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는 최순실 일가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재단을 도운 혐의로 청문회에 나왔고, 특검 조사까지 받았다. 이영국 상무는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의 일등 공신으로 알려졌다(사진=엠스플뉴스)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는 최순실 일가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재단을 도운 혐의로 청문회에 나왔고, 특검 조사까지 받았다. 이영국 상무는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의 일등 공신으로 알려졌다(사진=엠스플뉴스)

- ISU 내부자 "삼성에서 내게 핸드폰 줬다. 소피아에서 받은 훌륭한 선물 감사"

- 빙상계 인사 "김재열 회장의 목표는 ISU 통해 IOC 위원 되는 것"

- "2018년 ISU 총회가 김재열 회장의 IOC 도전을 좌우할 것"

- '김재열 ISU 집행위원 당선', 삼성맨 이영국이 맹활약했다

- 빙상연맹, 집행위원으로 김재열 재추천하고도 조용

[엠스플뉴스]

[1편 ‘김재열 당선’, 전명규-ISU-삼성의 공동작품이었나'에 이어]

2016년 ISU(국제빙상경기연맹) 기술위원, 집행위원 선거에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과 김재열 회장이 함께 출마를 준비했다. 이때 전 부회장과 김 회장의 당선을 위해 ISU 내부자가 비밀리에 내부 정보를 건네줬다. 전 부회장은 이 내부자를 통해 ISU 고위층과 ‘사전 협의’까지 했고, 삼성은 ISU 내부자와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만나 삼성 핸드폰을 주는 등 ‘훌륭한 선물’을 했다. 결국 김 회장은 ISU 집행위원에 당선됐다.

엠스플뉴스가 4월 24일 [‘김재열 당선’, 전명규-ISU-삼성의 공동작품이었나] 제하의 탐사보도에서 밝힌 내용이다.

엠스플뉴스는 해당 기사에서 2016년 3월,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던 전명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가 ISU 내부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입수해 공개했다.

엠스플뉴스는 여러 빙상계 인사들과 국제빙상계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삼성이 ISU 내부자와 접촉하고, 훌륭한 선물까지 주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추가 취재했다. ‘큰 그림’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김재열 회장은 왜 2016년 ISU 집행위원이 되기 위해 사력을 다했나? 국제빙상계 관계자 “IOC 위원이 되기 위한 교두보 마련이었다.”

ISU 총회 장면(사진=엠스플뉴스)
ISU 총회 장면(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6월 5일부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닉에서 열리는 ISU 제56차 총회는 대한빙상경기연맹 김재열 회장에겐 매우 중요한 무대였다. 그가 출마하려는 집행위원뿐만 아니라 기술위원, 부회장, 회장 등 선출직 임원을 이 총회에서 모두 새로 뽑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엠스플뉴스가 취재 중 만난 국제빙상계 사정에 정통한 A 씨는 “특히나 이 총회를 끝으로 1994년부터 22년 동안 ISU 회장을 맡아온 오타비오 친콴타의 퇴진이 예정돼 있었다”며 “새 회장 당선과 친콴타 퇴진이 김 회장의 집행위원 선거 출마와 무슨 관계인가 싶겠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큰 관계’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도대체 그 ‘큰 관계’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A 씨는 “김 회장이 ‘IOC 위원’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재열 회장의 꿈이 IOC 위원이라면, 네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선 개인 자격으로 출마하는 것. 두 번째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추천으로 나가는 것. 세 번째는 IOC 선수위원에 도전하는 것. 마지막 네 번째는 국제경기연맹(IF) 추천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김 회장이 선택하기에 가장 수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네 번째, 국제경기연맹의 추천을 받는 것이다.”

