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창단 45년 만에 첫 전국대회 우승 차지한 강릉고

-김진욱 떠난 올해도 최지민, 엄지민 듀오 이끄는 마운드 탄탄

-2년간 전국대회 4차례 결승 경험…강팀과 만나도 기죽지 않는 자신감 생겨

-11년 만에 청소년 대표팀 지휘봉 잡은 최재호 감독 “강속구 투수 많아…투수 로테이션 유리”

고교야구의 우승 청부사 최재호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고교야구의 우승 청부사 최재호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기적(奇跡). 사전에 따르면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해 야구 불모지에서 창단 45년 만의 첫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 강릉고를 보며 많은 이가 ‘강원도의 기적’이란 찬사를 보냈다.

‘기적’이란 두 글자에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놀라운 일, 두 번 다시 재현하기 힘든 이변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지난 2년간 강릉고 돌풍을 이끈 에이스 김진욱은 이제 프로 무대로 떠나고 없다. 과연 초고교급 에이스 투수 없이도 강릉고가 계속 강팀으로 남을 수 있을까.

“김진욱 없지만 좋은 투수 많아…선수들, 강팀과 만나도 기죽지 않는 자신감 생겨”

김진욱이 프로에 진출했지만, 강릉고는 여전히 탄탄한 마운드를 자랑한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김진욱이 프로에 진출했지만, 강릉고는 여전히 탄탄한 마운드를 자랑한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고교야구 우승 청부사’ 최재호 감독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한다. 강릉고 운동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최 감독은 “김진욱만큼 힘 있는 투수는 없을지 몰라도, 대신 좋은 투수 자원이 많다”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강릉고 마운드는 3학년 ‘양지민’ 듀오가 이끈다. 좌완 최지민은 키 186cm의 좋은 신체조건에 힘 있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가 장점이다. 에이스라면 꼭 필요한 싸움닭 근성도 갖췄다. 우완 엄지민은 다채로운 변화구 구사 능력과 정확한 제구력을 자랑한다.

최 감독은 “그 외 조경민 등 2학년이 된 사이드암 투수들이 여럿 있고, 1학년 투수인 육청명도 볼 스피드가 몰라보게 향상됐다. 김진욱 하나만 믿었던 작년보다 오히려 투수력 면에서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투구 수 제한 제도가 있는 현 고교야구 시스템에선 에이스 한 명에 기대는 것보다 좋은 투수 여러 명을 보유한 게 유리할 수도 있다. 최 감독도 “우리 학교는 투구 수 제한 부담은 없다. 육청명 등 투수가 먼저 나와 2~3이닝을 막아주고 이후 조경민이나 최지민, 엄지민이 올라와 막아주면 쉽게 경기를 내줄 일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네 차례 전국대회 결승 진출로 2, 3학년 선수들이 큰 경기 경험과 자신감을 얻은 것도 수확이다. 최 감독은 “1학년 때부터 큰 대회에서 뛴 선수들이 지금 팀의 주축이 됐다. 경기에 나가서 크게 긴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싸울 줄 알고 야구를 할 줄 안다”며 “개개인의 기량만 보면 약할지 몰라도 팀으로서 함께 하는 야구는 지지 않는다.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우리 선수들은 강팀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광주일고와 5번 붙어 4승을 거뒀고, 대구고 상대로도 2승을 했어요. 경남고 상대로도 3승을 올렸습니다. 상대가 강하다고 미리 겁먹거나 자기 플레이를 못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 팀의 강점입니다.” 최 감독의 말이다.

2016년 처음 최 감독이 강릉고 사령탑을 맡았을 때만 해도 강원도는 야구 불모지였다. 1975년 야구부 창단 이후 전국 우승은 한 차례도 없었고, 2007년 청룡기 대회 결승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운동장 주변엔 잡초가 무성했고, 하수구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만 오면 갯벌로 변했다. 제대로 된 훈련 시설과 장비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최 감독은 강한 사명감으로 강릉고를 하나하나 바꿔나갔다. 직접 운동장 잡초를 뽑고 하수구를 청소했다. 동문들과 학교 관계자, 강릉시청과 강원도청을 찾아다니며 야구부 지원을 요청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잠재력 있는 선수를 스카우트했다.

최 감독은 “동문들과 학교, 시도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덕분에 이제는 우리 야구부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또 곽정훈 코치, 이창열 코치, 김필중 코치 등 함께 땀흘린 우리 코치들도 고생이 많았다”며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엠스플뉴스가 방문한 강릉고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최상급의 훈련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높다란 해송이 학교를 빙 둘러싼 가운데, 넓은 캠퍼스와 야구장이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다. 최근엔 최신식 웨이트 트레이닝장, 초대형 실내연습장을 신설해 선수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 훈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처음 강릉고에 왔을 때만 해도 중학교 선수를 스카우트해 데려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다들 ‘강원도에서 무슨 야구를 하느냐’며 망설이거나 거절했죠. 이제는 팀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훈련 환경을 갖춰놓은 덕분인지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선수와 부모가 먼저 강릉고에 오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 감독의 말이다.

