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사진=엠스플뉴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러시아 도핑 스캔들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2월 5일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러시아 선수단의 평창 올림픽 출전을 금지하는 징계를 확정 발표했다. 국가가 주도해 조직적으로 자국 선수들의 도핑에 개입한 충격적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러시아 도핑 스캔들은 2014년 11월 독일 공영방송 ARD가 방영한 도핑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됐다. 러시아 반도핑기구(RUSADA) 검사관 출신 비탈리 스테파노프와 러시아 육상 국가대표 출신인 아내 율리야 스테파노바는 이 다큐에서 러시아 정부가 국가대표 선수들의 금지약물 사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가 대표 선수들에 금지약물을 투여하는 것은 물론, 이 사실이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되지 않도록 샘플 조작 및 은폐까지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러시아 선수들이 10대 때부터 금지약물을 사용한다는 충격적인 폭로까지 나왔다.

이후 캐나다 법학자 맥라렌이 이끈 세계반도핑기구(WADA) 위원회는 러시아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30개 종목에서 자국 선수 1000명의 도핑 결과를 조작했다고 폭로했다.

WADA는 2016년 10월 러시아 육상 선수들의 도핑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한 의혹은 물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도 국가 주도의 도핑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2012 런던올림픽, 2013 모스크바세계육상선수권대회, 심지어 패럴림픽까지 국가 주도 도핑을 자행했다.

보고서가 폭로한 러시아의 도핑 회피 수법은 첩보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까지 동원됐다는 점에서 그대로 첩보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러시아는 출전 선수의 깨끗한 소변 샘플을 미리 받아놓고 냉동 보관했다. 이후 선수가 도핑을 한 채로 경기를 뛰고 나서 샘플을 제출하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구 KGB) 요원이 러시아 반도핑기구(RUSADA) 연구소에 잠입해 이 샘플을 냉동 보관한 깨끗한 샘플과 바꿔치기했다.

정보기관 요원은 RUSADA에 잠입할 때 배관공으로 위장하고 샘플 보관소 옆에 있는 방에서 대기했다. 연구원들도 한 패였다. 이들은 벽에 뚫린 구멍으로 FSB 요원에게 약물 샘플을 전달하고 바꿔치기하는데 협력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수법은 모스크바 올림픽연구소의 소장인 그레고리 롯첸코프의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자세히 드러나 있다. 롯첸코프는 이 기사에서 2014 소치 올림픽 당시 금지약물 3가지를 섞은 칵테일을 선수들에게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흡수력을 높이고 검출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남자 선수의 약물에는 시바스 리갈 위스키를, 여자 선수에겐 마티니 베르무트를 섞어 칵테일을 제조했다. 러시아에선 이 술을 ‘귀부인'(Duchess)'이라는 암호로 불렀다.

롯첸코프는 자신이 이 칵테일을 최소 15명의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선수에게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자신이 도핑 회피를 도와준 선수 중에는 소치올림픽 봅슬레이 2관왕 알렉산드르 줍코프, 크로스컨트리 금메달리스트 알렉산드르 렉코프, 스켈레톤 금메달을 딴 알렉산드르 트레치야코프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WADA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은폐된 도핑 양성반응 샘플만 30종목 580개에 달한다. 또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맥라렌 교수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으로, 실제 도핑의 규모가 더 광범위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IOC가 도핑 사실이 적발된 ‘개인’에 대한 제재를 넘어, 러시아라는 국가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한 배경이다.

러시아의 평창 출전금지가 현실화된 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정치화하려고 시도했다(사진=MBC)
러시아의 평창 출전금지가 현실화된 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정치화하려고 시도했다(사진=MBC)

한편 러시아의 출전 금지가 현실화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흥행에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는 동계 스포츠의 세계적 강국으로 통한다. 세계랭킹 1, 2위 선수가 대부분 러시아 국적이다. 개인 자격 출전은 허용된다고 하지만, 대회 전반에 대한 관심도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도핑 전문가는 “흥행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한국 도핑에 끼칠 파급효과”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도핑 방지 시스템이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스캔들 여파로 이미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전 대회보다 훨씬 강화된 도핑 테스트를 시행하고 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국제경기연맹(IF)과 국가반도핑기구가 올해 4월부터 2018년 1월까지 평창올림픽 경기 전 약물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10월 말까지 약 7천 건의 테스트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IOC에 따르면 62개 나라, 4천 명 이상의 선수가 약물검사를 받았다. 이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때 같은 기간과 비교해 50% 이상 검사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특히 러시아 선수들이 평창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경우,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도핑 테스트를 통과해야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과거 국내에서 개최한 각종 국제대회보다 도핑 테스트가 크게 강화되고, 검사 횟수도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도핑 검사관들의 업무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평창에서 일할 국내 도핑 검사 인력이 이런 상황을 헤쳐나갈 만큼 경험을 갖추고 있는지다.

한 도핑 전문가는 “국내 도핑 담당자들의 국제대회 경험을 고려할 때, 과연 이번 대회의 강화된 도핑 검사와 횟수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면도 있다. 이미 러시아 스캔들이 터진 상황에, 대회 기간 도핑 관련해서 또 다른 이슈가 생기면 한국 도핑의 이미지도 함께 실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스캔들 소용돌이 속에 시작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국 도핑 기구와 인력에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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