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간판으로 활약한 허일영, FA로 SK 유니폼 입었다

-“SK에서 ‘이적할 의사가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나를 강하게 원한다는 느낌 받았다”

-“유니폼만 갈아입었을 뿐, 허일영이란 선수는 변하지 않았다”

-“해결사 역할은 물론이고 리바운드, 수비 등 궂은일도 소홀하지 않을 것”

-“SK에서도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 돕는 기부 이어가고 싶다”

서울 SK 나이츠 허일영(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서울 SK 나이츠 허일영(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용인]

5월 20일. 농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소식이 알려졌다. 이날 서울 SK 나이츠는 FA(자유계약선수) 허일영(35)과 3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계약조건은 보수 총액 3억 원(연봉 2억 4천만 원·인센티브 6천만 원)이다.

허일영은 2009년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신인선수 드래프트 2순위로 대구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전신) 지명을 받았다. 2020-2021시즌까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만 뛰었다. 오리온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허일영은 KBL 통산 449경기에서 뛰며 경기당 평균 9.6득점, 3.6리바운드, 0.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KBL을 대표하는 슈터로 통산 3점슛 성공률은 40.4%다. 2020-2021시즌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허일영은 정규리그 54경기 가운데 51경기에 출전해 평균 10.8득점, 3.8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올렸다.

허일영은 2015-2016시즌 오리온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에 앞장선 바 있다. 태극마크를 달고선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이바지했다.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선 동메달 획득에 힘썼다.

허일영은 오리온에서 프로에 데뷔해 한국 최고의 슈터로 거듭났다. 농구계는 허일영이 둥지를 옮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리온 프랜차이즈 선수로 남을 줄 알았다. 엠스플뉴스가 허일영을 만났다.

허일영 “2021-2022시즌을 마치고 SK 이적이 ‘신의 한 수’였다는 얘길 듣고 싶다”

허일영은 2009-2010시즌부터 2020-2021시즌까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를 대표하는 선수였다(사진=KBL)
허일영은 2009-2010시즌부터 2020-2021시즌까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를 대표하는 선수였다(사진=KBL)

2009년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프로에 입문해 2020-2021시즌까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만 뛰었습니다. 2020-2021시즌을 마치고 FA로 서울 SK 나이츠 이적을 선택했습니다.

2009년부터 오리온 유니폼을 입고 뛰었습니다. 다른 팀에서 뛴다는 걸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죠. 6월 7일부터 새 시즌 대비 훈련을 시작합니다. 새 동료들과 손발을 맞춰야 실감이 날 것 같아요.

농구계가 놀란 이적입니다.

2020-2021시즌 중엔 경기에만 집중했습니다. 시즌을 마치고 장래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여러 이야기를 들었어요. 선수 생활하면서 한 번쯤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리온에서 한두 시즌 뛴 게 아니에요. 쉽게 결론을 내지 못했죠. 그러던 중 SK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떤 연락이었습니까.

SK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SK에서 “팀을 옮길 생각이 있느냐”면서 “의지만 있다면 영입하고 싶다”고 했죠. 연락이 온 팀은 SK가 유일했어요. 오리온에서만 뛰었습니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이적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SK에 뭐라고 답변했습니까.

SK에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SK에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 오리온을 떠날 수도 있다”고 했죠. 내 마음은 잔류 50%, 이적 50%였습니다.

고민 끝 이적을 결정했습니다.

허일영이란 선수의 가치를 증명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컸죠. 무엇보다 SK가 허일영이란 선수를 강하게 원한다고 느꼈습니다. SK엔 좋은 선수가 많아요. 팀 분위기는 KBL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유명하죠. 한동안 잠을 못 잤어요. 이적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까 봐 수백 번 고민했죠. 결론을 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가 남는다면 나를 더 원하는 팀에서 정상에 도전하자’고. SK에 감사해요.

감사하다?

내 가치를 인정하고 영입을 강하게 원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SK에 친한 선수가 많습니다. (변)기훈이와 (최)부경이는 대학(건국대학교) 후배예요. (송)창무 형과는 오리온에서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죠. (김)선형이와 (최)준용이는 한국 농구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고요. 군 복무 시절을 빼고 KBL 11시즌을 소화했습니다. 모든 선수와 안면이 있어요.

2020-2021시즌까지 오리온의 상징은 허일영이었습니다. SK에선 김선형이란 대표 선수가 있습니다.

