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의 아이콘, 최현미 선수(사진=엠스플뉴스)
한국 복싱의 아이콘, 최현미 선수(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픽앤톡' (PICK&TALK)은 화제의 인물을 직접 찾아가 그들이 고른 질문을 바탕으로 꾸민 인터뷰 코너 입니다.

2009년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고독한 세계 챔피언, 최현미가 있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소개된 당시 'WBA 페더급 챔피언' 최현미는 챔피언의 화려함보다는 절실함이 가득한 20살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덧 2008년 WBA 세계 페더급 챔피언이 된 후 2013년, 7차 방어전을 성공해 타이틀을 반환했다. 또한 최현미는 2013년 슈퍼 페더급 챔피언 까지 거머쥐며 한국 여성 복싱 사상 최초의 2체급 석권 주인공이 됐다. 이런 최현미의 10년을 되돌아봤을 때 '챔피언' 최현미의 인생은 도전, 또 도전이었다.

하지만 도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도전은 또 다른 고통을 낳고, 현재의 고통조차 어려운 이들에겐 꿈만 같은 단어가 되어가고만 있다.

하지만 역경에 맞서고 또 맞서는 복싱 선수 답게 최현미의 인생도 그랬다. 이제 세계 챔피언을 넘어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로 또 한번의 도전을 이어가려는 최현미. 도전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그가 걸어온 쉽지 않던 '복싱의 길'을 '도봉 복싱 체육관' 에서 들어보았다.

[최현미의 PICK]
"남-북한 여성 사상 첫 2체급 챔피언, 영광보단 아쉬움이 커"
Q. 최현미 선수 반갑다. 최근 근황은 어떤가?
요새도 운동하고 스케줄 하고, 석사 졸업도 하고 싶어서 졸업 논문도 쓰면서 지내고 있다.
Q. 2017년 11월 WBA 슈퍼 페더급, 타이틀 5차 방어전에 성공했다. 기분은?
10년 동안 많은 방어전을 치뤄왔지만 이번 처럼 아쉬운 적이 없었다. 준비한 만큼을 많이 못보여드려 아쉬움이 많았던 한 판이었고, 상대 선수 이마가 찢어져서 여자로서 마음이 아팠다.
Q. 공격적 스타일과 저돌적인 면이 한국에서 드물다. 그런 점이 장점일까?
복싱이란 스포츠가 재밌는게, 내가 신체적인 면에서 키도 크고, 다부지고 긴 체형이다. 근데 이게 유리한 장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가 작으면 공격할 수 있는 부위가 작아져 키가 크면 공격을 당할 부분이 많아져 장단점이 있다.
Q. 페더급-슈퍼페더급 2체급 석권을 했다. 그 과정 중에 힘든 점은 없었는지
보도로 보면 체중 감량 등이 어렵다고들 많이 나왔는데, 전혀 무관하다. 슈퍼 페더급(58KG)으로 올리면서 체중 감량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17세 부터 챔피언 자리에서서 지켜야 하는 부담감이 컸다.
지키는 자의 심리와 가지고 싶은 자의 심리가 다르듯, 챔피언이었을 때 더 불안했다. 그러다보니 모험적인 면이 많아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도전해보자 라는 마음에 도전했다. 그리고 스스로 내 수준이 어느정도 인가 다시 판단해보고 싶었다.
Q.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일단 방어전을 치르는 것이 목표다. 또한 WBC 통합 타이틀도 겨뤄보고 싶다.
Q. 북한에서 2002년 부터 복싱을 시작해, 2004년 남한으로 와 선수가 됐다. 남-북한 사상 2체급 석권은 여성 선수로 최초다.
남-북한 최초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라이벌 선수들이나 남자 선수들이 체급 챔피언이 없다는 점은 아쉽기도 하다. 여러 챔피언들이 많아져 대한민국의 복싱 열풍이 불었으면 하는 마음에, 최초란 타이틀에는 아쉬움도 느껴진다.

남북 남녀 최초 2체급 세계챔피언, 최현미(사진=최현미)
남북 남녀 최초 2체급 세계챔피언, 최현미(사진=최현미)

Q. 그런 의미에서 최현미는 한국을 대표하는 '복싱 아이콘'의 책임도 있다. 어깨가 무겁지 않나.
하하(웃음) 감사한 말이다. <무한도전>에 출연하며 한국에도 최현미라는 복싱선수가 있다는 면을 알렸다. 그 때 나도 복싱계의 김연아 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다. (김연아처럼) 다 같이 한 종목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있음을 원했다. 그러나 스스로도 스폰서 유치 등과 같은 무게가 너무 컸다. 그래서 아쉽다.
Q. 2002년 북한에서 복싱을 시작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사실 6살 때 부터 아코디언을 배웠다. 근데 학교에 있었는데, 학교 체육 선생님 친구가 내가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을 보고 복싱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엔 반대했다. 부모님도 반대했다. 나도 무서워 안한다 했는데, 일주일 동안 계속 찾아오셨다.
결국 한번만 체육관으로 오라고 해서 갔다. 처음에는 나도 '여자가 무슨 복싱이냐'고 생각했는데 또래 친구들이 샌드백을 치고 있는데 너무 멋있고 이뻐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든 생각이 '나 쟤네보다 잘할 수 있다' 고 생각해 시작했다.
Q. 부모님의 반대는 어떻게 이겨냈나
처음 3개월은 몰래 다녔다. 아코디언 메고 다녀오겠다 하고 땀에 젖어 돌아왔다. 사실 부모님도 어느정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웃음). 그러다 3개월 뒤에 3년 많은 언니와 스파링을 하게 됐다. 그 언니가 3개월 동안 운동할 때 많이 이뻐해줘서 사실 날 때릴줄 몰랐다. 근데 스파링 하자마자 잽을 하는데 너무 놀랐고 언니로 보이지 않았다.