최 감독은 “올해 멤버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내년에 입학하는 신입생 선수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강릉고에 온지 6년 만에 가장 좋은 멤버를 스카우트한 것 같아 흐뭇하다. 내후년에는 정말 좋은 선수들이 강릉고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최재호 감독 “대표팀 코칭스태프, 고교 감독 아닌 코치들로 구성한다”

고교야구 팀 가운데 최대 규모의 실내연습장을 갖춘 강릉고(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고교야구 팀 가운데 최대 규모의 실내연습장을 갖춘 강릉고(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올 시즌 최재호 감독은 강릉고의 전국 제패 외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도전에 나선다. 오는 9월 10일부터 19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제30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사령탑을 맡아 2008년 이후 13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최 감독은 “우리 고교야구가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에서는 자주 우승하는 데 비해 세계청소년대회에선 13년 동안 우승을 못 하고 있다”“올해는 좋은 선수를 선발해서 한국 고교야구의 자존심을 세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계청소년대회는 최 감독 개인적으로도 설욕의 무대다. 최 감독은 2010년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제 24회 대회 사령탑을 맡아 정상을 노렸지만, 조별리그에서 호주에 4대 5로 패해 탈락하며 7위에 그쳤다. 팀 전력과 선수 구성 문제도 있지만, 대회 기간 일부 프로 구단이 선수 메디컬 체크를 진행해 팀 분위기를 망친 게 결정타였다.

최 감독은 “이번 대표팀은 코칭스태프 구성부터 기존 대표팀과는 달리할 생각”이라 밝혔다. 고교 감독들로 코치진을 꾸린 기존 대표팀과 달리 이번엔 젊고 기동성 있는 고교 코치들을 대표팀에 데려간다는 계획이다.

고교 감독들로 코칭스태프를 구성해 놓으면 아무래도 서로의 존재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 과거 대표팀에선 코칭스태프 간의 의사소통 문제, 불화로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된 사례도 있었다. 직접 움직이기보다 코치에게 시키는 게 익숙한 감독들이 코치를 맡다 보니 선수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최 감독은 “고교 코치들이 대표팀에 간다면 좀 더 절실한 마음을 갖고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코칭스태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재호 감독은 전력분석에도 공을 들일 생각이다. 그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종훈 신임 회장님께 ‘전력분석원을 2, 3명 정도 선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며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려면 상대할 팀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과 비교하면 올해 고교야구에는 150km/h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들이 부쩍 많아졌다. 진흥고 문동주, 선린인고 조원태, 서울고 이병헌 등 좌 우완에 강속구 투수들이 있고 2학년인 덕수고 심준석도 150km/h 이상을 던진다. 인천고 사이드암 윤태현도 있어 투수 로테이션이 수월할 것 같다.” 최 감독의 말이다.

과거 덕수고, 신일고부터 최근 강릉고까지 최재호 감독의 야구는 색깔이 뚜렷했다. 강한 수비력과 번트, 도루, 히트앤드런 등 다양한 작전과 기동력을 앞세워 상대를 흔드는 야구가 최 감독의 전매특허다. 그렇다면 이번 대표팀에서도 특유의 ‘최재호 야구’를 보게 될까.

최 감독은 “아직 대표팀에 어떤 선수가 뽑힐지 모르지만, 각 선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강릉고가 하는 야구는 어디까지나 강릉고니까 가능한 야구다. 겨우내 손발을 맞추고 연습해야 하는데, 대표팀은 훈련 기간이 길어봐야 2주 정도가 팀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번엔 내 색깔보다는 선수 구성에 맞춰 선수들이 가장 잘하는 스타일의 야구를 하려고 한다. 선수들이 자기 장기를 잘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최 감독의 말이다.

강릉고 돌풍과 청소년대표팀 우승,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최재호 감독

강릉고가 신설한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강릉고가 신설한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고교야구 주말리그에 대표팀 준비, 6월부터 열리는 황금사자기 전국대회 준비까지 최 감독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틈날 때마다 학교 운동장을 직접 정비하고 시설을 보수하는 것도 최 감독의 업무 중 하나다.

“강릉고에 온 뒤 임플란트만 11개를 해 넣었습니다. 이것저것 일이 많고 신경 쓸 게 많아서 그런지, 치아가 자꾸만 빠져서 걱정이에요.”

그래도 최 감독은 강원도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야구 지도자로서 너무 꽃길만 걸었고, 매너리즘에 빠진 때도 있었다”“강릉고에 온 뒤 선수들의 성장을 함께하면서 야구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나 새롭게 깨닫고 있다. 정말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강릉고도 중요하고, 청소년 대표팀도 중요하다. 둘을 병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밸런스를 잘 맞춰 둘 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릉고의 돌풍을 기적이 아닌 ‘일상’으로 만들어 가려는 최 감독의 다짐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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