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랜더스 창단으로 롯데 자이언츠와 유통 라이벌 대결 관심 집중

-정용진 부회장의 도발적 발언…롯데 본사는 침묵, 현장에선 “우리가 많이 이겼으니까” 응수

-SSG와 롯데의 라이벌 관계, 한국야구 새로운 발전 원동력 삼아야

-“SSG와 롯데 경쟁하고 싸우면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 돌아갈 것”

4일 열린 SSG와 롯데의 개막전(사진=롯데)
4일 열린 SSG와 롯데의 개막전(사진=롯데)

[엠스플뉴스]

라이벌(rival)의 어원은 ‘강(river)’이다. 라틴어로 리부스(rivus), 같은 강을 사용하는 주민들을 리발리스(rivalis)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하나의 강 사이에서 서로 경쟁하며 주도권을 다투는 관계가 흔히 말하는 라이벌에 해당한다.

같은 강, 아니 같은 야구장을 나누어 쓰는 팀 간에는 자연스럽게 라이벌리가 형성된다. ‘한 지붕 두 가족’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는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잠실 라이벌이다. 1990년 김상호 트레이드 이후 10년 가까이 단 한 건의 트레이드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경쟁의식이 치열했다.

같은 연고지를 쓰는 팀 간의 라이벌전도 치열하다. 메이저리그에선 양키스와 메츠가, 다저스와 에인절스가 지역 라이벌이다. 축구의 ‘엘클라시코’처럼 지역감정이 만든 라이벌 더비도 있다. 그런가 하면 1920년 베이브 루스 이적으로 라이벌이 된 양키스-레드삭스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숙적이 되기도 한다.

재벌기업에 종속된 한국프로야구의 태생적 한계가 만든 독특한 라이벌 관계도 있다. 이른바 ‘재계 라이벌’ 자존심 싸움이다. LG 트윈스는 1990년 창단 이후 줄곧 삼성과 만났다 하면 으르렁댔다. LG 창단 초기 단장을 지낸 최종준 대한바둑협회 수석부회장은 “당시 우리 구단이 가장 신경 썼던 건 두산보다는 기업 라이벌인 삼성이었다”고 밝혔다.

현대 유니콘스 창단한 뒤엔 현대와 삼성의 재계 1~2위 싸움이 프로야구를 뜨겁게 달궜다. 현대가 선수단 버스 3대를 쓰면 삼성도 3대로 늘리고, 현대가 삼성전 승리에 특별 보너스를 걸면 삼성도 맞불을 놓는 식. 현대가 쌍방울 선수를 싹쓸이해 전력을 보강하자 삼성도 해태와 쌍방울 선수를 데려오는 식으로 응수했다. 빈볼시비와 벤치 클리어링도 잦았다.

SSG 도발에 대처하는 롯데의 자세? 많이 이기는 게 정답이다

창단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정용진 부회장(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창단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정용진 부회장(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현대 야구단 매각 이후 한동안 사라졌던 ‘재계 라이벌’ 관계가 올 시즌 SSG 랜더스 창단으로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 SK 와이번스를 인수한 신세계그룹과 롯데 자이언츠를 보유한 롯데 간의 ‘유통 대리전’이 야구장에서 펼쳐질 분위기다.

SSG 랜더스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먼저 잽을 날렸다. 정 부회장은 구단 창단식을 앞둔 지난달 30일 음성 소설네트워크서비스인 ‘클럽하우스’에 등판해 “걔네(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란 도발적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야구를 본업과 연결하지 못하는 롯데를 보면서 야구단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도 했다. 롯데 팬을 향해 “우리 팀으로 넘어오라”며 ‘영업’까지 나섰다.

그간 한국야구에선 다른 구단이나 모기업에 대해서는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저격성 발언이나 민감한 말을 했다가는 점잖은 야구팬들의 십자포화에 시달려야 했다. ‘8승 8패만 해도 억울할 것 같다’는 별것 아닌 말에도 시즌 내내 조롱과 비난이 따라다녔을 정도로 한국야구는 엄숙한 분위기였다.

