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여자 사이클을 홀로 이끈 선수가 있다. 바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전국체전 5관왕에 빛나는 나아름이다. 여자 사이클에서 최초의 길을 닦고픈 나아름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나아름은 성인이 된 2009년부터 여자 사이클의 대들보로 맹활약을 펼쳤다. 2017년에도 전국체전 5관왕으로 반등에 성공한 나아름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나아름은 성인이 된 2009년부터 여자 사이클의 대들보로 맹활약을 펼쳤다. 2017년에도 전국체전 5관왕으로 반등에 성공한 나아름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사이클 여제요? 제가 그런 얘길 들어도 되나요(웃음).”

대한민국에서 사이클은 소위 말하는 ‘비인기’ 종목이다. 사이클의 세부 종목이 어떤 방식으로 나뉘는지도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이렇게 아시안게임 혹은 올림픽 때나 잠깐 주목받는 사이클에서 그것도 여자 선수라면 더 힘든 고난의 길이 기다린다. 그 고난의 길을 최초라는 영광의 길로 닦고자 하는 ‘한국의 사이클 여제’가 있다.

그 선수는 바로 상주 시청 소속의 나아름이다. 나아름은 학창 시절부터 사이클 선수로서 굵직한 이정표를 만들어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국체전 4관왕을 차지한 나아름은 2009년 성인이 되자마자 국가 대표팀으로 바로 발탁됐다.

일찌감치 국내에서 적수(敵手)가 없었던 나아름은 국제무대로 도전의 장을 넓혔다. 사이클 세계 선수권과 사이클 월드컵, 그리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경험한 나아름은 2011년 사이클 트랙월드컵에서 한국 여자 사이클 최초로 포인트 경기 금메달을 획득했다. 기세를 이어간 나아름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도로독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만, 올림픽은 여전히 나아름에겐 끝없는 도전의 대상이다. 아직 한국 여자 사이클에서 올림픽 메달이 나온 역사는 없었다. 나아름은 2012 런던 올림픽(개인 도로 13위)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30위)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여자 사이클에서 최초의 길을 닦고 싶은 나아름은 조심스럽게 2020 도쿄 올림픽을 향한 꿈을 내비쳤다. 후배들이 걸어갈 길을 닦기 위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단 나아름의 한 마디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전국체전 5관왕, 적수가 없는 사이클 여제

2017년 제98회 전국체전에서 나아름은 개인 통산 최초 사이클 5관왕에 올랐다(사진=나아름)
2017년 제98회 전국체전에서 나아름은 개인 통산 최초 사이클 5관왕에 올랐다(사진=나아름)

10월에 열린 제98회 전국체전에서 5관왕(3km 개인 추발·4km 단체 추발·25km 개인 도로 독주·개인 도로 단체·개인 도로)을 달성했다. 대단한 성적이다(웃음).

너무 과찬이다(웃음). 4관왕까진 해봤는데 5관왕은 나도 처음이다. 아버지께서 “우리 딸 업어주고 싶은데 언제 오냐”고 하셨다. 예전부터 말씀은 많이 안 하셨어도 이번엔 ‘그만큼 좋아하시는구나’라고 느꼈다. 최근 휴가로 집에 잠시 다녀왔는데 아버지께서 진짜 업어주셨다(웃음).

(개인추발은 두 팀에서 각 1명씩 나와 2명의 선수가 트랙의 중앙에 위치한 본부석 출발선과 반대편 출발선에서 각각 출발해 서로 추월을 시도하는 경기로 결승선에 도착한 기록이 빠른 선수가 승리한다. 단체추발은 4명이 한 팀이 된 뒤 총 두 팀이 서로 상대 팀을 추월하는 경기다. 팀에서 세 번째 선수의 앞바퀴가 결승점에 도착한 시간으로 승부가 갈린다. 개인 도로는 일정 거리(여자는 보통 100km~140km)를 정해 개인 선수만 참가토록 하는 마라톤과 같은 경기다. 도로 독주는 안전하고 완전한 표지판이 있는 도로에서 경기를 펼치며 개인 도로보다 짧은(여자는 보통 20km~30km) 코스다)

아버지께서 정말 뿌듯하셨을 것 같다(웃음).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사이클 선수 생활을 밀어주셨나.

