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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웃는 ‘일류 골퍼’ 공태현 “‘참 좋은 사람’이란 말 듣고 싶다” [엠스플 인터뷰]

  • 기사입력 2021.05.12 04:00:02   |   최종수정 2021.05.12 00: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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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골프 단체전 은메달 공태현, 2015년 KPGA 입회한 야구인 출신 프로골퍼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주역 거스 히딩크”

-“‘네가 인생의 전부’란 아버지의 한마디, 아버지는 내게 인생을 걸었습니다”

-“태극마크 달았을 때요? ‘이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고 매일 생각했죠”

-연병장을 골프장으로···“군대에서 골프와 보통 인연이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공태현 프로는 쉴 틈 없는 하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공태현 프로는 쉴 틈 없는 하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공태현(27). 개그맨보다 더 웃긴 골퍼다. 골프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골프인이다. 취재 중 만난 한 골프 관계자는 기자에게 공태현의 유튜브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지 물은 뒤 '아직 본 적이 없다'고 답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태현TV 동영상을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왜냐? 한번 보면 푹 빠져 들거든요. 천재적인 예능감과 타고난 유머 감각, 거기다 뛰어난 티칭 능력까지 갖춘 공태현 프로를 보고서 '세상에, 저런 친구가 있었다니'하며 깜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물론 공태현의 본업은 프로골프 선수다. 공태현은 2015년 7월 1일 한국남자프로골프투어(KPGA)에 입회했다. 프로골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강해 지금도 대회를 앞두면 누구보다 철저히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엠스플뉴스가 최근 골프 팬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골퍼인 공태현을 만났다. 

 

야구인 출신 공태현 프로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는 거스 히딩크”

 

공태현 프로(사진 맨 왼쪽에서 네 번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다(사진=엠스플뉴스)

공태현 프로(사진 맨 왼쪽에서 네 번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다(사진=엠스플뉴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이듬해부턴 KPGA 프로에 입회에 활약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선수입니다. 2020년부턴 유튜브 채널 ‘공태현TV-팩트골프’를 운영하고 있어요. 직접 휴대폰으로 찍고 편집하면서 골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죠. 공태현은 골프에 푹 빠져 사는 청년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웃음). 

 

골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겁니까. 

 

어린 공태현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골프가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진 야구를 했습니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였죠. 골프채를 처음 잡기 전까진 골프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 야구를 왜 그만둔 겁니까. 

 

중학교 2학년 때 발목을 심하게 다쳤어요. 두 달간 재활에 몰두했죠. 야구를 시작한 이후 혼자서 운동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외로웠습니다. 하루빨리 동료들과 운동하고 싶은 마음으로 땀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런데 복귀전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였습니까. 

 

복귀전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습니다. ‘다음 타석에서 홈런으로 갚아주겠다’는 생각으로 더그아웃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감독이 날 빼버렸어요. 나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친구를 투입했죠. ‘이게 뭐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가 복귀전 현장에 계셨는데 화가 났습니다. 

 

복귀전 첫 타석에서 삼진당했다는 이유로 뺀 겁니까. 

 

야구를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제가 운동하던 시절엔 야구부 감독, 코치와의 관계가 아주 중요했습니다. 

 

학생선수와 지도자의 관계가 나쁠 게 있습니까. 

 

야구는 골프와 달리 팀 스포츠입니다. 개인 역량이 조금 떨어져도 팀원들이 이를 메워줄 수 있어요. 여러 부모가 감독, 코치에게 밥과 술을 대접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경이 아니었어요. 감독, 코치에게 밥과 술을 대접하는 건 어려웠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누군지 아세요?

 

누굽니까.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주역 거스 히딩크 감독입니다. 

 

히딩크는 축구 감독 아닙니까.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선수단을 꾸리는 방식이 아주 존경스러웠어요. 히딩크 감독은 딱 하나 봤습니다. 실력이 출중하면 주전으로 뛸 기회를 줬어요. 많은 분이 이야기합니다. 국내 지도자가 지휘봉을 잡았다면 이동국, 고종수 등 당시 이름값이 높았던 선수는 무조건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을 거라고. 대신 이름값이 낮은 박지성, 설기현 등은 출전하지 못했겠죠. 실력만으로 선수를 평가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란 걸 야구하면서 느꼈어요. 

 

아. 

 

야구를 그만뒀습니다. 5년 이상 야구하면서 쌓인 게 터진 거예요.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골프를 권유하기 시작합니다. 

 

골프를 권유한다고요?

 

주변에서 “너 운동한 거 아깝지 않으냐. 야구 안 할 거면 골프라도 해보라”는 말을 아주 많이 들었어요. 도대체 골프가 어떤 운동이길래 주변에서 이토록 권유할까 싶었습니다. 한 번 경험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어요. 

