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바에서 할름스타드까지 무려 27년이 걸렸다. 여자탁구 에이스 양하은은 스웨덴에서 기적적으로 성사된 여자탁구 남북단일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양하은에게 남북단일팀의 뒷얘기와 탁구 인생, 그리고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을 향한 바람을 들어봤다.

여자탁구 대표팀 에이스 양하은은 21년 만에 성사된 남북단일팀의 중심에 서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여자탁구 대표팀 에이스 양하은은 21년 만에 성사된 남북단일팀의 중심에 서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1991년 일본 지바, 그리고 2018년 스웨덴 할름스타드. 2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남과 북이 하나가 됐다. 바로 극적으로 성사된 여자탁구 남북단일팀이었다.
5월 3일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린 2018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탁구선수권대회 8강전은 남북대결이 예고된 상황이었다. 경기 시작 시간이 되자 남북 선수들이 나란히 입장한 뒤 양 팀 감독과 선수들은 차례로 악수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남북 선수들이 라켓을 들고 서로를 마주 보는 일은 없었다. 그 이유가 있었다. 곧바로 장내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은 뒤 “대한민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닙니다. 바로 남북단일팀입니다”라고 깜짝 발표했다. 대회 중간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결성된 남북단일팀은 4강전에 자동 진출했다.
비록 4강전에서 만난 일본에 0-3으로 패하면서 결승 진출은 좌절됐지만, 남북단일팀은 대결이 아닌 화합으로 값진 동메달을 함께 목에 걸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던 한 대한민국 선수가 있었다. 바로 여자탁구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 중인 양하은(대한항공 여자탁구단·세계랭킹 38위)이다.
1994년생인 양하은은 오른손 셰이크핸드 타법을 사용하는 공격형 탁구 선수다. 상대 공격 경로를 예측해 구석을 노리는 영리함과 함께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도 갖춘 양하은은 2009년부터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단식에서 동메달을 딴 양하은은 2016년 리우 데자이네루 올림픽에도 참가해 값진 경험을 쌓았다.
양하은의 2018년 1순위 소망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단체전 금메달이다. 남북단일팀 결성은 미지수지만, 양하은에겐 4년 전 아시아경기대회 단체전 예선 탈락의 아쉬움을 씻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양하은의 탁구 인생과 더불어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을 향한 소망, 그리고 역사적인 남북단일팀 결성 뒷이야기를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지바에서 할름스타드, 27년 만에 성사된 남북단일팀

27년 만에 극적으로 성사된 여자탁구 남북단일팀(사진=대한탁구협회)
27년 만에 극적으로 성사된 여자탁구 남북단일팀(사진=대한탁구협회)

27년 만에 나온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먼저 말하겠습니다.
남북단일팀 말인가요(웃음).
맞습니다(웃음). 당시 상황이 급하게 결정됐다고 들었어요.
처음에 얘길 들었을 땐 시간이 없기에 당연히 안 되는 줄 알았어요. 가능성이 20%도 안 된다고 봤어요. 선수들도 다 경기를 한단 생각이었습니다. 경기 당일 아침까지도 결정이 안 됐어요.
(대회 당시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과 주정철 북한탁구협회 서기장, 그리고 토마스 바이케르트 ITTF 회장의 3자 회의에서 남북단일팀 논의가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협의 끝에 경기 당일 오전 양 정부의 승인이 나면서 한국 선수 5명과 북한 선수 4명으로 이뤄진 ‘KOREA’ 단일팀이 만들어졌다)
결국, 경기 당일 오전 극적으로 남북단일팀 합의 발표가 났습니다.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모든 기자가 저희를 찍고 있어서 얼떨떨했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했죠(웃음). 단일팀 발표가 난 뒤 곧바로 북한 선수들과 만나서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친해졌어요. 사실 북한이 세대교체 과정이라 모르는 선수가 많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문제가 안 됐습니다.
단일팀 분위기가 정말 좋았나 보군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단일팀 분위기가 정말 순수하고 밝았어요. 누가 한마디가 툭 던져도 ‘까르르’ 웃는 분위기였죠(웃음). 아무래도 같은 언어를 쓴단 동질감이 가장 크게 느껴졌어요.
사용하는 탁구 용어가 다르진 않았나요.
확실히 북한 탁구에선 영어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우리가 쓰는 ‘커트’라는 단어도 ‘깎아치기’라고 말해요. 억양도 약간 다르니까 대화를 집중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했던 양하은(왼쪽)과 김송이(오른쪽)(사진=월간탁구)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했던 양하은(왼쪽)과 김송이(오른쪽)(사진=월간탁구)

‘숙적’ 일본과의 4강전이었기에 모두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합동 훈련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북한 선수들의 구질이 무겁고 빨라서 도움 됐어요. ‘일본을 한 번 잡아보자’라고 같이 다짐했죠.
그런데 아쉽게도 4강전에서 0-3으로 패했습니다.
(한숨을 내쉬며) 서로 잘했는데 아쉽게 졌다고 얘기했어요. 끝나고 오히려 저를 위로해주더라고요. 큰 힘이 됐습니다. 헤어질 때도 ‘나중에 곧 보겠지’라는 마음이 있으니까 크게 슬프진 않더라고요. 곧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단 얘기도 들리니까요.
그래도 남북 선수들이 함께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또 1991년 지바의 기적 이후 27년을 기다린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떤 느낌인가요.
국가대표 선수촌을 가면 1991년 남북단일팀이 메달을 딴 사진이 항상 보였어요. 예전엔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돌이켜보면 ‘우리가 엄청나게 역사적인 장면 속에 있었구나’라고 느껴집니다. 당시 인터뷰를 했을 때도 뭉클했고요.
양하은이 AG 동메달에도 속상했던 까닭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단체전 패배 뒤 아쉬워하는 양하은(사진=월간탁구)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단체전 패배 뒤 아쉬워하는 양하은(사진=월간탁구)

