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개봉작 ‘야구소녀’…프로야구 선수 꿈꾸는 여고생의 성장 드라마

-최윤태 감독 “난 ‘평범한’ 야구팬...반드시 야구여야만 하는 이유 있었다”

-“영화 위해 많은 여자야구 선수 만나 인터뷰…긍정적인 에너지에 큰 힘 얻었다”

-“주수인처럼 힘든 하루하루 사는 이들에게 영화 ‘야구소녀’가 위로 됐으면”

야구 소재 영화로 장편 데뷔작을 만든 최윤태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야구 소재 영화로 장편 데뷔작을 만든 최윤태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최윤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야구소녀’는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여자 고교생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중학교 때부터 야구천재로 이름을 날린 주수인(이주영 역). 고교에서도 남자들과 함께 야구부원으로 활동하며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키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수인 앞을 가로막는다. 남자부원들과의 물리적 차이는 점점 크게 벌어지고, 세상은 수인에게 ‘여자는 프로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엄마를 비롯한 주위에서도 ‘포기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며 포기를 종용한다. 오직 야구밖에 모르고 야구할 때 진정한 자신이 되는 수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야구소녀’는 오랜만에 극장에 선보인 야구 극영화다. 그간 야구를 다룬 한국영화들은 주로 야구 경기의 극적인 장면에 초점을 맞췄다. ‘퍼펙트 게임’ ‘슈퍼스타 감사용’처럼 박진감 넘치는 야구 경기 장면을 재현하고 주인공의 초인적 능력과 정신력,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야구소녀’는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실제 경기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선 ‘머니볼’과, 야구를 통해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선 ‘스카우트’와 닮았다. ‘야구소녀’는 친숙한 소재인 야구를 통해 다양한 층위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영화는 남성 위주 사회의 벽에 도전하는 한 여성의 도전기이자 취업이란 현실을 앞에 둔 여고생의 성장담이고, 한편으론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윤태 감독은 ‘야구소녀’를 준비하며 수많은 여자야구 선수와 야구계 사람들을 만나고, 야구 논문까지 찾아 읽으며 현실감 있는 야구영화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영화 속 주수인처럼 수많은 편견과 싸우며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녹여 생생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영화의 결말에서 주수인이 손에 쥐는 작은 성취는, 세상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감독이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다.

엠스플뉴스는 1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야구소녀’의 최윤태 감독과 만나 데뷔작 소재로 야구를 선택한 이유와 영화 제작 과정의 뒷이야기, 야구를 통해 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첫 장편영화 소재, 꼭 ‘야구’여야만 하는 이유 있었다”

야구소녀 공식 포스터.
야구소녀 공식 포스터.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스포츠 영화, 그것도 야구 영화를 만들었다. 원래 야구를 좋아했나.

굳이 분류하자면 야구를 싫어하지도, 그렇다고 엄청나게 열광적인 것도 아닌 평범한 팬 정도다. 야구장에는 자주 가는 편이다. 주로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많이 본다.

SK와 삼성은 무슨 조합인가(웃음).

고향이 경북 안동이라 어릴 때부터 삼성 경기를 많이 봤다. 그런데 집 근처가 문학야구장(인천SK행복드림구장)이라 정작 자주 직관하는 건 SK 경기다. 가끔 삼성이 서울 원정 오면 잠실에 가기도 하고…그 정도다.

그 정도면 열성 팬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진짜 열성 팬은 우리 영화 촬영감독 같은 사람이다. 그분 정도는 돼야 진짜 열성 팬이다. 그분을 옆에서 보면서 ‘이런 게 열성 팬이구나, 난 아니구나’ 확실히 알았다. 그분이 한화를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회의하다가도 경기 시간이 되면 야구를 꼭 봐야 할 정도다. 덕분에 영화 촬영 과정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야구에 관해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야구 열성 팬이 아닌데 감독 데뷔는 야구 영화로 하게 됐다.

