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1학년 때 154km/h 던진 괴물 유망주, 덕수고 2학년 심준석

-수원 매향중 시절엔 볼은 빨랐지만 불안했던 제구력…덕수고에서 괴물 투수로 진화

-입학 후 3개월간 정윤진 감독과 특별 훈련, 불안했던 밸런스 잡고 스피드+제구 함께 향상돼

-이제는 국내 전 구단과 메이저리그가 주목하는 기대주…정윤진 감독도 특별 관리 선언

덕수고의 초고교급 투수 심준석(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덕수고의 초고교급 투수 심준석(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저 기자님, 혹시 아까 찍으신 영상 좀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방금 전 인사하고 헤어진 덕수고 투수 심준석이 기자에게 다시 와서 물었다.

조금 의외였다. 분명 좀 전에 불펜피칭을 마친 뒤 아쉬운 듯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던 심준석이다. 자신의 투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 위로 날리는 공이 많았다. 바닥으로 꽂히는 폭투도 나왔다. 얼굴이 벌게져서 속상해하는 표정으로 불펜을 떠났다. 카메라에 담긴 모습은 그의 베스트 피칭이나 멋지게 나온 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장용보다는 차라리 지우고 싶은 영상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영상을 보내 달라고?

혹시나 해서 “아까는 불펜투구가 아쉽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 영상을 왜…”라고 물었다. 그러자 심준석은 “그래서 그 영상이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좋을 때가 아니라 안 좋았을 때 영상을 봐야 뭐가 잘못됐는지 알고 고칠 수 있으니까요.”

문득 심준석에 대해 한 서울구단 스카우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심준석 그 친구는 다른 유망주들과는 달라요.” 스카우트가 말했다. “이 친구가 특별한 건 단순히 신체조건이 좋거나 빠른 공을 던져서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다른 선수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좀처럼 선수에 대한 극찬을 하는 법이 없는 이 스카우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덕수고 입학 뒤 3개월 특훈…심준석이 괴물 투수로 진화했다

김민기 투수코치와 심준석(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김민기 투수코치와 심준석(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심준석은 지금 한국 고교야구에서 가장 ‘핫’한 유망주다. 키 193cm에 몸무게 98kg의 탈고교급 신체조건, 여기서 나오는 최고 156km/h짜리 광속구로 1학년인 지난해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작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대회에선 혼자 3승을 따내며 대회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국내 프로팀은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심준석을 주목한다. 그가 등판하는 날은 경기장에 전 구단 스카우트가 집결한다. MLB 구단도 덕수고의 연습 경기 일정을 확인해서 따라다닌다. 한 내셔널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최근 몇 년 새 한국야구에서 좋은 투수 유망주가 여럿 나왔지만, 심준석은 그들보다 더 상위 클래스에 있는 선수”라며 “덕수고 선배 장재영보다도 한 수 위라고 본다”고 극찬했다.

2004년생인 심준석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사회인 야구에서 활동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야구에 흥미를 느꼈고, 수원 권선구 리틀야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운동도 좋아하고 뛰어노는 걸 워낙 좋아해서 야구를 하게 됐습니다. 한번 해봤는데 적성에 잘 맞았어요.” 심준석의 말이다. 아버지는 LG팬, 심준석은 당시 막 창단한 연고지 팀 KT 위즈를 응원했다고 한다.

리틀야구 때는 투수와 타자를 오가며 활약했다. 이후 수원 매향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투수 수업을 받았다. 중학교 입학할 때 벌써 키가 180cm나 됐다. 지금은 13cm가 더 자랐다. 심준석은 수줍은 듯 웃으며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큰 것 같다”고 했다.

“리틀야구 때도 볼 스피드는 빠른 편이었어요. 중학교에선 140km/h까지 던졌습니다.” 심준석이 말했다. “감독님, 코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열심히 운동하고 잘 먹고 하다 보니 몸도 구속도 좋은 방향으로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심준석의 불펜 피칭(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심준석의 불펜 피칭(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190cm대 장신에 140km/h 강속구를 던지는 중학생 투수. 보통 이런 투수가 나오면 고교 야구팀 사이에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매향중 3학년 때만 해도 심준석은 지금처럼 큰 관심을 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다. 한 스카우트는 “당시에는 공만 빨랐지 제구력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체 밸런스가 좋지 못해 공이 제멋대로 날아갔다”고 떠올렸다.

심준석도 “솔직히 중학교 때는 ‘날잡이’였다”고 인정한다. “날마다 달라진다는 뜻이에요. 좋은 날에는 한없이 좋다가 나쁠 때는 끝도 없이 안 좋았어요. 기복이 심했습니다.”

덕수고 정윤진 감독은 이런 심준석에게서 대형 유망주의 자질을 발견했다. 정 감독은 심준석의 부모와 만나 ‘좋은 투수로 키워 보겠다. 한번 믿고 맡겨달라’고 약속했다. 수원에서 나고 자란 심준석이 서울 덕수고로 진학하게 된 이유다.

