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곤 부회장과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 감독. 지금 대중의 요구는 경기력이 아닌 변화와 개혁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호곤 부회장과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 감독. 지금 대중의 요구는 경기력이 아닌 변화와 개혁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10월 15일 자 한겨레신문 인터넷판에 실린 ‘포포투 한국판’ 홍재민 편집장의 글(‘국민 욕받이’ 전락한 축구대표팀, 2002년은 다시 오지 않는다)이 논란이다. 원래 인터넷판 제목은 ‘악플 단다고, 2002년이 다시 올까요?’였다. 기사가 뜬 후, 얼마 후 제목이 수정됐다. 이 기사에 대한 엠스플뉴스의 반론 기사는 다음과 같다.

홍재민 씨의 글은 축구 대표팀과 축구협회를 향해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마치 '장판파'에 선 장비처럼 혈혈단신으로 방어한다. 홍재민 씨의 논리는 이렇다.

'지금 한국 축구를 향한 비난 열기는 도가 지나치다' (언제는 도가 지나치지 않은 적이 있었나?) / ‘헬조선이라는 분노의 광장 한가운데에 못난이 축구를 던져놓고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르는 군중처럼 보인다' ('헬조선 현실 화풀이'를 축구에다 하고 있다는 뜻인가) / '한국 축구에 대한 편견이 확신으로 바뀌어 비난 수위를 높이고, 비난이 비난을 부르고, 또 다른 비난이 보태지면서 이제는 아예 비난 자체를 소비하는 ‘비난 포르노’처럼 변했다' (인터넷 여론의 특성이 원래 그런 것이다.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이고, 축구 대표팀을 향한 국민적 비난 역시 다른 나라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지금 한국 축구에 가해지는 형벌은 죄질(?)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는 게 홍재민 씨의 주장이다.

물론 한국축구를 향한 지금의 비난에 과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일부 누리꾼의 주장 가운데 실제와 전혀 다른 왜곡된 주장도 분명 있을 터다. 평소 축구엔 관심 없던 이들까지 달려들어 축구를 ‘씹어대는’ 광경이 엘리트주의로 가득 찬 ‘축구 전문가’ 눈엔 고깝게 보일지도 모른다.

홍재민의 대중 폄훼, '민중 개돼지론'과 무엇이 다른가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사진=엠스플뉴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사진=엠스플뉴스)

하지만, 홍재민 씨의 글은 기본적인 전제부터 틀렸다. 홍재민 씨는 대중의 광적인 비난 원인을 ‘대표팀의 경기력’에서 찾는다. ‘현 상황의 본질은 간단하다.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이 시원찮아서 팬들이 화가 났다’는 게 홍재민 씨의 현실 인식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은 월드컵 본선 참가에 의의를 둬야 할 실력’이었고, ‘2002년과 박지성을 따라 올라갔던 팬들의 눈높이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한국 축구의 민낯을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며, 따라서 ‘2002년 경기력을 기대하며 한국축구를 비판하는 건 문제’라는 게 홍재민 씨의 주장이다.

놀랍게도 이는 대한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의 인식과 100% 일치한다. 15일 오후 귀국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대표팀이 신뢰를 잃은 가장 큰 이유를 묻자 “‘경기력’이라고 생각한다. 팬들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경기력을 높여야 한다”고 답했다.

이를 본 한 축구해설위원이 한 말은 이렇다. “축구협회를 향한 불신을 논하는데 경기력 얘기나 하고 앉아 있다.” 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경기력은 어디까지나 비판 여론에 불을 붙인 도화선에 불과합니다. 진짜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지며 전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 축구협회의 부패와 독선, 불통, 깜깜이 행정, 현대가의 ‘가문 독재’에 있습니다. 이게 문제인 걸 모두 알면서 지금까지 축구계는 뭘 하고 있었습니까.”

거스 히딩크는 어디까지나 이런 염원을 반영한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축구팬들은 2002년의 경기력을 그리워한다기보단, 2002년 히딩크가 보여준 공정과 서열파괴, 개혁을 보길 원한다. 히딩크를 축구협회가 묵살한 것을 봤을 때 많은 대중이 축구협회가 개혁을 거부한 것으로 여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홍재민 씨의 인식대로 비이성적인 대중이 ‘비난 포르노’를 소비하듯 막무가내로 악플을 쏟아내는 게 아니란 얘기다.

물론 이런 반론이 나올 걸 의식했는지 홍재민 씨도 팬들의 바람이 ‘새로운 변화’란 점을 지나가듯 언급하긴 했다. 홍재민 씨는 “지금 팬들이 현 집행부에 외치는 ‘물러나라’, ‘사임하라’는 요구는 결국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며 그 기대감이 ‘히딩크’라는 이름 석 자로 표현되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을 모셔오라’는 직역이 아니라 ‘획기적으로 변하라’고 번역해야 여론의 진심을 좀 더 정확히 읽을 수 있다”라고 썼다.

