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대학교 실내 빙상장은 '민간이 운영하는 빙상 시설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누구에게나 문을 개방하지 않는다. 한국체대 출신 지도자가 이끄는 클럽팀에게만 문을 열어준다. 많은 빙상인은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 운영의 전권을 쥐고 있다"며 "전 부회장이 이곳을 '한국체대 라인의 거점'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사실일까.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가 빙상계에서 '체대 라인 수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사진=엠스플뉴스)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가 빙상계에서 '체대 라인 수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훈련하기 위해선, 전명규 교수의 허락이 필요하다.” 2월 2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빙상연맹 전명규 부회장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거대 세력의 거점’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체대 소속 선수뿐 아니라, 초·중·고 엘리트 빙상 선수들이 국립대 실내 빙상장으로 모여 훈련한다는 건 큰 문제다.” 3월 19일 엠스플뉴스 성남빙상연맹 권금중 부회장 인터뷰

안민석 의원과 권금중 부회장은 빙상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이들이다. 그런 두 이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한국체육대학교 실내 빙상장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인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를 꼽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두 이 모두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훈련하려면 특정인(전명규)의 허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빙상연맹을 중심으로 전명규 교수를 옹호하는 이들은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과 전 교수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 대표팀 일부 선수가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훈련할 때만 전 교수가 도와줬을 뿐"이라며 "전 교수가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거점으로 '한국체대 라인'을 공고하게 만든다는 것도 모두 낭설"이라고 주장해왔다.

과연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과 전명규 교수는 어떤 관계일까.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일까.

빙상계 인사들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훈련하려면 전명규 허락 있어야"

한국체대 고위 관계자 "전 교수가 원장인 평생교육원이 빙상장 대관 업무 담당"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 관리의 총 책임자는 전명규 교수였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 관리의 총 책임자는 전명규 교수였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빙상전문 실기 담당 교수’. 일반인들에겐 낯선 직함이다. 그러나 한국체대에선 모르는 이가 없는 자리다. 바로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의 보직이다.

한국체대 출신의 실업단 선수는 “빙상전문 실기담당 교수는 한국체대 소속 빙상선수들의 경기력을 총책임지는 자리”라며 “빙상 담당 조교들이 모두 빙상전문 실기담당 교수의 지휘를 받는다”고 귀띔했다.

한국체대 소속 빙상선수들은 교내에 있는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훈련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훈련하는 건 한국체대 선수들만이 아니다. 초·중·고 빙상 학생선수들 역시 이곳에서 ‘미래의 국가대표’를 꿈꾸며 훈련에 몰두한다.

엠스플뉴스가 만난 다수의 빙상계 인사는 “한국체대에서 훈련하는 초·중·고 엘리트 학생 선수들의 훈련 관리를 전명규 교수가 책임진다”고 증언했다. 안민석 의원 역시 라디오 방송에서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훈련하기 위해선 전명규 교수의 허락이 필요하다”란 말로 전 교수를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의 총책임자로 지목했다.

사실 확인 차 한국체대에서 취재를 진행하던 엠스플뉴스 취재진은 학교 고위 관계자로부터 “민간에 개방하는 학교 체육시설은 ‘평생교육원’이 담당한다”는 얘길 들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우리 대학 선수가 아닌 외부 초·중·고 빙상 학생선수들은 실내 빙상장에서 훈련할 시 평생교육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체대 평생교육원은 체육 전문지도자 연수와 민간 대상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곳이다. 평생교육원이 학교 외부인들(민간)에게 개방하는 학교 시설은 모두 7개로, 이 가운덴 실내 빙상장도 포함돼 있다.

엠스플뉴스는 학교 고위 관계자에게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 훈련 허가권을 쥔 평생교육원장이 누구”인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전명규 교수”였다.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 안에 있는 평생교육원 사무실

한국체대 평생교육원 홈페이지에 명시된 조직도. 조직도엔 전명규 교수가 평생교육원장이라고 적혀있다(사진=한국체대)
한국체대 평생교육원 홈페이지에 명시된 조직도. 조직도엔 전명규 교수가 평생교육원장이라고 적혀있다(사진=한국체대)

엠스플뉴스는 한국체대 평생교육원을 찾아가 '초·중·고 클럽팀 빙상선수들이 교내 실내 빙상장을 대관해 훈련하려면 평생교육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물었다.

평생교육원 관계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계획된 민간 교육 프로그램만을 운영한다. 초·중·고 클럽 선수들의 개인 교습은 평생교육원 수업과는 별개로 진행되며, 대관 허가도 학교 훈련처에서 담당한다”고 밝혔다.

'평생교육원이 실내 빙상장 대관을 담당한다'고 알려준 한국체대 고위 관계자와는 다른 설명이었다.

