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차 신인 드래프트' 행사장에 모인 신인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2018 2차 신인 드래프트' 행사장에 모인 신인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Q. ‘2018 KBO 2차 신인 드래프트’를 많은 야구팬이 기다렸습니다. 원체 좋은 신인이 많아 야구 커뮤니티에선 ‘신인 드래프트 모의지명’를 하는 등 큰 관심이 보였는데요. 하지만, 정작 ‘신인 드래프트’를 TV, 인터넷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해마다 생중계를 해왔는데 왜 이번에만 방송 중계가 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 대구 윤기찬 외 43명 -

A. “kt 위즈는 서울고 포수 겸 투수 강백호를 지명하겠습니다.”

kt 최재영 스카우트 차장의 입이 열리기 무섭게 행사장은 환호로 가득 찼다. 9월 11일 ‘2018 KBO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대어 강백호가 전체 1번으로 kt에 지명된 직후였다. 하지만, 행사장에서 강백호를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강백호가 ‘제28회 세계청소년(18세 이하) 야구선수권대회’ 한국 대표팀에 뽑혀 캐다나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에 지명된 양창섭(전체 2번), 성동현(7번)도 같은 이유로 행사장에 나오지 못했다. 이는 1차 지명자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상위 지명자들이 대거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신인 드래프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다. 많은 야구팬은 자신이 점찍은 선수가 어느 구단에 몇 번째로 지명될지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설레는 마음으로 신인 드래프트 생중계를 기다린 이가 꽤 많았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신인 드래프트’는 TV는 고사하고, 인터넷으로도 중계되지 않았다. KBO가 급하게 진행한 페이스북 라이브가 중계를 대신했다.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 있던 한 구단 스카우트는 “신인 드래프트는 구단과 선수들만의 행사가 아니다.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 도와주고, 지켜주신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야구팬들에게 첫인사를 하는 자리다. 팬들이 신인선수를 보면서 응원하는 구단의 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신인 드래프트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이 중요한 행사를 해마다 생중계하다가 어째서 이번엔 생략한 것인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고 고갤 갸웃했다.

드래프트 중계 불발의 숨겨진 이유들

방송사 생중계 대신 KBO가 선택한 건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였다. 문제는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KBO는 이날 행사 진행을 KBO 홍보팀 직원에게 맡겼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방송사 생중계 대신 KBO가 선택한 건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였다. 문제는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KBO는 이날 행사 진행을 KBO 홍보팀 직원에게 맡겼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2018 KBO 2차 신인 드래프트’는 대형 신인들의 등장으로 드래프트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이런 분위기에 아마추어 야구계는 “고교 야구의 인기가 되살아나는 기분”이라며 한껏 고무돼 있었다.

하지만, 정작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프로야구 2차 신인 드래프트는 방송을 타지 못했다. 같은 시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대신 여자배구 신인 드래프트가 생중계됐다.

신인 드래프트 행사장에서 만난 KBO 홍보팀 관계자는 중계방송 취소 이유를 묻는 엠스플뉴스 취재진에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느냐”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중계는 방송사 몫이다. 이번엔 아무도 (중계) 편성을 제안하지 않았다. 우리(KBO)야 방송사에서 하겠다고 하면 뭘 못 해주겠나. (중계방송) 하고 싶은 방송사가 있었다면 누구든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신인 드래프트를 중계하겠다고 나선 방송사가 없어 생중계가 취소됐다는 설명이었다. 한마디로 중계 불발 책임이 방송사에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랬을까.

KBO 페이스북 라이브 장면. 화질을 떠나 행사 진행과 관련해 뒷말이 많았다
KBO 페이스북 라이브 장면. 화질을 떠나 행사 진행과 관련해 뒷말이 많았다

한 방송사 편성 PD는 KBO 홍보팀 관계자의 발언을 전해 듣고는 “KBO는 왜 입만 열면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을 늘어놓는지 모르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편성을 제안하지 않았다’라는 KBO 홍보팀의 주장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신인 드래프트’나 ‘포스트 시즌 미디어데이’ 등은 KBO 주관 행사다. 따라서 KBO가 방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방송사에 ‘이 행사를 중계방송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KBO는 이번 신인 드래프트 때 방송사에 중계방송 제안을 하지 않았다. 주최 측이 제안하지 않는데 어느 방송사가 먼저 제안하겠는가. KBO의 주장은 방송사를 바보로 알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궤변이다.

다른 방송사 PD는 “지금의 KBO 행사는 방송사가 먼저 제안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며 “늘 KBO 행사를 치르는 방송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방송사들이 서로 KBO 행사를 생중계하겠다고 나섰다. 이 때문에 KBO가 ‘어느 방송사는 주고, 어느 방송사는 주지 않으면 큰일’이라며 난감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KBO가 프로야구 중계권사인 에이클라 산하 SPOTV에 KBO 행사를 대부분 몰아주면서 다른 방송사들이 행사 중계는 고사하고, 제안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방송사들은 신인 드래프트를 SPOTV가 생중계하는지 알았다. 만약 KBO가 SPOTV가 아닌 다른 방송사에 중계 요청을 했다면 최소 한 방송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거다. 그러나 KBO는 SPOTV가 중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다른 방송사에게 중계 제안을 하지 않았다. KBO가 야구계의 적폐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엠스플뉴스 취재 중 한 방송사 편성 PD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신인 드래프트 현장 중계를 몇 년 연속 맡아 진행한 적이 있다. 이땐 KBO가 매우 방송사에 협조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다시 신인 드래프트를 중계하려고 했더니 KBO에서 ‘행사비를 내라’고 했다. ‘행사비를 내지 않으면 중계방송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방송사 입장에서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평일 대낮에 신인 드래프트를 생중계한다는 건 무조건 마이너스다. 제작비 마이너스가 뻔한 상황에 행사비까지 대라는 주장은 방송을 아예 하지 말라는 통보와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행사비까지 부담하는 건 좀 어렵다’고 했더니 KBO에서 ‘SPOTV는 행사비까지 댄다’면서 그날 이후 SPOTV에 거의 모든 KBO 행사를 맡기기 시작했다.