A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 회장의 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국제스포츠 무대에서의 활약상을 본다면 개인 자격과 NOC 추천을 받는 덴 큰 무리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前) 정권의 국정농단 때 ‘최순실 일가의 이권 개입을 도왔다’는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만큼 자력이나 정부의 도움으로 IOC 위원이 되는 덴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선수 출신이 아니니 ‘선수위원’으로 IOC에 입성하기도 어렵고. 많은 상황을 종합 고려했을 때 역시나 가장 좋은 방법은 국제 동계스포츠계의 ‘컨트롤 타워’격인 ISU에 임원으로 입성하고서 ISU의 도움을 받아 IOC 위원에 도전하는 거다. 김 회장 측에서도 이를 잘 알았던 것으로 안다.”

시나리오는 훌륭했다. 문제는 김 회장이 집행위원으로 뽑혀도 ISU가 ‘김재열 IOC 위원 만들기’에 적극 협력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A 씨는 “원래 ISU 회장 선거는 4년 주기로 열린다. 하지만, 2016년엔 여러 사정으로 6년 만에 열렸다. 6년 만에 열린 통에 2016년 선출된 얀 디케마(네덜란드) 신임회장의 임기는 애초부터 2018년까지였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2018년은 2016년보다 ISU엔 더 중요한 해다. 2년 만에 회장, 집행위원 포함 모든 임원을 새로 뽑는 까닭이다. 2016년 ISU 수장으로 뽑힌 디케마 회장은 재선을 하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할 수 없다. ISU 정관상 만 75세 생일이 지나면 ISU 임원직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44년생인 디케마 회장은 2018년 선거에서 다시 회장으로 뽑혀도 만 75세 생일이 지나는 2020년 1월 1일엔 무조건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친콴타 전 ISU 회장이 불가리아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장면. ISU의 최대 관심사는 2018년 6월에 있을 총회에서 누가 새 ISU 회장이 되느냐와 누가 친콴타의 뒤를 이어 ISU 몫의 IOC 위원이 되느냐다(사진=엠스플뉴스)
친콴타 전 ISU 회장이 불가리아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장면. ISU의 최대 관심사는 2018년 6월에 있을 총회에서 누가 새 ISU 회장이 되느냐와 누가 친콴타의 뒤를 이어 ISU 몫의 IOC 위원이 되느냐다(사진=엠스플뉴스)

A 씨는 이 대목에서 친콴타 전 회장을 거론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건 2016년 ISU 회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IOC 위원으로 활동하는 오타비오 친콴타의 거취다. 친콴타는 ISU 회장 자격으로 IOC 위원이 됐다. ISU 회장에서 물러났지만, IOC 위원직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18년을 끝으로 IOC 위원에서 물러나야 한다. 1938년생의 친콴타 역시 올해로 ‘IOC 위원 정년’인 만 80세가 됐기 때문이다.”

참고로 IOC 위원 정원은 개인 자격(70명), 선수 자격(15명), 국제경기단체(IF) 자격(15명),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자격(15명) 등을 합쳐 총 150명이다.

ISU가 IOC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국제경기단체(IF) IOC 위원 몫이 15명임을 고려할 때 올해를 끝으로 친콴타가 IOC 위원에서 물러나면, 새 ISU 회장이나 부회장 혹은 집행위원 가운데 한 명이 친콴타의 뒤를 이어 새 IOC 위원이 될 게 분명하다.

IOC 규정집엔 “최대 15명까지 임명되는 ‘IF 자격 IOC 위원’은 종목별 IF 또는 IOC가 인정한 단체 내에서 회장 또는 임원직(부회장, 집행위원 포함)을 맡은 인사들로 구성된다”고 쓰여 있다.

국제빙상계 일부에선 ‘디케마 현 ISU 회장이 친콴타의 IOC 위원을 승계하는 게 아니냐’는 예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IOC는 1999년 이후 IOC 위원이 된 이들의 정년을 만 70세로 규정한 상태다. 74세의 디케마는 IOC 위원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ISU가 유럽 귀족들 위주로 운영돼온 ‘폐쇄적 조직’이라고 해도, 시대가 흐르면서 지금은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빙상 강국의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다. 무엇보다 유럽 빙상계 수뇌부들은 역대 ISU 사건, 사고를 상기했을 때 거대 자본의 공격적 움직임에 매우 취약하다.

