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있는 장소로 와 조사를 받으라고 한다면, 조사관이 공익제보자의 신원이 드러날 수 있는 곳에서 전화를 건다면, 당일 전화를 걸어와 마치 피의자 심문하듯 ‘오늘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한다면. 교육부의 어처구니없는 감사로 공익제보자들이 ‘2차 가해’를 호소하고 있다.

교육부가 '한국체대 현장 조사' 과정에서 공익제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해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교육부가 '한국체대 현장 조사' 과정에서 공익제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해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엠스플뉴스]

교육부의 ‘졸속 조사’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부는 5월 28일부터 ‘한국체육대학교 추가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의 강의시간 골프, 골프채 상납, 스카우트 비용 대납 등 여러 논란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라는 게 교육부가 밝힌 현장 조사 이유다.

교육부는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지만, 조사 첫날부터 잡음이 들렸다. '공익제보자'인 빙상인 A 씨는 "교육부가 공익 제보자에 대한 보호나 배려엔 전혀 관심이 없다. 되레 작정하고 '2차 가해를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어째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일까.

공익제보자 A 씨에 한국체대 유선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 “교육부 조사관입니다”

한국체대 유선 번호로 걸려온 교육부 조사관의 전화 내역. 사진은 5월 28일 기준 공익제보자 A 씨가 캡쳐한 내용이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체대 유선 번호로 걸려온 교육부 조사관의 전화 내역. 사진은 5월 28일 기준 공익제보자 A 씨가 캡쳐한 내용이다(사진=엠스플뉴스)

5월 28일 오후 1시께. 공익 제보자 A 씨의 전화가 울렸다.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전화기를 든 A 씨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전화기 화면에 한국체대 유선 전화번호가 찍힌 것이다.

과거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실에서 조교로 일했던 A 씨는 한국체대 전 조교 스카우트비 대납, 전명규 교수의 골프채 상납 요구 등 굵직한 사건을 제보한 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큰 용기를 낸 A 씨는 "공정한 빙상계가 돼야 후배들 볼 면목이 생길 것 같다"는 말로 자신의 제보에 후회가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그런 용기 있는 A 씨도 전화기에 한국체대 유선번호가 찍히자 크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A 씨가 "여보세요"라고 하자 상대편은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교육부 조사관입니다. 오늘 오후 한국체대로 오셔서 조사에 응할 수 있습니까?

A 씨는 자신을 '교육부 조사관'이라고 밝힌 상대방의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교육부 조사관이 한국체대 유선 전화로 내게 연락을 취한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전명규 교수 관련 공익 제보를 하면서 모교인 한국체대에서 난 '천하의 죽일 놈'이 됐다. 내게 반격하거나 날 회유하려고 한국체대가 내게 연락을 취하려 한다는 소릴 듣곤 했다. 그런 상황에 어떻게 교육부 조사관이 내게 한국체대 유선전화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A 씨가 두 번째로 놀란 건 갑자기 당일에 전활 걸어와 '오늘 오후 한국체대에 조사받으러 올 수 있겠냐'는 교육부 조사관의 말이었다.

내가 공익 제보한 대상이 넓게 보면 한국체대다. 날 협박하거나 회유하려 하다면 한국체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보고 한국체대에 와서 조사를 받으라? 이건 폭행당한 피해자를 폭행당한 장소로 불러 조사하겠다는 것과 같은 소리다. 무엇보다 당일에 전활 걸어와 '오늘 오후까지 나오라'니. 날 가해자로 판단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방 통보다.

어쩌면 A 씨가 가장 크게 놀란 건 교육부 조사관이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인지 모른다.

교육부 조사관 태도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공무원이 신분을 밝히는 건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그분이 교육부 조사관인지, 누군가로부터 사주를 받아 내가 있는 곳과 내가 제보한 의도를 파악하려는 사람인지 누가 알겠나.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아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 걸어 정확한 신분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끝까지 묵묵부답이었다.

빙상 공익 제보자들 "교육부가 공익 제보자 신원을 노출시켰다."

5월 28일 교육부가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와 관련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교육부 내부 관계자들은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조사관의 신상을 전혀 알지 못했다(사진=엠스플뉴스)
5월 28일 교육부가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와 관련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교육부 내부 관계자들은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조사관의 신상을 전혀 알지 못했다(사진=엠스플뉴스)

A 씨가 한국체대 유선전화로 연락해온 교육부 조사관에게 ‘신분을 밝혀달라’고 요청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전에 A 씨는 ‘교육부가 한국체대 현장조사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A 씨에게 갑자기 한국체대 유선전화로 연락을 해와 '오늘 한국체대로 와서 조사를 받을 수 있겠냐'고 물은 교육부 조사관은 누구일까.

교육부는 A 씨에게 전화를 건 28일 오후 5시,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한국체대 현장 조사’ 담당자 정보를 공개했다. 담당자는 국립대학정책과 최수진 과장, 고등교육정책과 이해숙 과장, 신민영 사무관, 임종일 사무관 등 4명이었다.

