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국제도핑검사관 박주희 국장. 많은 이는 그를 '한국 스포츠계의 강경화'라고 부른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처럼 박주희 국장 역시 국제 경험이 풍부하고,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능력을 인정하는 여성 도핑 행정가이기 때문이다(사진=엠스플뉴스)
국내 1호 국제도핑검사관 박주희 국장. 많은 이는 그를 '한국 스포츠계의 강경화'라고 부른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처럼 박주희 국장 역시 국제 경험이 풍부하고,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능력을 인정하는 여성 도핑 행정가이기 때문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틀을 깨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봐요."

9월 28일 취업 준비생들이 '스포츠 업계 취업 문'을 두드린 2017 스포츠잡페어 현장에서 만난 '도핑 전문가' 박주희 국제스포츠재단 사무국장이 한 말이다.

'한국 1호 국제 도핑검사관'인 박주희 국장은 국제 도핑계에선 전설적인 인물이다. 2007년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도핑검사관 자격을 취득한 뒤 처음 도핑과 인연을 맺은 박 국장은 2008년 2월 KADA에서 국제협력담당으로 첫 국제업무를 시작했다.

박 국장은 이어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도핑관리담당관, 2013년 인천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OCA) 국제의전팀장,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도핑관리팀장 등을 두루 맡으며 '차세대 국제 도핑 전문가'로 발돋움했다.

박 국장은 이후 OCA 반도핑위원, 세계도핑방지기구(WADA)에서 교육위원으로 활약하며 다양한 국제 경험을 쌓았다. 엠스플뉴스가 한국 스포츠 행정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엘리트 전문가'인 박 국장을 만나 생소한 분야인 도핑과 국제스포츠에 대해 물었다.

한국 최초 1호 도핑검사관, 세계 최고의 도핑전문가가 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활동한 박주희(사진=엠스플뉴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활동한 박주희(사진=엠스플뉴스)

도핑, 생소한 분야입니다. 어떻게 처음 도핑과 만나게 된 겁니까.

대학원 다닐 때 제 전공이 특수체육이었어요. 한국휠체어농구연맹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는데, 2006년 11월 무렵 KADA가 설립됐죠. 2007년부터 KADA에서 도핑관리를 위해 도핑검사관 양성을 시작했죠. 이때 KADA에서 장애인 체육과 비장애인 체육을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해서 제가 도핑검사관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됐어요. 그게 도핑과의 첫 만남이었어요(웃음).

그때까지 도핑과 관련해선 문외한이었군요.

그렇죠. 체육 전공자였지만, 도핑을 전혀 몰랐어요. 당시에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여기(스포츠잡페어) 오신 분들처럼 저도 '어떤 일을 할까'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도핑과 만나게 됐고,교육과 인증과정을 통과한 후 도핑검사관으로 현장에 나가게 됐어요.

그때가 언제입니까.

2008년 1월 KADA에서 공개채용이 있었어요. 대학원 졸업과 함께 유학을 준비하던 때였어요. 우연히 모집공고를 보고서 '한번 도전해볼까'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채용에 응시했죠. 그러다 운 좋게 뽑히게 됐고, 도핑검사관이면서 직원까지 됐어요.

일은 어땠습니다.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웃음). 행정업무 보면서 도핑검사도 하러 다녔죠. 업무는 솔직히 집에 제대로 들어갈 시간도 없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뭐랄까. 출근이 '막' 기다려졌다고나 할까요? 정말 신나게 일했어요.

뭐가 가장 신났습니까.

도핑은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반드시 필요한 검사에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 접하기 어려운 종목들을 직접 볼 수 있었고,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주말이나 공휴일에 데이트보다 지방대회 출장을 가는 게 더 기다려질 정도였어요(웃음).

도핑검사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핑검사관, 간략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시죠.

도핑 검사는 페어플레이를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선수들이 퍼포먼스를 위해 금지약물을 복용하면 그 자체가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도핑은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로 나뉘는데, 소변검사를 기본으로 합니다. 경기 중 검사하거나 경기 기간이 아닐 때도 수시로 검사하곤 하죠. 소변(혈액)을 채취하면 분석을 위해 샘플을 도핑컨트롤센터에 보내요. 거기까지가 도핑 검사관의 임무입니다. 아, 도핑방지 교육활동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국제경험은 어떻게 쌓기 시작한 겁니까.

정말 시기적으로 운이 좋았어요. 한국에 KADA가 생긴 이유가 뭔지 아세요?

도핑방지를 위해서 아닙니까.

당연히 그렇죠. 가장 큰 이유는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였어요. 제가 KADA 입사 후 첫 번째로 맡은 업무가 정부 간 회의였어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스포츠 도핑방지 정부 간 회의 진행을 맡게 거예요.

OCA 반도핑 위원회 회의. 사진 맨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박주희 국장이다(사진=엠스플뉴스)
OCA 반도핑 위원회 회의. 사진 맨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박주희 국장이다(사진=엠스플뉴스)

큰 임무였군요.

맞아요. 여러 나라가 세계도핑방지기구(WADA)에 분담금을 내고서 도핑방지를 위해 활동합니다. 이 회의에서 "아시아 지역에서도 국제 도핑검사관을 육성해 도핑검사를 진행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이때 회의를 진행했던 제가 운 좋게 국제 도핑계로 진출할 수 있었어요.

