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 신화’ 쓴 배기종, 어느덧 프로 14년 차

-“후배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웃음’ 선물하고 싶어”

-“경남엔 ‘절실함’을 안고 뛰는 선수 많아”

-“베테랑의 가치를 이해하고, 구현하는 게 중요”

미소가 어색하지 않은 경남 FC 주장 배기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미소가 어색하지 않은 경남 FC 주장 배기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창원]

배기종은 2006년 연습생 신분으로 대전 시티즌에 입단해 특출 난 실력을 자랑했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그라운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강철 체력, 상대 수비를 곤혹스럽게 하는 빠른 발과 저돌적인 드리블, 골문 구석을 강하게 때리는 슈팅력까지. 팬들은 ‘K리그를 주름잡을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며 배기종에게 ‘최신기종’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최신기종’이라고 불렸던 사나이는 어느덧 프로 14년 차 베테랑 선수가 됐다. 이관우, 김남일, 이운재 등 당대 최고의 스타가 모였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2008년 K리그1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09년엔 FA컵 우승도 맛봤다. 2010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뛸 땐 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기록하는 데 힘을 보탰다.

배기종은 2009년 3월 23일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준비하던 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까지 맛봤다.

배기종은 2016년 K리그2(2부 리그)에 속했던 경남 FC로 이적한 뒤 주장으로 맹활약해왔다. 2017년 K리그2에서 32경기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1 승격을 이끌었고, 2018년 K리그1에선 무릎 수술로 23경기밖에 뛰진 못했으나, 그라운드 안팎에서 솔선수범하며 경남의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1월 7일 경남 창원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도민과 함께하는 경남 FC 2019 K리그1·ACL 승리 기원의 밤’에서 만난 배기종은 베테랑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일은 없다뒤에서 묵묵히 후배들을 지원하는 게 내 임무다. 선수들이 즐겁게 훈련하고 경기장에 들어설 수 있도록 올 시즌엔 웃음을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기종, 그가 말하는 ‘과거와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2007~2009년) 배기종(사진 왼쪽)(사진=엠스플뉴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2007~2009년) 배기종(사진 왼쪽)(사진=엠스플뉴스)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 도전하는 해가 밝았습니다. 2018년 K리그1을 마친 뒤 어떻게 지냈습니까.

지난해 12월 2일 전북 현대와의 2018년 K리그1 최종전을 마치고, 한 달간 휴식을 취했어요. 경남이 18승 11무 9패를 기록하면서 시·도민구단 두 번째로 ACL 출전 티켓을 따내 마음 편히 쉬었습니다(웃음).

이제 새 시즌 준비에 돌입해야 합니다.

다시 뛸 때가 됐죠(웃음). 1월 9일 괌으로 전지훈련을 떠납니다. 젊은 선수들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지난해 12월 말부터 조금씩 개인 운동을 하며 준비해왔어요.

2006년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14년 차 베테랑인데, 몸을 만드는 과정이 젊은 선수와는 다를 듯합니다.

추울 땐 부상 위험도가 커요. 몸을 천천히 끌어올려야 하죠. 젊었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들었어요. ‘하루빨리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어 감독님 마음을 사로잡겠다’란 생각에 무리를 많이 했죠.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부상인데도 무리하게 몸을 만들다가 쉬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어요.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은 운동과 휴식을 병행하며 차근차근 몸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그라운드에 직접 뛸 때도 과거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할 듯합니다.

훈련할 때와 마찬가지에요. 젊은 시절엔 그라운드 위에서 파이팅이 넘쳤죠. 90분을 뛰어도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이 있었어요. 저돌적으로 돌파하고, 볼을 빼앗기면 곧바로 압박에 들어가고. 무작정 뛰었죠. 그러다 베테랑이 되면서 뛰어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구분하게 됐습니다. 경기 흐름을 읽고, 몰아붙여야 할 때 힘을 쓰는 법을 배운 거죠(웃음).

10년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라는 거대 클럽에서 뛰었고, 지금은 도민구단에서 주장으로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거대 클럽과 도민구단의 차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선수단 지원에서 좀 차이가 있어요. 기업구단은 클럽하우스 안에 운동장이 있습니다. 자기가 운동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죠. 시·도민구단은 달라요. 연습장(창원축구센터)을 빌려 쓰는 까닭에 개인 훈련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동장을 쓰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도민구단만의 장점도 있을 듯싶은데요.

