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나오미, 시몬 바일스의 외침…이제는 스포츠 선수 정신 건강 살펴야 할 때

-전문가 황승현 교수 “선수 정신 건강 구성하는 멘탈 헬스와 멘탈 퍼포먼스, 서로 긴밀한 영향 주고받는 관계”

-“도쿄올림픽 일부 종목 부진, 코로나19 블루도 원인 중 하나일 것”

-“대한체육회 선수촌, 멘탈 트레이너 24시간 상주하며 선수 정신 건강 살펴야”

정신 건강을 이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한 오사카 나오미. 나오미의 고백은 스포츠 스타의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신 건강을 이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한 오사카 나오미. 나오미의 고백은 스포츠 스타의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언제부턴가 스포츠 선수들이 내면의 정신적 고통, 두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인한 정신력, 불굴의 의지, 집념의 화신인 줄만 알았던 선수들이 사실은 자신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약하고 상처받는 사람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가 대표적이다. 나오미는 최근 프랑스 오픈에서 ‘나 자신을 돌보고 정신건강을 지키겠다’며 경기 후 기자회견에 불참해 논란의 표적이 됐다. 선수의 기자회견 참가를 성스러운 의무로 여기는 미디어의 비판과 대회 주최 측의 위협에 나오미는 내밀한 정신적 문제까지 공개해야 했다.

나오미는 ‘타임’지 기고문에서 “운동선수도 사람”이라며 “누구나 남이 모르는 자신만의 문제와 씨름할 때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런 일을 겪는다”라고 호소했다. 나오미의 절박한 외침에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이들의 응원 메시지가 쇄도했고, 유명 인사들도 나오미에게 지지 의사를 표했다.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미국의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도 좋은 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인 바일스는 올림픽 기간 “내 정신건강을 지키겠다”면서 대부분의 경기에 기권했다. 자신의 장기인 고난도 동작이 과거와 달리 두렵게 느껴진다는 말도 했다. 그의 결정을 두고 일각에선 ‘이기적이다’ ‘나약하다’고 비난했지만, 바일스는 “나는 체조선수가 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라고 맞섰다.

미국 여자 포환던지기 은메달리스트 레이븐 손더스도 화제다. 손더스는 메달 시상식에서 전 세계 억압받는 사람들을 향한 연대의 의미로 양손으로 X자를 표시했다. 흑인 여성이자 동성애자로서 그 자신이 소수자인 손더스는 자신이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공개했다. 손더스는 자신의 사명을 ‘내가 되는 것’이라 밝혔다.

이런 현상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스포츠 선수가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오랜 금기가 깨졌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도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선수는 있었다. 최근 IOC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선 선수 32%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스포츠 선수는 강해야 한다, 어떠한 부담감과 압박감도 이겨내야 한다는 압력 탓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다. 나오미, 바일스, 손더스의 외침은 곧 ‘운동선수도 인간’이라는 외침이기도 하다.

엠스플뉴스는 최근 스포츠계 화두로 떠오른 선수들의 정신 건강과 관련해 스포츠심리학 전문가 황승현 경북대학교 교수와 인터뷰했다.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한 황 교수는 한국 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원을 거쳐 이번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의 심리 상담을 책임졌다. 황 교수와 인터뷰는 2일 오후 전화 통화로 진행했다.

“운동선수 32%가 정신적 문제 경험한다” IOC 조사 결과가 알려준 진실

최근 한국 양궁 선수 안산을 향한 사이버 불링은 국제적인 논란이 됐다.
최근 한국 양궁 선수 안산을 향한 사이버 불링은 국제적인 논란이 됐다.

지난달 3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일깨웠습니다. 2020년 IOC 선수위원회가 4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32%의 선수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선수가 정신 건강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입니다.

