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스플뉴스]

2017년 6월 8일은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임원 가운데 한 명인 김훈기 사무국장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총회를 열고 FIFPro 한국 지부(FIFPro KOREA)를 정식으로 인준했다.

이날 총회를 주재한 시오 판 세겔렌 FIFPro 사무총장은 “선수가 없이 축구가 존재할 수는 없다.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조직이 있음으로써 축구는 더욱 발전할 것”이라면서 덧붙여 "오는 12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FIFPro 세계총회에서 정식으로 인준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김훈기 사무국장(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김훈기 사무국장(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한국에선 2000년에 출범한 프로야구선수협회에 이어 두 번째로 선수협회가 설립된 셈이다. 선수들의 결사체인 선수협회를 설립하기 위해 5년간 굵은 땀방울을 흘린 김훈기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사무국장을 엠스플뉴스가 만나 'FIFPro'가 무엇인지 앞으로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물었다.

전 세계 65개국 6만 5천 명의 선수가 함께하는 FIFPro란 '축구선수협회'

2015년 3월 31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네덜란드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FIFPro 창립 50주년 행사 장면(사진=FIFPro)
2015년 3월 31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네덜란드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FIFPro 창립 50주년 행사 장면(사진=FIFPro)

2017년 6월 8일 FIFPro 한국 지부가 인준됐고 이제 정식 인준만을 남겨 뒀습니다.

5년 동안 고생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렀습니다. 처음엔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죠. 돌이켜보면 정말 순탄하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독자들이 FIFPro란 협회를 다소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아요. 어떤 단체인가요.

FIFPro란 1965년에 설립이 되었고 58개국 6만 5천 명의 선수가 가입된 전 세계 프로축구선수협회입니다.

한국에 FIFPro가 설립된 계기는 뭔가요.

2012년 겨울에 처음 발족이 됐어요. 처음에 네덜란드에 있는 FIFPro 본부에서 연락이 왔죠. 이유는 당시 일어났던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이었어요.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한다는 것은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승부조작' 사건이 벌어지면 선수들 또한 피해를 보게 마련입니다. 선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FIFPro에선 한국 선수들을 돕기 위해 접촉을 해왔죠.

이유는?

당시 한국엔 선수를 보호하는 단체가 없었으니깐요. 그래서 박지성 선수를 비롯한 여러 선수에게 연락이 왔었죠. 저는 통역을 하기 위해 우연히 저녁 식사 자리에 참여하게 됐었어요.

김 국장은 처음엔 전혀 참여할 생각이 없었군요?

맞아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가볍게 식사하기 위해 당시 FIFPro 아시아·오세아니아 지부 회장을 만났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나요.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함께 하자는 제의였죠. 너희 나라엔 선수를 지켜줄 단체가 없냐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몇 명의 선수가 참여했나요?

당시 30~40명이었어요. 이영표, 송종국 선수를 비롯해 유명 선수들이 모여서 함께 하자는 생각을 했죠. 승부조작 사건이 큰 계기가 됐죠.

왜 승부조작 사건이 큰 계기가 됐습니까.

승부조작은 어느 종목,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큰 문제죠. 스포츠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위험한 행위입니다. FIFPro 또한 승부조작을 위한 협박이나 제의로부터 선수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사건이 터지자 한국에 큰 관심을 두게 된 거죠.

FIFPro의 레드카드 캠페인. 12시 방향에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이 인종차별 퇴장을 보여주자는 문구가 적힌 레드카드를 들고 있다(사진=FIFPro)
FIFPro의 레드카드 캠페인. 12시 방향에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이 인종차별 퇴장을 보여주자는 문구가 적힌 레드카드를 들고 있다(사진=FIFPro)


처음 선수협회를 만들 때 어렵진 않았나요?

정말 힘든 일이 많았죠. 아마 2013년 8월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에 FIFPro 아시아 지부에서 한국 선수들을 만나기로 했었죠. 그날 아마 선수들이 단 2명만이 참여했을 거예요. FIFPro KOREA 한국 지부 관계자 3명 포함해 총 5명이 총회를 했어요. 그때 총회 광경은 아직도 제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라요.

포기할 법도 한데 계속 선수협을 설립하기 위해 달린 이유가 궁금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아쉽다는 생각도 했고요. 어쩌면 내가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두명이라도 와줘 고마웠어요.

사단법인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의 새로운 시작

총회에 참석한 김훈기 사무국장(사진=FIFPro KOREA)
총회에 참석한 김훈기 사무국장(사진=FIFPro KOREA)

5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드디어 2017년 9월 21일 사단법인 허가가 서울시로부터 떨어졌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사단법인 허가는 법의 보호를 받게 된 것 뿐이잖아요.

법인이 되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법인이 되면 조직의 영속성이 보장되죠. 몇 사람 탈퇴한다고 흔들리지 않고요. 할 일이 정말 많아졌네요(웃음).

어떤 일을 하려고 합니까.

승부조작 방지, 도핑 관련 세미나는 현재도 진행하고 있어요. 언론에 발표된 내용은 급여 미지급과 무단방출 등 구단의 전횡에 대한 대응. 선수의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을 비롯한 선수 권익 증진, 선수들에 관한 법률 자문, 방출된 선수들을 위한 취업 알선(트라이 아웃 제도), 그리고 팬들과 소통을 위한 사회적 활동 등이 있습니다.

