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가 시범경기 개막전을 마친 후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박은별 기자)
박병호가 시범경기 개막전을 마친 후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박은별 기자)

[엠스플뉴스=플로리다]

박병호(30·미네소타 트윈스)가 달라졌다. 어느 때보다 여유가 보였다.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급함은 없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박병호는 시범경기 첫 경기를 기분 좋게 마무리 지었다.

박병호 2월 24일(이하 미국시간) 미국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 컨트리링크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열린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시범경기 개막전 라인업에 6번 지명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예상외의 선발 출전이었다. 박병호 스스로도 시범경기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오를 줄 몰랐다고 했다. 박병호는 경기 당일 아침에야 출전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만큼 박병호의 상황이 현재 녹록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첫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시작할 때완 상황이 '영' 달랐다. 캠프 시작 전, 팀에서 지명할당되며 마이너리그 소속 초청선수 신분으로 미네소타 캠프에 참가해야 했던 박병호다.

박병호는 미국으로 오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죽기 살기로 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지명할당 조치 후 만난 박병호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더욱 비장한 표정으로 캠프를 준비할 것만 같던 그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버릴 생각이다. 더 재밌게 하려고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개막전에 앞서 훈련을 준비 중인 박병호(사진=엠스플뉴스 박은별 기자)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팀 내 입지가 불안한 박병호에겐 결과를 보여줘하고, 실력을 증명해 하는 기회가 시범경기였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더 재밌게 하려고 한다"는 박병호의 말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만 했다. 열흘 만에 다시 만난 박병호는 여전히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범경기 개막전을 앞두고 박병호가 취재진과 나눈 대화는 이랬다.

"지난해 첫 게임에선 무척 긴장했다. 삼진 3개(개막전이던 보스턴 레드삭스전)를 당하지 않았나.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나. 잘하고 싶고, 잘한다고 노력해도 못하면 그만이다. 잘해야 하고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야구는) 잘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한다. 이제 첫 경기 아닌가. 누군가 잘하면 잘하는 거고, 또 못하면 못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 나는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지만, 지금은 타석에서 배트 돌리는 모습, 타이밍이 앞에서 맞는 모습 등이 더 중요하다. 감독과 코치님들도 그런 모습을 보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박병호를 취재하며 들은 이야기 가운데 가장 쿨한 멘트였다. 마음의 짐, 부담을 많이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박병호의 쿨한 반응은 취재진을 의식해 나온 게 아니었다. 박병호를 옆에서 지켜 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좋은 의미로) 변했다.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고 했다.

몰리터 미네소타 감독도 느낀, 달라진 박병호 "더 편안해진 것 같다"

그리고 맞은 첫 경기. 박병호의 '내려놓음'이 정말 효과를 본 걸까. 출발이 좋았다.

2타석에서 모두 안타를 때려냈고, 그중엔 우측 담장을 직접 맞히는 장타도 있었다. 박병호는 2회 2사 후 탬파베이 우완 오스틴 프루이트의 빠른 볼(93마일) 공략해 중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3볼 1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만들어낸 결과. 팀의 첫 안타가 박병호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4회 1사 후 두 번째 타석에서도 우완 제이콥 패리아의 빠른 볼을 받아쳤다. 94마일 짜리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속구를 본 박병호는 두 번째 속구에 방망이를 대봤지만 파울이 됐다. 다음 노리던 빠른 볼은 놓치지 않았다. 2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서 93마일짜리 속구를 밀어 우측으로 보냈다. 타구는 담장을 맞고 2루타로 기록됐다.

지난해부터 부족하다고 느꼈던 속구에 주저 없이 방망이가 나갔다. 2타수 2안타. 팀이 때려낸 7안타 중 박병호가 2개를 기록했다.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경기 후 만난 박병호는 다시 한 번 달라진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했다.

"오늘이 첫 경기이고 시범경기 성적이 중요하니 내가 긴장할 수 있었는데 생각한 것이 있다. 잘하고 싶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작년에 비 시즌에 부족한 걸 연습했으니 그 부분이 경기 때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번 시범경기를 잘 해야 다음에 도전할 수 있는 입장인데 그 부분에 너무 신경 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 편하게 하려고 했다. 스스로 만족하는 야구를 하고 싶다. 첫 경기치고 나쁘지 않았다는 것에 오늘 경기 의미를 두고 싶다."

박병호가 지명할당 이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이야기는 '편하게 하려고 한다'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바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바닥까지 떨어졌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마음이 그를 예전보다 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경기 후 만난 폴 몰리터 미네소타 감독 역시 "박병호가 그래도 올해 두 번째라 그런지 더 편안해보였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빠른 볼에 대한 대처가 좋았고 힘도 더 좋아진 것 같더라"면서 "팔뚝에 한 문신이 이전보다 공간이 더 넓어보였다"는 농담도 했다.

박병호는 지난해 시범경기서 삼진 3개를 당했다. 그렇다고 이후 진행된 시범경기에서 위치나 마음가짐이 달라진 건 없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첫 경기서 2안타를 때려내며 좋은 출발을 했지만 그는 이제 시작일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박병호는 "앞으로도 한 달 가까이 시범경기를 할 텐데 부상 없이 오늘처럼 편하게 임하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박병호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부담을 떨쳐내고 정말 야구를 즐기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해는 더욱 달라질 박병호를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박은별 기자 star8420@mbcplus.com

스프링캠프 기간을 맞아 MBC SPORTS+와 엠스플뉴스는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미국 애리조나, 투산, 플로리다와 호주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 미야자키 등 캠프 전역을 현장 취재합니다. [엠스플 in 캠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