맞아요. 그래서 IOC에서 최근 ‘멘탈 핏 헬프라인(Mentally Fit Helpline)’이란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운동선수들을 위한 일종의 ‘핫 라인’으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전화를 통해 정신적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대한체육회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대한체육회에서도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스페셜 케어 팀’을 구성해 전방위적인 선수 지원에 나섰습니다. 우선은 메달 가능성이 큰 선수들을 집중 케어한다는 취지인데, 저는 여기서 심리 상담 파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선수들이 겪는 정신적 문제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우선 스포츠 심리학에선 선수의 정신 문제를 크게 멘탈 헬스(mental health)와 멘탈 퍼포먼스(mental performance) 둘로 나눕니다. 여기서 멘탈 헬스는 말 그대로 ‘정신 건강’에 해당합니다. 건강하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선수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럼 멘탈 퍼포먼스는요?

정신적·심리적인 수행능력을 가리킵니다. 선수가 느끼는 불안감, 긴장감, 압박감을 해소하고 강한 집중력을 발휘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측면을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멘탈 헬스와 멘탈 퍼포먼스는 각기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멘탈 헬스에 문제가 생기면 퍼포먼스가 영향을 받고, 퍼포먼스가 잘 안 나오면 멘탈 헬스가 영향을 받는다고 보면 될까요.

맞아요. 사실 선수 입장에선 경기에서 집중이 잘 되고 경기가 잘 풀리면 크게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든요. 하지만 매번 그런 결과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최고의 엘리트 선수들만 모인 곳일수록 성공보다는 실패를 훨씬 더 자주 경험하게 마련입니다. 마지막에 메달을 따는 승자는 극소수잖아요.

선수 시절 항상 최고였던 어떤 감독님이 했던 ‘1등 아니면 꼴찌’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또 스포츠 선수들은 심리적인 업 앤 다운도 심합니다. 선수들은 경기에서 매 순간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합니다. 지금 TV에서 한국 탁구 대표팀 경기 중계방송이 나오는데, 선수들 입장에선 한 포인트 얻고 내줄 때마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잖아요. 한 세트 단위로도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고요. 좀 더 넓게는 메달 획득 여부로도, 그리고 선수 인생에서도 성공과 실패를 끊임없이 경험합니다.

일반인들은 도전할 일이 없으니 실패할 일도 없는데, 선수들은 매일 매 순간 실패와 직면해야 하니 그만큼 심리적인 압박도 클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실패를 성공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게 중요합니다. 멘탈 퍼포먼스가 향상되면 멘탈 헬스까지 함께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반대로 멘탈 헬스가 무너지면 멘탈 퍼포먼스가 악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그건 일반인 입장에서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겨서 ‘멘붕’ 상태가 되면 일에도 집중하기 어려우니까요.

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심리적 건강과 행복에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관계성’입니다. 선수들의 멘탈 헬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가 이 관계성이에요. 보통 선수들은 동료나 지도자들과 오랜 기간 한 공간에서 생활하잖아요. 그래서 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면 멘탈 퍼포먼스는 물론 신체적인 반응까지 악영향을 받게 됩니다.

“운동선수도 사람이다” 오사카 나오미-시몬 바일스의 외침

미국 체조 간판스타 시몬 바일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체조 간판스타 시몬 바일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실 스포츠 선수의 정신적 문제는 그간 언론이나 일반 스포츠 팬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이슈입니다. 사람들은 스포츠 스타를 같은 인간이 아닌 초인적인 존재로 여기니까요. 저 역시도 이번에 몇몇 선수들의 고백으로 화제가 되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가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스포츠 선수들이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더 큰 박수를 보내잖아요. 선수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선수들과 가까이에서 상담하고 얘기를 들어보면, 한 인간으로서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인 예가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 선수입니다. 오사카 나오미는 지난달 프랑스 오픈에서 경기 후 기자회견을 거부해서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았고 결국 대회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결국 자신이 겪는 정신적 문제를 솔직하게 공개하면서 ‘나 자신을 돌보고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기자회견을 패스했다’고 밝혀야 했는데요.