선형이는 대학 시절부터 치열하게 경쟁한 동료예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표를 시작으로 국가대표팀까지 쭉 함께했죠.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선 금메달을 합작했고요.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호흡을 맞췄습니다. 선형이가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SK는 2020-2021시즌을 마친 뒤 문경은 감독과 이별하고 전희철 감독을 선임하며 새 출발을 알렸습니다.

팀 색깔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아요. 전희철 감독님은 코치로 SK와의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누구보다 팀을 잘 알죠. 감독님이 원하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전희철 감독이 어떤 플레이를 원할 것 같습니까.

오리온에서 11시즌 간 보인 경기력을 이어가면 될 것 같아요. 중요한 순간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겁니다. 리바운드나 수비에 소홀하지 않을 거고요. 후배들이 코트 안팎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선배 역할에도 충실할 겁니다. SK와 3년 계약을 맺었어요. 이적 첫해부터 ‘허일영 영입이 신의 한 수였다’는 소릴 듣고 싶습니다.

“슛은 기본, SK에서도 수비와 리바운드 가담에 소홀하지 않겠다”

전주 KCC 이지스 이정현을 앞에 두고 3점슛을 시도하고 있는 허일영(사진=KBL)
전주 KCC 이지스 이정현을 앞에 두고 3점슛을 시도하고 있는 허일영(사진=KBL)

2020-2021시즌이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시즌이었습니다.

강을준 감독님이 지휘봉을 잡고 새 출발을 알린 시즌이었죠. 출발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부상 선수가 많았어요. 꿋꿋이 버텼던 것 같습니다. 6강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넘어서지 못했죠. 팬들에게 더 좋은 경기력과 성적을 선물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어요.

2020-2021시즌을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습니다. 안양 KGC 인삼공사를 우승으로 이끈 제러드 설린저입니다.

차원이 다른 선수였습니다. 속으로 ‘NBA에서 뛰어야 할 선수가 왜 KBL에 있지’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웃음). 설명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농구를 아주 잘했습니다. 슛, 리바운드, 패스 등 못하는 게 없었어요. 혼자서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선수였죠. 설린저를 제외한 선수들이 못했다는 건 아니에요. 이재도, 전성현, 오세근 등 KGC엔 훌륭한 선수가 많았습니다. 설린저는 그런 선수 사이에서도 빛나는 존재였죠.

오리온은 2020-2021시즌 믿을만한 외국인 선수가 없어 고생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말해도 되나. 2020-2021시즌 6라운드 들어서 제프 위디가 그리웠어요. 위디는 1월 31일 퇴단했죠. 외국인 선수의 활약이 아쉬웠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난 일을 이야기해서 뭐하나 싶어요. 내가 공·수 양면에서 더 좋은 활약을 보였다면 4강 플레이오프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으니깐. 2021-2022시즌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데만 집중할 겁니다.

SK로 이적하면서 주장의 부담도 내려놨습니다.

선형이만 믿고 따라야죠(웃음). 2020-2021시즌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과 선수단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중간에서 팀이 원활하게 소통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했죠. 부족한 게 많았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했죠. 주장은 아니지만 2021-2022시즌 선형이의 부담을 줄이는 데 최대한 도울 생각입니다.

오리온에서 11시즌을 뛰었습니다.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입니까.

프로농구 선수에게 우승만큼 값진 게 있을까요. 2015-2016시즌 프로에 데뷔 첫 챔피언 결정전 정상에 올랐습니다. 애런 헤인즈, 조 잭슨, 김동욱, 이승현 등 색깔 뚜렷한 선수와 호흡을 맞추면서 재밌게 농구 한 것 같아요. 또 있습니다.

어떤?

오리온에서 우승만 경험한 게 아니에요.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된 2019-2020시즌 13승 30패를 기록했습니다. KBL 10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죠. 오리온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상으로 21경기밖에 뛰지 못했어요. 팀이 어려울 때 중심을 잡지 못한 게 미안했습니다. 팬들에게 죄송했고요.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게 아니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힘들었죠.

허일영은 KBL을 대표하는 슈터입니다. 그런데 리바운드 가담이나 몸싸움 등을 피하지 않아요.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모든 선수가 같을 거예요. 솔직히 공격이 재밌습니다. 슛이 림을 가를 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대학 시절부터 공격 성향이 강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농구는 팀 스포츠에요. 코트에 나선 5명이 공격만 할 순 없습니다. 누군가는 수비해야 하고 리바운드에 가담해야 해요. 그래야 함께 웃을 수 있죠.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해 짧은 시간 온 힘을 다하는 선수들도 있고요.

아.