정 감독은 심준석이 입학한 뒤 3개월 동안 마운드에 서지 못하게 했다.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과 밸런스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았고, 네트 스로우와 섀도 피칭만 하게 했다. “마운드에서 공 던지는 것보다는 밸런스를 잡는 게 먼저라고 봤습니다.” 정 감독의 말이다.

심준석은 “감독님이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했다. 거의 석 달 동안 감독님이 옆에 붙어서 밸런스를 잡아 주셨다”고 말했다. “다른 선수들 훈련이 다 끝난 뒤에도 남아서 섀도 피칭과 웨이트를 소화했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던지는 연습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구속도 빨라졌고, 제구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1학년인 지난해 심준석은 실전에서 최고 154km/h를 스피드건에 찍었다. 중3 때와 비교해 10km/h 이상 구속 향상을 이뤘다. 비공식 경기에서 기록한 최고구속은 156km/h다. 한 스카우트는 “마음만 먹으면 2학년인 올해는 160km/h를 던지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는 “올해 서울고와 경기에서 7.1이닝을 던졌는데 6회, 7회가 돼서도 구속이 전혀 떨어지지 않더라. 7회에도 150km/h대 구속을 스피드건에 찍었다”며 “어쩌다 던지는 공 한두 개가 아니라 경기 내내 꾸준하게 150km/h를 던질 수 있는 투수다. 공의 회전력도 워낙 좋아서 패스트볼 하나만큼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평가했다.

심준석 “메이저리그 직행?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심준석은 모든 프로팀과 메이저리그가 주목하는 유망주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심준석은 모든 프로팀과 메이저리그가 주목하는 유망주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흔히 스피드와 제구력은 반비례 관계라고 알려져 있다. 볼 스피드가 빨라지면 제구력이 나빠지고, 제구가 좋아지면 볼 스피드가 줄어든다는 게 통념이다. 스피드와 제구를 동시에 향상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진다.

심준석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심준석은 단순히 공만 빠른 투수가 아니다. 150km/h대 강속구를 던지면서,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던질 줄 아는 제구력까지 갖춘 투수로 발전했다. ‘날잡이’였던 중학교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한 스카우트는 “심준석은 볼 스피드도 빠르지만 커맨드가 좋은 투수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155km/h짜리 강속구를 타자 몸쪽에 던질 수 있는 투수는 프로에서도 흔하지 않다. 심준석은 그게 가능하다”고 칭찬했다. 정윤진 감독도 “솔직히 심준석이 좋은 투수가 될 거라고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제 17살 고교 2학년이지만 벌써부터 심준석을 향한 야구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요즘 야구팬 사이에서는 ‘올해 KBO리그는 심준석 리그’란 말이 나온다. 올 시즌 최하위 팀은 전면드래프트로 진행되는 내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심준석을 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국내가 아닌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택할 거라는 예상도 있다.

심준석도 자신을 향한 기대와 관심을 모르지 않는다. 그는 “솔직히 제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다”고 했다. “SNS 통해 응원 메시지도 많이 보내주시고, 경기장에서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말 감사하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갈지 안 갈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KBO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경기를 많이 봤어요. 잘하는 선수들이 많은 곳이고, 제가 좋아하는 제이콥 디그롬이 뛰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더 잘하는 선수들과 제대로 한번 붙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어요.”

심준석은 “제가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을지는 열심히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내에 남을 수도 있고, 아직 확실한 건 없다”고 했다. KBO가 아닌 메이저리그에 무조건 간다는 생각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심준석 리그’의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정윤진 감독 “심준석은 앞으로 한국야구 이끌 재목…올해부터 철저히 관리한다”

덕수고 정윤진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덕수고 정윤진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고교 2학년 학생선수가 감당하기엔 벅찬 기대와 관심, 무성한 소문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속에서도 심준석은 흔들림 없이 마운드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에이스라고 자꾸 얘기하는데,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아직 제겐 과분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도 들뜨지도 말고, 늘 하던 대로 집중해서 준비하려고 마음먹는다”고 힘줘 말했다.

심준석은 “올해는 작년보다 마운드에서 더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전국대회에 나가면 첫 경기에서 완투, 완봉승을 해보고 싶어요. 한 경기에서 15탈삼진을 잡는 것도 목표입니다.” 이에 관해 정윤진 감독은 “올해 심준석의 투구이닝을 40이닝으로 제한할 생각”이라 못 박았다.

“앞으로 한국야구를 이끌어갈 선수인데 당연히 지금부터 관리해야죠. 심준석 한 명에게 의존해서 팀 성적을 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선수가 더 던지고 싶다고 해도 그걸 관리해주는 게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무엇보다 저 역시도 심준석의 피칭을 오랫동안 보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정 감독의 말이다.

심준석은 “어느 자리에서나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불펜투구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하다가도, 금세 기운을 내서 그 ‘못 던진’ 영상을 받아가는 선수. 불확실하고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 경기와 오늘의 투구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 심준석은 그런 선수다. 바로 그런 자세가 심준석을 어떤 선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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