앞서 인간의 심리적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관계성’을 말씀드렸는데,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자율성’입니다. 우리 일반 사람들도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와 정말 꼭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마음가짐은 물론 몸에서 호르몬 반응이 전혀 다르잖아요. 성과도 크게 달라지고요. 그런데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결정하는 자유로운 선택권으로부터 멀어지는 거죠.

오사카 나오미는 사건 이후 ‘타임’지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은 미디어와의 관계를 항상 좋아했고, 진지한 인터뷰도 자주 했다면서 ‘투어에 참가한 지난 7년간 기자회견에 불참한 건 딱 한 차례뿐이었다’라고 항변했다. 그는 ‘테니스를 직업으로 삼는 건 특권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자회견) 출석기록을 이처럼 엄격하게 감독하는 직업이 또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다른 직업은 개인적 사정이 있으면 잠시 일에서 빠질 수 있고, 개인 프라이버시를 고용주에게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테니스 선수인 자신은 언론과 대회 주최 측의 압력으로 개인적인 의료 문제까지 공개해야 했다면서 ‘선수들도 일 년에 며칠 정도는 기자회견 의무에서 제외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일부 경기에 기권해 화제가 된 미국의 체조 스타 시몬 바일스도 있습니다. 바일스 역시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출전을 포기했는데, 미국 현지에선 ‘무책임하다’ ‘나약하다’는 비난과 바일스를 지지하는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바일스 선수도 어떤 면에선 자유로운 선택을 한 거잖아요. 선수가 아닌 한 인간 개인으로서 그의 의사를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외부에서 보는 우리가 그 선수 내면의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의 기자 카비사 데이비슨은 개인 SNS에서 “바일스는 양쪽 발가락이 부러진 상태로도, 신장결석을 갖고도 우승한 사람이다. 또 성폭행 피해자임에도 미국체조협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른 사람”이라며 바일스를 향한 비난 여론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맞습니다. 그 사건에서 개인적으로 얼마나 치유가 됐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선수 입장에서는 대중들 앞에 나와서 주목을 받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도 스포츠 스타라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게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바일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구사하는 고난도 기술이 예전과 달리 두렵게 느껴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없이 잘했던 기술을 수행하는 데 지금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건데요, 이는 앞서 말씀하신 ‘멘탈 퍼포먼스’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요.

멘탈 퍼포먼스에는 여러 측면이 있는데, 그중에는 ‘효능감’이란 게 있고 ‘통제감’도 있습니다. 내가 어떤 동작을 잘 수행할 수 있겠다, 컨트롤할 수 있다는 느낌이 충만할 때 어려운 난이도의 기술을 수행할 수 있는 겁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지만, 어쩌면 바일스 선수도 자기 기술에 대한 효능감이나 통제감을 잃는 경험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엔 주변의 지나친 기대나 내면적 고통 등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작용합니다.

미국 여자 포환던지기 은메달리스트 레이븐 손더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여자 포환던지기 은메달리스트 레이븐 손더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과거 스포츠 선수들은 ‘약해 보이면 안 된다’ ‘강인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렸습니다. 이 때문에 육체적 부상은 물론 정신적인 고통이나 약점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사카 나오미, 시몬 바일스의 사례는 스포츠계의 오랜 금기를 깨는 중요한 사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엔 연예인 중에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털어놓는 게 옛날처럼 터부시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실은 자기가 자기 문제를 인정했을 때가 치료 효과도 더 좋다고 합니다. 몸이든 정신이든 아프면 아프다고 인정해야 치료가 되지, 아프지 않고 정상이라고 부정하면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아, 얘기하다 보니 한 가지 안타까운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격투기 종목 선수들의 성적이 대체로 좋지 않은 편입니다. 태권도를 비롯해 유도, 레슬링 등에서 이전 대회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요, ‘코로나19 블루’도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변에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답답함과 우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기는 한데, 그게 운동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강도 높은 코로나19 방역을 해온 편이잖아요. 특히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우엔 외출도 거의 못 하고 선수촌에 갇혀서 장기간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상담을 해보면 불면증이나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어요. 그게 훈련 집중도부터 경기에서의 자신감, 효능감, 통제감은 물론 멘탈 퍼포먼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요즘 선수들의 멘탈 헬스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인터넷 여론입니다. 얼마전 양궁 안산 선수를 향한 일부 트롤들의 사이버 괴롭히기가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과거에는 선수들이 악의적인 비난에 직접 맞닥뜨릴 일이 별로 없었지만 이제는 댓글과 SNS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는 시대가 됐습니다. 선수들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봐야 하고, 그래서 SNS나 댓글을 아예 안 보려고 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밤에 잠 못 자고 좌절감과 우울함을 느껴서 아예 안 보려는 선수들이 적지 않아요. 선수들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 익명성을 무기로 선수들을 비난하는 일은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수촌에 전속 심리상담사 배치했으면”