사실 사연이 있다. 우리 가족을 설명하면 첫째 오빠와 둘째 언니, 그리고 나랑 동생 이렇게 4남매다. 둘째 언니가 가장 먼저 사이클을 시작했는데 첫째 오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사이클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신 조건이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내가 같이 사이클을 시작한다면 첫째 오빠도 사이클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조건에 넘어간 건가(웃음).

그때 아버지께서 “오빠가 사이클을 하려면 너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마음에 오빠를 도와주려고 ‘조금만 하고 그만둬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사이클을 타보니 너무 재밌더라(웃음). 솔직히 나는 내가 사이클에 재능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운동선수라면 타고나는 게 분명히 있을 텐데.

내가 체격 조건이 큰 것도 아니다. 다만, 정신력 하나는 잘 키운 것 같다. 부모님께서 벼농사를 하시는데 고향 집이 산 중턱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달리기경기를 자주 했다. 게다가 학교랑 거리도 30분 정도였는데 매일 걸어 다녔다. 그런 덕분인지 근육의 질이 좋단 얘길 많이 듣는다.

학창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편이었나.

(고갤 내저으며) 솔직히 중학교 때는 사이클을 못 했다. 계속 2등만 하다가 고등학교를 올라오면서 무언가 혈이 뚫렸다(웃음). 전국체전에서 3관왕이나 4관왕으로 좋은 성적이 계속 나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인 대표팀도 뽑혔는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합류가 무산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뒤에도 파죽지세였다. 성인이 된 2009년부터 곧바로 대표팀으로 뽑혀서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2009년 사이클 트랙 월드컵부터 국제 대회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갔는데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광저우의 눈물을 닦아준 인천의 금메달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나아름의 아팠던 마음을 완벽하게 치유했다(사진=나아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나아름의 아팠던 마음을 완벽하게 치유했다(사진=나아름)

안타까웠던 낙차 사고 말인가.(나아름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20km 포인트 경기 결승에 출전해 2위로 달리던 상황에서 앞서 있던 홍콩 선수와 부딪혔다. 이 충격으로 자전거에서 굴러떨어진 나아름은 메달 획득 기회를 놓쳤다)

(얼굴을 찡그리며)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넘어졌다. 코앞에서 메달을 놓쳤단 생각에 그저 눈물만 흘렸다. 돌이켜보면 너무 어린 나이였다. 생각이 성숙했다면 더 빨리 털고 일어났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그 계기로 마음을 더 독하게 먹었다.

(포인트 경기에선 24명(250m 트랙)의 선수가 출발 전, 출전 선수 그 절반은 가드 레일을 잡고 나머지 선수들은 스프린트 레일에 일렬로 서서 동시에 출발한다. 출발은 한 바퀴를 돈 후에 플라잉 스타트로 실시한다. 보통 남자는 40km, 여자는 24km를 주행하는 가운데 250m 트랙에서는 10바퀴(333m 트랙은 6바퀴마다)마다 스프린트로 1~4위까지 순위를 정한다. 1위 5점·2위 3점·3위 2점·4위 1점을 부여한다. 메인 그룹을 한 바퀴 이상 추월한 선수는 20점을 획득한다)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결과는 대단했다. 2011년 사이클 월드컵에서 여자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가장 자신감이 넘친 시기였다. 유럽 선수들도 잘하는데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니까 잘할 수 있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금메달을 따보니 ‘이 정도면 앞으로 해볼 만하다’라는 마음이 생겼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도로독주에서 따낸 금메달도 큰 성과였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솔직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하루하루를 훈련이 아닌 실전이라는 마음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육체적인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약이 없더라.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서야 그 아픔이 그나마 치유됐다.

아픔을 치유하게 한 금메달이 목에 걸리는 순간 느낌은 어땠나. 부모님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 전까진 잘 몰랐다. 부모님이 나를 향해 표현을 잘 하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을 땐 너무 좋아하셨다(웃음). 그 순간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버티는 힘이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나름 철이 들었다고 보면 되는 건가(웃음).

나이가 먹으니까 확실히 느껴진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경기장에 오시는 게 싫어서 짜증 내고 빨리 가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고갤 살짝 떨구며) 그런 게 많이 후회된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선수 생활을 할진 모르겠지만, 이젠 부모님께 먼저 다가가 경기장에 오시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웃음).