절실함이죠. 도민구단엔 아픔을 안고 뛰는 선수가 많아요.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다가 큰 부상으로 잊힌 선수,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기량이 정체되거나 떨어진 선수. 그런 선수들은 ‘마지막’이란 절박한 심정으로 도민구단에서 열심히 뛸 수밖에 없어요.

K리그 베테랑의 생각 "좋은 선수 영입, 조직력 강화가 강팀을 만든다"

경남 FC 주장 배기종(사진 가운데)이 2017년 5월 3일 K리그2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경남 FC 주장 배기종(사진 가운데)이 2017년 5월 3일 K리그2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시·도민구단의 돌풍이 반짝으로 끝나 버리는 일이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2015년 ACL에 나갔던 성남(2016년 K리그2로 강등)이 그랬는데요. 경남이 꾸준한 팀으로 거듭나려면 어떤 보완이 필요할까요?

선수 영입이죠. 주축 선수를 지킬 수 없으면, 대체자를 빠르게 구해야 해요. 그러고서 팀 색깔을 잃지 않도록 조직력을 다져야죠. 한 선수에 크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서로가 도와가며 채워나가야 해요. 꾸준한 팀으로 거듭나려면 '선수 영입'과 '조직력 유지', 이 두 가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선수 영입’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일 텐데요. 특출 난 내국인 선수는 국외로 나가고, 이름값 있는 외국인 선수는 몸값이 비싸 현실적으로 영입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죠.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그런데도 투자를 해야 성적이 나오는 게 프로의 현실이에요. 경남도 말컹, 네게바, 쿠니모토 등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어요. 2019년 K리그1 개막을 앞두고선 김승준, 이영재, 곽태휘 등 이름값 있는 선수를 영입한 것도 좋은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일 거에요.

일각에선 ‘축구가 더 매력적인 상품이 돼야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냉정한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목소리입니다. 제가 봐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과 비교해 우리 K리그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하지만, K리그에서도 유럽 무대를 누비는 선수들만큼이나 많이 땀 흘리고, 더 많은 관중을 모시려고 노력하는 선수가 많아요. 관건은 경기장에서 남몰래 흘린 땀방울의 성과를 얼마나 팬들께 멋지게 보여드리느냐가 아닐까 싶어요.

배기종이 말하는 생존법 “베테랑이 꼭 필요한 이유가 있어요”

경남 FC 주장 배기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경남 FC 주장 배기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K리그1 우승 경험이 있습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뛸 때인데요. 올 시즌 경남은 K리그1, FA컵, ACL 세 개 대회에 도전합니다.

우승 싫어하는 선수가 있겠어요?(웃음). 서로가 제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성적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로 생각해요. 전 이제 스타도, 주연도 아니에요. 뒤에서 후배들을 격려하고, 도와주는 베테랑입니다. 어느 팀이든 한 시즌에 한 번씩은 위기 상황이 꼭 찾아와요. 그럴 땐 베테랑이 앞장서 탈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경남이 2019년 ACL 무대에 도전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나요? 예상치 못한 일에 흔들리지 않도록 항상 긴장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게 베테랑의 임무라고 봐요.

많은 팀이 '노장에 대한 대우'와 '젊은 선수 육성'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하곤 합니다.

팀 입장에선 어린 선수를 키워야 하는 게 맞아요. 선수 생활을 쭉 해오면서 베테랑만의 장점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에서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려면 베테랑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해요. 그런 건 젊은 선수가 하기 어렵죠. 훈련, 경기 중에도 후배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수가 분명 필요합니다. 조화가 중요하겠죠(웃음).

주장으로서 올 시즌 팀에 선물하고 싶은 게 뭘지 궁금합니다.

‘즐거움’이요. 모두가 웃으면서 훈련하고, 경기를 즐겼으면 해요. 우승하면 당연히 좋죠. 하지만, 성적에 집착하면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성적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나아가다 보면 결과는 저절로 따라올 거로 믿습니다. 팀에 더 많은 웃음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웃음).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