솔직히 야구영화, 스포츠영화로 데뷔할 거라곤 스스로 생각도 못 했다. 그렇다고 스포츠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머니볼’ 같은 영화는 정말 좋아하고, 굉장히 잘 쓴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내가 스포츠 영화를?’하는 생각도 조금은 했었다.

‘야구소녀’는 스포츠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한편으론 여성 캐릭터의 성장물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화 촬영을 시작한 뒤에는 크게 스포츠 영화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 임했던 것 같다.

다양한 스포츠 종목 가운데 야구를 소재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꼭 야구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축구나 농구 같은 경우 여자 종목으로 활성화돼 있는 스포츠인 반면 야구는 아직 그렇지 않다. 또 야구는 팀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개인 종목의 성격도 있다. 사람들이 흔히 야구를 투수와 타자 간 힘 대 힘의 대결로 인식하지 않나. ‘야구소녀’는 그런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다. 그래서 다른 스포츠가 아닌 야구여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준비했다.

대부분 작가와 감독들은 처음엔 자전적인 이야기로 데뷔작을 만든 뒤 점차 이야기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출발한다는 얘기다. ‘야구소녀’에도 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고 봐야 하느냐.

물론이다. 특히 주수인(이주영 역)과 최 코치(이준혁 역) 캐릭터가 나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주수인의 경우 그간 쓴 여러 시나리오 중에 나 자신과 가장 많이 닮은 캐릭터였다. 그래서 더 애정을 갖고 캐릭터를 만들었다. 사실 영화 속에서 수인이가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말들은 그동안 내가 영화계에서 일하며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작업 하면서 감정 이입하는 부분이 많았다.

최 코치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데 실패하고 고교 코치가 된 캐릭터다. 최 코치와는 어떤 점이 닮았나.

코치와 닮은 점도 많다. 나는 코치 캐릭터가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라고 설정했다. 한마디로 실패의 아이콘이다. 내 개인적 경험들, 이를테면 감독 데뷔 준비를 하다가 잘 안 됐던 경험이나 시나리오를 써서 들고가도 상대해주지 않았던 경험, 6개월 지나서 ‘시나리오 보셨냐’고 하면 아무도 읽지 않았던 경험들이 최 코치 캐릭터에 많이 녹아있다.

“야구 진심으로 즐기는 여자 선수들…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 가득”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는 주수인(이주영 역).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는 주수인(이주영 역).


‘야구소녀’에서 ‘야구’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소녀’다. 이 영화는 세상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최근 한국영화를 보면 ‘벌새’ ‘82년생 김지영’ ‘아워 바디’ ‘결백’ 등 여성 캐릭터와 여성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발전한 부분이다. 예전엔 시나리오를 쓸 때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안 된다는 편견도 있었다. 여성이 주인공이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관객들의 성향도 많이 달라졌고, 투자자들의 생각도 달라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선 지금처럼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게 감사한 일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나. 사실 나 같은 성향이 있는 작가들은 남자들만 나오는 남성적인 얘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업계에서 원하면 어쩔 수 없이 써야 할 때도 있는데,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으니까 고마운 일이다. 물론 앞으로 더 발전해 나가고 개선해야겠지만.


어떤 면에선 과거 여자야구 선수들의 처지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영화 준비 과정에서 다양한 여자야구 선수들과 만나 취재했다고 들었다.

대단히 많은 선수와 만났다. 하나같이 좋은 기억뿐이다. 처음 여자야구 선수들과 만나러 갈 땐 마음속 한편으로 두려움도 있었다. 운동하는 분들이라 좀 쎄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실제 만나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야구를 정말로 즐기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

실제 취재하러 가서 봐도, 여자야구 경기장엔 항상 웃음소리가 가득하더라.

남자 선수들과 인터뷰했을 때는 주로 야구가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을 때 오는 좌절감을 이야기하는 분도 많았다. 그런데 여자 선수들은 세상에 야구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게 없다고 하더라. 다들 야구 얘기할 때 너무나 즐거워 보였고, 건강한 에너지와 분위기를 느꼈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원래는 여자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나오는 장면도 찍었었다.

편집에서 잘렸나.