개인 훈련을 준비 중인 최현미(사진=엠스플뉴스)
개인 훈련을 준비 중인 최현미(사진=엠스플뉴스)

Q. 첫 스파링에서 놀란 마음이 컸겠다.
그렇다. 결국 너죽고 나죽자고 싸웠는데, 그 언니가 코피 흘리고 있었다. 이건 '내가 이겼다' 고 생각했고 그 비디오를 가지고 부모님에게 갔다. 결국 선생님과 같이 가서 아버지를 설득했고 아버지는 '포기할거면 시작도 하지말라'고 했다.
Q. 힘든 부분이 많은 복싱이다. 하지만 그래도 복싱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이 있어서겠다.
맞다. 방어전 일정이 잡히면 선수끼리 조인식이 있다. 그게 잡히면서부터는 마음이 두근두근 하다. 빨리 시합날이 기다려질 정도다.
부담감보다 재미가 많다. 10년 이란 세월 동안 챔피언을 하며 귀화요청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남았다. 다른 종목 선수들은 해외 훈련을 해도 귀화를 권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귀화요청이 많았다.
Q. 귀화 요청 이야기는 놀랍다. 조금의 고민도 없었나
지금와서는 약간(웃음). 농담이다. 한국에서 대접을 많이 못받는 편이긴 한데, 한국에서 공부를 한 후에 현재 없는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도 생각해보는 등 후배 양성을 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 역시 지속해서 하는 거고,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 말로 뱉어지는 자신감 보다는 전문적인 경력이 확실히 필요하고, 지금 한국에서 재밌고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더 활동하고 싶다.
[최현미의 PICK]
"올림픽은 나의 복싱 인생 시작과 끝, 금메달에 무조건 도전하고파"
Q.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 이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맞다. 3-4년 안에 복싱을 마무리하겠다는 말이랑도 일치한다.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내가 처음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근데 기회가 없었다. 2008년에는 정식 종목 채택이 안됐고, 그래서 프로로 전향했고, 그 이후에는 프로 전향해 기회가 안 맞았다.
그러나 이미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나의 프로로의 목표는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래왔던 무대였기에 꼭 도전하고 싶다.
Q. 올림픽 열정이 남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세계 챔피언인데, 올림픽이라는 아마 추어 무대에 굳이 도전할 필요가 있나라고 한다. 오히려 너의 이미지에 손상이 될 수 도 있고, 챔피언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도 올 수가 있다. 정말 모험이다. 그러나 챔피언에 연연해서 도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원래도 한 게임 한게임 최선을 다해 재미를 느꼈다. 굳이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꼭 도전해보고 싶다.

복싱,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강한 열정이 돋보이는 최현미(사진=엠스플뉴스)
복싱,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강한 열정이 돋보이는 최현미(사진=엠스플뉴스)

Q.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 기회 일 수 있겠다.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항상 꿈꿔왔던 것은 올림픽 금메달을 걸고, 딱 은퇴하는 것을 매순간 꿈꿨다.
Q. 후원 얘기를 해보자. 다시 방어전 스폰서를 구해야 한다고 들었다. '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 조차 어려운 상황이 안타깝다.
정말 신나게 운동하고 있는 나에게, 10여년 동안 꾸준한 스폰서가 없다는 것은 아쉽다. 만약 있었다면 메이웨더, 매니 파퀴아오 같이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Q. 여자 파퀴아오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속상한 부분이다. 외국 기자분들이 오셔서 인터뷰를 할 때 그런 얘기를 했다. "태극기를 달고 10년을 달고 챔피언을 한 것은 국가의 자랑이다. 근데 왜 한국 기업이 아닌 나이키가 스폰서를 하고 있나"라고 한다. 나도 후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봤다. 그러나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후원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었다. 아쉬웠다.
Q. 해외 복싱 인기는 참 좋다. 국내 복싱도 인기를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텐데
예전에는 정말 배고픈 시대였고, 복싱 선수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세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게 선수들이 배고프지 않은 종목이다. 그러다 보니 엘리트(선수) 인구가 줄었다. 생활 종목은 다이어트 복싱 열풍과 함께해 확실히 늘었다. 그러나 직업 의식을 갖고 선수에 도전하는 인구가 줄었다.
[기자의 PICK]
"도전은 또 다른 행복, 실현 가능하고 가까운 것부터 도전했으면"
Q. 2010년 <무한도전>에 나왔다. 많은 감동을 줬다. 당시 훈련 과정 중 많이 힘들어보였는데, 지금도 복싱은 힘들까.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웃음). 똑같이 힘들고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그 때도 다 끝나고 웃을 수 있던 이유가 있다. 경기 전 항상 기도를 한다.
Q. 무슨 기도인가.
이기고 싶단 기도가 아니고, 노력한 것이 이 링 위에서 펼쳐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렇기에 상대가 나보다 더 노력하고 이긴 것이라면 난 충분히 승복할 수 있다. 그런 것 처럼 부담을 버리고 올라가기에 즐길 수 있다.
최근에 최현미 선수가 여유로워졌다는 말이 많은데, 정말 여유로워서 그렇다. 항상 웃으면서 잘하고 있다 잘할 수 있다 하니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Q. <무한도전> 이후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았나
그 때는 정말 동대문 쇼핑 나가서도 다 알아봤다. '아 이런 것이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구나' 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방송 활동은 자제했다. 어렸던 것도 있었고,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링 위에서 빛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링 위에서 주목받는 선수가 진정한 선수라고 생각했기에 그 때 당시는 선수에 집중했다.