승부조작 방지에 관련해 지금도 교육하고 있다는 점은 전혀 모르던 내용이네요.

네. 승부조작에 연루됐던 최성국 선수가 2014년에 FIFPro 총회에 특별히 초대돼 선수들 승부조작 유혹서 보호해야 한다고 연설을 했죠. 또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 약물이 검출된 강수일(자스파쿠사츠 군마)의 법률 자문도 해줬어요. 당연히 잘못한 행동이지만, 너무 과도한 징계를 이중으로 받았거든요. 그런 부분에 있어 선수들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선수협에서 도움을 주고 있었는데 왜 우리는 선수협이 있다는 것 자체도 몰랐을까요.

아무래도 상당히 조심스러웠어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선수들로부터 지지를 받기도 쉽지 않았고, 혹여나 가입된 선수들이 피해를 볼까 그 점이 제일 염려가 됐어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조용하게 움직였고요. 이제 법인화도 됐으니 걸음마를 뗐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사단법인화가 됐으니 아마 많은 분의 관심을 끌게 될 텐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이제 선수들이 소리를 내고 말할 기회가 조금은 생겨났다고 봐요. 그렇다고 저희가 투쟁을 하는 건 아닙니다. 저흰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협회, 연맹과 함께하는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먼저 손을 내밀 생각입니다.

선수협 "선수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뿌리 내리겠다"

2017년 6월 8일 FIFPro 아시아·오세아니아 지부 총회(사진=FIFPro KOREA)
2017년 6월 8일 FIFPro 아시아·오세아니아 지부 총회(사진=FIFPro KOREA)

현재 회원 수는 얼마나 되나요?

9월 22일 기준 250명의 선수가 가입해 있어요. (이)영표형을 비롯해 많은 분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고액 연봉자인 프로축구 선수들이 무슨 협회를 만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불편해하는 시선으로 쳐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담담하게 고갤 저으며) 연봉 상위 10% 선수들은 사실 선수협이 필요가 없어요. 이들은 오히려 귀찮죠. 국가대표를 지냈던 A 선수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나도 만약에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으면 귀찮아서 절대 선수협에 가입 안 했을 것이다. 구단에서 한소리 듣고 악성 댓글에 시달릴 텐데 누가 나서겠냐"고 반문하더라고요.

유명 선수들은 그럼 뒷전에 물러나 있나요.

고연봉 선수나 스타 선수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저도 간절히 바라긴 하는데 그들의 사정 또한 이해가 가서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어요. 유명 선수들이 전면에 나서주면 편하겠지만, 선수협의 궁극적인 목표는 저연봉 선수들의 권익 증진이죠. 그들을 위한 단체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선수들이 권익을 침해당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죠?

FC 서울과 전북 현대에서 뛰었던 이승렬 선수의 경우 연봉 계약 체결이나 계약 문제로 소송 중이거든요. 에이전트(대리인)제도가 활성화됐지만, 선수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선수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현재 법률 자문도 하고 있고요.

신으로 불린 사나이 '드록신' 드로그바(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신으로 불린 사나이 '드록신' 드로그바(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해외에선 다른 선수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가장 유명한 선수는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가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이름으로 협회를 설립해 아프리카에 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축구용품을 줬고요. 일본에 하세베 마코토는 국가대표를 위해 뛰는데 대표팀 선수들의 수당이 늘어나는 게 맞지 않냐며 일본 축구협회(JFA)에 요구하기도 했죠.

선수 수당과 관련된 부분은 민감한 문제가 아닌가요.

네. 정확하게 보셨어요. 말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고 예민한 문제죠. 사실 수당 문제는 일부분이고요. 생활고를 겪는 친구들이 훨씬 많아요.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왔는데 실패하니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는 겁니다. 그런 친구들은 간절히 도움을 원하고 있는데 도와주기란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죠. 아직 축구계 분위기가 힘없는 선수들을 관심을 두는 구조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저연봉 선수들을 돕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FIFPro는 EA 스포츠와 코나미의 게임에 관련된 퍼블리시티권으로 많은 수익을 내요. 이 부분이 매우 큽니다. 현재 연맹에서 관리하는 부분인데요. 선수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겠죠.

EA 스포츠 게임에 등장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사진=EA스포츠)
EA 스포츠 게임에 등장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사진=EA스포츠)

야구 선수협의 경우 팬들과 소통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어요.

(고갤 끄덕이며) 기사를 통해 접했어요. 그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팬들과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사회적 공헌 활동과 이벤트를 통해 선수들과 팬들 간의 거리를 좁힐 생각입니다. 현재 팬들과 접촉할 점이 많이 부족해요. 하다못해 팬들은 사인공도 받고 싶고, 선수들과 사진도 찍고 싶을 거잖아요. 많은 팬이 프로축구를 바라봐줘야 한국축구가 더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선수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뭘까요.

축구발전이라는 큰 목표 안에 선수의 권익 보호 증진, 그리고 축구의 저변확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뿌리내리는 게 선수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한국 축구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한국 축구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팬들 여러분 프로축구선수협회가 출범함으로써 팬들에게 지지받고 더 사랑받는 선수들이 될 수 있도록 연맹과 협회와 함께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윤기 기자 stylekoo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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