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라이언(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놀란 라이언(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엠스플뉴스]

"1973년 5월 16일(한국시간) 캘리포니아 엔젤스 투수 놀란 라이언이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12탈삼진 커리어 첫 노히터no-hitter를 달성했다. 라이언과 호흡을 맞춘 제프 토버그는 이날 경기로 통산 세 번 노히터 경기에서 공을 받은 포수가 됐다."

놀란 라이언은 메이저리그의 '파이어볼러fireballer'를 상징하는 투수다. 라이언은 시속 100마일(161km/h)를 웃도는 패스트볼,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떨어지는 파워커브를 무기로 통산 5714탈삼진(역대 1위)을 잡았고, 통산 피안타율은 .204(역대 1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무시무시한 내구성에 있다. 라이언은 무려 27년을 현역으로 뛰었다. 이는 1900년대 이후 다른 어떤 선수보다 많은 시즌을 보낸 기록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만 46세였던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공의 구속이 158km/h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위와 내구성을 바탕으로 라이언은 엄청난 누적 성적을 쌓았다.

라이언은 통산 승률이 52.6%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324승(역대 14위)를 거뒀다. 왜냐하면, 통산 773경기(역대 2위)에 선발 투수로 나서 5386이닝(역대 5위)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두 기록은 라이브볼 시대 이후로 한정 지을 경우 역대 1위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생긴 부작용도 있었다. 바로 볼넷(2795)과 폭투(277)에서 역대 1위, 패전에서 라이브볼 시대 이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

여기엔 커리어 초창기에 제구 불안에 시달렸던 점이 한몫했다. 불가사의한 것은 볼넷(통산 BB/9 4.7개)을 많이 내준 까닭에 남들보다 투구수가 많았을 그가, 경력 내내 심각한 부상을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빠른 공을 던지는 것으로 잘 알려진 현역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는 것과 대비해보면 그의 위대함이 새롭게 다가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비결로 강력한 허벅지 근육과 유연한 허리 근육을 꼽는다. 팔힘에 의존하는 다른 강속구 투수들과는 반대로, 라이언은 일반인들의 허리보다 더 굵은 허벅지 힘을 이용해 공을 던졌다. 그 하면 떠오르는 하이키킹 동작을 연상해보자. 하지만 하이키킹 동작은 필연적으로 허리에 무리가 가게 된다는 단점도 있다.

이럴 때 충격을 완화해주는 게 마치 스프링과 같다고 전해지는 그의 허리 근육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투수들과 달리, 라이언은 커브를 던질 때 손목을 비트는 동작이 없었다. 여기에 수많은 러닝을 통해 단련된 강철과도 같은 체력이 더해져 강속구 투수치곤 드물게 롱런할 수 있었던 것. 물론 롱런에는 이런 신체적인 능력 못지않게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그의 성격도 한몫했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라이언의 커리어에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화려한 통산 성적에도 불구하고 사이영상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이는 승과 승률을 중시하는 당시 풍토와도 연관이 깊다. 라이언은 전성기 대부분을 약체팀에서 뛴 까닭에 당대 비슷한 급의 투수들에 비해 패가 유독 많았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87시즌이다. 이해 만 40세였던 라이언은 평균자책 2.76- 270탈삼진으로 2관왕에 올랐으나, 8승 16패에 그치는 바람에 사이 영 투표에선 5위에 머물렀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사이 영 투표에서 2, 3위에 올랐던 다른 시즌들도 마찬가지. 승과 비슷한 패배수로 인해 저평가받은 것일 뿐, 최근 기준으로는 충분히 사이영상을 받을만한 성적이었다.

놀란 라이언과 노히터 게임

아무튼, 다시 첫 번째 노히터가 있었던 1973년 5월 16일로 돌아가 보자. 이날 경기 전까지 라이언은 4승 3패 평균자책 3.09를 거두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소속팀 캘리포니아 엔젤스가 최약체 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라이언의 4승은 모두 완투였고, 그중에는 5월 3일에 있었던 12이닝 완투승도 포함되어있었다.

나머지 경기 중에서 그가 못했다고 할만한 경기는 5월 12일에 0.1이닝 동안 5실점을 내준 경기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루 뒤 열린 13일 경기에서 2이닝 세이브를 거두면서 어느 정도는 설욕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16일 열린 노히트 경기는 그가 이틀 연속 등판한 뒤 이틀 휴식 후에 열린 경기였던 것. 지금 기준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투수 기용 행태다.

하지만 라이언에게 이러한 기용 행태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16일 라이언은 쿠키 로하스를 제외한 주전으로 나선 캔자스시티의 모든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았고, 단 한 명의 타자에게도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저 3볼넷을 허용했을 뿐이다. 어쩌면 캔자스시티 타자들은 라이언이 던진 공이 볼이 되길 바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라이언은 첫 번째 노히터를 달성한 지 딱 2달이 지난 7월 16일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통산 두 번째이자 시즌 2호 노히터 경기를 만들어냈다. 그는 이해 26번의 완투를 포함해 326.0이닝을 던졌고, 21승 16패 평균자책 2.87 383탈삼진(역대 1위)을 기록했다. 그리고 은퇴하기 전까지 5번의 노히터 경기를 추가하며 통산 총 7번의 노히터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은퇴 후의 이야기

1993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라이언은 1999년 열린 첫 투표에서 98.79%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이는 톰 시버(98.84%)에 이어 투수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자, 타자를 포함해도 역대 세 번째로 높은 득표율(1위는 켄 그리피 주니어 99.32%)이다. 게다가 그의 등번호 30번(LA 엔젤스)과 34번(휴스턴 애스트로스, 텍사스 레인저스)는 무려 3팀에서 영구결번되기도 했다.

이는 전 구단 영구결번인 재키 로빈슨(42번) 다음으로 많은 구단에서 영구결번된 기록이다. 그만큼 라이언은 메이저리그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라이언은 은퇴 후 마이너리그팀의 구단주, 텍사스 레인저스의 사장을 거쳐 2010년에는 텍사스의 공동 구단주가 됐다. 2013년 후반기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텍사스 투수들은 라이언의 투구 철학에 영향을 받아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덕분에 라이언은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렸던 알링턴파크의 저주를 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아들 레이드 라이언이 야구 운영부문 사장으로 있는 휴스턴으로 자리를 옮기며 구단주 짐 크래인의 특별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놀란 라이언의 통산 기록

# 올스타 8회(1972,1973,1975,1977,1979,1981,1985,1989)

# NL 평균자책점 1위 2회(1981,1987)

# 탈삼진 1위 11회(1972~1974,1976~1979,1987~1990)

# 탈삼진 5714개(역대 1위), 노히트노런 7회(역대 1위)

# 월드시리즈 우승 1회(1969)

# LA 에인절스(#30), 휴스턴 애스트로스(#34), 텍사스 레인저스(#34) 영구결번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1999년,98.79%)

# 통산 324승292패 5386이닝 5714삼진 평균자책점 3.19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