어렵게 출연해주셨는데, 마지막 편집에서 어쩔 수 없이 삭제해야 했다. 영화의 리듬상 그 장면이 들어가면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생겨서 삭제했는데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 싶었는데 편집하게 돼서 아쉽다. 나중에 혹시 DVD라도 만들게 되면 꼭 넣을 생각이다.

여자야구 선수 외에도 다양한 야구계 사람들과 인터뷰한 것으로 안다.

정말 많은 사람과 만났다. 독립야구팀에서 야구하는 분과도 인터뷰했고, 고교야구 선수와도 만났다. 고교야구까지 선수로 뛰다 졸업한 뒤 야구를 그만둔 사람, 프로선수로 활약하다 은퇴한 분과도 만났다.

여자야구 선수 얘길 하자면 안향미 선수 이야길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영화의 아이디어 중에 많은 부분을 안향미 선수에게서 얻었다. 안향미 선수의 이야기라기보단 과거 안향미라는 여자야구 선수가 활약했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보면 ’20년 만의 여자야구 선수 탄생’이라고 주수인을 소개하는데, 여기서 가리키는 20년 전의 선수가 바로 안향미다.

“이주영 캐스팅 운 좋았다…촬영 때도 개봉해서도 배우들 덕 본다”

프로 선수를 꿈꾸다 좌절한 최 코치(이준혁)는 주수인(이주영)의 꿈을 응원하는 조력자다.
프로 선수를 꿈꾸다 좌절한 최 코치(이준혁)는 주수인(이주영)의 꿈을 응원하는 조력자다.

배우 라인업이 화려하다. 주연 이주영을 비롯해 이준혁, 염혜란, 송영규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배우들이 주·조연으로 출연했다.

캐스팅은 내가 배우들을 택했다기보단 배우분들이 우리 작품을 선택해주셨다고 봐야 한다. 캐스팅은 운이 좋았다. 다른 말보단 ‘운이 좋았다’가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이주영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대중들이 이주영 배우를 알게 된 건 최근이지만, 사실 영화 일 하는 사람들은 이미 2012년부터 이주영을 알고 있었다. ‘야구소녀’ 시나리오를 쓰고 캐스팅 작업하면서 연출부와 ‘이주영이 어떨까’ ‘이주영이 어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이주영 배우와 미팅을 하게 됐고, 운 좋게도 이주영 배우가 영화를 선택해줘서 함께 하게 됐다. 나머지 배우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영화 속 이주영 배우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다. ‘완벽한 캐스팅’이란 평가도 있다. 투구 동작 같은 것도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몸을 잘 쓰는 배우인 것 같다.

맞다. 그리 긴 시간을 연습하지 않았는데도 정말 잘 해줬다. 우리는 연습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봤으니까 알지 않나.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잘 해줄 거라고는 기대를 안 했다.


야구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항상 신경에 거슬리는 부분이 그거다. 설정상으로는 ‘메이저리그급 투수’ ‘역대 최고의 강타자’라고 하는데 투구 동작이나 타격 동작은 전혀 그렇지가 않으니까. ‘저 폼으로 어떻게 150km/h를 던지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현실감이 사라지는 거다. 적어도 ‘야구소녀’에 나오는 배우들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 준비하면서 야구가 얼마나 어려운 운동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축구나 농구 같은 다른 운동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았다. 이걸 배우가 하는 데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행히 이주영 배우가 기대보다 훨씬 잘해줬다. 기본적으로 운동 신경이 좋은 배우다. 다른 배우들 역시 기대보다도 잘해주셔서 감사했다.


이주영 배우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이후로 완전 ‘핫’한 스타가 됐다. 드라마 촬영보다 영화 촬영이 순서상 먼저였나.

맞다. 우리 작품은 작년 2월에 촬영이 끝났다. 영화 찍고 훨씬 뒤에 드라마 촬영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지금은 완전히 떠서 캐스팅하기 쉽지 않게 됐다(웃음). 촬영할 때도 배우분들에게 많이 의지하면서 했는데, 영화 개봉해서도 배우들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같다.

