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PGA 투어’ 표방하는 PBA에 경고 나선 UMB

-“UMB 미승인 대회 나가면 ‘최대 3년 출전정지’” 경고

-“UMB 고소하려면 스위스 로잔에서 해야할 것”

-“파리올림픽에서 당구 정식종목 미채택은 잘못된 선택. 남·북 공동올림픽 도울 것”

'당구 PGA 투어'를 내세운 PBA. 하지만, 세계캐롬연맹(UMB)이 반발하며 격랑이 예상된다(사진=엠스플뉴스)
'당구 PGA 투어'를 내세운 PBA. 하지만, 세계캐롬연맹(UMB)이 반발하며 격랑이 예상된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과거 당구장은 ‘경고’ 팻말이 유명무실한 열린 광장이었다. 성인들은 연인이나 반려자의 ‘경고’에도 당구장에 삼삼오오 모여 그들만의 시간을 즐겼고, 청소년들은 학교의 ‘경고’에도 당구장에 출입해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정작 ‘경고’ 팻말이 떨어져 나가자 당구 인기는 갈수록 떨어졌다. 1993년 헌법재판소가 미성년자의 당구장 출입을 금지한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했지만, 당구는 한동안 볼링 등 새로운 스포츠에 밀렸고, 이후엔 ‘스크린 골프’ 인기에 막혀 불황을 맞았다.

그러던 당구가 다시 ‘인기 생활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저렴한 이용 요금과 쾌적한 환경이 더해지며 당구 인기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당구 인기 회복은 비단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4구, 3쿠션은 이제 유럽, 베트남, 터키에선 생활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나 3쿠션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프로스포츠’로 성장 중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3쿠션 대회가 열리고, 참가선수도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엔 이런 인기를 모아 골프 PGA투어를 모델로 한 ‘PBA(프로당구) 투어’까지 출범했다.

2월 21일 ‘PBA 투어 출범 선포식’에서 PBA 측은 당구의 프로화를 선언했다. PBA 계획대로라면 6월에 첫 투어가 시작해 내년 2월까지 최소 6개에서 최대 8개의 대회가 치러질 전망이다. 참가 선수도 세계 상위권 랭커가 총출동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오래지 않아 제동이 걸렸다. ‘경고 팻말을 무시하지 마라’는 측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전세계 4구와 3쿠션을 총괄하는 세계캐롬연맹(UMB)이다.

UMB 파룩 엘 바르키 회장은 2월 하순 기자회견을 열어 PBA 투어에 출전하는 선수는 앞으로 UMB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 만약 UMB가 승인하지 않은 대회에 출전할 시 출전정지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엠스플뉴스는 바르키 회장을 만나 한 달 전의 경고가 여전히 유효한지 물었다. 그리고 왜 경고 사인을 들게 됐는지 질의했다.

“1980년대에도 UMB 미승인 대회 출전한 선수들에게 대거 출전정지 처분 내렸다. 지금도 마찬가지”

서바이벌 3쿠션 마스터스 대회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서바이벌 3쿠션 마스터스 대회 장면(사진=엠스플뉴스)

2월 27일 기자회견에서 “PBA 투어 참가 시 UMB 대회는 물론 대한당구연맹(KBF)이 주최하는 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당구 PGA 투어’를 기대했던 이들에겐 분명 좋지 않은 뉴스였는데요.

당신도 잘 알 겁니다. 모든 국제스포츠 경기단체엔 자체 원칙과 규칙이 있어요.

네.

1980년대 유럽에서 BWA(세계당구협회)가 출범했습니다. UMB 소속의 프로선수 100여 명이 BWA로 이동했어요. UMB는 100여 명의 선수들에게 출전정지조치를 취했습니다. 왜 취했느냐? 그게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UMB의 규정이기 때문이었어요. 원칙과 규정을 바꾸려면 지금도 UMB 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PBA의 등장으로 더 많은 선수에게 대회에 뛸 기회가 생겼다’는 얘길 하는 당구인들도 있습니다.

‘기회’는 신뢰 속에서 가치가 있는 말입니다. 신뢰가 없다면 그건 기회가 아니라 ‘기만’일 수 있어요. PBA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아세요?

글쎄요.

선수들에게 항상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다. 나는 선수들 모두 성숙한 존재이니만큼 선수들 스스로 잘 판단할 것으로 믿어왔어요.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대회에 갔을 때 놀랄 만한 일과 마주쳤습니다.

어떤 일이었습니까.

선수들이 내게 와서 “바르키 씨, 우리가 PBA에서 뛰면 출전정지를 당합니까”하고 물은 겁니다.

이미 그런 얘기가 나와 확인 차 물어본 게 아닐까요?

