 당연했다. 부모님 앞에서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사랑의 매도 정도란 게 있다. 언론에 프로배구가 나쁘게 나오는 게 너무 싫다. 이번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젠 배구계에 종사하는 어른들이 응답해야 해요.

어떻게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재영, 이다영이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소속팀 흥국생명은 두 선수에게 무기한 출전정지란 징계를 내렸죠. 대한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선수 선발 대상에서 무기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무기한’이란 말로 이 시기가 넘어가기만을 기다린단 게 너무 티 나지 않나요. 피해자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어줄 수 있는 확실한 징계 규정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피해자가 원하는 건 큰 징계도 아니에요.

피해자가 원하는 게 큰 징계가 아니라면.

유민이가 세상을 떠나고 제가 바란 건 딱 하나였습니다. 현대건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거였어요.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고 반성하면 됩니다. 박철우 선수, 학교폭력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내 가슴에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 남긴 사람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미안하다는 한마디, 그리고 잘못에 대한 처벌 받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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