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 8일 오후 ‘자진 사임’ 발표

-시즌 중 구단 최고위층 잦은 간섭으로 심한 스트레스 겪어, 악화한 여론도 부담

-지방 원정 중에 서울 호출, 허민 의장 만난 뒤 다시 지방행 ‘상식 밖 행태’

-손 감독 “차라리 물러나겠다” 엄포에 관계 멀어져…결국 자진 사임 ‘당했다’

8일 자진사임 발표가 난 손혁 키움 감독(사진=엠스플뉴스)
8일 자진사임 발표가 난 손혁 키움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고척]

‘키움이 키움했다’ 10월 8일 오후, 손혁 감독의 전격 퇴진 소식을 접한 야구인들은 하나같이 “키움 히어로즈다운 행태다” “키움이니까 벌일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즌 막판 2위 싸움 중인 팀이 감독을 교체하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키움의 남은 정규시즌 경기는 이날 NC전 포함 12경기. 1위 NC를 따라잡기는 사실상 어려워졌지만, 2위 KT와는 1경기 차로 사정권이다.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뒤 고척 홈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 창단 첫 우승도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 최고 사령탑인 감독을 바꾸는 선택을 할 구단은 없다. 성적 부진이라는 핑계를 댈 수도 없고, 감독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다. ‘감독이 자진 사임했다’는 설명도 상식 밖이다. 만약 2위 경쟁 중인 팀 감독이 정말로 자진 사임했다면 무책임한 선택이고, 향후 지도자 커리어에도 큰 오점이 될 수 있다.

지방 원정 중에 서울 호출, 잇단 현장 간섭…자진 사임 ‘당한’ 손혁 감독

키움 김창현 감독대행(사진=엠스플뉴스)
키움 김창현 감독대행(사진=엠스플뉴스)

실제 손 감독의 퇴진은 감독 본인의 의사보다 키움 구단 최고위층의 강한 압력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손 감독은 지난 시즌 뒤 키움 사령탑으로 임명됐다. 키움 수뇌부는 준우승 감독 장정석(현 KBSN 해설위원)과 재계약 대신 손 감독을 선택했다. 여기엔 허민 구단주, 하송 대표이사와의 개인적 인연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으로는 손 감독이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는 평도 나왔다. 준우승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했다면, 손 감독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선 무조건 첫해부터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또 구단 고위층과 친분으로 임명된 만큼, 거꾸로 구단 고위층의 간섭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손 감독을 향한 성적 압박과 구단의 간섭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했다. 특히 시즌 중반까지 키움이 좀처럼 1위로 치고 올라가지 못하면서, 구단 최고위층에선 감독의 작전과 선수단 운영 등 고유 권한까지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손 감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현장에 대한 월권을 넘어 현장을 무시하는 폭거도 있었다. 손 감독은 최근 지방 원정 시리즈를 치르다, 구단 최고위 인사의 호출을 받고 서울까지 올라가야 했다. 최고위 인사를 만난 뒤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나머지 원정 시리즈를 치렀다. 한창 전쟁 중인 장수를 멋대로 오라 가라 하는 행태는 역사상 최악의 폭군들도 하지 않았던 행태다.

참고로 허민 의장은 장정석 전 감독 시절 장 감독의 포스트시즌 투수 기용을 놓고 축구심판 출신인 임은주 전 부사장과 나눈 대화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허 의장이 임 부사장 면접 당시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 패인이 뭐냐”고 물었고, 임 부사장이 ‘투수 교체 타이밍이 늦은 것 같다’고 답하자 ‘제대로 봤다’고 동의했다는 것이다. 야구 전문가 가운데 당시 패인이 투수교체 타이밍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허 의장은 지난해 경기를 마친 2군 타자들을 불러다 자신이 던지는 너클볼을 치게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현장 야구인과 선수들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평가다.

고위층의 현장 개입이 극에 달하자, 최근 손 감독은 허 의장에게 ‘계속 간섭하면 차라리 내가 물러나겠다’고 단호한 의사를 전했다. 이 과정에서 허 의장과의 관계가 벌어졌고, 손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야구계에 돌기 시작했다.

사임 소식이 알려진 8일 오전 손 감독은 가까운 야구인과 통화에서 “아무래도 오늘 내가 자진 사임 ‘당할 것’ 같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구단은 이날 손 감독에게 경질을 통보했다. 공식 발표에는 “손 감독이 7일 NC전 뒤 김치현 단장과 면담을 갖고 감독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고 돼 있다.

키움 관계자는 “손 감독은 경질이 아닌 자진 사임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감독님의 사임 의사를 어제 경기 끝난 뒤에 들었다. 이전에 그런 의사를 표현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깜짝 놀랐다. 그런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며 “당연히 만류했지만, 감독님 생각이 단호했다.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하더라”고 했다.

보통 자진 사임인 경우엔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키움은 손 감독에게 올 시즌은 물론 내년 시즌까지 잔여 연봉을 지급한다. 이는 손 감독의 퇴진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이뤄졌다는 강력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키움 관계자는 “그게 꼭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올 시즌 취임한 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고, 부상도 있었지만 감독님은 한 번도 불평 불만한 적이 없었다. 감사의 표시로라도 그렇게 해드려야 한다고 (하송) 사장님도 말씀하셨다.” 손 감독은 올 시즌 합계 홈런 2개인 외국인 타자들을 데리고 야구했다. 잇단 주전 부상으로 베스트 멤버를 데리고 야구할 기회도 없었다. 올 시즌 키움의 1위 실패가 현장보다 구단 책임이 더 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손 감독 퇴진으로 남은 시즌 키움 최고위층의 현장 간섭이 훨씬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 키움은 프로선수 출신 코칭스태프 대신 전력분석원 출신인 김창현 퀄리티컨트롤 코치를 감독대행에 임명했다. 키움 관계자는 ‘김 대행이 우승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키움의 호언장담대로 새 사령탑 체제에서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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