황승현 경북대 교수(사진=한국스포츠정책개발원)
황승현 경북대 교수(사진=한국스포츠정책개발원)

사실 한국만큼 스포츠에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나라도 드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 정신력이 ‘악으로 깡으로’라서 문제였습니다. 지도자 중에는 정신력 강화를 명목으로 선수들을 체벌로 다스리고, 얼음물에 입수하고, 공동묘지에서 담력훈련을 시키기까지 했는데요. 요즘은 어떻습니까.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지도자들도 심리 상담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어요. 저희 같은 전문가들과 논의도 하고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사실 선수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지도자들 역시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은 직종이니까요.

얼마 전 스포츠 지도자들의 ‘번아웃’ 현상을 다룬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선수 인권이 과거보다 강조되면서 한편으로는 지도자들이 구석에 몰리는 느낌을 받는 경향도 있습니다. 지도자들도 지도자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거죠. 분명한 건 지도자들과 체육계도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한체육회가 신설한 스페셜 케어팀만 해도 선수들의 영양, 수면, 심리 등 과거에는 소홀히 했던 영역까지 챙기는 서비스거든요.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스페셜 케어팀은 이번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런칭했는데, 아직은 메달권에 들어갈 만한 유망한 선수들이 대상입니다. ‘잘하는 선수’에 국한돼 있다는 게 아쉬운 점이죠. 잘하는 선수와 그보다 못한 선수 간에 간극이 벌어진다고 할까요. 사실 조금 못하는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돼야 탑클래스 선수들의 경기력도 함께 향상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대한체육회에 부탁하고 싶은 건.

네.

선수촌처럼 선수들이 모여 지내는 곳에는 상근하는 심리상담사가 있어야 합니다. 선수촌도 지도자, 물리치료사, 메디컬 담당자 등이 24시간 상주하잖아요. 그런데 아직 심리상담은 외주에 맡기고 있으니까요. 요즘엔 군대만 해도 연대 단위로 군인 대상 심리상당사가 다 배치돼 있습니다. 선수촌에 정식으로 심리상담 사무실이 개설되고, 멘탈 트레이너를 상주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말씀대로 따로 날짜를 정해놓고 만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가 상담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요. 작은 공간이라도 좋으니 선수촌 안에 심리상담 공간을 마련해서, 전문 상담사 선생님들을 배치했으면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한 명이 멘탈 헬스를 담당하고, 스포츠심리 전문가가 멘탈 퍼포먼스 쪽을 맡아서 선수들과 수시로 상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한체육회에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선수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일반 스포츠 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을까요.

선수들과 직접 상담하다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메달을 딴 선수든 그렇지 못한 선수든 그들의 노력, 고통을 접하다 보면 절로 존경심이 생겨요. 단언컨대 운동 선수들은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경쟁에서 이겨서 메달을 따는 것도 좋지만, 선수들이 걸어온 과정에도 관심을 갖고 박수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팬들로부터 그동안 수고했다, 고생했다, 열심히 했다는 응원을 받으면 선수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멘탈 헬스’에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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