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적발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들이 직접 사이트 운영했다

-“레슬링협회 사무처장이 불법 토토 초기 자금 대줬다” 주장

-불법 토토 자금, 합법 사업체로 수십억 원 넘어갔다

-“현장의 스포츠인들이 불법 토토 운영으로 적발된 건 건국 이래 처음”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 관계자들이 무려 9년 동안 운영해온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가 적발됐다. 그간 일부 지도자, 선수가 불법 토토 사이트에 관련돼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대부분 승부조작에 가담한 정도였다. 이렇듯 조직적으로 현장의 스포츠인들이 직접 불법 토토 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한 건 ‘건국 이래 처음’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 관계자들이 무려 9년 동안 운영해온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가 적발됐다. 그간 일부 지도자, 선수가 불법 토토 사이트에 관련돼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대부분 승부조작에 가담한 정도였다. 이렇듯 조직적으로 현장의 스포츠인들이 직접 불법 토토 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한 건 ‘건국 이래 처음’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운영한 일당이 붙잡혔다. 이 사건이 여느 불법 토토 적발건과 다른 게 있다면 붙잡힌 일당의 정체다. 수사기관이 밝혀낸 이들의 정체는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들’이다.

해당 사건의 수사 과정을 상세히 아는 경찰 관계자는 그간 적발된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운영자 대부분은 조폭이거나 전문 불법 스포츠도박 업자들이었다. 이 사건이 심각한 건 투자자와 운영자가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들’이라는 점이라며 이렇듯 조직적으로 현장의 스포츠인들이 합심해 직접 불법 토토 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한 건 '건국 이래' 처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레슬링계의 최대 실세’로 꼽히는 대한레슬링협회 고위 관계자도 이 사건과 관련돼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젊고 유망한 레슬링 코치’, 사이버 머니 환전상에서 불법 스포츠토토 운영자로 변신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 관계자들이 운영한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MVP 00’의 화면. 경찰에 소환된 관련자만 30명이 넘는 큰 사건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 관계자들이 운영한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MVP 00’의 화면. 경찰에 소환된 관련자만 30명이 넘는 큰 사건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MVP 00’가 경기북부지방경찰청(경기북부청) 사이버수사대에 적발된 건 2017년 5월이다.

세 명의 수사관으로 구성된 수사팀은 전국을 돌며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주력했다. 경찰 관계자는 특이하게도 사건 관련자 상당수가 제주도에 살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부산 소재 D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다고 전했다.

경기북부청에 소환된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들’이라는 점이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MVP00’를 직접 만들고, 운영한 이는 A 씨다. 국가대표 출신의 모 레슬링인은 A 씨를 “젊고, 유망주 지도자로 평이 좋았다. 성격도 밝아 따르는 후배가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A 씨의 숨겨진 이면은 달랐다. A 씨는 주변 사람들 모르게 2009년부터 레슬링인 B 씨와 함께 ‘H게임 사이버 머니 환전업’을 했다. 이때만 해도 사이버 머니 환전은 부업에 가까웠다는 게 A, B 씨를 잘 아는 레슬링인들의 얘기다.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MVP00’은 국내 단속을 피해 중국 선양, 대련 등에 사무실을 차리고 은밀하게 활동했다. 이들을 보호한 건 중국 공안과 유지들이었다. 사진은 이들이 운영한 사무실 내부(사진=엠스플뉴스)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MVP00’은 국내 단속을 피해 중국 선양, 대련 등에 사무실을 차리고 은밀하게 활동했다. 이들을 보호한 건 중국 공안과 유지들이었다. 사진은 이들이 운영한 사무실 내부(사진=엠스플뉴스)

두 이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로 눈을 돌린 건 사이버 머니 환전상을 시작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이 불법 사업에 참여했던 레슬링인 C 씨는 초반엔 한국에서 사이트를 운영했다. 그러다 회원수가 증가하면서 적발 위험이 커졌다. 마침 중국 쪽에 든든한 인맥이 있는 모 선배가 있어 2011년부터 사무실을 중국 선양으로 옮겼다선양에서 5명의 직원이 24시간 3교대로 열심히 일한 덕분에 ‘MVP 00’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고 증언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있다. ‘모 선배’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모 선배’는 전 국가대표 레슬링 코치이자 현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인 김00 씨로 밝혀졌다.

‘MVP 00’의 핵심 운영자였다가 지금은 공익 제보자로 돌아선 A 씨는 11월 초 제주도에서 만난 엠스플뉴스 취재진에 레슬링 선배인 김 처장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개설했다. H 게임 사이버 머니 환전사업 때도 김 처장의 자금이 투입됐다고 털어놨다.