관행을 깬 정 부회장의 선제공격은 롯데 팬들을 자극했다. 클럽하우스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고 논란이 될 줄 정 부회장이 몰랐을 리 없다. SNS에 과자 사진 하나도 그냥 올리는 법 없는 재계 인플루언서 정 부회장의 발언이기에 다분히 의도적인 도발로 볼 여지가 충분했다.

롯데 그룹과 구단은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롯데 야구단 관계자는 “할 말 없다”고 일축했다. 롯데 본사 관계자는 “정 부회장 발언이 알려진 뒤 회사 내에서는 분개하는 사람도 있고 자괴감에 빠진 사람도, ‘애쓴다’며 코웃음치는 반응도 있다. ‘SSG 야구단 홍보팀이 앞으로 엄청 힘들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이런 이슈에 직접 대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다. 직접 대응은 아니지만 SSG를 의식한 듯한 움직임은 있었다. 통합온라인쇼핑몰 ‘롯데온’이 ‘원정 가서 쓰윽 이기고 ON’이란 이벤트 배너 문구를 내걸었다. 또 신세계그룹 계열 대형마트가 4월 1일부터 4일까지 ‘랜더스 데이’ 할인 행사를 진행하자 롯데 역시 같은 기간 대형마트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직접 대응은 그룹과 구단이 아닌 현장 쪽에서 나왔다. 4월 3일 개막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허문회 감독과 이대호는 “우리가 계속 이겨서 저러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시범경기에서 롯데가 SSG 상대 2전 2승을 거둔 사실을 환기하는 발언이었다. 허 감독은 “진짜 고수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고수는 아닌 것 같다”는 말도 했다. 허 감독의 돌직구에 롯데 팬들은 환호했다. 이날 경기 우천취소로 아직 본게임은 1경기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랜더스 홈구장 굿즈샵에 진열된 유니폼(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랜더스 홈구장 굿즈샵에 진열된 유니폼(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약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SSG와 롯데의 라이벌 대결은 올 시즌 내내 화제가 될 전망이다. 정 부회장은 2일 다시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롯데가 제대로 미끼를 물었다. 내 의도대로 반응했다”며 자신의 도발이 이슈 몰이를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실제 정 부회장의 발언은 야구에 관심 없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추신수 복귀’ ‘SSG 창단’ 소식을 주목하게 됐다. 롯데를 미끼로 사용한 정 부회장의 의도가 어느 정도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롯데가 가야 할 길은 “우리가 그동안 많이 이겼고,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이대호의 말에 답이 있다. 과거 롯데는 동네북 신세였다. 9구단 NC 다이노스는 창단 이후 롯데와 은근한 라이벌 관계를 조성해 재미를 봤다. NC가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롯데의 처지는 초라해졌다. 만약 롯데가 야구를 잘하고 NC 상대로 이겼다면, 롯데를 미끼로 인지도를 높이려는 NC의 전략은 빛을 잃었을 것이다.

후진적인 구단 운영 탓에 잠시 야구판에 몸담았던 일개 도선사부터 시장 후보까지 온갖 사람이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는 굴욕도 겪었다. 이와 관련해 롯데 관계자는 “앞으로 우리가 야구를 잘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성민규 단장과 이석환 대표이사 부임 이후 진행 중인 구단 혁신이 성과를 내서 명문 구단으로 거듭나야 롯데를 우습게 보고 함부로 들먹인 사람들을 입 다물게 만들 수 있다. 일단은 올 시즌 SSG 상대로 많이 이기는 게 먼저다. 허문회 감독 말대로 고수는 말로 야구하지 않는다.