신인 드래프트 중계방송 취소. KBO가 기획한 '의도한 결과'였다

미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장면. 두 나라 야구계는 신인 드래프트를 매우 중요하고, 비중 있는 행사로 생각한다
미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장면. 두 나라 야구계는 신인 드래프트를 매우 중요하고, 비중 있는 행사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KBO 행사 중계를 독점하다시피했던 SPOTV는 이날 신인 드래프트를 중계하지 않은 것일까. KBO 관계자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가 자신이 생각해도 답변이 궁색했던지 “주요 신인 선수가 불참해 시청률이 떨어질까 염려해 방송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답변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KBO 내부 관계자는 “신인 드래프트 방송 취소 결정은 KBO 자체적으로 내린 것”이라며 “세 가지 이유가 숨어 있다”고 폭로했다.

첫 번째는 SPOTV에 대한 부담이다. KBO 수뇌부의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프로야구 중계권사인 에이클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KBO 수뇌부가 에이클라를 대놓고 밀어준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다. 한 국회의원이 10월 국정감사 때 쓰려고 KBO 중계권 관련 자료 제출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 혹여 이 소문이 더 불거질까 싶어 SPOTV에 신인 드래프트 중계를 맡기지 않았다.

두 번째는 KBO 수뇌부다. 최근 각종 KBO 의혹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KBO 양해영 사무총장이 큰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혹여 본인 얼굴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힐까 싶어 크게 우려한 것으로 안다. 이를 알고, KBO 내부직원들이 알아서 중계방송을 취소했다. 중계방송이 취소된 덕분인지 행사장에서 양 총장은 지명 내내 별 눈치 보지 않고, 구단 수뇌부들과 자유롭게 담소를 나눴다.

세 번째는 명분이다. 해마다 SPOTV에 자기들 행사를 밀어줬는데 이제와 다른 방송사에 ‘신인 드래프트를 중계해달라’고 요청하자니 명분이 없었다. 혹여 이번에 다른 방송사에게 맡겼다가 다음에도 다른 방송사에서 맡을까 싶어 우려한 측면도 있다. ‘이번 한번만 잘 넘어가면 다시 주던 곳에 주면 되는데 뭐하러 다른 방송사를 끌어들이냐’는 게 KBO 수뇌부의 생각이었다.

종합하면 신인 드래프트 중계방송이 취소된 건 KBO가 의도한 결과라는 뜻이다. 문제는 KBO가 이 같은 계획을 세웠음에도 신인 드래프트 개최 전날까지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중계 표엔 ‘신인 드래프트 방송’이 예정돼 있었지만, 신인 드래프트 당일이 돼서야 ‘중계하지 않는다’는 공지글이 올라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시간. 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여자배구 신인 드래프트가 정상적으로 생중계됐다.

KBO가 취소한 건 중계가 아니라 어린 학생선수들이 꿈이다.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공지문. 드래프트 하루 전날, 주최 측의 사정상 중계 취소가 됐음을 알리고 있다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공지문. 드래프트 하루 전날, 주최 측의 사정상 중계 취소가 됐음을 알리고 있다

신인 드래프트 행사장에서 자신의 주변에 모인 구단 수뇌부들과 밝은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는 KBO 양해영 사무총장(사진 가운데 왼쪽에서 두 번째)(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신인 드래프트 행사장에서 자신의 주변에 모인 구단 수뇌부들과 밝은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는 KBO 양해영 사무총장(사진 가운데 왼쪽에서 두 번째)(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2018 2차 신인 드래프트’는 ‘역대급 드래프트’로 꼽힌다. 대어급 신인선수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몇몇 프로 스카우트 입에서 “마음 같아선 13라운드까지 선수를 뽑고 싶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무엇보다 신인 드래프트는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첫 관문이다. 그리고 신인선수들과 야구팬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소중한 무대다.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만난 한 고교 감독은 “지금 어린 학생선수들은 신인 드래프트를 보면서 ‘나도 정말 열심히 해서 저 형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프로선수가 돼야지’하는 꿈을 꾼다. 그 꿈이 프로야구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지난해만 해도 신인 드래프트 중계가 시작하면 야구부원 전체가 TV 앞에 앉아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이번엔 별다른 이유 없이 TV 중계가 되지 않았다”며 “KBO가 과연 누굴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kt 위즈 김진욱 감독은 현장 야구인 가운데 유일하게 KBO의 어긋난 행정을 꾸짖는 용기 있는 야구인이다.

김 감독은 신인 드래프트 중계 불방 소식을 접하곤 “KBO 전체 신인선수들을 좀 더 많이 소개해야 한다. 그래야 야구팬이 더 야구에 관심을 둔다. 야구인이 모두 발 벗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신인 드래프트 중계를 취소했다니, 도대체 (KBO가) 무슨 정신과 마음으로 이런 행정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덧붙여 김 감독은 “이번 중계 불발로 신인선수들이 대선수가 됐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화면이 모두 사라지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KBO가 수뇌부의 사유물이 될 때 우리는 야구가 어떻게 추락하는지 그 현장을 매일같이 지켜보고 있다.

전수은, 이동섭, 박동희 기자 gurajeny@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