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자이언츠 래리 서튼 감독이 마운드 재건 작업을 시작했다. 새 얼굴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기존 투수들의 자신감을 회복해 마운드에 쓸 수 있는 투수 숫자를 늘리는 프로젝트다.

망가진 투수진을 물려 받은 래리 서튼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망가진 투수진을 물려 받은 래리 서튼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엠스플뉴스=대전]

대개 시즌 도중 감독이 잘린 팀의 새 사령탑이라면 유산보다 막대한 부채를 물려받게 마련이다.

시즌 31번째 경기부터 지휘봉을 잡은 롯데 자이언츠 래리 서튼 감독도 아주 약간의 자산과 처치 곤란 부채를 인계받았다. 그런대로 괜찮은 타선과 2군 유망주가 자산이라면, 형편없는 수비와 완전히 무너진 마운드는 서튼에게 배달된 압류 통지서다.

이 중에서도 리그 최악의 마운드는 롯데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롯데의 팀 평균자책은 5.77로 10개 팀 중에 최하위다. 선발(평균자책 5.71, 10위)부터 불펜(5.89, 9위)까지 앞과 뒤가 다 무너진 상태다.

새로운 선수를 활용하는 데 극도로 보수적이었던 ‘앙시앙 레짐’의 여파로 1군에서 활용 가능한 투수 수도 제한적이다. 롯데 구체제는 야수를 마운드에 올리면 올렸지 뉴페이스에겐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기존 주축 투수 중에 부상자가 나오면서, 안 그래도 약한 투수 뎁스가 더 헐거워졌다.

새 얼굴 적극 활용, 서튼 감독의 ‘불펜 정체성 만들기’

롯데는 불펜 에이스 최준용의 이탈로 뒷문이 헐거워진 상황이다(사진=롯데)
롯데는 불펜 에이스 최준용의 이탈로 뒷문이 헐거워진 상황이다(사진=롯데)

집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었다고 마냥 주저앉아 한숨만 쉴 수는 없다. 서튼 감독은 부임 이후 ‘1군용 투수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다. 새로운 선수를 1군에 올려 적극적으로 쓰면서 데스트하고, 기존 투수 중에 반등 가능성이 있는 투수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살리는 프로젝트다.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나균안의 선발 기용이 대표적이다. 1군 콜업 뒤 불펜투수로 4경기에 나온 나균안은 15일 열린 KT전에 생애 첫 선발 등판했다. 여기서 5이닝 무실점으로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앞으로 선발진에서 쓸 수 있는 카드 한 장이 생겼다.

불펜에선 정우준, 송재영, 박재민 등 신인급 선수들이 등판 기회를 얻고 있다. 서튼 감독은 18일 대전 한화전에서 4대 0으로 앞선 6회 정우준을 기용했다. 이전 체제에선 김대우나 구승민이 바로 나왔을 상황에서 신인급 선수를 먼저 올렸다.

이에 대해 서튼 감독은 “정체성 만들기의 한 과정”이라며 “선발 이후 8, 9회 상황에서 다리 역할을 해줄 선수를 찾고 있다. 투수가 7-8-9회 이기는 상황에 올라가려면 공격적이고 터프한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7회에 나올 선수를 경쟁을 통해 옥석을 가리는 중”이라 했다.

이날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정우준은 무사만루 위기를 허용한 뒤 내려갔고 결국 김대우가 나오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날 롯데는 4대 3 한 점 차로 간신히 이겼다. 반면 19일 경기 10점 차로 크게 뒤진 가운데 올라온 송재영, 박재민은 무실점 피칭을 펼쳤다. 다소 위태위태하고 좌충우돌하는 면도 있지만, 서튼 감독은 마운드에서 새로운 ‘정체성 만들기’를 이어갈 생각이다.

2군에서 또 다른 투수가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 최근 퓨처스 경기에서 3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잘 던진 윤성빈도 후보 중 하나. 불안한 제구력이 문제였던 윤성빈은 3경기에서 3이닝 1피안타 1볼넷 4탈삼진으로 한결 나아진 제구를 보였다. 최고 154km/h에 달하는 강속구도 여전하다.

이에 대해 서튼 감독은 “2군에서 가장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제구력 개선을 위해 윤성빈만의 메커니즘을 찾아가는 중이다. 투구폼을 일정하게 반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1군 콜업 시기에 대해선 “윤성빈 본인에게 달렸다”며 여지를 남겼다.

부진에 빠진 기존 투수들을 살리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지난해 필승조였다가 올 시즌 초 무너졌던 구승민은 최근 3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회복세다. 특급 유망주에서 평범한 사이드암 투수가 된 서준원도 서서히 살아나는 조짐이 보인다.

상동에서 재정비 중인 박진형도 퓨처스 2경기 2이닝 4탈삼진 무실점으로 터닝포인트를 마련했다. 이 선수들이 반등에 성공한다면, 롯데 1군 불펜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좀 더 많아질 수 있다.

‘로테이션 조정, 프랑코-박세웅 살리기’ 승부수 통할까

150km/h대 강속구를 던지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운 프랑코(사진=롯데)
150km/h대 강속구를 던지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운 프랑코(사진=롯데)

선발투수진 재정비 작업도 한창이다. 서튼 감독은 19일 한화전에서 선발투수 등판 순서를 바꿔 노경은을 먼저 기용했다. 댄 스트레일리-앤더슨 프랑코-박세웅-노경은에서 스트레일리-노경은-프랑코-박세웅으로 로테이션 순서가 변경됐다.

이에 대해 서튼 감독은 “외국인 투수 스트레일리와 프랑코를 떨어뜨려 놓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둘 다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들이라, 중간에 다른 유형의 투수가 던지는 게 좋을 거라고 봤다. 둘이 똑같지는 않아도 볼 스피드나 스타일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어, 상대에게 다른 방향의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일단 노경은을 끼워 넣는 전략은 19일에는 실패로 돌아갔다. 노경은은 2이닝 6실점하고 조기 강판 당했고, 팀은 2대 12로 대패했다. 20일 프랑코 등판 경기가 중요해졌다. 올 시즌 반드시 성적을 내야 하는 롯데로선 프랑코의 부진이 계속되면 교체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외국인 투수 상대로 아주 약한 한화 상대로 반등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롯데는 기존 프랑코와 배터리를 이룬 김준태 대신 지시완을 포수로 기용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전망이다. 앞서 18일 스트레일리도 지시완과 호흡을 맞춰 6이닝 12탈삼진 무실점으로 좋은 투구를 했다.

슬라이드 스텝이 약점인 프랑코는 송구가 약점인 김준태보다 강한 어깨를 자랑하는 지시완과 함께하는 게 부담이 덜하다. 지시완이 과거 한화 시절 외국인 투수들과 좋은 호흡을 보여준 것도 롯데가 기대하는 부분 중 하나다. 프랑코가 잘 던지면 현재 재조정 중인 신인 김진욱을 불펜으로 돌릴 수 있는 여력도 생긴다. 여러모로 중요한 20일 한화전이다.

서튼 감독의 선발 로테이션 조정엔 한화전에 유독 약했던(통산 무승 6패 평균자책 8.49) 박세웅의 등판 일정을 뒤로 미루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약한 상대는 가급적 피해가고, 강점이 있는 상대(두산전 2020시즌 5경기 평균자책 2.73)와 만나게 해 좋은 결과를 끌어내려는 전략이다. 3경기 연속 승리를 따내지 못해 의기소침한 박세웅이 다시 기운을 내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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