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상연맹의 반격 “우린 부끄러운 일 한 적 없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

- 반격의 시나리오 “우호적인 언론 확보해 연맹 주장 보도해야”

- “여론이 진짜인지 확신하지 못 하겠다.”

- 김상항 회장의 ‘1등주의’ “제일 못하는 놈한테는 공부하라고 신경 덜 쓰는 건 당연지사”

대한빙상경기연맹 김상항 회장(사진=엠스플뉴스)
대한빙상경기연맹 김상항 회장(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최근 빙상 국가대표팀과 관련해 연이어 발생한 문제들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재발 방지를 약속드리며, 후속 조치로 연맹 쇄신방안을 마련해 평창올림픽을 마무리한 후 빠른 시일 내에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1월 26일 대한빙상경기연맹 김상항 회장 공식 사과문-

대한빙상경기연맹 김상항 회장이 사과한 지 석 달이 지났다. 과연 김 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에서 약속한 ‘재발 방지’와 ‘후속 조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최근 엠스플뉴스는 김 회장이 주재한 ‘빙상연맹 이사회’ 회의록과 녹취록을 단독 입수했다. 이사회 발언만 보자면 빙상연맹은 반성은 온데간데없고 반격만을 준비하고 있다.

‘사과문’ 냈던 빙상연맹 김상항 회장의 반격 “우리 이사님들 마음고생 심하시고, 울분도 많이 쌓였을 것”, 빙상연맹 이사들 “연맹이 부끄러운 일 한 적 없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


김상항 회장과 부회장, 이사들이 참석하는 이사회는 빙상연맹 최고 의결기구다. 4월 20일 열릴 예정이던 ‘2018 제2차 이사회’는 그래서 빙상인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만은 빙상연맹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결산하는 것과 동시에 철저한 반성으로 ‘빙상계 개혁 방안’을 도출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회는 정반대 분위기로 흘러갔다. 시종일관 회의장 안은 ‘빙상연맹의 억울함’, ‘자화자찬’, ‘여론 왜곡’, ‘과정보단 결과 중시’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조짐은 김 회장의 개회사 때부터 보였다. 김 회장은 “우리 이사님들 마음고생도 많으시고, 울분도 많이 쌓였을 겁니다”란 말로 개회사를 시작했다.

빙상연맹의 ‘막장 행정’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울분을 터트렸던 건 선수, 지도자, 빙상팬들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오히려 ‘우리 이사님들’을 달래기에 바빴다.

‘우리 이사님들의 마음고생과 울분’을 걱정한 김 회장의 개회사가 끝나자마자 임원진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00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이사는 “지금까지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이 올림픽이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번 시즌처럼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없다. (그러나) 좋은 성적에도, 바깥에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맹이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은 별로 없다”고 목소릴 높였다.

윤 이사가 전담하는 스피드스케이팅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노선영 대표팀 제외’, ‘여자 팀추월 왕따 논란’, ‘매스스타트 탱크 논란’ 등이 발생하며 전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종목이다.

빙상연맹 정00 감사는 한술 더 떠 “연맹이 크게 잘못한 게 없음에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사실이 왜곡되기도 하고, 굉장히 괴로운 부분을 당하고 있다”는 말로 모든 잘못을 여론 탓으로 돌렸다.

임원들의 지원 사격에 탄력을 받았는지 김 회장은 ‘빙상연맹 질타 여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과감한 발언을 했다.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했고, 나름 열심히 했고, 성과도 어떻게 보면 최고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이 환경, 국민 눈높이. 진짜 우리 여론이 이렇게 바뀐지도 저는 아직 확신을 못 하겠습니다.

빙상연맹 이사들 “언론 중에 우리한테 우호적인 언론 확보해 우리 주장을 담아 보도하자”, “연맹 차원에서 변호사를 사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자”

4월 20일 빙상연맹 정기 이사회에서 연맹 임원들은 반성은 뒤로 한 채 '반격'의 방법을 찾는 데만 몰두했다(사진=엠스플뉴스)
4월 20일 빙상연맹 정기 이사회에서 연맹 임원들은 반성은 뒤로 한 채 '반격'의 방법을 찾는 데만 몰두했다(사진=엠스플뉴스)

빙상연맹의 억울함과 여론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발언을 쏟아낸 김상항 회장과 몇몇 이사들은 급기야 ‘여론을 우호적으로 끌고 갈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한 이사는 “우리에게 비판적인 여론이 많은데 그런 부분을 일시에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언론 중에서 우리한테 우호적인 언론을 확보해 우리 주장을 담아 보도하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빙상연맹이 부끄러운 일을 한 게 별로 없다’고 주장한 윤00 이사는 “저흰 정말 나쁜 짓 한 거 없다. 연맹 차원에서 변호사들을 산다거나, 그래서 그분들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야지, 빙상연맹이 맨날 이렇게 ‘아, 나쁜 단체구나’ 란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된다”며 변호사를 고용해 잘못된 여론을 바로잡자고 주장했다.

