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 이글스가 부처님 오신 날 야구장을 찾은 3900명의 보살 팬들에게 화끈한 타격쇼로 승리를 선사했다.

선제 만루포를 날린 이성열(사진=한화)
선제 만루포를 날린 이성열(사진=한화)

[엠스플뉴스=대전]

보살(菩薩) 팬. 한화 이글스 팬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매년 최하위권을 맴도는 부진한 팀 성적에도 한결같이 한화를 응원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깨달음을 얻어 득도(得道)한 보살에 빗대 보살 팬이다.

한화 팬들은 오랜 세월 숱한 좌절과 굴욕, 설움 속에서도 한화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김응용 감독 시절인 2013년 개막 13연패 기간에도 대전구장을 가득 메웠다.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고 8회 육성 응원을 외쳤다. 마침내 13연패에서 벗어나던 날, 한 여성 팬은 관중석 그물에 매달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매일 져도 계속 응원할 거예요’라고 소리쳤다. 한화에게 보살 팬은 그런 존재다.

한화 보살 팬들은 역대 2,565번째 부처님 오신 날인 5월 19일에도 어김없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를 가득 채웠다. 전날 롯데전 패배로 최하위로 추락한 팀 성적도 이미 해탈(解脫)한 보살 팬의 야구장 방문을 막지 못했다. 이날 대전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30% 관중 3,900명이 야구장을 찾아 매진을 기록했다. 대전의 명물인 부처 가면을 쓴 팬도 백스톱 뒤쪽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다.

야구장을 메운 보살 팬들의 벽력(霹靂) 같은 응원에 한화 선수들도 힘을 냈다. 선발 닉 킹험은 롯데 타선을 6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이대호가 옆구리 부상으로 빠진 롯데는 최고 147km/h에 달하는 킹험의 빠른 볼과 커브, 체인지업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타선도 오랜만에 시원한 공격으로 팬들에게 극락(解脫)을 선사했다. 1회말 시작하자마자 정은원-최재훈의 연속 볼넷과 하주석의 빗맞은 법력(法力) 안타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노시환이 내야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베테랑 이성열이 우중간 만루포를 날려 기선을 제압했다. 개인 통산 5호 만루포이자 시즌 1호 홈런. 2회엔 최재훈이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포로 롯데 선발 노경은에게 번뇌(煩惱)를 안겼다.

이성열은 김건국으로 투수가 바뀐 뒤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3회 2루타로 출루해 포문을 열었다. 여기서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신음하던 라이온 힐리가 중전 적시타로 이성열을 불러들여 7대 0을 만들었다. 이어진 임종찬의 적시타 때 힐리도 홈을 밟아 점수는 8대 0.

이성열-힐리 콤비는 롯데가 한 점을 따라붙은 4회에 다시 폭발했다. 이성열이 적시 2루타로 9대 1을 만들었고, 힐리가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대형 3점포를 날려 12대 1로 멀리 달아났다. 31일 만에 터진 힐리의 시즌 2호 홈런, 이날 경기가 완전히 한화 쪽으로 넘어온 순간이다. 이날 롯데 투수들에겐 이성열이 곧 아수라(阿修羅)였고, 힐리가 나찰(羅刹)이었다.

장단 14안타 3홈런으로 12점을 뽑은 한화는 롯데를 12대 2로 대파하고 최근 3연패 곤경에서 벗어났다. 5월 1일 사직 롯데전(11득점) 이후 18일 만의 두 자릿수 득점. 전날 최하위로 추락했던 팀 순위도 하루만에 다시 9위로 회복했다. 킹험은 시즌 4승(3패)째 공덕을 쌓았고 이성열이 3안타 5타점, 힐리가 2안타 4타점, 최재훈이 2안타 3득점 연꽃을 피웠다.

경기후 수베로 감독은 “킹험이 선발투수로서 잘 던졌고 경기 초반에 너무 큰 리드로 집중력이 깨질 수 있었는데 흔들림 없이 잘 해줬다. 좋은 느낌으로 오늘 경기를 마무리 해주고 싶어 6회 후 교체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성열은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모범이 되는 선수인데 최근 타격감이 좋지 않았지만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의 역할도 기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베로 감독은 최근 부진한 팀 성적과 관련해 팬들에게 “인내심”을 당부한 바 있다. 팀이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변화를 진행 중인 만큼, 당장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해 달라는 주문이다. 응원팀의 부진에도 긴 세월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준 보살 팬의 존재는 장기적 관점으로 팀을 재건 중인 한화에 든든한 힘이다. 언젠가 도달할 야구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기다리며, 오늘도 보살 팬들은 한화를 외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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