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위기’ 태릉 스케이트장, 세계문화유산 등재 직격탄 맞아

-문화재청 “태릉과 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왕릉 복원 약속한 상태, 철거는 불가피”

-빙상인들 “태릉 스케이트장은 한국 빙상의 성지. 선수촌 내 시설 가운데 유일하게 일반 시민과 함께 사용해온 곳”

-빙상인들 “태릉 스케이트장 사라지면 스피드 스케이팅 전체가 고사할 수 있다” 우려

존폐 위기에 놓인 태릉 스케이트장(사진=엠스플뉴스)
존폐 위기에 놓인 태릉 스케이트장(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태릉]

빙상인들이 ‘철거 위기’에 놓인 태릉 스케이트장 지키기에 나섰다.

빙상인들은 입을 모아 50년여 전부터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태릉 스케이트장이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위기에 놓여있다 한국 빙상의 성지인 태릉 스케이트장이 철거된다면 한국 빙상 역사의 큰 부분이 함께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스피드 스케이팅 자체가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태릉 스케이트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빙상장이다.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400m 스피드 스케이팅 트랙을 갖춘 빙상장이기도 하다.

'철거 위기' 태릉 스케이트장, 빙상인들 "한국 빙상의 성지가 사라지는 걸 막아야...태릉이 사라지면 400m 국제 규격을 갖춘 스피드 스케이트장은 강릉이 유일. 스피드 스케이팅 전체가 고사할 수 있다"

태릉 스케이트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태릉 스케이트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태릉 스케이트장은 1971년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를 할 수 있는 400m 트랙을 갖춘 옥외링크로 세워졌다. 지어진 지 48년이 됐지만, 지금까지도 수도권에서 국제 규격의 스피드 스케이팅 트랙을 갖춘 곳은 태릉 스케이트장이 유일하다.

그런 태릉 스케이트장이 철거 위기에 놓인 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가 보존해야 할 문화와 자연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유네스코(UNESCO)가 2009년 ‘조선 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게 발단이었다. 유네스코는 왕릉 보존을 위해 훼손 능역을 복구하라고 문화재청에 권고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조선 왕릉’은 조선 13대 왕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가 잠든 ‘태릉’과 명종·인순왕후를 합장한 ‘강릉’이었다. 만약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훼손 능역을 복구해야 한다면 두 왕릉에 위치한 태릉선수촌과 태릉 스케이트장은 철거될 수밖에 처지다.

2017년 진천선수촌 시대가 개막하면서 태릉선수촌 철거는 더 현실화됐다. 하지만, 태릉선수촌이 가진 역사적 가치에 주목한 대한체육회가 태릉선수촌 건물 8개의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며 국면이 전환됐다. 2018년 문화재청은 대한체육회가 요구한 태릉선수촌 건물 8개 가운데 4개의 존치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태릉 스케이트장이었다. 태릉 스케이트장은 대한체육회가 요구한 등록문화재 8개의 건물에서 처음부터 빠져 있었다. 태릉 스케이트장 존치를 위해 활동 중인 ‘젊은 빙상인 연대’ 소속 장광덕 코치는 문화재청 확인 결과 ‘태릉 스케이트장이 강릉(康陵)의 경관을 크게 훼손한다는 결론이 났다’고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라면 태릉 스케이트장 철거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더 빨리 철거를 막으려고 노력했어야 하는데’하는 아쉬움이 커요. 지금이라도 빙상인들이 힘을 합쳐 태릉 스케이트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걸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태릉 스케이트장이 사라지면 한국 빙상 역사도 함께 사라지는 일일 테니까요. 특히나 태릉 스케이트장은 선수촌 내 시설 가운데 유일하게 빙상인과 일반 시민이 함께 사용해온 곳이에요. 빙상인도 빙상인이지만, 빙상을 즐기는 일반 시민도 피해를 볼 수 있는 일이라, 철거를 막기 위해 뭐든 노력해볼 생각입니다.장 코치의 말이다.

다른 빙상인들은 태릉 스케이트장 철거 반대 이유와 관련해 더 현실적 문제를 꼽았다. 한 빙상인은 “태릉 스케이트장이 사라지면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자체가 고사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우리나라에서 400m 트랙이 있는 곳은 태릉 스케이트장과 강릉 올림픽파크 스피드 스케이팅장 둘 밖에 없어요. 만약 태릉 스케이트장이 사라지면 스피드 스케이팅 유망주들은 강릉에 가서 훈련할 수밖에 없어요. 이동 거리를 고려하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학부모들부터가 포기하고 말 거예요.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자체가 고사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빙상인들 “문화재청 입장도 잘 알아. 철거가 불가항력적인 일이라면 수도권에 스피드 스케이트장 신축하는 게 유일한 해결 방안”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사진=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사진=강원도)

빙상인들이 위기감을 나타내는 가운데 문화재청은 “태릉 스케이트장이 철거 예정인 건 사실이다. 유네스코의 권고 사항을 따르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다만, 태릉 스케이트장이 철거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며 “대안이 마련될 때까진 철거 일자를 확정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릉 스케이트장 존치를 위해 활동하는 ‘젊은 빙상인 연대’도 문화재청의 입장을 모르지 않는다. ‘젊은 빙상인 연대’ 권순천 부회장은 “수도권에 스피드 스케이트장을 짓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태릉과 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정부가 한 국제적 약속이니만큼 문화재청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압니다. 그간 태릉 스케이트장은 천장에서 물이 새는 등 노후화된 시설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것도 사실이고요. 정말 철거가 불가항력적인 일이라면 수도권에 스피드 스케이트장을 신축하는 게 유일한 대안이지 않을까 봅니다. 권 부회장의 얘기다.

이전에도 태릉 스케이트장의 철거 대안으로 ‘수도권 신축 스피드 스케이트장’이 꼽혀왔다. 하지만, 여러 문제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최근 의정부시가 녹양동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인근에 관중석 2,000석 규모의 스케이트장 신축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사업비 추산 1,530억 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제자리걸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로 많은 빙상인은 한국 빙상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태릉 스케이트장이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위기에 몰리면서 빙상인들은 역설적으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고사를 우려하고 있다.

이근승, 박동희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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