엠스플뉴스 취재진은 곧바로 한국체대 훈련처를 찾아 사실관계를 알아봤다. 훈련처 관계자는 “초·중·고 클럽 선수들이 교내 실내 빙상장을 대관해 개인 교습을 진행하려면 훈련팀장과 훈련처장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평생교육원은 실내 빙상장 대관과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실내 빙상장 관리사무소 실무자 역시 “빙상장 대관에 전명규 교수의 영향력이 미칠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 내부에 위치한 평생교육원 사무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 내부에 위치한 평생교육원 사무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한 제보자는 “빙상장 관리사무실소와 평생교육원장실의 들어가는 문이 같다”는 얘기를 들려줬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한 제보자는 “빙상장 관리사무실소와 평생교육원장실의 들어가는 문이 같다”는 얘기를 들려줬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학교 관계자들끼리 말이 다른 상황. 엠스플뉴스는 추가 취재 중 학교 내부인인 A 씨로부터 한 가지 제보를 받았다. “실내 빙상장 대관은 사실상 전명규 교수가 결정하며, 모두 전 교수 눈치를 보느라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제보였다. 이 제보자는 “평생교육원장실을 가보면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평생교육원은 실내 빙상장 안에 있었다. 그러나 '전명규 평생교육원장실'은 평생교육원 안에 없었다. 한 시간을 헤매던 엠스플뉴스 취재진에게 학교 보안 담당자는 "평생교육원장실이 빙상장 관리사무소 안에 있다"는 뜻밖의 얘길 들려줬다.

실제로 취재진이 빙상장 관리사무소 안에 들어가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이 방이 전명규 평생교육원장의 사무실"이라고 안내했다.

제보자 A 씨는 "빙상경기연맹 부회장, 교수, 평생교육원장을 겸직 중인 전명규 교수는 한국체대에선 총장만큼이나 힘이 센 사람이다. 이런 분이 빙상장 관리사무소 안에서 업무를 보는데, 어느 대관 담당자가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겠느냐”며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 운영의 전권을 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전명규 교수”라고 주장했다.

빙상인들 "국립대 실내 빙상장이 한국체대 출신 지도자들에게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과 평생교육원 사무실은 공교롭게도 같은 건물에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과 평생교육원 사무실은 공교롭게도 같은 건물에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한국체대 빙상선수들의 실기수업과 경기력을 진두지휘하고, 교내 실내 빙상장 민간 대관 업무까지 총책임지는 이가 '전명규 교수'라면 이는 허투루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왜 그럴까.

일전 성남빙상연맹 권금중 부회장은 엠스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명규 교수가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거대 세력의 거점’으로 만들려 한다”고 지적했다. 엠스플뉴스 취재진과 만났던 실업 빙상단의 한 지도자도 비슷한 얘길 들려줬다.

“빙상인들은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거점으로 한 ‘한국체대 라인’의 가장 윗선으로 전명규 교수를 꼽습니다. 한국체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클럽팀 코치 대부분이 전명규 교수와 관계가 깊다고 보는 빙상인이 많아요. 만약 전명규 교수가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의 총책임자라면, 그리고 전명규 교수와 가까운 클럽 지도자들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게 맞다면,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한국체대에서 훈련하는 엘리트 학생선수들은 전명규 교수가 이끄는 '한국체대 라인'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빙상 클럽팀 감독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대관해 초, 중, 고 선수들을 지도하려면 반드시 한국체대로부터 이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한국체대 출신 클럽팀 감독들에게만 이용 허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개인 교습으로 영리 활동을 하는 6명의 클럽팀 감독은 전원 한국체대 출신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빙상 클럽팀 감독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대관해 초, 중, 고 선수들을 지도하려면 반드시 한국체대로부터 이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한국체대 출신 클럽팀 감독들에게만 이용 허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개인 교습으로 영리 활동을 하는 6명의 클럽팀 감독은 전원 한국체대 출신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취재 중 만난 많은 빙상 선수와 학부모는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이 국립대 시설임에도 문호가 일부에만 개방돼 있다”며 “그 ‘일부’가 한국체대 출신들인 게 문제”라고 목소릴 높였다.

실제로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현재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대관해 초·중·고 선수를 가르치는 클럽팀 지도자 6명 모두가 한국체대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 지역에서 빙상 클럽팀을 운영 중인 B 씨는 “한국체대 출신이 아니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을 사용할 수 없다. 아예 대관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며 “비(非) 한국체대 출신 빙상 지도자들에게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은 ‘거대한 장벽으로 가려진 그들만의 비밀 무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목소릴 높였다.

+ 취재 후 : 한국체대에서 만난 전명규 교수는 엠스플뉴스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미안하다”며 거절 의사를 나타냈다.

이동섭 기자 dinoegg509@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