하지만, ‘경기력이 비난 여론의 가장 큰 원인’이란 기본 전제엔 변함이 없다.

김호곤 부회장 국감 출석이 '히딩크와 대표팀 경기력 논란 때문'이라는 주장. 본말은 축구협회의 사유화와 온갖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많은 축구팬(사진=축구협회)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많은 축구팬(사진=축구협회)

홍재민 씨는 축구를 잘 아는 엘리트 전문가의 높은 곳에서, 비이성적이고 광기 어린 대중과 여론을 내려다본다. 서두에서 홍재민 씨는 영화 ‘주먹이 운다’를 인용해 한국축구가 마치 별 잘못도 없이 대중의 화풀이 대상이 된 존재인 것처럼 묘사한다. 온갖 사람과 생각이 한 데 뒤섞여 있는 ‘대중’이란 거대한 흐름을, 마치 하나의 단일한 인격체처럼 뭉뚱그린다.

대중의 여론을 비하하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평소 프로축구엔 큰 관심이 없는 이들을 가리키는 멸칭인 ‘FC 코리아 팬’부터,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르는 군중’, ‘비난 포르노’ 등 홍재민 씨가 동원한 표현은 악성 댓글에서 등장하는 표현보다 더 자극적이다.

글의 원제목부터 ‘악플 단다고, 2002년이 다시 올까요?’다. 제목을 필자가 붙였는지 한겨레신문 편집부가 붙였는지 몰라도, 대중의 비판 여론을 ‘악플’이란 두 글자로 가볍게 폄훼하는 기본적인 사실만은 변하는 게 없다. 게다가 이 여론이 일부 악성 댓글의 ‘필요 이상 자극적이거나 선동적인’ 표현에 이끌려 영향을 받는 것처럼 묘사했다.

홍재민 씨의 논리대로라면, 지금의 모든 논란과 비판은 축구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바로 잠잠해질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외치고, 감독을 찬양하고, 축구협회의 온갖 문제는 잊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비판의 원인이 경기력에 있으니, 지금의 모든 비판도 경기력만 좋아지면 사그라지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이는 어떤 공직자가 말한 ‘민중 개·돼지론’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발상이다. 촛불 집회를 마치 선동에 이끌린 ‘넋 나간 우매한 민중’처럼 바라본 일부 야당 인사들 발언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이런 글이 진보 매체인 한겨레신문에 실렸다는 게 믿기 어렵다.

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이 국회에 보낸 국감 불출석 사유서. 일부 축구 언론은 '국감에 증인 출석을 하면 FIFA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써 결과적으로 축구협회에 빠져나갈 구멍을 제공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이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엔 'FIFA'는 고사하고 'F'란 글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이 국회에 보낸 국감 불출석 사유서. 일부 축구 언론은 '국감에 증인 출석을 하면 FIFA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써 결과적으로 축구협회에 빠져나갈 구멍을 제공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이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엔 'FIFA'는 고사하고 'F'란 글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홍재민 씨는 대중의 비판 여론은 비난하면서도, 축구협회의 온갖 문제점은 일부러 축소하거나 언급을 회피한다. 축구협회를 향한 비난이 감정적이라고, 아니면 협회가 그 정도 능력은 없다면서 지나친다. 홍재민 씨는 개인 SNS에서 김호곤 부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소환 소식을 비웃는 발언도 한 바 있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국감 대상이 된 건 단지 히딩크 때문만이 아니다. 국회가 국감 증언대로 김호곤 축구협회 부회장을 부른 건 법인카드 남용, 인사 난맥, 공금 횡령, 특정 업체와의 유착 관계, 현대가 독점 논란 등 각종 의혹에 대한 협회 측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더군다나 김 부회장은 “국감에 출석하면 자칫 FIFA(국제축구연맹)에서 제재가 나올 수 있다”는 논리로 국감을 피해지만, 그가 국회로 보낸 ‘불출석 사유서’엔 이 같은 항변이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물론 홍재민 씨는 법인카드 남용 문제를 ‘조중연 전 회장 시절 일’로 ‘퉁’쳤다. 그러나 이번에 검찰 기소 대상엔 전직뿐만 아니라 현직 임직원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법인카드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뿐, 축구협회가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건 축구계에선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다.

홍재민과 한겨레신문의 놀라운 해석. '엠스플뉴스 탐사보도, 물 들어왔을 때 노 젓고 숟가락 올리는 일?'