 

어땠습니까. 

 

과감한 스윙으로 공을 딱 맞추는데 ‘이거다’ 싶었습니다. 배트로 투수의 공을 맞힐 때와 비슷했어요. 하지만, 골프선수의 길을 택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한국엔 이런 말이 있죠. ‘골프는 부잣집 자녀들이 하는 스포츠’라고 합니다. 

 

골프선수의 길을 택하기도 쉽지 않았군요. 

 

골프가 10년 전보다 대중적인 스포츠가 된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선수의 길을 택한다고 했을 땐 여전히 돈이 필요합니다. 골프는 개인 운동이에요. 야구는 좋은 지도자와 동료를 만나면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골프는 아니에요. 투자한 만큼 빛을 봅니다. 노력은 기본이고요. 고민했죠. 

 

골프 선수로 성장하려면 어떤 투자가 필요한 겁니까. 

 

골프는 레슨이 필수입니다. 개인 운동이지만 홀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해요.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성장해야 합니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또 골프 선수로 성장하려면 필드에 나가야 합니다. 필드에 얼마만큼 적응했느냐가 대회 결과를 좌우해요. 돈 여유가 있는 선수들은 매일 필드에서 훈련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대회 전 딱 한 번 필드에 적응한 뒤 대회에 참가했죠. 

 

골프 연습장에서 훈련하는 시간이 길었군요. 

 

전라남도 완도군에 명사십리 해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 있죠. 최경주 선배가 명사십리 해변에서 기량을 갈고닦았다고 합니다(웃음). 따라서 한 거예요. 여기서 최경주 선배를 뛰어넘는 프로 골퍼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네가 인생의 전부’란 아버지의 한마디, 아버지는 내게 인생을 걸었습니다”

 

공태현 프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공태현 프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늦은 것 아니었습니까.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골프 선수로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야구하면서 공을 맞추고 던지는 감각을 키웠습니다. 몸 관리하는 법도 배웠죠. 중학교 2학년 전까진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었지만, 성장이 빨랐어요. 2년간 기초를 다진 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대회를 나갔습니다. 거기서 또 느낀 게 있어요. 

 

뭡니까. 

 

2년간 골프 연습장에서 공을 멀리 치고 똑바로 치는 데만 집중했어요. 나 자신과 싸움이었습니다. 지루했어요. 대회는 달랐습니다. 어떤 샷을 구사하든 점수만 좋으면 웃을 수 있었어요. 야구에서의 경쟁과 또 다른 맛이 있었죠.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야구에서의 경험이 아주 큰 도움이 됐어요.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야구부에서 포수였습니다. 수비 위치를 하나하나 잡아주고 작전 지시를 내리는 역할이었죠.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늘 고민했습니다. 그 경험을 골프에 접목했어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문제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이겨내는 거였죠. 

 

성적에 대한 압박이요?

 

골프 하면서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어요. 열심히 땀 흘려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었죠. 모든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성적을 낼 수 있는 대회 몇 개를 골라서 참여했어요.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적은 대회에서 반드시 성적을 내야 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이런 말을 했어요. 

 

무슨 말을 했습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돈을 모으셨어요. 퇴직금을 미리 받으신 겁니다. 아버지가 “네가 골프선수로 성공할 수 있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넌 내 인생의 전부”라고 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엔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대회에서 실수 한 번 하면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아. 

 

부담감을 이겨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방법을 찾았죠. 다른 선수보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주변의 시기 질투가 많았어요. 이를 역이용했습니다.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나를 질투한다는 게 재밌는 거예요. 지금보다 더 성장해서 더 큰 시기 질투를 받고 싶었죠(웃음). 그렇게 나 자신과 싸움을 이겨내면서 제주도 자치대회 3연속 우승을 차지합니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거예요. 

 

골프를 포기하고 편안한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전혀요.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습니다(웃음). 아버지가 인생을 걸었어요. 절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날에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어요. 골프 연습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세계적인 선수들의 영상을 챙겨봤습니다. 지금보다 큰 선수로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렇게 성장을 거듭하면서 태극마크를 달게 됩니다. 골프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죠. 