제가 놀란 건 그다음이었어요. 어느 선수가 내게 “PBA가 선수들에게 ‘우리 변호사들이 다 준비하고 있다. 여러분이 UMB로부터 출전정지를 당하는 걸 면하게 해줄 것이다. ISU(국제빙상연맹)에서도 유사 사례가 있었지만, ISU가 졌다’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말해준 겁니다.

2014년 네덜란드 빙상선수가 ‘아이스더비 그랑프리’란 대회에 참가하려고 할 때 ISU가 “사행성 조장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며 제재 의사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이 선수가 ISU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EU 규제 당국에 제소했습니다. 제소 결과 뜻밖에도 2017년 EU 분쟁조정위원회는 “ISU는 선수들의 아이스더비 참가를 막지 말고, 허용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과는 사과와 비교해야지, 오렌지와 비교해선 안 됩니다. 1980년대 이미 일부 선수가 유사한 이유로 UMB로부터 출전정지를 당한 바 있습니다. 선수들이 잘못된 정보에 이끌려 출전정지를 당하는 일이 생길까 우려됩니다. 그런 우려 때문에 제가 선수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어 “여러분이 규정을 어긴다면 출전정지가 될 것”이라고 말한 거예요.

“PBA, 선수들에게 계속 거짓말. 소송 불사하겠다면 UMB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에서 해야할 것”

파룩 엘 바르키 UMB 회장(사진=엠스플뉴스)
파룩 엘 바르키 UMB 회장(사진=엠스플뉴스)

정확히 UMB 어느 규정에 출전정지 내용이 나와 있는 겁니까.

지금 당신이 한 질문을 누군가 똑같이 제게 했어요. 전 “UMB 규정집 제1조 21, 26항, 제22조 1, 3항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UMB 규정을 어긴 채 경기 출전을 강행하면 1년, 또 경기에 출전하면 다시 1년의 출전정지 처분이 내려집니다. 만약 규정을 3번 어기게 되면 최대 3년까지 출전정지 처분을 받게 돼요.

그렇군요.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어떤?

PBA는 ‘UMB가 선수들에게 출전정지 처분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변호사들은 모두 한국 변호사들이에요. 그 변호사들은 한국에서 UMB를 고소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UMB를 고소하고 싶다면 우리 본부(UMB)가 있는 스위스 로잔으로 와야 합니다. 그들이 더는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선수들에게 말하지 말아야 않았으면 해요. 아, 그리고.

네.

이전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어요. 모 당구 미디어가 코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에요. 서울 법정에서 재판이 열렸죠. UMB는 계약 관련 서류를 전부 보냈고, 결국 코줌이 승소했습니다. 만약 PBA가 우릴 고소하겠다면 스위스 법에 따라 진행될 겁니다. 우리에겐 로잔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파리올림픽에서 야구, 당구 대신 브레이크댄스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건 말이 되지 않는 결정”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당구가 정식종목이 되길 바라는 이들이 '2024'가 새겨진 당구공을 들고 있다. 하지만, 파리올림픽에서 당구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사진=UMB)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당구가 정식종목이 되길 바라는 이들이 '2024'가 새겨진 당구공을 들고 있다. 하지만, 파리올림픽에서 당구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사진=UMB)

PBA와의 갈등이 벌어진 것도 ‘당구의 프로화’, ‘당구의 세계화’에 대한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캐롬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당구의 재미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축구, 탁구, 야구 등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습니까. 당구라고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당구는 탁구처럼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도 않아요. 다양한 수 싸움과 매너를 가르칠 수 있는 진중한 스포츠가 바로 당구입니다. 당구가 학교 교육을 통해 더 보급된다면 당구 인기도 세계적으로 지금보다 더 올라갈 겁니다.

‘당구의 세계화’를 위해 국제당구계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던 게 ‘당구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당구는 또다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당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아주 큰 기횔 잡았습니다만, 아쉽게도 파리올림픽에선 채택되지 못했어요. 전 그들의 결정이 좋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브레이크댄스를 정식종목으로 포함하면서 야구, 당구를 배제하다니? 말이 되지 않아요.

왜 파리올림픽에서 당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고 봅니까.

올림픽 개최국이 자기 나라가 메달 따기 힘든 종목은 배제하려 하기 때문이에요. 브레이크 댄스라, 이런….

당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우린 계속 노력할 겁니다. 전 언젠가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리라 확신해요.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이 열린다면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하는 말도 있더군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친구들에게 남·북 공동올림픽 개최의 필요성을 강조하겠습겠다. 국제핸드볼연맹 회장(하산 무스타파)도 이집트 사람이에요. 스쿼시도 세계적으로 이집트의 발언권이 강한 종목이죠. 독일 통일처럼 남과 북도 하나가 됐으면 합니다. 올림픽이 그 시작이 된다면 모두가 환영할 거예요. UMB가 많이 도울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이근승, 박동희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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