“SSG-롯데의 라이벌 대결, 결과적으로 소비자와 팬들에게 더 많은 혜택 돌아갈 것”

새단장한 랜더스 필드의 한 매장(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새단장한 랜더스 필드의 한 매장(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정용진 부회장 발언에서 정말로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따로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 자이언츠 마케팅팀장을 지낸 김경민 4DREPLAY 책임은 “‘게임에선 우리가 질 수 있겠지만 마케팅만큼은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는 신세계의 일성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간 KBO리그 구단들은 수익 창출보다 야구를 통한 사회 공헌과 성적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신세계그룹은 ‘돈 버는 야구단’을 목표로 한다. 야구단의 산업 가치 증가, 모그룹 사업과 연계한 수익 창출로 방향성을 정했다. 기업과 야구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모그룹과 야구단의 산업 가치를 모두 끌어올리는 그림을 그린다. 롯데를 비롯한 기존 야구단들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거나,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던 길이다.

김경민 책임은 “뚜렷한 목적을 지닌 구단과 그렇지 못한 구단은 시간이 갈 수록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며 “신세계는 대부분 계열사들이 리테일 중심 기업이어서 그룹 차원에서 생태계 내 일부로서 야구단을 주도면밀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선두에서 직접 진두지휘하는 정용진 부회장의 리더십도 유리한 부분”이라 지적했다.

신세계그룹이 아닌 이마트가 야구단을 소유하는 구조도 그룹 차원에서 야구단을 보유한 다른 구단보다 유리한 조건이란 설명이다. 롯데 본사 관계자도 “만약 롯데쇼핑에서 롯데 자이언츠 구단을 보유했다면 야구단과 연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구조적인 특성상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면이 있다”고 했다.

김 책임은 “롯데는 계열사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혀있는 구조인 데다 생태계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맨 위에서 명확한 지침을 내려줘야 하고, 계열사의 인식도 전환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야구단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했다.

3일 야구장에 문을 연 커피전문점. 야구단과 연계해 다양한 협업을 시도할 예정이다(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3일 야구장에 문을 연 커피전문점. 야구단과 연계해 다양한 협업을 시도할 예정이다(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야구계에선 SSG 랜더스 창단과 신세계그룹의 적극적인 행보가 정체된 프로야구와 기존 구단에 자극과 영감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김경민 책임은 “롯데와 SSG가 서로 치고받으면 당사자인 구단과 선수들은 피곤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나쁘지 않은 현상”이라 했다. 실제 4월 1일부터 4일 사이 SNS에는 대형마트 할인 행사를 이용한 고객들이 “야구단 창단 혜택을 봤다”며 올린 인증샷이 눈에 띄었다. SSG 영향으로 롯데가 더 좋은 성적과 마케팅을 선보인다면, 그 또한 팬들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한 야구 관계자는 “맥박이 희미해져 가던 KBO리그에 SSG 랜더스가 나타나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느낌이다. 향후 SSG 랜더스가 야구단 산업 가치를 끌어올려 많은 수익 창출과 흑자 자생에 성공한다면 한국 야구계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기대감을 보였다.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를 펼친 구단의 성공은 다른 구단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후발 주자 NC 다이노스는 창단 이후 SNS를 적극 활용하고 창의적인 마케팅을 통해 팬층을 확대하려 노력했다. 이후 다른 구단들도 NC를 따라 경쟁적으로 SNS를 운영하고 자체 방송 채널을 개설해 팬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게 됐다.

최근에는 한화 이글스가 한발 앞선 마케팅으로 리그를 선도하고 있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가 하면, 첨단 기술인 ‘메타버스’를 선수단 출정식에 활용하는 등 차별화된 행보로 다른 구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SSG 랜더스가 정 부회장의 목표대로 한국야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면, KBO리그 전체가 한 단계 도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대 같은 강을 사용한 주민들은 평소에는 싸우고 경쟁하면서도 가뭄이나 홍수 등 위기 때는 협력했다. 치열한 전쟁 중에도 강물이 마르면 강바닥을 아군과 적군이 함께 파면서 운명 공동체가 됐다. 사람들이 더는 야구 얘기를 하지 않고, 야구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야구의 위기에서 SSG-롯데가 건강한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