언니의 은퇴와 슬럼프, 그리고 아쉬움 남은 리우

최악의 슬럼프을 겪은 나아름은 상주 시청 이적이라는 변화를 택했다(사진=나아름)
최악의 슬럼프을 겪은 나아름은 상주 시청 이적이라는 변화를 택했다(사진=나아름)

좋은 얘기만 하다가 갑자기 우울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선 개인 도로 부문 30위에 그쳤다. 아쉬움이 꽤 컸을 듯싶다.

솔직히 부담감이 정말 컸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13위를 했으니까 그것보다 더 잘할 거란 바깥의 기대가 너무 무서웠다. 차라리 런던 올림픽 때처럼 첫 경험이면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설레고 부담이 덜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한 마디로 사이클 인생 최대의 슬럼프가 왔다.

같이 사이클 선수 생활을 하던 언니가 2015년 은퇴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고 들었다. 서로 큰 힘이 됐었을 텐데.

(잠시 침묵 뒤) 어렸을 때부터 같은 선수 생활을 한 언니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다. 운동하다가 힘들면 무조건 언니에게 달려갔다. 언니도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언니가 사이클을 그만둔 뒤 같이 밤마다 울었다. 공교롭게도 슬럼프와 맞물리면서 더 마음이 심란했다.

음.

‘나도 운동을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모든 걸 놓아버린다고 생각하니 진짜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싶단 의욕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변화도 필요했다.

인생에선 변화가 필요할 때가 꼭 찾아온다. 2017년 초 팀 이적(삼양사->상주 시청)으로 전환점을 만들었다.

사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고 싶었다. 팀 이적이 그 변화였다. 신기하게도 팀을 옮긴 뒤 일이 술술 잘 풀리기 시작했다(웃음). 올해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5관왕도 해보고, 최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한국 신기록(3km 개인추발·3분 38초 228)까지 달성했다.

‘개척자’ 나아름 “앞에서 쉬지 않고 달리겠다.”

여전히 달려야 할 길이 많이 남은 나아름이다(사진=나아름)
여전히 달려야 할 길이 많이 남은 나아름이다(사진=나아름)

국가대표로서 훈련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9월 공식적으로 개촌 한 진천선수촌의 시설도 훌륭해 보인다. 특히 사이클 실내 경기장인 벨로드롬을 직접 사용해보니 어떤 느낌인가.

솔직히 아쉬운 점이 한 개 있다.

무엇인가.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시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말이다. 훈련 여건이 정말 좋아졌다. 국제 대회 환경이랑 똑같아졌다. 그 전엔 국외로 나가면 경기장 적응에 바빴다. 이젠 그런 걱정은 없으니까 더 마음 편하게 준비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욕심도 더 생겼다.

진천선수촌에 만들어진 실내 사이클 경기장인 벨로드롬(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진천선수촌에 만들어진 실내 사이클 경기장인 벨로드롬(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욕심이라. 당장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도 있지만,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사상 첫 여자 사이클 올림픽 메달도 노려야 하지 않겠나.

가장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해서 정말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만회하고 싶다. 일단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최우선 목표다. 그리고 그다음 2020 도쿄 올림픽을 생각하겠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선 과거의 나아름이 그랬듯 젊은 후배들과의 경쟁도 이겨내야 한다.

주위에서 나이(1990년생)를 생각하면 올림픽은 어렵지 않겠냐는 얘길 많이 듣는다. 그래도 나는 욕심이 있다. 아니 내가 꼭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진짜 열심히 하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거다. (목소릴 높이며) 누구보다도 안 뒤처질 자신이 있다. 또 사이클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올림픽 메달이 절실하다.

어떤 의미인가.

내가 먼저 길을 만들어놔야 후배들이 편안할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앞에 길이 없는 상태로 달려왔다. ‘내가 개척했다’라는 표현은 조금 오버일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여자 사이클에서 최초라는 길을 닦아온 자부심은 있다. 어린 선수들이 나보다 편안하게 사이클이라는 길을 따라올 수 있도록 앞에서 열심히 달리고 싶다.

여전히 달려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 같다. 나아름이 느끼는 사이클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달리는 자전거 위에선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든다. 그저 내 다리와 내 호흡, 그리고 기록만 머릿속으로 떠올리려고 한다. ‘힘드니까 더 힘들게 타보자’, ‘지금 쉬지 말자’,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젠 등수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서 사이클을 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더 좋은 결과가 따라오더라. 처음 사이클을 접했던 학창 시절처럼 여전히 사이클이 재밌다. 자전거를 타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중독이다(웃음).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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