세계적 브랜드 삼성의 절대적 지원을 받는 김재열 회장이 2018년 ISU 총회에서 ‘킹 메이커’가 될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 씨는 “김 회장이 2018년 ISU 회장 선거에서 IOC 위원직을 양보받기 위해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ISU 회장을 노리는 이들 역시 ‘IOC 위원 카드를 김 회장에게 넘겨주는 대신 김 회장으로부터 회장 선거 지원을 받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 씨는 “2016년 빙상연맹과 삼성이 김 회장의 ISU 집행위원 당선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2018년의 대격변을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ISU 집행위원에 뽑혀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김 회장 측이 사력을 다해 2016년 ISU 총회를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내부 선거 정보를 흘린 ISU 실력자에게 ‘훌륭한 선물’을 안긴 삼성맨은 누구였을까.

2016년 3월 29일 번역을 거쳐 전명규 부회장에게 전달된 스토이체브 이메일(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3월 29일 번역을 거쳐 전명규 부회장에게 전달된 스토이체브 이메일(사진=엠스플뉴스)

번역을 거쳐 전명규 부회장이 스토이초 스토이체브에게 보낸 이메일(사진=엠스플뉴스)
번역을 거쳐 전명규 부회장이 스토이초 스토이체브에게 보낸 이메일(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6월 ISU 총회에서 집행위원에 뽑혀야 2년 뒤 열리는 2018년 총회에서 더 넓은 기반을 닦아 IOC 위원에 도전할 수 있었기에 김재열 회장과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전방위적으로 선거 준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제빙상계에서 김 회장은 크게 주목받는 이는 아니었다는 게 국제빙상계 인사들의 중평이다.

한 빙상계 인사는 “김 회장은 평소 조용하고, 겸손한 분이다. 빙상연맹 이사회 때 보면 누가 설전을 펼쳐도 그걸 묵묵히 다 듣기만 했다. 국제빙상 무대에서도 큰 주목을 받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한국빙상계의 수장’ 혹은 ISU의 오랜 스폰서인 ‘삼성’가의 일원 정도로만 아는 국제빙상인이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 빙상계 인사는 “따라서 ISU 최고 의사결정 기관인 ‘집행위원회’에 들어가려면 집행위원 선거에서 뽑혀야 하는데 그러려면 김 회장의 인지도 향상이 급선무였다”며 “빙상연맹뿐만 아니라 삼성에서도 김 회장 인지도 향상을 위해 열심히 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삼성이 어떤 방식으로 ‘열심히 뛰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는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2016년 3월 29일, 당시 ISU 쇼트트랙 기술위원장이던 스토이초 스토이체브(현 ISU 집행위원)가 전명규 부회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어제 삼성 측에서 나온 분으로부터 감동을 받았다.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하였고, 그 이후에는 삼성 핸드폰을 주었다. 그래서 소피아에서 받은 훌륭한 선물에 대하여 감사의 말을 너에게 전하고 싶다.’이다.

특검 조사를 받을 당시의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
특검 조사를 받을 당시의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

엠스플뉴스는 스토이체브에게 ‘소피아’에서 ‘훌륭한 선물’을 안긴 것으로 추정되는 ‘삼성 측에서 나온 분’이 누군지 취재했다. 취재 중 연락이 닿은 한 국제빙상계 관계자는 “스토이체브와 절친한 삼성맨이 있다” “그 삼성맨이 한국빙상연맹의 임원”이라는 얘길 들려줬다. 그 임원의 이름은 이영국(제일기획 상무)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으로 확인됐다.

이영국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지난해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재판 때 증인으로 출석해 큰 주목을 받았던 이다.

당시 재판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213억 원 규모의 ‘정유라 승마지원’과 16억 2천800만 원 규모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등에 모두 관여한 삼성 관계자로 지목받았다.