KADA에 다른 국제협력 직원은 없었습니까.

당시 팀원이 저 혼자였어요. 덕분에 세계에서 활동 중인 도핑 관련 인사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어요. 도핑에 입문하자마자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생긴거죠(웃음). 제가 국제업무를 담당했던 첫 대회가 바로 2008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비치 아시아경기대회'였어요. 지금도 그때 만난 분들과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해요(웃음).

2008년 비치 아시아경기대회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국제대회에 참가한 것으로 압니다.

(고갤 끄덕이며) 2009년 12월 KADA에 사표를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국제 활동을 시작했어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석했고, 2011년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도핑 담당관으로 활동했어요. 모든 아시아대회 및 올림픽, 세계대회에 다닌 셈이에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와 광주 U대회도 거쳤으니 10년간 국제무대에서 활동했네요(웃음).

박주희 "준비는 철저히, 일은 즐겁게, 결과보단 과정에 올인"

국제 스포츠 회의에서 많은 IOC 위원 앞에서 연설하는 박주희 국장(사진=엠스플뉴스)
국제 스포츠 회의에서 많은 IOC 위원 앞에서 연설하는 박주희 국장(사진=엠스플뉴스)

상투적인 표현 하나 쓰겠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요. 10년의 세월 동안 느낀 게 참 많겠습니다.

처음엔 정말 멋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그러다 점차 흥미를 느꼈죠. 한국에서 처음 시작하는 분야에 참여했다는, 개척자 정신 같은 게 있었어요. 운 좋게 기회를 계속 잡은 거죠. 현장에서 느꼈던 게 정말 많은데.

네.

이론적인 공부를 많이 했지만, 현장에 나가 보니 무엇이 부족한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가령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해야 하는지 절실히 깨달았어요. 제가 이 분야 개척자이기 때문에 제가 기반을 닦아놔야만 했거든요. 한국 도핑이 가야할 길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운이 좋아 어느 정도는 제 역할을 해오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운도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이 준비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정말 일이 너무 즐거웠어요. 빨리 출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죠. 맞아요.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순 없는 것 같아요. 그랬기 때문에 다양한 준비도 할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단순하게 이력서에 경력 한 줄 적으려고 자격증을 취득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정말 업무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실천에 옮겼던 것 같아요.

잡페어 현장에서 보면 열정만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 구직자가 많은 듯합니다.

안타까운 점이 많아요. 얼마 전 중·고교생들을 상대로 스포츠 멘토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스포츠쪽으로 취업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아세요?

글쎄요.

체육 선생님 혹은 운동선수만 생각해요. 스포츠와 관련해 얼마나 다양한 분야가 있고, 국제연맹에서도 얼마나 많은 부서가 있는지 잘 몰라요. 그러다 보니 취업 준비생과 업체, 협회 사이에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미스매치?

취업 준비생은 분야를 잘 모르다 보니 안정적이고 틀에 박힌 분야에만 도전하게 돼요. 정작 사람이 필요한 업체는 사람을 구할 수가 없는 현실이에요. 전 이 간극이 좁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정말 넓어요. 어쩌면 스포츠 현장을 누비는 사람들의 잘못도 크다고 봐요.

어떤 잘못인가요.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정보와 다양한 조언을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소개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많은 정보 공유가 될 테니까요.

"도핑 매력요? '페어플레이 수호가 아닐까요?"

2017년 투르크메니스탄 실내·무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업무 중인 박주희(사진=엠스플뉴스)
2017년 투르크메니스탄 실내·무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업무 중인 박주희(사진=엠스플뉴스)

얼마 전 투르크메니스탄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2017년 투르크메니스탄 실내·무도 아시아경기대회와 OCA 회의가 있어 다녀왔어요.

어떤 자격으로 방문한 건가요.

2015년 WADA 교육파트에서 활동하면서 도핑방지를 위한 E-북을 만드는 데 참여했어요. 앞으로 국제 도핑계가 어떤 방향으로 도핑방지 교육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수립하는데 옵저버로 활동했어요. 이후 국제스포츠무대에서 제 전문성을 인정해 2016년 국제크라쉬연맹이 창설될 때 '의무도핑위원장직'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투르크메니스탄에 다녀오게 됐어요.

'크라쉬'라, 처음 듣는 종목인데요.

우즈베키스탄 전통 무예인데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 OCA 수장이 명예위원장으로 있어요. 국제스포츠로 도약 중인 신생스포츠죠. 이번 회의에서 결정된 게 있다면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크라쉬가 공식종목으로 채택됐다는 거예요.

국제적으로 많은 반도핑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박 국장처럼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일단, 국내에서 활동해야 국외에서도 활동할 수 있어요. KADA에서 자격을 받고, 국내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으면 국제대회 참가 추천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기회를 잡고,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면 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필요하게 만들고, 나를 찾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맺은 소중한 인연을 절대 놓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요. 전 세계 누구나 사람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더라고요. 언제나 진심과 노력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반도핑의 매력, 한 가지만 꼽아주시죠.

(웃으며) 음. 페어플레이를 수호하는 행위? '스포츠계의 경찰'이라고들 하는데 그런 역할도 있고요.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해주는 게 무엇보다 큰 매력이라고 봐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네요.

그게 뭔가요.

프로와 아마추어 그리고 장애인까지 모든 스포츠를 아우른다는 점이 제일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강윤기 기자 stylekoo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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