 

“태극마크 달았을 때요? ‘이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고 매일 생각했죠”

 

공태현 프로(사진 맨 오른쪽)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골프 단체전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사진=엠스플뉴스)

공태현 프로(사진 맨 오른쪽)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골프 단체전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사진=엠스플뉴스)

 

골프 선수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의미입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죠.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시기가 있습니다. 프로에 입회하면 태극마크를 달 수 없어요. 순수 아마추어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프로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다는 거예요. 아직도 국가대표가 확정된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중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선수가 수두룩해요. 유치원 다닐 때부터 골프채 잡은 선수도 많죠. 그런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겁니다. 2013년 인천에서 열린 제94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어요. 광주 대표로 출전해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죠. 광주 최초 골프 금메달이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랭킹 포인트를 추가해 전체 2위로 태극마크를 달았고요. 꿈인 줄 알았습니다. 

 

꿈인 줄 알았다?

 

며칠간 쉴 새 없이 웃었던 것 같아요. 태릉선수촌으로 입촌하라는 문자를 받고 ‘진짜 국가대표가 됐구나’라는 걸 느꼈죠. 국가대표는 국가대표였습니다. 대우부터 달랐어요. 

 

대우가 달랐다?

 

저를 포함해 6명의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태극마크가 그려져 있는 골프 백을 하나씩 받았죠. 연습복과 경기복도 받았고요. 필드에서 태극마크가 달린 옷을 입고 골프 백을 딱 놓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우러러보는 느낌이었죠.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또 있습니까. 

 

국가대표가 되면 돈을 쓸 일이 없어요. 먹고 자고 운동하는 것까지 모두 제공됩니다. 운동 열심히 하고 좋은 성적만 내면 돼요. 운동하면서 경험한 최고의 환경이었죠. 하루하루가 꿈같았어요. 솔직히 이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웃음).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전 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네요. 

 

개막전에서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까. 

 

2014년 9월 19일이었죠.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개막전이 열렸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함성과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입장했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요. 입장할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못 땄어요. 

 

한국 남자 골프 대표팀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대회 전부터 ‘3연패는 당연하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국가대표란 자부심을 느끼고 온 힘을 다해 준비했죠. 그런데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질책을 많이 받았어요. 은메달을 목에 거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았죠.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면서 골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전환점이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마치고 이듬해 KPGA 프로에 입회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해요. 대회와 레슨을 병행합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대회 준비에만 신경 쓸 때와 많은 게 달랐어요. 레슨에 신경 쓰다 보니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질 않았죠. 그러던 중에 입영통지서가 날아옵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요. 

 

그럼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프로 골퍼로의 삶을 살기 시작하고 돈을 조금씩 모아두고 있었는데 현역병 입대라니... 입대까진 45일 남은 상태였습니다. 처음엔 연기하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나를 믿고 지원해준 스폰서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현역병으로 입대한다는 걸 알릴 수가 없는 거예요. 

 

입대를 연기했습니까. 

 

방법이 없었어요. 입대 15일 전에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내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 분은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입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화를 내셨어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죠. 2017년 현역병으로 입대하면서 내가 다시 프로 골퍼로 살아갈 수 있겠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연병장을 골프장으로···“군대에서 골프와 보통 인연이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공태현 프로(사진 맨 왼쪽)는 30사단 필승신병교육대 조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사진=엠스플뉴스)

공태현 프로(사진 맨 왼쪽)는 30사단 필승신병교육대 조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사진=엠스플뉴스)

 

군 생활 어땠습니까. 

 

입대 첫날을 기억합니다. 누웠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죠(웃음). 한국 남자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거예요. 신병교육대 조교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했어요. 특히나 몸 관리를 철저히 했습니다. 전역 후에 프로 골퍼로 복귀해야 했으니깐. 골프 아니면 먹고 살길이 없었어요.

 

골프채 잡을 일은 없지 않았습니까. 

 

골프와 인연이 남다르다는 걸 군대에서 느꼈습니다. 상병 때까진 헬스장에서 살았어요(웃음). 식단 조절하면서 운동만 했죠. 체력만큼은 사단 최고였습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한 사람인데 일반인에게 뒤처질 수 없다’고 생각했죠. 상병으로 진급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난 겁니까. 

 

상병 때 신교대장이 바뀌었어요. 이전까진 부대에 골프를 즐기는 분이 없었습니다. 새 신교대장은 달랐어요. 오자마자 나를 불렀습니다. 신교대장이 “밖에 있을 때 골프 좀 쳤다고 들었다”면서 “여기서 뭐 하고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군 생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죠. 신교대장이 “밖에 나가서 프로 골퍼로 살 것 아니냐”면서 “골프 동아리를 만들라”고 했어요. 

 

골프 동아리요?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해요. “알겠습니다”라고 답했죠. 다음날 신교대장 지시로 연병장을 골프장으로 만들었어요. 지게차 다섯 대를 끌고 와서 잔디를 심었습니다. 어른들이 “군대에선 안 되는 게 없다”고 말한 이유를 그때 알았어요. 눈으로 보면서도 “이게 진짜 가능한 일인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그때부터 군대에서 골프를 가르쳤어요. 

