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시작한 KBL PO, 올 시즌엔 어떤 선수가 단기전 지배할지 ‘관심’

-KT와의 6강 PO 1차전 지배한 김시래, 4쿼터에만 11득점 올리며 LG에 첫 승 선물

-‘전설’ 조성원-조 잭슨 떠올린 김시래, 데뷔 시즌부터 꾸준했던 정상급 포인트 가드

-김시래 “이제부터가 시작, 말보다 실력으로 보여줄 것”

창원 LG 세이커스 포인트 가드 김시래(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창원 LG 세이커스 포인트 가드 김시래(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창원]

농구계는 봄 농구가 시작할 때면 기대하는 게 있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이목을 사로잡는 이른바 ‘미친 선수’의 등장이다.

명지대학교 조성원 감독은 KBL(한국프로농구) 플레이오프(PO)에서 미쳤던 대표적인 선수였다. 조 감독은 1997-1998시즌부터 대전 현대 다이넷(전주 KCC 이지스의 전신)의 2연패를 이끌었다.

조 감독은 4쿼터만 되면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외곽슛을 터뜨리며 승리를 불러왔다. 1998-1999시즌 챔피언 결정전 5경기에선 경기당 평균 16.4득점(3점슛 3.6개)을 기록하며 MVP(챔피언 결정전)에 올랐다.

최근 ‘PO 사나이’로 불린 선수로는 조 잭슨을 꼽을 수 있다. 2015-2016시즌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챔피언 등극을 이끈 잭슨은 날렵한 움직임과 화려한 드리블, 정확한 외곽슛 등을 무기로 KBL 최장신(221cm) 센터 하승진이 중심을 잡은 정규리그 우승팀 KCC를 넘어서는 데 앞장섰다.

PO만 되면 빛나는 작은 거인, 바통 이어받을 선수는 김시래?

선수 시절 조성원(현 명지대학교 감독), 2015-2016시즌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뛰었던 단신 외국인 선수 조 잭슨(사진=엠스플뉴스)
선수 시절 조성원(현 명지대학교 감독), 2015-2016시즌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뛰었던 단신 외국인 선수 조 잭슨(사진=엠스플뉴스)

봄만 되면 미친 활약을 보인 선수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란 농구계 격언을 증명하듯이 키가 크지 않다.

선수 시절 조성원 감독과 함께 3차례 챔피언 등극을 합작한 서울 삼성 썬더스 이상민 감독은 (조)성원이 형의 4쿼터 3점슛은 놀라운 수준이었다팀이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어도 패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 감독이 3점슛을 폭발시켜 경기를 뒤집는 날이 많았던 까닭이다. 그렇게 KCC는 세 차례(1997-1998, 1998-1999, 2003-2004)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조 잭슨과 함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우승을 이끈 이승현은 그는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사람들이 나를 챔피언 등극의 일등 공신으로 꼽아줬지만 실상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잭슨이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내·외곽을 휘저어준 덕분에 팀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작은 거인이 승리의 주역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조니 맥도웰(194cm), 재키 존스(202cm), 애런 헤인즈(200cm), 장재석(204cm) 등 장신 선수보다 키는 작지만 승부에 미친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3월 23일 시작한 2018-2019시즌 봄 농구에서도 작은 거인이 등장했다. 24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6강 PO 1차전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린 창원 LG 세이커스를 구한 김시래가 그 주인공이다. 김시래는 이날 22득점, 11어시스트, 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연장 접전 끝 94-92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나 김시래는 4쿼터에만 11득점을 올리는 등 경기 막판 원맨쇼를 펼쳤다. 번개처럼 빠른 발로 장신 선수가 버틴 골밑에서 득점을 만들었고, 과감한 외곽슛으로 KT로 기울던 승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4쿼터 종료 1분 전 5점 차로 지고 있던 LG가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던 건 김시래의 맹활약 덕분이었다.