<무한도전>을 통해 소개된 최현미의 페더급 2차 방어전(사진=무한도전)
<무한도전>을 통해 소개된 최현미의 페더급 2차 방어전(사진=무한도전)

Q. 맞대결을 펼쳤던 텐코 쯔바사의 근황은 알고 있나.
나와 경기 하고 은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연락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내가 일본어를 못해서다(웃음)
Q. 이번에 나이키 파트너로 선정되면서 다시 한 번 최현미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어땠나
재밌었다. 거기서도 복싱을 하는 역할이었기에 원래 하던 것을 자연스럽게 해서 재밌게 했다.

나이키의 프로모션 '미친존재감'의 파트너가 된 엠버-제시-최현미(사진=최현미)
나이키의 프로모션 '미친존재감'의 파트너가 된 엠버-제시-최현미(사진=최현미)

Q. 강연도 많이 나가고, 성균관대 스포츠 과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사회 체육지도학과까지 하고 있다. 이런 공부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것인지.
감독, 코치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복싱을 하는 입장에서, 복싱을 사랑하는 앞에 섰을 때 지식쪽으로도 겸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자신이 있어야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다지고 있는 중이다. 구체적인 목표가 지도자는 아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분야가 하나 있다.
Q. 무엇인가.
복싱 해설이다. 여자 복싱 선수를 여자 심리를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노하우를 통해 해설을 한 번 해보고 싶다.
Q. 석사 끝난 이후 스포츠마케팅 박사 과정 까지 도전해보고 싶다고 들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경기 자체가 스포츠마케팅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런 마음을 가졌다.
Q. 선수 생활 병행하며 공부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맞다 힘들다(웃음).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 목표를 딱 정해놨지 않는가. 이렇게 지금 처럼 인터뷰 하고 운동하고 하는 것 처럼 하루하루 있다보니 결국 다 해내고 말았다.

Q. 요새 '2030 세대' 가 참 힘들다. 취업도 힘들고 하고 나서도 힘들다. 희망이 멀어지다보니 도전도 멀어진다. 복싱 내-외적으로 지치지 않는 '도전의 아이콘' 최현미로서 해줄 말이 있을 것 같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너무 멀리보지 않아서다. 내 앞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내가 노력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행복하다.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의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다보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이제 29살이 된 최현미다. 30대, 40대, 그 이후까지의 목표를 생각해본 적 있는지.
아까 말한 것 처럼, 너무 멀리보면 힘들다(웃음). 나는 딱 5년 생각 중이다. 지금 복싱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고민 중이다. 그 후에는 지금 배운 것을 토대로, 헤쳐갈 생각이다.

Q. 2018년 새해다. <엠스플뉴스> 독자 분들에게 새해 인사를 한다면.
엠스플뉴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올해 최현미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
최현미는?
생년월일: 1990. 11. 07
신체사항: 체중 58kg, 키 172cm
학력: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사회체육학과 재학 중
수상경력
2006년 대통령배 전국 시·도 대회 페더급 57kg 우승
2007년 대한 아마추어 복싱 연맹회장배 대회 라이트급 60kg 우승
2008년 세계 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 챔피언 타이틀 획득
2013년 세계 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 7차 방어 성공 이후 타이틀 반납(전적 8전 7승 1무)
2013년 8월 세계 복싱협회(WBA) 여자 슈퍼페더급 타이틀 획득
2017년 11월 세계 복싱협회(WBA) 여자 슈퍼페더급 5차 타이틀 방어전 성공
2018년 現 WBA 여자 슈퍼페더급 챔피언(총 전적 15승 1무 4KO)
2018년 現 WBF 여자 슈퍼페더급 챔피언
글/영상촬영: 김다빈 기자 dabinnet@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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