A 씨는 “중국 선양으로 불법 토토 사무실을 옮긴 것도 중국 선양지역 레슬링팀에서 3년간 코치 생활을 했던 김 처장이 ‘중국 인맥이 탄탄하다. 내가 다 뒤를 봐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며 “김 처장의 약속이 없었다면 갈 곳 많은 중국에서 굳이 선양에 사무실을 차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국가대표 레슬링 코치이자 현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인 김00 씨는 레슬링협회 살림을 책임지면서 스포츠웨어 브랜드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이 회사 홈페이지에 기재된 김 씨의 주요 약력(사진=엠스플뉴스)
전 국가대표 레슬링 코치이자 현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인 김00 씨는 레슬링협회 살림을 책임지면서 스포츠웨어 브랜드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이 회사 홈페이지에 기재된 김 씨의 주요 약력(사진=엠스플뉴스)

김 처장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실업 레슬링팀 코치로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랴오닝성의 성도(省都)가 바로 ‘MVP00’ 사무실이 있던 선양이다.

A 씨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경찰 추적을 피해 선양에서 대련으로 사무실을 옮겼다가 다시 선양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며 “김 처장과 현직 경찰관인 김 처장의 아내가 중국 선양을 관광 차 방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MVP00’은 사이트명과 인터넷 주소를 바꾸며 2017년 5월 적발 전까지 순항했다. 취재 중 만난 전직 불법 토토 사이트 운영자는 무려 9년간 아무 이상 없이 불법 스포츠토토를 운영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웬만한 ‘빽’이 없으면 이토록 장기간 사이트를 운영할 수 없다. 중국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누군가 뒤를 봐준 사람이 있었을 것으로 단언했다.

불법 스포츠토토에서 벌어들인 수십억 원, 합법 화장품 회사로 흘러들어가. 합법 회사의 대표는 ‘레슬링계의 최대 실세’

‘MVP 00’의 운영자 A, B 씨와 대한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의 돈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나고서다.

A 씨는 “대회가 끝난 뒤 김 처장이 레슬링 대표팀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그때 5천만 원을 보내줬다. 그 돈을 받고서도 김 처장이 계속 ‘내 살길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해 달마다 500만 원씩을 보내줬다”고 주장했다.

2015년 A, B 씨는 김 처장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의 동업 과정을 소상히 아는 레슬링인 D 씨는 세 명이 뜻을 모아 중국에 화장품과 스포츠용품을 수출하는 ‘000글로벌네트웍스’란 회사를 차렸다. 김 처장이 대표, A 씨가 전무, 김 처장의 사촌 동생이자 레슬링 선수 출신인 문00 씨가 ‘바지 사장’을 맡았다고 귀띔했다.

D 씨의 증언에 따르면 대부분의 회사 자금을 조달한 이는 A 씨다. A 씨가 불법 토토에서 벌어들인 돈 가운데 상당액을 ‘000글로벌네트웍스’로 보냈다 A 씨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아 가방에 넣어주면 문 씨가 김 처장에게 들고 갔다. 그러면 다시 김 처장의 지시로 이 돈이 문 씨 혹은 김 처장 관리 계좌로 입금됐다. D 씨의 설명이다.

A 씨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A 씨는 “김 처장은 항상 ‘나중에 문제가 되니 현금으로만 돈을 달라’고 했다. 경찰 조사에서 총 16억 7천만 원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내 생각엔 그보다 더 많은 돈이 갔다”며 “김 처장이 ‘사무실 월세, 직원 월급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2, 3천만 원을 준비해 보내줬다”고 진술했다.

불법 토토 사이트 운영자 A 씨와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 김00 씨의 돈 거래가 명기된 A 씨의 예금 거래 내역서. 2011년 1월 4일 ‘스포츠토토 운영자금’ 명목으로 김00 씨에게 600, 400만 원을 받았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사진=엠스플뉴스)
불법 토토 사이트 운영자 A 씨와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 김00 씨의 돈 거래가 명기된 A 씨의 예금 거래 내역서. 2011년 1월 4일 ‘스포츠토토 운영자금’ 명목으로 김00 씨에게 600, 400만 원을 받았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사진=엠스플뉴스)

불법 토토 사이트에서 벌어들인 수십억 원이 ‘000글로벌네트웍스’로 흘러들어갔지만, 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다음은 A 씨의 증언이다.

“2016년 들어 사이트 운영이 힘들어졌다. 경쟁 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수익 규모가 계속 줄었다. ‘000글로벌네트웍스’도 다를 게 없었다. 수익은 없고, 밑 빠진 독처럼 돈만 들어갔다. 그런데도 김 처장은 월급으로 700만 원을 더 받아갔다.”

