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에 잠긴 박건하 감독, 2017년 동기 조진호 감독에 이어 절친한 친구 유상철 감독까지 떠나보냈다
-“(유)상철이는 A대표팀 시절 룸메이트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였다”
-“수원 감독이란 꿈 이룬 걸 진심으로 축하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친구”
-“친구와 밥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게 꿈같은 일이 됐다”
[엠스플뉴스=화성]
“이틀간 술을 좀 마셨습니다. (유)상철이는 지도자로 이루고자 하는 게 많은 친구였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요.” 수원 삼성 박건하 감독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박 감독은 5월 29일 2021시즌 K리그1 19라운드 FC 서울전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6월 7일 절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곧장 장례식장으로 달려왔다. 박 감독은 다음 날에도 빈소를 찾아 친구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향년 50세. 박 감독의 절친한 친구 유상철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박건하 감독 “A대표팀 원정 경기마다 (유)상철이와 같은 방을 썼던 기억이 난다”
박건하 감독은 고(故) 유상철 명예감독(인천 유나이티드)과 1971년생 동갑내기다. 둘은 태극마크를 달고서 부쩍 가까워졌다.
먼저 태극마크를 단 건 유 감독이었다. 유 감독은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0-1)에서 A대표팀에 데뷔해 2005년 6월 3일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1-1)까지 뛰었다. 유 감독은 A매치 124경기에서 뛰며 18골을 터뜨렸다. 차범근(136경기 58골), 홍명보(136경기 10골), 이운재(133경기 115실점), 이영표(127경기 5골)에 이은 A매치 최다출전 5위다.
박 감독은 1996년 5월 16일 스웨덴과의 친선경기(0-2)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그는 1996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등에서 활약을 이어갔다.
당시 박 감독과 유 감독은 룸메이트였다. 경쟁이 치열한 A대표팀에서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A대표팀에서 같은 방을 썼던 기억이 나요. 상철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죠. 상철이와 프로팀에선 손발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프로에선 경쟁자였죠. 상철이는 막기 어렵고 뚫기도 힘든 선수였어요. 공격과 수비 다 잘했습니다. 치열하게 대결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근황을 묻곤 했어요. 그렇게 웃음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죠.” 박 감독의 회상이다.
프로축구 선수의 삶이 여유로운 건 아니다. 선수는 매주 새 경기를 치러야 한다. 경기 준비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시즌 중엔 사적인 일로 친구를 만나는 건 어렵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부족하다. 박 감독은 1998년 4월 22일 구 유고슬라비아전(1-3)을 끝으로 A대표팀과 멀어졌다. 유 감독과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줄었다.
유 감독은 다양한 팀을 거쳤다. K리그 울산 현대, J리그(일본) 요코하마 마리노스, 가시와 레이솔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박 감독은 수원의 전설이다. 1996년 수원 창단 멤버로 프로에 데뷔해 2006년까지 뛰었다. K리그 통산 292경기에서 뛰며 44골 27도움을 기록했다. 박 감독은 K리그 우승 3회(1998·1999·2004), FA컵 우승 1회(2002), 리그컵 우승 4회(1999·2000·2001·2005),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2000-2001·2001-2002) 등에 앞장섰다.
둘은 은퇴 후에도 쉴 틈이 없었다. 유 감독은 춘천기계공업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대전 시티즌(대전하나시티즌의 전신), 울산대학교,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박 감독은 수원 유소년팀(매탄고등학교)을 시작으로 한국 U-23 축구 대표팀, A대표팀, 서울 이랜드 FC, 중국 슈퍼리그 다롄 이팡, 상하이 선화 등을 거쳤다. 팀에서 한솥밥을 먹지 않는 한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둘이 다시 한 번 가까워진 건 2019년이었다. 박 감독은 “유 감독이 인천 지휘봉을 잡기 전”이라며 “나도 일을 잠시 쉬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분당에 산다. 상철이네 집은 수지에 있다. 차로 몇 분 안 걸린다. 자주 만났다. 옛날이야기로 시작해서 지도자로 꿈꾸고 있는 삶을 공유했다. 술도 여러 번 마셨다. 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많이 꺼냈는데...” 박 감독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조)진호에 이어 (유)상철이까지...동기 둘을 떠나보냈다”
박건하 감독은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만남을 이어갔다. 유 감독이 항암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을 땐 자주 만났다.
박 감독은 “많이 좋아진 시기가 있었다”며 “그때 골프를 자주 쳤다”고 말했다.
“나와 유 감독 모두 골프를 좋아한다. 운동을 마치면 이전처럼 밥 먹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장 좋았던 건 골프장을 오가는 시간이었다. 상철이가 오랜 시간 운전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집이 가까운 내가 상철이의 이동을 책임졌다. 차 안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차에서 내리면 마음이 후련하곤 했다.” 박 감독의 얘기다.
박 감독은 2020년 9월 8일 수원 지휘봉을 잡았다. 유 감독은 이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했다. 유 감독은 박 감독에게 수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박 감독에게 수원은 선수 시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감독은 언젠가 수원 지휘봉을 잡고 싶다는 꿈을 유 감독에게 이야기하곤 했었다.
박 감독은 “상철이가 프로에서 지도자로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해줬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상철이의 몸이 안 좋아졌다는 얘길 들었다. 상철이와 연락이 닿질 않았다. 가족을 통해서 상철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번에도 이겨낼 줄 알았다. 상철이니까. 선수 시절보다 더 멋진 지도자 생활을 꿈꿨던 친구다. 이제 막 꿈을 펼치려고 하는데 세상을 떠났다. 상철이를 보내면서 (조)진호 생각도 났다. 진호는 내 대학 동기다. 진호가 4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상철이까지...동기 둘을 떠나보냈다.”
박 감독과 경희대학교 동기인 조진호 전 감독(부산 아이파크)은 2017년 10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숙소에서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쓰러졌다. 급성 심장마비였다. 향년 44세. 박 감독은 세상을 먼저 떠난 동기 둘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보통 친구를 떠올리면 설레잖아요. 웃음이 나고. 전 마음이 아픕니다. 집 앞에서 잠깐 만나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감독으로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이젠 꿈같은 일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참 치열하게 살았다. 고생했다. 그리고 보고 싶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