이제 양하은 선수 개인의 얘기에 집중하겠습니다. 탁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어머니(김인순 대한항공 코치)가 탁구 선수 출신이신데 처음엔 운동을 절대 안 시키려고 하셨어요. 그런데 6살 때 어머니와 함께 탁구장에 가서 자연스럽게 탁구를 즐기기 시작했어요. 피는 못 속인 거죠(웃음). 그때 이후로 어머니가 더 열정적으로 탁구를 가르쳐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즐기는 것과 운동을 업(業)으로 하는 건 달랐을 텐데요.
초등학교 때 일요일에 쉬어본 적이 없어요. 일요일엔 어머니랑 연습하거나 아버지랑 산을 가거나 둘 중 하나였죠.
둘 다 운동 아닌가요(웃음).
결국, 운동만 한 거죠(웃음). 연습하기 싫은 날엔 산을 가야 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주말에 쉴 수 있었습니다.
탁구가 싫어질 법도 했겠습니다.
(고갤 내저으며) 그런 느낌은 안 들었어요. 그래도 대회를 나가면 계속 1등을 했으니까 트로피를 드는 맛이 있었어요(웃음). 고등학교 때도 연습과 대회를 반복하니까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죠. 오히려 성인이 돼서야 ‘탁구가 힘들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성인이 되니까 성적에 대한 압박이 부담감으로 다가왔어요. 또 베테랑 언니들이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국가대표의 무게감도 점점 느끼기 시작했죠. 그래도 막상 연습하기 시작하면 열심히 해요(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 대회가 궁금합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떠오르네요. 그때 전 종목을 다 뛰었는데 단체전에서 제 경기만 다 졌어요. 반대로 단체전에서 진 선수를 단식에선 이기면서 제가 동메달을 땄어요. 첫 메달이었죠.
다행이었네요.
오히려 미안했어요.
예?
단체전에서 진 선수한테 이기면서 단식 동메달을 딴 거였으니까요. 전 함께 뛰는 단체전 메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국에서 하는 대회라 그 부담감에 더 흔들렸던 것 같아서 당시 언니들에게 정말 미안했죠. 그때 단식 동메달을 딴 티도 안 냈어요.
항상 팀을 먼저 생각하는군요.
소속팀(대한항공)에서도 그래요. 대표팀 국제 대회를 많이 나가다 보니까 소속팀에 자주 못 와요. 오랜만에 국내 대회를 나가면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크죠. 팀 동료들도 저에게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 그걸 충족해주고 싶습니다.
양하은이 꿈꾸는 AG 단체전 金, 그리고 올림픽

양하은은 다가오는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에서 여자탁구의 대들보로 활약할 전망이다(사진=대한탁구협회)
양하은은 다가오는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에서 여자탁구의 대들보로 활약할 전망이다(사진=대한탁구협회)

4년 전 단체전의 아쉬움을 씻을 기회가 곧 찾아옵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2018년 가장 큰 소망이 아시아경기대회 단체전 금메달이에요. 4년 전과 다르게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요. 단식은 그다음에 생각해야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중국·일본 등 탁구 강국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솔직히 중국·일본 상위 랭커들을 만나면 빈틈이 잘 안 보여요. 공을 치는 박자와 회전이 다 좋습니다. 자기 길목을 지키는 작전도 확실해요. 서브와 서브 리시브의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상대 서브를 받아넘기면 이미 늦은 느낌이죠.
다른 종목인 배구에서 서브와 서브 리시브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고갤 끄덕이며) 맞아요. 특히 일본 선수들이 서브 리시브가 정말 좋습니다. 서브를 넣고 ‘어’하는 순간 바로 공이 오는 느낌이에요. 처음 주고받는 순간부터 불리하게 흐름이 이어지니까 점점 밀리는 기분이죠. 우리도 날카롭게 서브를 넣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 말대로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할 것 같습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아경기대회도 중요하지만, 2020년 도쿄 올림픽도 대비해야겠습니다.
눈 깜빡하니까 벌써 리우 올림픽으로부터 2년이 지났네요. 도쿄 올림픽도 금방 다가올 것 같아요. 올림픽을 한 번 겪어봤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숨 막히는 긴장감을 이겨낼지 모르겠어요. 세계 모든 선수가 오랜 기간 준비하고 도전하는 무대잖아요.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자신감을 얻은 뒤 올림픽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탁구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잠시 고민 뒤) 예전엔 포기하지 않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바로 대답이 나왔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 질문에 더 고민되는 것 같아요(웃음).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렇다면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여전히 탁구가 즐겁습니까.
그것도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어릴 때 라켓을 잡고 치던 즐거움은 이제 없어진 건 사실이에요. 경기에서 이겼을 때 하루 이틀 정도만 즐겁고 바로 일상으로 돌아와요. 아직도 부족하고 배울 게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단계씩 더 올라가야 하는 삶이니까요. 제 자릴 계속 만들어가야죠.
그래도 탁구채를 잡게 하는 탁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어떤 운동선수라도 그럴 텐데 승리와 우승이에요. 연습하고 준비할 땐 죽을 것 같은데 경기에서 이기면 다 잊히죠. 승리의 쾌감은 운동선수만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탁구를 하면 ‘내가 뭔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계속 느껴요. 어릴 때부터 맛본 건데 커서도 자석 같이 끌리네요. 그래서 탁구채를 못 놓는 것 같습니다(웃음).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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