2016년 2월께 A 씨는 김 처장에게 “사이트 운영비가 부족하다. 사이트를 살려야 형에게 돈을 줄 수 있다. 1억 원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김 처장이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8,500만 원을 빌려줬다”며 “조금만 갚는 날짜가 늦어도 ‘빨리 갚으라’는 재촉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예금거래 내역서와 유동성 거래내역조회에 따르면 A 씨는 자신 명의의 계좌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 명의 계좌까지 동원해 김 처장에게 돈을 보냈다. 무통장 입금액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은 돈이 김 처장에게 보내졌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불법 토토 사이트 운영자에서 공익 제보자로 돌아선 A 씨, “나는 상관이 없다” 주장하는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 김00 씨에게 돈을 보낸 건 A 씨만이 아니었다. A 씨의 지인도 김 씨에게 꾸준히 돈을 보냈다. A 씨의 지인이 안면이 거의 없는 김 씨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보낸 건 A 씨의 부탁 때문이었다. A 씨는 “내가 자꾸 돈을 보내면 나중에 거래 흔적이 남아 금융 당국에서 이상하게 볼 것으로 판단했다”며 “김 처장에게 돈을 보낼 때 가족이나 친구 명의의 계좌를 이용하는 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 김00 씨에게 돈을 보낸 건 A 씨만이 아니었다. A 씨의 지인도 김 씨에게 꾸준히 돈을 보냈다. A 씨의 지인이 안면이 거의 없는 김 씨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보낸 건 A 씨의 부탁 때문이었다. A 씨는 “내가 자꾸 돈을 보내면 나중에 거래 흔적이 남아 금융 당국에서 이상하게 볼 것으로 판단했다”며 “김 처장에게 돈을 보낼 때 가족이나 친구 명의의 계좌를 이용하는 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사진=엠스플뉴스)

2009년부터 레슬링인들의 주도로 운영돼온 ‘MVP00’은 2017년 5월, 드디어 꼬리가 잡혔다. 제보가 발단이었다. 전·현직 레슬링인들이 ‘줄소환’되면서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A 씨는 애초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그 통에 지명수배자가 됐다. A 씨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야할 돈이 많았다. 그 돈을 받고 가족에게 준 다음 자수하려 했다”며 “하지만,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들이 하나둘 등을 돌리는 걸 보고 자수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지명수배자 처지가 된 A 씨와 달리 김 처장은 2017년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에 오른 뒤 레슬링계가 인정하는 ‘실세 중의 실세’가 됐다. 취재 중 만난 레슬링인들은 입을 모아 “현 레슬링계는 그야말로 ‘김00 천하’”라며 “현 회장, 협회 직원, 국가대표 지도자 가운데 상당수가 김 처장의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A 씨는 2017년 6월 경찰에 자수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했다. 30명이 넘는 사건 관련자 대부분도 경찰 수사에 협조적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김 처장이다.

김 처장은 수사 받는 내내 불법 토토와 나는 관계가 없다. 후배들이 불법 토토 사이트를 운영하는지 몰랐다. A 씨와 돈거래가 있었어도 그건 합법적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2일 엠스플뉴스 취재진과의 전화통화에서도 김 처장은 “난 불법 토토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 월요일(5일)에 전활 주면 만나서 내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처장은 5일 일체의 연락을 받지 않은 채 엠스플뉴스에 취재에 항의하는 내용증명만을 보내왔다.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지검(사진=엠스플뉴스)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지검(사진=엠스플뉴스)

경기북부청에서 조사를 끝낸 사건은 올해 2월 의정부지청으로 넘어갔다. 현재는 제주지검에서 사건을 맡고 있다. 사건 관련자들은 “8월 말 제주지검으로부터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2017년 5월부터 경찰이 사건 수사를 벌였으니, 1년이 훨씬 넘어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된 셈이다. 그 사이 몇몇 사건 관련자는 국외로 도주했고, 사건의 핵심 관련자로 알려진 대한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은 레슬링계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사건은 경찰 수사 당시 ‘1조 원대’에서 지금은 ‘2천억 원대’로 판돈 규모가 줄어든 상태다. 그리고 여전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첫 올림픽 금메달을 국민에게 안겼던 레슬링은 이제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전·현직 지도자들이 주도한 불법 스포츠토토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됐다.

엠스플뉴스 탐사 취재팀은 3개월간 한국 레슬링계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취재했다. 누가, 어떻게 레슬링협회를 사유화했고, 어떤 식으로 장부를 조작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들만의 카르텔’을 이뤘는지, 국가 공권력이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활용’됐는지 상세히 보도할 예정이다.

박동희, 배지헌, 박찬웅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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