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테니스의 새 역사' 정 현은 세계 최강 로저 페더러를 꺾을 수 있을까. 엠스플뉴스는 역사적인 승부를 앞두고 한국 테니스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들이 말하는 '정 현 대 페더러'전 주요 포인트를 미리 만나보자.

(좌로부터) 2018 호주 오픈 4강전에서 맞붙는 '최강' 로저 페더러와 '슈퍼 루키' 정 현(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좌로부터) 2018 호주 오픈 4강전에서 맞붙는 '최강' 로저 페더러와 '슈퍼 루키' 정 현(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정 현이 또 이겼다. 이제 ‘세계 최강’ 로저 페더러가 그를 기다린다.

1월 24일 호주 멜버른. 세계 메이저 테니스 대회 가운데 하나인 ‘호주 오픈’에 참가한 정 현은 남자단식 8강전에서 세계 랭킹 97위 테니스 샌드그렌을 세트 스코어 3대 0(6-4/ 7-6<7-5>/ 6-3)으로 꺾었다. 한국인이 메이저 대회 4강전에 오른 건 정 현이 처음이다.

정 현이 4강전에서 만날 상대는 ‘테니스 황제’ 페더러. 그는 1월 25일 기준 테니스 남자 세계 랭킹 2위에 올라있다. 페더러는 메이저 대회에서만 19번의 우승을 차지한 강자다. 그런 만큼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한다.

그간 정 현은 테니스 강자들을 상대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6년엔 당시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를 호주 오픈 1회전에서 만나 패했고, 2017년 파리 마스터스 2회전에선 현 세계 랭킹 1위 라파엘 나달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올해 호주 오픈은 분위기가 다르다. 이미 대회 3회전에서 세계 랭킹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접전 끝에 제압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조코비치에게도 승리를 거뒀다. 기세가 심상치 않다.

테니스계 일부에선 “이번 대회 출전 선수 가운데 기세만 놓고 보면 정 현을 꺾을만한 선수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최강 페더러와의 승부임에도 정 현의 승리를 조심스레 예측하는 이유다.

한국 대표팀 김재식 감독 “페러더가 우위인 건 사실···반드시 기회 찾아올 것”

한국 테니스 국가대표팀 김재식 감독(사진=대한테니스협회)
한국 테니스 국가대표팀 김재식 감독(사진=대한테니스협회)

한국 테니스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재식 감독은 정 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다. 이미 많은 경기를 함께 하며 국가 대항전을 치러왔다. 눈빛만 봐도 그날 컨디션을 알 수 있다.

김 감독도 24일 정 현의 승리를 TV로 지켜봤다.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고 ‘만세’를 불렀단 김 감독이다. 이제 4강전을 앞두고 있다. 김 감독은 정 현과 페더러의 경기를 어떻게 예상할까.

“지금 현이 몸 상태가 정말 좋다. 여기다 페더러보다 15살이나 어리다. 잠만 자도 온몸이 회복될 나이다(웃음). 반면, 페더러는 우승 후보답게 4강전까지 많은 상대의 견제를 받았다. 몸과 마음 모두 지쳐있을 것이다. 체력면에서 우위에 있는 현이가 페더러와 대등한 경기를 펼칠 것으로 본다.” 김 감독의 말이다.

두 선수는 그간 맞붙은 적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유리한 쪽은 정 현일 수 있다. 김 감독은 “서로 잘 모르는 상황이다. 최근 현이의 기세를 생각하면 페더러 쪽이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 현과 함께 데이비스컵에 진출했던 당시 김재식 감독(사진=대한테니스협회)
정 현과 함께 데이비스컵에 진출했던 당시 김재식 감독(사진=대한테니스협회)

정 현은 이번 대회에서 눈에 띄게 좋아진 점이 두 가지 있다. 포핸드와 발리다. 그간 포핸드는 정 현의 약점으로 꼽혔다. 그와 반대로 백핸드는 애초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현이가 백핸드는 원래 잘 쳤다. 그러면서 계속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포핸드였다. 지난해 데이비스 컵에서도 포핸드가 아쉬웠다. 그러나 이번에 보니 포핸드가 정말 좋아졌다. 몇 번의 위기를 포핸드로 헤쳐 나갔다. 서비스 포핸드 공격 역시 많이 늘었다.” 김 감독의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감독은 “포핸드도 포핸드지만, 발리를 시도할 때 여유가 생겼다. 네트 앞에서도 아주 부드럽게 임팩트했다”고 밝혔다. 발리는 공이 땅에 닿지 않은 상태에서 공을 받아치는 동작을 말한다. 정 현은 조코비치와의 경기에서 발리로 재미를 봤다.

김 감독은 그 원인으로 정 현의 강력한 하체를 꼽았다. “현이의 하체 힘이라면 장시간 경기를 해도 다리가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만큼 힘과 체력이 뛰어나단 이야기다. 보통 선수들은 체력 빠지면 하체 흔들린다. 페더러와의 경기에서도 하체 힘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테니스 투어 경기는 대부분 크레이 코트에서 펼쳐진다. 이 코트는 미끄러운 것이 특징이다. 다리 힘이 풀리거나 약하면 미끄러질 수 있다.

경기 결과 예측엔 단호했다. 김 감독은 “페더러는 페더러”라며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객관적으론 정현이 ‘4.5’, 페더러가 ‘5.5’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정도의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작은 변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승리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현이의 활약은 승패를 떠나 국민들에게 큰 에너지를 선사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 테니스가 더욱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기량이라면 올림픽 메달권도 기대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형택 “페더러와 정 현, 결국 체력에서 성패 갈릴 것”

한국 테니스의 레전드 이형택(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 테니스의 레전드 이형택(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페더러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세계 최강이란 타이틀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정 현과 페더러는 우리 나이로 치면 15살 차이다. 페더러의 경험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한국 테니스 ‘원조 영웅’ 이형택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형택은 “페더러 앞에 서면 어느 누구도 부담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페더러는 정형화된 선수가 아니다. 플레이가 변화무쌍하고,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정 현에겐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페더러도 정 현이란 신인 선수에게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이형택은 오히려 ‘페더러의 머릿속이 더 복잡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 부담이 큰 쪽은 오히려 페더러입니다. 정 현은 잃을 게 없어요. 결과에 상관없이 정면 승부를 펼칠 겁니다. 페더러와의 승부는 모든 테니스 선수들이 꿈꾸는 일이에요. 이미 정 현이 조코비치를 꺾었기에 자신감이 있을거에요. 그런 승부를 즐길 줄 아는 게 바로 정 현입니다.” 이형택의 말이다.

이형택은 최근 페더러의 스타일 변화에 주목했다. 천하의 페더러도 세월을 이겨내긴 힘든 모양이다. 체력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나왔다. “요즘 페더러의 플레이를 보면 베이스라인 바짝 붙어 치는 경우가 많아요. 템포도 과거보단 훨씬 빠르게 가져갑니다. 스스로 체력을 아낄 수 있는 작전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상대는 승부를 빨리 결정지으려고 하겠죠? 정 현이 승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면 기회가 반드시 올 겁니다.”

‘그렇다면 정현은 페더러를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이형택은 졍 현의 승리에 무게를 실었다. “또 다른 세계 최강 조코비치를 이겼잖아요(웃음). 그날 경기만 봤다면 누가 정 현이고, 조코비치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상태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정 현을 믿습니다.”

두 선수의 피할 수 없는 승부는 26일 오후 5시 30분 (한국 시각) 호주 멜버른에서 치러진다. 또 한 번의 기적은 정 현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줄까.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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