하지만, 취재 결과 공익 제보자 A 씨에게 연락을 취한 교육부 조사관은 보도자료에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엠스플뉴스 취재결과 A 씨에게 연락을 취한 조사관은 교육부 황00 주무관이었다.

엠스플뉴스 빙상 탐사보도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황00 조사관은 A 씨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신분을 숨길 의도는 없었다. 교육부 사무실에서 조사를 진행했으면, 신분을 밝혔을 것이라고 답했다.

4월 23, 24일 이틀에 걸친 '1차 현장 조사' 때 사건 피해자들을 면담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익제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다. 신분을 숨길 의도는 전혀 없었다. A 씨에게 ‘만나서 신분을 밝히겠다’고 얘기했다. 공익 제보자 신변을 노출 시킬 마음도 없었다.황 조사관의 말이다. 하지만, 황 조사관은 왜 한국체대에선 신분을 숨겨야 하고, 교육부 사무실에선 신분을 밝혀도 되는 건지에 대해선 구체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

엠스플뉴스는 황 조사관에게 ‘공익제보자를 한국체대로 부른 이유’를 질의했다. 황 조사관은 ‘한국체대로 공익제보자를 부른 사실’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공익 제보자에게 '원하는 장소가 있으면, 그곳에서 만나자'고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A 씨처럼 전명규 교수 관련 공익 제보를 했던 빙상인 B 씨는 "한국체대에서 전화를 걸었다면 그 주변에 학교 관계자들이 있었을 거다. '누가 공익 제보자'인지 알지 못했던 학교 관계자들이 있었다면 그 통화로 이제 공익 제보자가 누군지 알게 됐을 거다. 만약 A 씨가 조사를 받기 위해 한국체대에 갔다면 '심증'은 '확증'으로 발전했을 거다. '공익제보자가 어떻게 되든 난 상관없다는 생각 같은 게 없었다'면 당일에 전활 걸어와 '오늘 오라'고 하진 않았을 거다"라며 분개했다.

1, 2차 조사 모두 '교육부 편의주의'와 '한국체대 중심주의'로 일관하는 교육부 감사

교육부 황00 주무관은 “신분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공익제보자를 만나면, 신분을 밝히려 했다“고 항변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교육부 황00 주무관은 “신분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공익제보자를 만나면, 신분을 밝히려 했다“고 항변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교육부는 4월 23일부터 24일까지 진행한 '전명규 교수 관련 현장조사'에서 아무 소득도 거두지 못했다. 당시 조사관들은 한국체대가 제출한 자료와 학교 관계자들의 얘기만 듣고서 조사를 종료했다. 실제로 교육부 조사관들의 연락을 기다렸던 '조교 출신'의 공익 제보자들은 "우리에겐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당시 교육부 조사관은 "어떤 분이 제보한 건지 (우린) 모르니까"하는 말로 공익 제보자들에 연락을 취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조사를 앞두고 교육부가 한국체대에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체육학과 빙상 조교들의 명단과 연락처 제출을 요구했던 게 밝혀지면서 '처음부터 연락할 마음이 없었다'는 비난을 샀다.

지금 와 교육부가 '1차 조사' '2차 조사' 운운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교육부가 '1차 조사'라고 주장하는 4월 현장조사 땐 "더 들여다볼 게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며 추가 조사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가 주장하는 '2차 조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임00 사무관은 역시 교육부가 '1차 조사'라고 주장하는 4월 현장조사를 이끈 장본인이다. 당시 현장조사가 끝난 뒤 빙상계에선 "교육부가 한국체대를 조사하러 간 게 아니라 비호해주러 갔다"는 항의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언론에서도 이를 지적하자 교육부는 '한국체대 비호는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자료까지 뿌렸다. 그런 임 사무관을 교육부가 다시 한국체대 현장조사 담당자로 보낸 걸 두고 빙상인들은 "교육 개혁과 불공정한 교육 현장을 변화시키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교육부 장관과 여전히 변하지 않은 일선 교육부 관료들의 눈높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번 문체부 빙상연맹 감사를 두고 체육인들은 "역대 문체부 최고의 감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찬사가 나온 배경엔 문체부 장관의 의지와 관료, 담당 조사관의 의지가 하나가 돼 외풍을 철저히 차단하고, 진실만을 추적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문체부 반만 따라가도 '관료 마피아가 지배하는 교육부' '교육부가 한국체대 최대 비호세력'이란 의심과 비난은 받지 않을 것이다.

취재 후: 5월 29일 오전 또 다른 공익제보자 C 씨도 "한국체대 유선번호로 교육부 조사관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증언했다. C 씨는 "교육부 조사관이 '이메일로 사건에 대한 질의응답을 할 테니,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공익 제보자에게 '원하는 장소가 있으면, 그곳에서 만나자'고 얘기했다”는 교육부 조사관의 발언은 과연 사실이었을까.

이동섭, 박동희 기자 dinoegg509@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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