‘단점보다 장점’ ‘야구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명대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주수인은 남자 부원들과 함께 고교야구부에서 활동한다.
주수인은 남자 부원들과 함께 고교야구부에서 활동한다.


영화 속에서 주수인은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서 야구를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다. 엄마(염혜란)는 “포기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란 말도 한다. 여기에도 최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나.

실제 내 경험과도 비슷하다. 나 역시도 ‘너는 영화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언어장애가 있었다. 그렇다고 학력이 높은 것도 아니다. 흔히 영화판에서 말하는 ‘한·중·동 영화과 출신(한양대, 중앙대, 동국대+한예종)’이 아니다. 한번은 단편영화 제작 지원을 받으려고 1차 시나리오 심사 통과 뒤 2차 면접을 갔는데 심사위원이 그런 말을 하더라. ‘감독님은 말을 잘 못 하고 소통이 안 돼서 감독을 할 수 없을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좌절했다. 사람들은 내가 시나리오를 통해,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내 약점을 먼저 보는구나 싶었다.


영화에서 최 코치는 수인에게 “단점을 보완하려면 장점을 키워야 한다”고 격려한다. 최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인가.

그렇다. 그 얘길 하고 싶었다. 누구나 장점이 있지 않나. 사람을 볼 때 단점으로 보기보단 장점으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최 감독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 자신이 약자고 소수자다. 약자와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내가 지닌 영화적 장점이라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소외된 인물을 다루고, 약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인 것 같다.


영화에서 주수인이 ‘야구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실제 야구는 키가 아주 작은 사람도, 뚱뚱한 사람도 할 수 있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다른 종목과 차별화된다. 야구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쓴 대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준비하면서 야구 공부를 많이 했다. 논문도 많이 읽었고, 다양한 사람과 인터뷰하고 공부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렇게 야구를 열심히 공부한 이유가 있나.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긴 지 거의 40년이 다 돼가지 않나. 이제 야구는 한국사람들에게 생활의 일부분이 된 지 오래다. 만약 내가 야구를 잘 모르고 영화를 만들면, 엉터리란 걸 보는 사람들이 다 알아챌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고 계속 공부하고, 인터뷰하고 자료를 찾으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주수인처럼 힘든 이들에게 ‘야구소녀’가 위로 되길”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최윤태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최윤태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주수인은 오직 야구밖에 모르고 야구장에서만 행복한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자는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수인에게 어떤 결말을 선사할지 고민됐을 것 같다.

가장 고민했던 게 바로 엔딩이었다. 난 시나리오를 쓸 때 항상 ‘내가 작가로서 주인공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제일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야구소녀’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수인이가 원하는 걸 해줬을 때 과연 행복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고민했다. 한편으로는 ‘그게 수인이가 가장 원하는 거잖아’란 생각도 있었다.

요즘 대중들은 현실을 냉정하게 표현한 이야기보단 차라리 황당무계한 판타지를 더 좋아한다. ‘실제 삶이 이렇게 힘든데 굳이 영화나 드라마에서까지 힘든 현실을 봐야 하느냐’란 심리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야구소녀’는 두 극단 사이에서 적절한 해답을 찾았다고 본다.

영화의 엔딩을 두고 주위에선 ‘이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도 나왔다. 그때마다 난 ‘왜 안 된다고 생각해?’라고 반문했다. 적어도 난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하고 만들었다.

‘야구소녀’는 어떤 사람들이 보면 좋은 영화인가.

어떤 사람들이라기보단 관객들이 ‘야구소녀’를 보는 시간만큼은 편안하고, 즐겁고 위로받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세상엔 주수인 같은 사람이 많다. 수인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 하루하루가 힘들고 매일이 시험 전날 같은 이들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달 중에 다음 작품 아이템을 결정할 참이다. 몇 가지 아이템을 놓고 고민 중인데, 이야기도 다르고 소재도 장르도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란 게 공통점이다. 앞으로도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계속하고 싶다. 그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잘 아는 주제니까.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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