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윙어, 루이스 피구(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전설적 윙어, 루이스 피구(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엠스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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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_기술고문_선임 #루이스_피구 #레전드_윙어…'UEFA 기술 고문 선임' 루이스 피구, 전설적 윙어의 옛모습은?

프로 골퍼 선수와 비견해도

낯설지 않은 이 남자.

그는 바로

포르투갈이 낳은

최고의 측면 미드필더

루이스 피구(45)다.

2009년 은퇴 이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루이스 피구가

10월 12일(이하 한국시간)

UEFA(유럽 축구 연맹)의 공식적인

기술 고문 위원으로 임명됐다.

경기의 기술과 여러가지

자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피구.

다시 축구계로 돌아온 반가운 얼굴

피구의

전설적인

선수 시절 활약상을

다시 한 번 만나보자.

1991년, 일명 포르투갈의 '황금 세대'의

대표적인 선수로 활약,

그 해 세계 청소년축구대회를 우승으로 이끈 피구는

1989년부터

1995년 까지,

포르투갈 스포르팅에서 6시즌 간 활약을 바탕으로

1995년 여름, 세계적인 명문 클럽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23살의 젊은 미드필더 피구의

등장은 세계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육상 선수 출신다운

빠른

드리블 실력은 물론,

가까운 거리, 먼거리를 상관하지 않는

정확한 킥력은 세계적인 윙어의 등장을

알리기 충분했다.

이에 피구는 1995/96 시즌부터

1999/2000 시즌까지

5시즌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249 경기 출전,

45득점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리그 2회 우승을 이끄는 등

팀의 주장으로 완벽히 바르셀로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그런 피구가 돌연,

2000/01 시즌을 앞두고

역사적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버렸다.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지 않는

약 556억 원에 저렴한

바이아웃 금액(계약 상 해당된 금액보다 높은 이적료를 제시하면

개인 협상이 가능한 제도)이 그 원인.

뿐만 아니라 피구 본인 역시

바르셀로나보다 레알을 선호한다고 밝히며

레알에는 기쁨을,

바르셀로나에는 슬픔을 넘어선 분노를 안겨줬다.

이런 충격적이며 역사적인 이적에

바르셀로나 팬들 역시 분노감을 감추지 못했고,

레알 첫 시즌 맞은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피구는

경기를 진행조차 못할 엄청난 비난과

욕설에 시달리며 곤혹을 치러야만 했던 피구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는 악재였으나

레알 마드리드에는 보석 같은 존재였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 정책으로

당대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모두 영입했는데

이 중에서도 피구의 측면 돌파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결국 피구와 레알 마드리드는

2000/01, 2002/03 시즌

리그 우승을 비롯

2001/02 시즌

레버쿠젠을 결승에서 꺾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기 이르렀다.

또한 피구는

2000 유로 대회에서

포르투갈을

4강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며

2000 FIFA 올해의 선수상 2위,

2000년 발롱도르 수상

2001 FIFA 올해의 선수상 등

개인 수상의

영에를 안기도 했다.

한편, 당시

승승장구를 이루고 있던

피구와 포르투갈 이었으나,

2002 한일 월드컵은 뜻밖의 난초에 부딪힌 대회였다.

포르투갈은 조별예선 3차전 경기 맞붙은

한국과의 일전에서

피구가 송종국, 이영표에 완벽히 묶여버린

포르투갈은

0-1로 패하며 1위 통과의 예상과는 달리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2년 전 아픔을 뒤로하고

2004 유로 대회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주장' 피구와

새로운 스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의 활약을 바탕으로

대회 준우승을 달성,

여전한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피구는 함께 했다.

그러나 유로 2004 이후 피구의 나이는

어느덧 32세에 달했고,

피구 역시 2004/05 시즌

리그 단 3골에만 그치는 부진에 빠지게 됐다.

결국 피구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새로운 행선지로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인터 밀란행을 결정했다.

인터 밀란에서

다시 자신의 기량을 회복한 피구였다.

피구는 새로운 무대인

이탈리아 적응을

순조롭게 이루며


적재적소에 이뤄지는 돌파,

그리고 여전한 킥력을 바탕으로

인터밀란의 승승장구를 이끌었다.

결국 인터밀란은 피구가 활약하던 2005/06 시즌부터

2008/09 시즌까지

모든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인터밀란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

한편, 피구와 포르투갈 대표팀의

이별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유로 2004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피구는

마땅한 대체 자원이 없던 포르투갈 대표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은퇴 번복 이후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을 결심했다.

마지막 대회, 인상적인 마침표의 피구였다.

비록 피구와 포르투갈은 4강전에서 승부차기 끝

프랑스에 패해 대회 4위에 머물렀으나

피구가 보여준 포르투갈 영웅 다운

활약은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2006년 대표팀 은퇴와 함께 피구 역시

2009년, 37세의 나이로

20년 간 정들었던

축구장을 영원히 떠났다.

이후

8년 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팬들에게

얼굴을 비쳤던 피구.

이제는 UEFA의 새로운 기술 고문 위원으로써

다시 한 번 세계 축구계에 영향을 끼칠

피구의 모습이 더없이 반가운 오늘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김다빈 기자 dabinnet@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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