KT 서동철 감독은 김시래를 막지 못한 게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꼽았다. LG 현주엽 감독도 놓칠 뻔한 경기를 (김)시래가 잡아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LG 내국인 센터 김종규도 시래 형의 경기 막판 3점슛과 레이업 슛이 팀을 구했다형 덕분에 귀중한 1승을 챙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음고생 심했을 정규시즌, ‘PO’에서 털어낼까

김시래는 본래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다. 키는 작지만 폭발적인 스피드로 골밑을 흔들고, 슈터 못잖은 외곽슛 성공률을 자랑하는 포인트 가드다. 올 시즌엔 51경기에서 뛰며 경기당 평균 10.8득점(3점슛 1.5개), 4.1어시스트, 2.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LG 내국인 선수 가운데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이는 김시래, 김종규 ‘단’ 둘 뿐이다.

하지만, 김시래는 올 시즌 마음고생을 했다. 단신 외국인 선수 조쉬 그레이와 스타일이 비슷해 출전 시간이 줄었다. 외국인 선수 두 명이 뛸 수 있는 2,3 쿼터에선 수비에서의 문제로 벤치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1, 4쿼터 위주로 경기에 임하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김시래에게 향하는 질문은 정규시즌 내내 비슷했다.

“충분히 더 뛸 수 있고,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데 아쉽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럴 때마다 김시래는 “출전 시간은 현주엽 감독께서 선택하는 것”이라며 “주어진 시간에 제 역할을 하는 게 내 몫”이란 모범답안을 내놨다. 정규시즌 내내 김시래는 이와 같은 답을 반복했다. 승장 선수로 꼽혀 인터뷰실을 찾은 날도 다르지 않았다.

LG가 4시즌 만에 PO에 오른 주역으론 김종규, 제임스 메이스 등 장신 선수가 꼽혔다. 외곽에선 베테랑 조성민, 강병현이 이목을 끌었다. 지난 시즌보다 짧아진 출전 시간에도 기대를 충족시킨 김시래지만, 세간의 관심은 그를 외면했다.

창원 LG 세이커스 김시래 KBL 기록(표=엠스플뉴스)
창원 LG 세이커스 김시래 KBL 기록(표=엠스플뉴스)

6강 PO 1차전에서의 활약에 눈이 가는 이유다. 팀이 정말 필요로 한 순간 미친 존재감을 보이며 귀중한 1승을 가져왔다. 과거 조성원, 조 잭슨 등 PO를 지배한 작은 거인처럼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이란 말을 코트 위에서 증명했다.

아직 1경기를 치렀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김시래는 3월 8일 서울 SK 나이츠와의 경기부터 이날까지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팀은 김시래의 맹활약을 앞세워 5연승에 성공했다. 작은 거인은 PO에 들어서기 전부터 범상치 않은 경기력을 뽐내고 있었다.

김시래는 경기마다 기회가 오면 자신감 있게 슛을 쏘려고 한다첫판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기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6강 PO 1차전 승리가 가지는 의미는 아주 크다. 특히나 접전 경기에서 패한다면 체력과 정신 모두 타격이 상당하다. 지금부터 잘 준비해야 한다. 농구 사랑이 유별난 창원 팬을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오래 봄 농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3시즌 간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할 때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이다. 말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드리겠다.김시래의 말이다.

역대 챔피언 결정전 우승팀엔 작은 거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서장훈, 김주성, 하승진, 오세근 등 높이를 앞세운 국보급 센터가 우승을 이끈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 거인의 등장과 맹활약은 신장의 스포츠로 알려진 농구에서 큰 울림을 준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어느 스포츠 광고 문구를 증명하듯, 힘들 것이라 여겨진 승부를 뒤엎는 까닭이다.

김시래는 프로에 데뷔한 2012-2013시즌부터 꾸준한 활약을 이어왔다. 출전 시간이 줄어든 올 시즌에도 제 몫을 했다. 정규리그 막판 들어선 무서운 폭발력을 보이며 5연승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6강 PO 1차전에서의 미친 활약은 끝이 아닌 시작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