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빙상경기연맹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빙상연맹 "주니어 대표팀 엔트리 확장은 부상선수 대비"

-그러나 세계대회에선 "규정도 몰랐느냐"는 핀잔만 듣고, 계주전 실격패

-빙상연맹과 경기위의 엇갈린 증언,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빙상연맹의 엔트리 확장 강행 탓에 5번째 선수는 경기에도 나가지 못하고, 오해만 받아

[엠스플뉴스]

3월 8일 엠스플뉴스는 ‘[단독] 규정 몰라 국제 망신 자초한 빙상연맹’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내용은 이랬다.

대한빙상연맹은 3월 초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 남·여 대표팀 엔트리를 기존 4명에서 5명으로 늘려 출전시켰다. 당시 빙상연맹은 “부상자가 발생하면 4명이 뛰는 계주전을 제대로 치를 수 없다”며 “성인 대표팀도 남·여 각각 5명씩을 뽑는다”는 말로 엔트리 확장 당위성을 설명했다.

세계 주니어쇼트트랙대회 여자 3,000m 계주 준결승을 앞두고 ‘에이스’ 한수림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빙상연맹의 엔트리 확장은 ‘성공한 전략’이 되는 듯했다. 엔트리를 한 명 늘려 예비 주자를 데려간 까닭이었다.

그러나 한국 여자 계주팀은 준결승 라인에 서지도 못한 채 실격처리됐다. 애초부터 ISU(국제빙상경기연맹) 규정상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등록 가능 인원이 4명’이기 때문이었다.

빙상계의 반대와 숱한 의혹 제기에도 ‘부상 대비’를 이유로 대표팀 엔트리를 늘렸던 빙상연맹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주니어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규정도 몰랐느냐”는 ISU의 핀잔만 들어야 했다.

이 기사가 보도된 뒤 많은 빙상인은 “처음부터 엔트리 확장을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며 “도대체 누가 무슨 의도로 엔트리를 확장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고 목소릴 높이고 있다.

빙상인들 “빙상연맹이 규정과 의미조차 모른 채 추가로 한 명을 뽑아 논란만 일으키고, 국제 망신만 당했다."

지난해 12월 8일 빙상연맹이 홈페이지에 올린 '2018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 공지(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12월 8일 빙상연맹이 홈페이지에 올린 '2018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 공지(사진=엠스플뉴스)

2017년 12월 8일 빙상연맹 홈페이지에 ‘2018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 공고’가 게재됐다. 빙상연맹은 공고를 통해 ‘전국 남·여 주니어 선수권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남·여 대표선수를 4명씩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국 남·여 주니어 선수권대회가 끝나고 24일이 지난 2018년 1월 17일, 빙상연맹이 발표한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명단’은 남·여 4명씩 총 8명이 아닌 남·여 5명씩 총 10명이었다.

빙상연맹이 대표팀 선발전을 끝내고 발표한 '2018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 명단. 연맹은 기존 공지와 달리, 남·여 대표 5명씩을 선발했다(사진=엠스플뉴스)
빙상연맹이 대표팀 선발전을 끝내고 발표한 '2018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 명단. 연맹은 기존 공지와 달리, 남·여 대표 5명씩을 선발했다(사진=엠스플뉴스)

전국 남·여 주니어 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빙상연맹이 5위까지 대표 선수로 뽑겠다는 얘길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공개된 대표팀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빙상계 내부 사정에 정통한 B 씨는 “'기존 4명에서 5명으로 대표팀 엔트리를 늘리는 게 더 좋은 것아니냐' 반문할 사람이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빙상연맹이 소리소문없이 추가로 뽑은 1명은 순전히 계주용 예비주자다. 개인전엔 뛸 수 없는 선수다. 만약 계주전에 뛸 수 없다면 폴란드까지 괜히 간 꼴이 된다. 안타깝지만, 실제로 그렇게 됐다. ISU가 성인과 달리 주니어 세계대회에 4명만 등록하도록 한 건 출전 경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그래야 보다 많은 나라가 출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뭔가. 규정과 의미조차 모른 채 추가로 한 명을 뽑아 논란만 일으키고, 국제 망신만 당한 게 아닌가.”

B 씨는 덧붙여 “빙상연맹이 처음부터 5명씩을 뽑기로 했다면, 중·상위권 선수들이 5등이 되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었을 거다. 하지만, 공고 내용은 분명히 4등까지만 뽑겠다는 거였다. 최소한 선발전을 치르기 하루 전이라도 ‘한 명을 더 뽑겠다’고 알렸다면 빙상연맹을 의혹의 눈으로 보는 이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누가, 어째서 주니어 대표팀 인원을 늘렸냐는 것이다. 빙상전문가들이 ‘ISU 규정을 정말 몰랐을까’하는 것도 의문도 따른다.