이 부회장은 빙상연맹에 오기 전 2014년 11월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해 8개월간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지원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5년 7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독대 이후 승마협회 부회장에서 물러나 빙상연맹 부회장으로 자릴 옮겼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이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며 질책하자 이재용 부회장이 이영국 승마협회 부회장을 물러나게 했다는 게 특검 측의 주장이었다.

어쨌거나 이 부회장은 ‘최순실과 박근혜의 눈 밖에 나’ 승마협회를 떠났지만, 역설적이게도 빙상연맹에 가서도 최순실 일가가 세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돕는 일에 관여했다. 여기서 주목할 건 그가 ‘도운’ 게 이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부회장은 빙상연맹에서 김재열 회장의 ISU 집행위원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뛴 이로 유명하다.

빙상연맹 내부사정에 밝은 한 빙상인은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에서 근무하고, 과거 독일에서도 삼성맨으로 일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선지 빙상연맹 임원 가운데 유럽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며 “이 부회장이 유럽 입김이 강한 ISU 상황을 고려해 어떻게 선거를 준비하고, 어떤 방식으로 공략해야 하는지 포인트를 잡아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스토이체브에게 ‘소피아’에서 ‘훌륭한 선물’을 안긴 ‘삼성 측에서 나온 분’이 이 부회장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이체브와 이 부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보여주는 사진은 남아있다.

지난해 3월 ISU 쇼트트랙 콘퍼런스가 열리던 날 식사를 함께 하고 있는 ISU 얀 디케마 회장(사진 뒤 왼쪽부터)과 스토이체브 집행위원, 이영국 빙상경기연맹 부회장, 터키빙상연맹회장 아맷 함디 거버즈 회장(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3월 ISU 쇼트트랙 콘퍼런스가 열리던 날 식사를 함께 하고 있는 ISU 얀 디케마 회장(사진 뒤 왼쪽부터)과 스토이체브 집행위원, 이영국 빙상경기연맹 부회장, 터키빙상연맹회장 아맷 함디 거버즈 회장(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사진은 2017년 3월 9일(현지 시간 기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찍힌 것이다. 3월 9일부터 12일까지 로테르담에선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사진이 찍힌 9일은 ‘ISU 쇼트트랙 콘퍼런스’가 열린 날이었다.

콘퍼런스가 열린 이날 오전, 이 부회장은 ISU 얀 디케마 회장과 스토이체브 집행위원, 터키빙상연맹회장 아맷 함디 거버즈 회장과 식사를 함께 했다. 흥미로운 건 이 사진의 설명글에 이영국 부회장이 ‘김재열’로 적혀있다는 것이다.

국제빙상계 관계자는 “이영국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이전부터 국제빙상계에선 '삼성의 스포츠 비즈니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혔던 이다. 어떤 의미에선 김 회장보다 더 안면이 익은 사람이었다”며 “2016년 6월 ISU 총회 때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김 회장의 당선을 위해 유럽 빙상계 인사들과 접촉하고, 설득했던 이가 바로 이 부회장이었다”고 증언했다.

2016년 떠들썩하게 진행됐던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 2년이 지난 2018년은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았지만, 조용

2016년 12월 7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특위 청문회'에 참석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전자가 16억 원을 지원한 것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사진=MBC)
2016년 12월 7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특위 청문회'에 참석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전자가 16억 원을 지원한 것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사진=MBC)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여자 계주팀에 기념품을 전달하는 ISU 김재열 집행위원. 청문회가 끝난 지 1년 반도 안됐지만, '청문회의 기억'은 이미 얼음처럼 녹아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다(사진=MBC)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여자 계주팀에 기념품을 전달하는 ISU 김재열 집행위원. 청문회가 끝난 지 1년 반도 안됐지만, '청문회의 기억'은 이미 얼음처럼 녹아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다(사진=MBC)