‘법’과 ‘언론’을 활용한 위기탈출 전략은 전명규 전 부회장이 가장 즐겨 썼던 방법이다. 전 전 부회장은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며 언론의 입을 막는데 주력했다. 전 부회장을 옹호하는 듯한 기사들을 냈던 한 언론사 기자는 전 부회장이 교수로 있는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장학생으로 박사과정을 밟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모 실업 빙상단 코치는 "평창 동계올림픽 전후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노선영 죽이기' 기사를 매일같이 메인에 올렸고, 지금도 빙상연맹에 비판적인 기사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한다"며 "삼성이 회장사라, 네이버가 알아서 챙기는 건지, 아니면 편집자가 빙상연맹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우린 나쁜 짓 한 게 없다’는 적반하장식 태도와 ‘법과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바꾸자’는 철 지난 전략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김상항 회장의 스포츠관(觀)이었다.

김 회장은 “메달이 필요 없다? 공정한 경기가 중요하다? 지금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그럼 왜 우리가 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들을 지원하고 엘리트를 키워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결국 ‘메달이 필요 없다’하면 똑같이 공정히 하면 된다. 이러면 앞으로 우리 빙상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답이 없다. 그러면 생활체육하자”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누가 신문에 썼더라고요. 대학교수님이. 금메달 딴 거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개인의 영광이다. 쉽게 얘기해서 애들 5명이 있으면 공부 잘하는 애한테 공부를 더 잘 시켜서 요놈을 더 크게 잘되게 만드는 거지. 제일 못하는 놈한테는 공부하라고 신경 덜 쓰잖아요. 당연지사 아닙니까. 선수들 키우면 선수들 성적 잘 내는 게 최우선 목표 아닙니까.

빙상연맹 김상항 회장의 '1등주의', “제일 못하는 놈한테는 공부하라고 신경 덜 쓰잖아요. 당연지사 아닙니까. 선수들 키우면 선수들 성적 잘 내는 게 최우선 목표 아닙니까”

한국 여자 팀추월 대표팀 경기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 여자 팀추월 대표팀 경기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발언에서 보듯 김 회장은 ‘메달’이란 결과와 ‘공정’이란 과정을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 김 회장에게 빙상연맹은 ‘선수를 키워 성적을 잘 내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인 곳이고, 성적을 내지 못하는 선수는 신경을 덜 써도 당연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인식이 바탕에 깔렸으니 메달 가능성이 떨어지는 선수 정도는 올림픽에 출전하든 못하든 상관 없는 것이고, 금메달을 위한 ‘탱크’는 당연히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부수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공정한 과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김 회장에겐 ‘생활체육이나 하자’는 엄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뿐이었다.

김 회장의 체육관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확인한 ‘변화한’ 국민의식과 큰 차이가 있다. 많은 국민은 메달리스트들의 땀과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불공정한 경쟁 속의 메달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속의 노메달’에도 큰 가치를 뒀다.

‘여자 팀추월 왕따 논란’, ‘매스스타트 탱크 논란’이 벌어졌을 때 국민이 분노한 건 올림픽을 통해서나마 공정한 경쟁을 느끼고 싶었던 기대가 무참히 짓밟혔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빙상연맹 이사회에서 오간 이야기를 들은 중견 빙상인 A 씨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빙상연맹은 외부엔 반성과 개혁을 얘기한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모이면 ‘우린 잘못한 게 없다.’, ‘우린 최고의 성과를 냈다.’, ‘우릴 비난하는 여론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다.’ 같은 뻔뻔한 얘기들을 주고받는다”며 “빙상연맹의 내부 개혁을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은 이유도 연맹 수뇌부의 상황 인식이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란 오랜 경험 때문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취재 후 : 빙상연맹 김상항 회장은 1978년 삼성건설에 입사해 삼성전자 재무팀과 전략지원팀 부사장을 거쳐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16년 ISU(국제빙상연맹) 집행위원으로 당선된 김재열 전 회장의 뒤를 이어 빙상연맹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 회장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빙상연맹 수장이 된 건 순전히 빙상연맹 회장사가 ‘삼성’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주목할 건 ‘1등주의’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이 최근 노조를 인정하며 정상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지만, ‘골수 삼성맨’ 김상항 회장은 여전히 개혁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1등주의’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엠스플 탐사보도] ‘김재열 당선’, 전명규-ISU-삼성의 공동작품이었나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22742

[엠스플 탐사보도] ‘삼성의 훌륭한 선물’과 김재열의 IOC 위원 도전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228

이동섭, 박동희 기자 dinoegg509@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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