농구는 화려한 것만 해선 이길 수 없는 스포츠입니다.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팀에 도움이 된다는 걸 증명해야 하고요. 프로 데뷔 시즌부터 수비, 리바운드 등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3점슛을 넣는 것만큼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냈을 때 희열을 느꼈어요. 코트 위에서 동료보다 편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팀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SK에서도 팀 발전에 이바지하는 선수가 될 거예요.

SK에선 해결사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3점슛은 허일영이란 선수의 최대 강점입니다. 살려야죠.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 있게 던질 거에요. 어느 해보다 철저히 준비해서 높은 슛 성공률을 기록할 겁니다. 수비나 리바운드에서도 팀에 도움을 줄 거고요.

“팬 함성으로 가득한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뛰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서울 SK 나이츠 허일영(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서울 SK 나이츠 허일영(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KBL에서 우승의 꿈을 이루려면 어떤 외국인 선수와 함께 뛰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2021-2022시즌 어떤 외국인 선수와 뛰고 싶습니까.

골밑을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선수죠. 어떤 팀과 대결하든 리바운드에서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한 골밑은 좋은 성적을 보장합니다.

KBL에서 11시즌을 뛰었습니다. 함께 뛴 외국인 선수 가운데 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많죠(웃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고(故) 크리스 윌리엄스입니다. 아주 영리한 선수였어요. 제러드 설린저처럼 득점, 리바운드, 패스 못하는 게 없었죠. 트로이 길렌워터는 어떻게든 득점을 만들어내는 선수였습니다.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합작한 애런 헤인즈, 정통 센터 역할을 해준 버논 맥클린 등도 기억에 남고요. 2018-2019시즌 함께한 재간둥이 대릴 먼로도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KBL에서 허일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바로 기부활동입니다.

2018년 첫째 아들(5) 돌잔치 때였어요. 아내와 축의금을 뜻깊은 데 쓰자고 이야기했죠. 주변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가 많았어요. 상상 이상이었죠. 한 아이는 100만 원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거예요. 축의금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희귀 난치병 아이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후에도 선행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0년엔 유니폼, 훈련복 등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습니다. 경매를 진행했죠. 수익금과 후원금을 더해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했어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죠. 2020-2021시즌엔 3점슛 캠페인을 진행했고요.

3점슛 캠페인이요?

3점슛 하나 성공할 때마다 3만 원을 적립했어요. 2020-2021시즌 총 69개의 3점슛에 성공해 207만 원을 모았죠. 기부금 93만 원을 더해 300만 원을 일산백병원에 전달했어요. 난치병 환아를 후원하는 데 쓰일 겁니다.

허일영이 선행 활동을 이어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굳이 알릴 필요가 있을까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일이고요. 자녀가 생기면서 아이들에 관한 관심이 늘었습니다. 아픈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내 아들, 딸(4)과 다른 게 없는 아이인데 왜 저 친구들은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 싶죠. SK에서도 기부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새 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유니폼만 바뀌었습니다. 허일영은 그대로예요. 부상 없이 시즌을 마무리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코트에서 평가받고 싶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아이들에게요?

이적을 고민하던 중에 아들이 물어봤어요. 아들이 “아빠 팀 옮겨?”라고 했죠. SK로 간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응원가 다시 외워야겠다”며 응원해줬습니다. 딸은 다음 시즌에도 오리온 유니폼을 입고 뛰는 줄 알고요. 아이들이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더 신나게 농구를 즐길 수 있도록 힘써야죠.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경험했고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국 프로농구 선수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루었습니다. 꿈이 있습니까.

우승이죠. SK와 계약한 3년 내내 우승하고 싶어요(웃음).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느 해보다 철저히 준비해서 팀 우승에 이바지하겠습니다.

오리온에서 11시즌을 뛰었습니다. 오리온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많은 팬이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주셨어요. 많은 분이 “허일영이 없는 오리온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떠날 줄 몰랐다. 아쉽다”고 했죠. 이어 “어딜 가든 응원하겠다. 멋진 활약으로 보답해달라”고 했습니다. 오리온 팬들에겐 ‘감사하다’는 말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SK 팬들의 기대가 큽니다.

2009년 프로에 입문해 첫 이적을 선택했습니다. SK에서 허일영이란 선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줬어요. 코트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SK는 KBL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구단이에요. 코로나 시대 전 잠실학생체육관은 원정팀의 지옥으로 불렸죠. 팬들의 함성을 등에 업고 챔피언 결정전 우승에 앞장서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ro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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