2015년 겨울부터 출마를 준비했지만, 김 회장이 ISU 집행위원 출마를 공식 선언한 건 2016년 4월 11일이었다. 김 회장은 출마사에서 “ISU 집행위원이 되면 ISU 규정상 빙상연맹 회장을 겸직할 수 없다”는 말로 빙상연맹 회장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이 과정을 잘 아는 한 빙상인은 “애초 빙상연맹은 김 회장이 ISU 집행위원에 당선돼도 빙상연맹 회장직을 함께 수행해도 되는지 알았다. 그러다 출마 선언을 앞두고 그게 안 된다는 걸 알았다”며 “삼성에서 파견된 임직원 5명이 빙상연맹에서 일했지만, 빙상계에서 ‘일하는 스타일만 보면 전혀 삼성적이지 않다. 보좌하는 사람만 잘 뒀어도 김 회장이 덜 힘들었을 텐데’는 얘기가 돈 것도 빙상연맹의 정보 파악이 그만큼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빙상연맹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2016년 6월 10일.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열린 제56차 ISU 총회에서 김 회장은 총 97표를 얻어 102표를 얻은 중국의 양양에 이어 9명의 후보 가운데 2위로 스피드 스케이팅 집행위원에 당선됐다.

94표로 뽑힌 3위 당선자는 ‘삼성에서 나온 분으로부터 훌륭한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한 소토이체브였다. 5명을 뽑는 집행위원 선거엔 115명의 투표자가 5표씩 투표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과 스토이체브를 뽑은 투표자들이 교차 투표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 회장은 집행위원 당선 직후 “빙상 종목의 전체 시장을 키우고 빙상이 더 발전하려면 ISU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회를 주신 만큼 빙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당선 소감을 밝히고서 빙상연맹 회장 자리를 김상항 전 삼성생명 사장에게 넘겼다.

2016년 6월 ISU 총회에 참석한 한국 빙상대표단 명단. 명단 가운데 이영국(Yung Kook Lee) 부회장의 이름이 보인다. 당시 한국 빙상대표단은 다른 나라 대표단에 비해 이례적일 만큼 큰 규모였다. 한 빙상계 인사는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에 빙상연맹이 얼마나 사력을 다했는지 잘 보여주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6월 ISU 총회에 참석한 한국 빙상대표단 명단. 명단 가운데 이영국(Yung Kook Lee) 부회장의 이름이 보인다. 당시 한국 빙상대표단은 다른 나라 대표단에 비해 이례적일 만큼 큰 규모였다. 한 빙상계 인사는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에 빙상연맹이 얼마나 사력을 다했는지 잘 보여주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사진=엠스플뉴스)

ISU 집행위원이 된 김재열 회장은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조직위원회 국제부위원장으로 맹활약했다. 올림픽이 진행 중일 땐 ISU 집행위원 자격으로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에게 기념품을 전달했다.

김 회장이 ISU를 중심으로 ‘큰 그림’을 계속 그리려면 올해 6월 5일부터 8일까지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리는 제57차 ISU 총회에서 다시 집행위원 이상에 도전해야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의 집행위원 출마가 떠들썩하게 알려졌던 2년 전과 비교해 지금은 소식이 감감하기만 하다. 4월 21일 빙상연맹은 이사회에서 ISU 위원 추천건을 논의했지만,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

김 회장의 ISU 임원 출마와 관련해 빙상연맹은 “지금은 김 전 회장과 빙상연맹은 아무 관계가 없다”며 “궁금한 게 있으면 제일기획 쪽으로 문의하라”고 말했다. ISU 총회를 두 달 앞두고 기민하게 움직였던 2016년의 빙상연맹과는 정반대의 자세다.

혹시 김 회장이 ISU 임원 출마를 포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최근 엠스플뉴스는 빙상연맹이 4월 16일자로 작성한 ISU 임원 추천위원회 의결사항을 입수했다. 이 의결사항엔 ‘김 회장을 집행위원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빙상연맹과 전명규 감사'에 시선이 쏠린 사이. ‘큰 그림’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려지고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2016년에 이어 2018년에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ISU 집행위원으로 추천했음을 알리는 문서(사진=엠스플뉴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2016년에 이어 2018년에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ISU 집행위원으로 추천했음을 알리는 문서(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이동섭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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