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오른발' 데이비드 베컴(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황금의 오른발' 데이비드 베컴(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엠스플뉴스]

하루에도 다양하게 일어나는 스포츠 이슈들, 그 이슈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을 #포토태그로 생생히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포토태그

#한국_방문 #데이비드_베컴 #황금_오른발 #선수시절…'한국 방문' 데이비드 베컴의 선수생활 모습은?

9월 20일(이하 한국시간)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선수

데이비드 베컴(42)이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기업의

홍보대사로 한국을 방문한 베컴.

베컴의 모습만으로도

옛 축구팬들의 추억을 자극하기는 충분했다.

2013년, 은퇴를 선언한 후

각종 행사에 참여중인

원조 축구판 '셀러브리티' 베컴.

베컴의 한국 방문을 기념해

세계 축구 역사에 써놓은

베컴의 전설적 일대기를 만나보자.

​베컴은 7살 때인 1982년, 브림스다운 로버스에서

유소년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베컴은 본격적인 선수 생활의 길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1994년 공식 프로 경기에 데뷔한

베컴의 등장은 실로

놀라웠다.

1995/96 프로 데뷔 두 번째 시즌을 맞은

베컴은 그 시즌 리그에서 무려 33경기에 출전,

7골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단숨에 맨유 주전으로 뛰어올랐다.

베컴의 장점이라 하면

단연코 '황금의 오른발' 이었다.

베컴의 킥은 날카로웠으며 속도까지 갖추고 있었다.

당시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사하는 맨유에 있어

완벽한 무기였던 베컴의 오른발이기도 했다.

이에 베컴은 맨유 9시즌 동안 총 265번의 리그 경기를 뛰며

62골 81어시스트라는 대단한 기록을 작성했다.

또한 베컴이 뛰었던 기간,

맨유는

7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1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베컴과 맨유, 그리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사이는

한 사건으로 인해

급속도로 틀어지고 말았다.

때는 2003년,

맨유가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패한 후

퍼거슨 감독과 베컴의 의견이 충돌한 것이다.

퍼거슨 감독은 마음에 들지 않는 베컴의 플레이에

거센 비난을 했고

베컴 역시 이에 대한 반기를 드러낸 것.

결국 이날 일을 계기로

베컴은 정들었던 맨체스터 유나티드를 뒤로하고

이적을 감행한다.

그 곳은 스페인의 명문 클럽

레알 마드리드.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빅 사이닝'은

베컴 뿐이 아니었다.

베컴을 비롯,

루이스 피구, 호나우두, 지네딘 지단, 호베르투 카를로스

라울, 마케렐레 등

당시 유럽 축구를 호령하는

선수들은 모두 레알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레알의 갈락티코(은하수) 정책의 시작.

그러나 이는 결코 좋은 시너지는 아니었다.

베컴 역시 그간 출전하던

오른쪽 미드필더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출전하는 경우가 잦았으며

레알 마드리드 역시 갈락티코 정책이 유지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리그 무관에 그치는 등 치명적인 전술적 약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결국 베컴의 발 끝에서,

레알의 4시즌 만에 우승이 기록됐다.

맨유 뿐 아니라 레알에서도

동료로 만나게 된 루드 반 니스텔루이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베컴은 2006/07 시즌 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반니스텔루이 또한 득점왕을 차지했다.

결국 이들은 레알 갈락티코 정책 기간 유일한

리그 트로피를 수확한 주역이 되며

자신의 주가 또한 올렸던 베컴이었다.

그러나 베컴은 돌연,

당시로서는 축구 불모지였던

미국행을 택했다.

LA 갤럭시로 이적한 베컴.

그러나 그의 나이는 당시 31세에 불과했고

조금의 아쉬움을 지울 수 없던

전 세계의 축구팬이었다.

그러나 베컴의 실력은 결국

다시금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베컴을 이끌고 말았다.

때는 2009년, 베컴은 당시 AC밀란 감독이던

안첼로티 감독의 강한 러브콜에 이끌린 베컴은

미국 리그 휴식기인 2009년 1월, 3개월간의 AC 밀란

임대행을 결정했다.

또한 이는 베컴의 월드컵에 대한 강한 열망 또한 작용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대표팀에 차출되기 원했던 베컴의

결단(그러나 베컴은 부상으로 인해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기도 했다).

또한 베컴은 2009년 6월, 임대 종료 후

2009년 11월 다시 AC 밀란으로의 재임대를 결정하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밀란 2시즌 총 29경기 출전해 2골 7어시스트라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당시의 베컴.

베컴 축구사의 의미있는 장면 역시 밀란 시절 탄생됐다.

2009/10 챔피언스리그 16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올드 트래포드에 방문하며

맨유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한 베컴이었다.

맨유 팬들의

베컴에 대한 그리움을 알 수 있던 장면.

이후 베컴은

밀란에서의 임대 생활을 마치고

LA 갤럭시로 복귀 2012년 까지,

2시즌을 더 미국 무대에서 보냈다.

마지막해

리그 8골을 기록하는 등

여전한 활약을 보이던 베컴.

결국 베컴은 2013년 1월,

당시 PSG 안첼로티 감독의 또 한 번의 부름에 의해

5개월이라는 짧은 계약기간으로

파리 이적을 확정했다.

짧았지만 의미있었던

베컴의 PSG 시절이었다.

비록 2개의 어시스트만을 기록했으나

베컴은 14경기에 출전,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유럽에서 증명했고

이후 베컴은 2013년 6월,

자신의 20년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했다.

은퇴 이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축구 팬들에게

그리운 얼굴을 내비치고 있는 현재의 베컴.

아직 감독, 코치 등 구체적인 지도자로서의 소식은 없는

베컴이다.

그러나 하루 빨리 그의 '황금 오른발'을 구현해낼 수 있는

감독 베컴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팬들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일 것이다.

사진출처= AIA 코리아, 게티이미지 코리아

김다빈 기자 dabinnet@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