 

간부들을 가르친 겁니까.

 

주특기가 골프인 병사가 된 거죠(웃음). 주변 신병교육대 간부들은 물론이고 주변 보급수색대, 정찰대 등에서 우리 부대 연병장으로 찾아왔어요. 누군가 “공태현 상병 어딨어”라고 부르면 곧장 달려 나갔습니다. 일과가 시작된 거예요. 30사단(필승신병교육대)을 홍보하는 체육 페스티벌에서도 골프를 가르쳤죠. 추억이 많습니다.

 

연습도 했습니까. 

 

솔직히 골프 연습은 어려웠어요. 거리가 짧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요. 레슨만 한 겁니다(웃음). 군대에선 골프보다 탁구가 재밌기도 했고요. 그래도 군대에서 큰 배려를 해준 덕분에 골프에 대한 열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전역하면 ‘그때 연병장을 골프장으로 만들어주길 잘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또 있어요. 

 

또 있다?

 

군대에서 많은 간부와 병사를 가르치면서 느낀 게 있어요. 골프를 배우면서 아주 좋아하는 겁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죠.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골프를 치면서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었는지 돌아봤습니다. 매일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골프를 쳤어요.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날이 많았죠. 다짐했습니다. 

 

네?

 

프로 골퍼로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골프의 재미를 가르쳐주자. 골프가 돈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란 걸 알리는 데 앞장서자고 다짐했죠. 전역 후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우러러보는 프로골퍼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공태현 프로(사진=엠스플뉴스)

공태현 프로(사진=엠스플뉴스)

 

대회를 준비하고 레슨까지 합니다. 여기에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하죠. 힘들지 않습니까.

 

입대 전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레슨을 했어요. 전역 후엔 구독자 무료 레슨을 합니다. 구독자에게 이야기해요. 골프가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단, 나도 먹고살아야 합니다(웃음). 무료 레슨은 시간이 남으면 성심성의껏 해드리겠습니다란 조건을 달죠. 돈은 받지 않습니다. 대신 샌드위치나 커피 같은 건 거부하지 않아요(웃음). 

 

프로에게 받는 레슨 비용이 보통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시간 레슨에 보통 50만 원 이상입니다. 실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신 분들은 비용 지출을 고민하지 않으세요. 온 힘을 다해 가르칩니다. 일과를 마치고 남는 시간엔 유튜브 영상을 촬영해요. ‘너 아직도 골프 안 치느냐’란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유튜브가 또 재밌어요. 운동 능력 못지않게 끼가 넘치거든요.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24살 때까지 휴대전화가 없었어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도 하지 않았죠. 골프에만 집중한 거예요. 그렇게 살아오면서 마음속엔 늘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웃고 싶은데 억제한 거예요. 전역 후인 2020년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많은 분과 소통하는 게 아주 재밌습니다. 구독자에게 영상이나 레슨을 받고 골프에 재미가 붙었다는 말을 들으면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고요. 

 

유튜브 구독자 수가 2만 1천 명이 넘습니다. 프로 골퍼와 유튜버로 살아가는 게 버겁진 않습니까. 

 

골프를 즐기고 있어요. 유튜브 영상을 매일 올리는 것도 아니에요. 프로 골퍼로 성장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남는 시간에 유튜버로 골프를 알리고 소통하는 거예요. 내가 좋아서 하는 겁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팬이 생기면서 더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깁니다.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계속해야죠(웃음).

 

공태현은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프로 골퍼로 계속해서 성장할 겁니다. 언젠가 골프 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싶어요. 골프는 개인 스포츠입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요. 솔직히 대회가 나가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응원하러 오는 팬이 있어요. 그분들과 소통할 기회가 매우 적어요. 내 샷을 보고 ‘공태현 잘 친다’라고 한마디 하는 게 끝입니다. 기껏해야 경기 후 사진 찍고 사인받는 게 전부예요. 그분들에게 그 이상을 해주면 안 되는 겁니까. 

 

네?

 

골프 대회는 하나의 축제예요. 먹고 살려면 좋은 성과를 내야 하는 게 사실입니다. 온 힘을 다해야죠. 하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나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에게 더 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내가 먼저 팬들에게 다가가 소통하고 웃으면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우러러보는 프로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를 꿈꿔요. 

 

우러러보는 프로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 오빠, 동생 같은 골퍼죠. 유튜버 활동을 계속해서 하려는 이유고요. ‘공태현은 프로 골퍼이기 전에 참 좋은 사람이다’란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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