홍재민 씨의 글이 실린 10월 15일자 인터넷 한겨레신문 화면. “평소 축구엔 관심도 없던 중합지가 왜 한국축구 칼럼을 실었냐“고 한다면 홍재민 씨와 한겨레신문은 어떻게 답할까(사진=한겨레 화면캡쳐)
홍재민 씨의 글이 실린 10월 15일자 인터넷 한겨레신문 화면. “평소 축구엔 관심도 없던 중합지가 왜 한국축구 칼럼을 실었냐“고 한다면 홍재민 씨와 한겨레신문은 어떻게 답할까(사진=한겨레 화면캡쳐)

홍재민 씨는 축구를 향한 악플 사례를 한참 나열하다, 축구협회 비리를 다루는 언론에 대한 비하로 넘어간다.

‘축구가 뜨거운 감자가 되자 축구 현장에서 만날 수 없었던 매체들까지 달려들어 축구 기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 야구 전문매체는 국내 축구계 문제를 파헤친다며 ‘탐사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언론사의 시장경쟁 본능이 발동하는 것 같다. 지금의 난리 통이 정리된 후에도 그런 댓글과 낯선 숟가락들이 축구 밥상 위에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홍재민 씨의 글이다.

홍재민 씨가 거론한 ‘야구 전문매체’는 엠스플뉴스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엠스플뉴스는 몇 차례 축구 관련 탐사보도를 냈다. 성남 FC 문제, 한국프로축구 선수협회 문제, 이승렬의 ‘20년 노예 계약’ 문제, 김 부회장의 ‘불출석 사유서’ 문제, 모 포털사이트의 기사 배치 등을 취재하면서 보도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취재팀 전원이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탐사보도’란 이름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기존 축구 매체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문제이고,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성실하게 취재해서 기사화했다. 최근 축구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의 보도였고, 보도하게 된 동기도 전혀 ‘물 들어왔을 때’와는 상관이 없었다.

무엇보다 언론사의 보도는 ‘물이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의 천박한 상업적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이 사안이 사회적 공익과 부합하고, 보도 가치가 있느냐’는 언론 본연의 고민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여기다 엠스플뉴스는 홍재민 씨의 생각과 달리 야구 전문매체가 아니다. 축구도 이미 꾸준하게 다뤄왔고, 엠스플뉴스의 모체인 방송사는 K리그 중계권 계약을 체결한 곳이기도 하다.

‘탐사보도’라는 무게감 있는 보도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식으로 폄훼할 일이 아니다. 홍재민 씨의 말처럼 ‘시장경쟁 본능’에 충실하려면, ‘김호곤 졸음 논란’처럼 막무가내로 한국축구를 욕하는 기사를 쏟아내는 쪽이 훨씬 장사가 된다. 뭐하러 시간과 공력을 들여 취재하고, 소송과 각종 압력에 시달리는 탐사보도를 내겠나.

홍재민 씨는 탐사보도를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과 동일 선상에 놓은 뒤, ‘낯선 숟가락’이라 폄훼한다. 미안한 얘기지만, 만약 홍재민 씨 같은 축구계 기득권 언론인이 그동안 축구협회의 각종 문제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야구 전문매체’가 ‘숟가락’을 들이밀 일도 없었을 것이다.

홍재민 씨는 축구계의 문제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비판 보도한 적이 있나? 축구협회와 얼굴 붉힐 생각으로 강도 높게 비판해본 적이 있나? 홍재민 씨에겐 대단한 미안한 발언이나, 있다면 엠스플뉴스가 더 좋은 축구 기사를 보도하는데 참고가 되게끔 알려주면 감사하겠다.

정직하게 말해 축구계 자칭 ‘엘리트’의 수준이 이 정도니, 한국 축구가 지금처럼 국민 욕받이가 되고 아무나 와서 욕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란 게 엠스플뉴스의 생각이다. 양심이 있는 언론인이라면 대중을 향해 비난하고 침을 뱉을 게 아니라, 그간 언론인 역할을 제대로 못 한 자신부터 뼈저리게 반성하고 사죄할 일이다(다행히도 많은 언론이 그렇게 하고 있고, 적지 않은 축구 칼럼니스트가 언론의 기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높은 곳에서 분노한 대중을 내려다보며 폄훼하거나 쌍팔년도 ‘내 나와바리 타령’이 먼저가 아니라는 뜻이다.

홍재민 씨의 글은 엠스플뉴스가 앞으로도 축구계의 각종 문제점을 파헤쳐야 할 이유를 제공해 줬다. 엠스플뉴스는 ‘지금의 난리통이 정리된’ 뒤에도 계속 숟가락을 들고 파헤칠 것이며, 밥상을 엎어버리고 새로운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대중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폄훼하고, 축구계의 문제에는 눈감는 이들이 ‘축구 전문가’를 자처하는 현실이 바뀔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홍재민 씨의 글은 영화 ‘친구’의 대사(‘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해라’)를 인용하며 끝을 맺는다. 엠스플뉴스는 히딩크의 발언을 인용해서 글을 맺겠다. ‘아직도 배고프다’.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

박동희, 김원익, 배지헌, 전수은, 김근한, 이동섭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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