"박세우 평창 올림픽 쇼트트랙 코치가 ‘주니어 대표팀 엔트리 확장’에 찬성했다"는 증언 나와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 인원 변경'과 관련한 의혹은 깊어만 가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 인원 변경'과 관련한 의혹은 깊어만 가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 인원 변경’이 처음으로 논의된 건 빙상연맹 경기력향상위원회(이하 경기위)에서였다. 경기위는 빙상연맹에서 ‘각종 중요 국제대회 준비 및 계획수립’을 담당하는 의사결정기구다.

1월 7일 박세우 경기위원장은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 인원 변경’ 논의 차 위원회를 소집했다. 박 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코치로 활약한 박세우 코치와 동일인이다. 이 회의엔 5명의 이사 가운데 4명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경기위원회 참가자 명단 : 박세우(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안건 발의), 김선태(쇼트트랙 대표팀 감독, *불참), 송경택(스포츠토토 감독), 진선유, 이호석(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실명이 나가면 불이익을 받는다’며 익명을 요구한 빙상계 관계자는 “경기위 박세우 위원장과 송경택 위원은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 인원 변경’에 찬성했다. 그러나 진선유, 이호석 두 위원은 반대표를 던졌다”며 “김선태 위원이 올림픽 준비로 불참하는 통에 찬성과 반대가 2대 2로 팽팽히 맞섰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박 위원장과 송 위원은 인원 추가에 찬성한 것일까. 빙상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추가 증언을 들려줬다.

“박세우, 송경택 두 사람은 ‘빙상연맹 김상항 회장이 예비선수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러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한 명을 더 선발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이호석, 진선유 위원은 ‘예비선수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이미 4명을 선발한다고 공지해놓고 변칙적으로 엔트리를 늘리는 건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했다.”

엠스플뉴스의 취재에 응한 경기위 참석자도 이 같은 증언을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다수의 제보자와 경기위 참석인사는 "‘2대 2’ 동수가 나오자 빙상연맹은 내부 규정에 따라 상임이사회로 안건을 넘겼고, 하루 뒤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박세우, 송경택 두 사람이 찬성표를 던진 ‘대표 선발 인원 변경안’을 통과시켰다"고 증언했다.

2월 29일 엠스플뉴스가 이 문제를 취재할 당시 빙상연맹은 대표 선발인원을 늘린 ‘과정’에 대해 말을 아꼈다. 연맹 관계자는 “일반 회사에서도 회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이 건은) 외부에 노출할 수 없는 내부 사정”이라며 입을 닫았다.

그러나 엠스플뉴스가 “경기위에서 엔트리를 5명으로 늘리자는 안건을 다뤘고, 이 안건 투표에서 동수가 나오자 상임위가 5명으로 늘리는 확장안을 통과시킨 게 아니냐”고 묻자 그제야 “경기위는 공지대로 남·여 4명의 선수 이름이 적힌 국가대표 명단을 상임이사회에 전달했다. 그러나 상임이사회에서 ‘예비 선수’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결국 엔트리를 한 명씩 늘리기로 했다”는 답변을 내놨다.

‘경기위는 4명으로 이름을 올렸고, 엔트리 확장을 상임이사회에서 처음 다뤘다’는 빙상연맹의 답변은 ‘경기위에서 투표를 통해 엔트리 확장을 처음 논의했다’는 증언과는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만약 빙상연맹 주장대로 상임이사회 주도로 대표 선발 인원을 늘렸다면 이는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왜냐? 상임이사회가 ‘국제대회 출전과 관련한 준비 및 계획을 수립하는 연맹 의결기구’인 경기위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대표 선발 인원을 조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5번째로 선발된 선수들”

3월 2일부터 4일까지 폴란드에서 열린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여자 계주 경기 장면. 예선을 가장 좋은 기록으로 통과한 한국 대표팀은 '선수가 없어' 실격당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3월 2일부터 4일까지 폴란드에서 열린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여자 계주 경기 장면. 예선을 가장 좋은 기록으로 통과한 한국 대표팀은 '선수가 없어' 실격당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빙상연맹이 ‘원칙을 어긴다’는 선수 출신 경기위원들의 반대에도 선발을 강행한 '다섯 번째 선수'는 폴란드 땅을 밟기만 했을 뿐 결국 경기엔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논란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바로 이 선수들이다.

빙상계 내부 사정에 정통한 E 씨는 “빙상연맹이 갑작스레 선수 선발 인원을 변경한 뒤 빙상계에 ‘특정 선수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소문이 퍼졌다. 주니어 대표팀 경력이 대학 입시에 주요 스펙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선발전 5위로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들이 괜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인의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빙상연맹을 향한 국민의 차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빙상연맹 역시 1월 26일 '부실 행정'과 관련해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밀실 행정과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은 변한 게 없다.

취재 후: 엠스플뉴스가 빙상연맹을 취재할 때마다 꼭 받는 질문이 있다. “그 얘기를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느냐”는 것이다. 빙상연맹의 관심이 ‘체질 개선’이나 '개혁'이 아닌 ‘내부 고발자 색출'에 집중된 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동섭 기자 dinoegg509@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